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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뒤엉킨 사랑, 죽어서 끝을 맺다!(완결) 심랑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와 내가 나올 수 있었다면 그들도 분명히 나올 수 있을 것이네." "우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이 어찌 당신만 하겠어요?" 주칠칠의 말에 왕련화가 탄식을 했다. "더구나 쾌락왕은 전혀 우리를 주의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오. 하지만 그들은......." 주칠칠이 길게 한숨을 흘렸다. "이제 그들이 도망을 칠 수 있든 없든 우리와 관계가 없으니 다행이에요." 왕련화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크게 외쳤다. "그렇소. 그들이 도망을 치든 못 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소? 우리에게는 지금 어떻게 이 사막을 빠져나가느냐가 가장 급선무요." 이 황량한 사막에서는 밤엔 혹한(。寒)에 시달리고 낮에는 더위에 시달린다. 더구나 뜨거운 햇빛과 모래바람, 식수의 부족, 익숙치 못한 길로 인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시시각각으로 독사와 맹수, 유사(流沙) 등을 조심해야 했다. 이 길은 참으로 고된 길이었다. 이렇게 이틀을 걷자 사람과 말이 전부 지쳐 버렸다. 황량한 사막은 여전히 끝이 없어 보였다. 이때는 심랑조차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가 비록 초인이라고는 해도 역시 자연의 힘 악에서는 별수 없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가장 편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백비비였다. 그녀는 계속 혼미한 상태였다. 이날 저녁에 주칠칠은 천에다 물을 적신 후 그녀의 입술에 적셔 주었다. 그녀의 나날이 초췌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주칠칠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했다. "왕 부인의 미약은 과연 무섭군." 웅묘아와 심랑은 길을 찾으러 나가고 없었다. 다만 왕련화가 그녀와 함께 있을 뿐이었다. 왕련화가 갑자기 냉랭하게 말했다. "그녀는 더이상 깨어나지 않을 텐데 물을 그렇게 낭비할 필요가 있겠소?" 주칠칠이 화를 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왕련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그렇게 대하다니, 그녀가 전에 당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잊었소?" "그녀가 전에 어떻게 날 대했든 그녀도 최소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여인이구요. 난 절대로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예요. 내 몫의 물을 그녀에게 주는 한이 있어도 상관 없어요." "당신이 목말라 죽고 그녀는 살게 된다면 그것 참 일이 묘하게 될 것이오. 그때쯤 심랑은 아마도......." 주칠칠이 펄쩍 뛰었다. 그녀는 큰소리로 따졌다. "당신 같은 사람을 심랑이 왜 죽이지 않는지 이상할 따름이군요." 왕련화가 냉랭하게 말했다. "심랑이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은 바로 그의 가장 똑똑한 판단이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갑자기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다는 거지?" 바로 웅묘아가 성큼성큼 걸어왔는데 눈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왕련화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벌써 죽었을 겁니다." 웅묘아는 그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웅묘아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때 심랑도 막 돌아오자 주칠칠이 맞이하면서 물었다. "악에는 길이 있던가요?" 심랑은 한탄을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으나 다시 또 웃음을 흘렸다. "당신은 안심하시오. 세상에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길이란 없으니." 이렇게 또 이틀을 걸었다. 이제는 심랑의 미소조차도 더이상 주칠칠의 용기를 북돋을 수 없었다. 백비비는 더욱 혼미해져서 마치 살아있는 시체 같았다. 그들이 물을 아껴 쓰면 쓸수록 체력은 더욱 힘에 부쳐서 일찍 휴식을 취했다. 지금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휴식이었다. 또다시 찬란하게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아름다운 별빛을 찬미하지는 않았다. 주칠칠은 심랑의 품 속에 기대어 중얼거렸다. "혹시 우리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요? 갈수록 더욱 나갈 수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밤은 고요했고 웅묘아와 왕련화는 이미 잠들었다. 심랑은 애처롭다는 듯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결을 만지면서 위로했다. "방향은 절대로 틀리지 않았소. 다만......." 주칠칠이 갑자기 생긋 웃었다. "길을 잘못들었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당신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 간다고 해도 저는 상관없어요." 심랑은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을 보고 또 옆에 혼미해있는 백비비를 바라보았다. 순간, 마음이 혼란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흐르자 주칠칠은 드디어 일어서서 혼미한 백비비의 모습을 보고는 걱정을 했다. "더이상 이렇게 나아가다가는 우리는 괜찮지만 그녀가......." 심랑이 갑자기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그녀를 미워하오?" 주칠칠이 고개를 흔들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왜 그녀를 아직도 미워하겠어요? 비록 예전에는 그녀가 미웠지만 지금은....... 지금은 이렇게 가여운데요. 사실, 그녀는 줄곧 불쌍한 여인이었어요." 심랑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그녀는 확실히 불쌍한 여인이었소." 주칠칠은 갑자기 심랑의 목을 끌어안고는 울먹였다. "어쩔 때는...... 어쩔 때는 저는 정말로 당신을 그녀에게 양보해 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녀의 일생은 오직 증오와 고독만으로 가득했고 유일하게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었으니까요."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는 이미 낮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전 정말로 당신을 포기할 수 없어요. 심랑, 심랑...... 저를 탓하시나요?" 심랑은 그녀를 꼭 안으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바보, 내가 어떻게 당신을 탓하겠소? 내가 어떻게 당신을 탓하겠소?"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마치 이렇게 묻는 듯했다. "이건 누굴 탓해야 하는 건가요?" 그는 비록 웃고 있었지만 그 누가 그의 쓰디쓴 속마음을 알까! 이렇듯 고요한 밤에 이렇듯 찬란한 별빛 아래에서 그는 하마터면 모든 것을 털어놓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주칠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맘 속에는 수천 수만 마디의 할 말이 있었지만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어군. 우리도 어서 잡시다." 그렇다. 자자. 자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내일 모든 것이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슨 할 말이 있다면 내일 얘기하기로 하자. 내일은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그것을 과연 누가 알까? 드디어 햇빛은 대지를 밝혀줬다. 웅묘아는 깨어나면서 막 하품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넋을 잃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 왕련화는 몸의 반 이상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도 더러운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윗몸은 벗겨진 채 채찍질로 군데군데가 핏자국 투성이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귀신같았다. 그러나 의외인 것은 그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몸에 생긴 이 모든 일들을 그는 하나도 모르는 듯했다. 다시 심랑과 주칠칠을 보자 두 사람은 등을 맞댄 채 묶여 있었고 두 사람의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마치 한 줌씩 잘려나간 것 같았다. 웅묘아 자신은....... 그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몸도 역시 묶여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뜨거운 햇볕에 그의 피부는 거의 갈라지려고 했고 그의 옷은 거의 벗겨진 채였다. 웅묘아는 정말로 크게 놀랐다. "이게 대체 어찌된 노릇이지? 설마 정말로 사막의 귀신을 만난 것은 아닐 테지?" 비록 훤한 대낮이고 그의 간이 컸지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을 만나자 그는 참을 수 없이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웅묘아는 사막에서 몸부림을 치며 비틀었다. 그는 드디어 두 가지를 발견했다. 즉 말이 보이지 않았다. 마른 음식과 물 주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말과 음식, 그리고 물은 바로 그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들이다. 대체 누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단 말인가? 그는 눈길을 사방으로 돌려 살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도 몇 점 떠있었으며 무더운 더위는 사람을 질식케 했다. 사방의 백리 안팍으로는 절대로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혹시 쾌락왕이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쾌락왕이었다면 결코 그들을 이렇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웅묘아는 참을 수 없어 크게 소리쳤다. "심랑! 어서 일어나 봐! 심랑!" 그는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뭔가를 발견하고는 목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심랑 곁에서 시종일관 인사불성이던 백비비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심랑도 깨났다. 그는 눈을 뜨자 곧 눈앞의 땅바닥에 어지러운 흔적을 보았다. 그것은 돌로 땅바닥에 글씨를 썼다가 다시 지운 것 같은 흔적이었다. 그도 역시 머리가 깨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사지는 마비됐고 얼굴의 근육은 자신도 모르게 한 차례의 경련이 일어났다. 그는 중얼거렸다. "심랑아! 심랑아! 너는 또 당했구나." 웅묘아는 그의 음성을 듣고는 곧 크게 외쳤다. "심랑, 자네도 깨어났나? 자네도 이 모든 상황이 보이나? 물도 없고, 말도 없고, 음식도 없어졌고 백비비도 없어졌네." 심랑이 길게 한숨을 토했다. "백비비도 갔나?" "이건 대체 어찌된 노릇인가? 맙소사, 이게 대체 어찌된 노릇인가?" "이것은 백비비가 한 짓이네. 백비비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웅묘아가 경악을 했다. "백비비라고? 이 모든 것이 전부 백비비가 한 짓이란 말인가?" 심랑이 참담하게 웃었다. "그녀는 이미 갔는데 자네는 아직도 모르겠나?" "그녀는 비록 갔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이 그녀를 데리고 갔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녀는 줄곧 혼미한 상태에 있었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심랑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너무 그녀를 얕본 것이네. 그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그녀를 얕보게 된 이유를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연기가 너무 진짜 같아서였네. 그녀가 연출해낸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애처로움과 동정심을 갖게 했고 그녀를 경계하는 마음도 잊게 했지."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벌써부터 깨어 있었고 일부러 혼절한 것으로 가장했다는 말인가? 설마 그녀가......." 이때 주칠칠도 깨어났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심랑...... 심랑, 당신은 어디 있어요?" 심랑이 답했다. "칠칠, 칠칠, 당신, 다치지는 않았소?"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요. 심랑, 당신은 제 뒤에 있는 건가요? 당신도 묶여 있는 건가요?" 심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그렇소." 주칠칠이 물었다. "이건 대체 어찌된 일이죠? 아! 내 악에 글씨가 쓰여 있어요." 심랑이 다급히 물었다. "뭐라고 쓰여있소?" "잠깐만요. 땅바닥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물 한 방울의 은혜는 샘물로 갚듯이 목숨은 살려주어 둘이 함께 살게 해주마. 불행하게 태어난 이 몸, 사사로운 정과 한을 끊고 멀리 떠나 다시는 그대들을 보지 않으리" 그녀는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것이 백비비가 쓴 것인가요?" "그렇소." "그녀는 갔군요...... 그녀는 혼자서 갔군요. 그녀는 늘 당신을 뺏으려 했지만 결국은 그래도 당신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나를 남기고 저와 당신을 함께......." 그녀의 말소리는 점차 울먹이는 소리가 됐고 결국에는 통곡을 했다. "'사사로운 정과 한을 끊고 다시는 그대들을 보지 않으리라.’ 백비비여! 당신은 혼자 외롭게 살지언정 나를 죽이지 않았군요. 백비비여! 난 줄곧 당신을 잘못 봤어요.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어요. 난...... 난 당신에게 미안할 뿐이에요. 난 정말로 당신에게 미안할 뿐이에요." 웅묘아가 반박했다. "그녀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겠어? 왜 우리의 양식과 물, 그리고 말을 훔쳐 갔겠어?" 심랑이 길게 한숨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그녀....... 그녀는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이야. 그녀의 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어. 그녀의 마음이 대체 선한지, 아니면 악한지는 아마도 영원히 모르게 될 거야." 웅묘아도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역시 길게 탄식을 했다. "어찌됐든 그녀는 대단한 여인이야. 시종일관 인사불성된 모습으로 그 힘든 기갈(饑渴)을 참으면서도 눈꺼풀조차 열지 않은 그 한 가지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백비비여! 그대는 정말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오." 심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바로 그녀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그렇게 한 걸세." "그녀는 기왕 사사로운 정과 한을 끊고 모든 것을 잊고 떠날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그냥 가지않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이렇게 골탕 먹이려는지 알 수 없군." 심랑이 침통하게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그녀는 이를 악물고 온갖 고통을 감수(甘受)하면서까지 자존심을 되찾고 우리에게 그녀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였지." 주칠칠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어쩌면 당신과 맞대고 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또 그녀는 당신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였을 거예요. 여자들은 갖은 고통을 감수할지언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얕보이는 것은 견딜 수 없거든요. 특히 그녀와 같은 사람은 더 심하죠." 웅묘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그녀를 얕볼 수 있겠나? 심랑조차도 그녀에게 몇 이나 당했는데 누가 감히 그녀를 얕본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그녀말고 또 누가 심랑을 골탕먹일 수 있단 말인가?" 주칠칠이 갑자기 큰소리를 질렀다. "심랑이 그녀에게 골탕을 먹은 것은 그녀보다 못해서가 아니에요." 웅묘아가 물었다. "그럼 뭣 때문이지?" "그것은 심랑이 줄곧 그녀를 동정하고 그녀를 애처롭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줄곧 그녀를 도와주고 구해주려는 생각만 했고 그녀를 해치거나 그녀와 맞서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열 명의 백비비가 있다고 해도 심랑을 골탕먹일 수는 없었을 거예요." "난 본래 주칠칠이 심랑을 좋아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심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어.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겠군." "난 다만 전심전력으로 심랑에게만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당신들보다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거예요." 웅묘아가 크게 웃었다. "심랑! 심랑! 자네는 이렇게 어여쁜 지기를 얻었으니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네." 이때 갑자기 왕련화의 껄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웃을 수 있다니 정말로 탄복하오." 그의 입에는 모래가 들어 있는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웅묘아가 물었다. "왜 웃을 수 없단 말이지? 난 적어도 모래에 파묻히지는 않았단 말이야." "내가 당한 게 뭐 대수요? 하지만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우리의 대 영웅이신 심랑께서 어찌 죽은 돼지모양으로 저렇게 묶여 있단 말이오? 난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심랑은 전혀 화를 내지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조심했다면 우리도 이 지경으로 되지는 않았을 거야." 왕련화가 냉소를 치며 물었다. "설마 나를 탓하려는 것이오?" "자네는 우리가 이렇게 당하면서도 어째서 아무 것도 몰랐는지 알고 있나? 그것은 바로 백비비가 우리의 물 주머니에 미약을 탓기 때문이지. 그녀가 언제 물 주머니에 약을 탓는지 자네는 아나? 그것은 바로 내가 자네더러 이곳을 지키라고 했을 때였네. 자네는 물을 남의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면서 왜 눈을 똑바로 뜨고서 지키지를 않았지?" 왕련화는 입 속의 모래를 아그작 소리가 날 정도로 씹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웅묘아가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지? 난 손발에 전혀 힘이 없어서 이 끈마저도 뿌리칠 수가 없네. 이렇게 나가다간 말린 생선이 되겠어." 그는 억지 웃음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고양이 구이 맛이 어떨런지 모르겠군. 최소한 나는 맛볼 수 없겠지만." 왕련화가 냉소를 쳤다. "재미 있군. 아주 재미있는 말이야." 그는 '튀'하는 소리와 함께 입 안에 가득 있던 모래를 땅바닥에 내뱉았다. 햇빛은 점점 강렬해졌고 모래는 점점 더 살이 델 정도로 뜨거워졌다. 웅묘아는 햇빛아래 어지러울 지경이었고 그의 몸에 묶은 끈도 점점 쫄아들어서 뼈까지 아프도록 그의 몸을 죄였다. 그의 입술은 햇빛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백비비야! 백비비야! 나를 죽이지 않은 것도 고맙지가 않구나. 이렇게 죽느니 차라리 단칼에 나를 죽이는 것이 백 배 더 나을 뻔했어. 네가 우리를 죽이지 않으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죽이려는 것이었구나." 왕련화가 탄식을 했다. "나도 나 자신이 좋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햇빛에 말라죽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이렇게 죽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괴로울 거야." 심랑이 약간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죽음이든 편한 것은 없지." 왕련화가 눈을 뜨고 뜨고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아직도 웃을 수 있소?" 웅묘아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너 같은 자가 햇빛에 말라죽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왜 우습지 않...... 나도 크게 웃어야지...... 하하...... 하하......." 그는 온 힘을 다해 크게 몇 번 웃어봤지만 혀와 입술은 이미 매말라서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다. 그 웃음소리는 정녕 우는 소리보다 열 배는 더 듣기 괴로웠다. 왕련화가 비아냥거렸다. "좋소. 웃으시오. 실컷 웃으시오. 죽도록 웃으시오. 다시 그렇게 몇 번 웃다보면 아마 당신이 죽는 모습을 내가 볼 것이오." 심랑이 말했다. "그는 죽지 않을 거야." 왕련화가 되물었다. "그가 죽지 않는다면 나만 죽게된단 말이오?" "자네도 몇 마디 덜하고 힘을 아낀다면 역시 죽지는 않을 걸세." 왕련화의 검게 타버린 얼굴에 갑자기 빛이 발했다. 그는 비록 심랑에 대해 질투하고 미워했지만 심랑의 말은 듣지 않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표정은 누구라도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왕련화는 눈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우...... 우리에게 아직 구세주가 있다는 말이오?" "물론이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 사막에 우리는 마치 개미와 다를 것이 없소. 설사 십만 명이 우리들을 찾아나선다 해도 반드시 찾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더구나 또 누가 우릴 구하러 오겠소? 우리가 이렇게 곤경에 처한 사실을 그 누가 알겠소? 이건 전혀 가망이 없는 일이오." 그는 기침을 하면서 말을 했는데 이 말을 다 끝낸 후 이미 탈진을 했다. 그는 비록 입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희망이 가득했다. 그는 심랑이 그의 말을 완전히 반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심랑이 말했다. "물론 우리가 곤경에 처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지." 왕련화는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누구...... 그 요녀는 아니겠지." "바로 백비비요." 왕련화는 멍해지더니 있는 힘을 다해 억지로 웃어댔다. "설마 그녀가 우리를 구하러 오겠소? 하하, 이제보니 심랑도 미쳤군. 심랑도 미쳤어." 이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주칠칠, 웅묘아는 온 몸이 오싹해졌다. 그들도 심랑의 정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들은 때려 죽여도 백비비가 그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것은 믿지 않았다. 심랑이 탄식을 했다. "그녀의 성격을 당신들은 모르겠소? 그녀가 정말로 우리들을 죽이려 했다면 우리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지 않고 왜 떠났겠소?" 갑자기 왕련화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그렇군요. 그녀가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분명히 우리들이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먼저 간 것을 보면 분명히 우리에게 구세주가 나타날 소지도 있을 것이오." 웅묘아는 탄식을 하며 되물었다. "구세주? 구세주가 어디서 온다는 거지?" 심랑이 말했다. "그녀는 사막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막에 대해서는 우리들보다는 훨씬 잘 알고 있을 거네.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오는 것을 알고 있다든가 아니면 그녀가 일부러 단서를 남겨서 사람이 찾아오게 했을지도 모르지." 왕련화가 한숨을 흘렸다. "이번에 구조를 받는다면 나도 좋은 일을 좀 해야겠군." 심랑이 즉시 말을 받았다. "방금 한 그 말을 잊지만 않는다면 절대 죽지 않을 것을 내가 장담하지." 비록 이 희망은 너무 미약했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이제 모두들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힘을 아껴서 구세주가 올 때까지 버틸 생각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실컷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대로 자다가는 영원히 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심랑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왔어!" 모두들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눈길에 따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구름 한 점 없이 끝없이 펼쳐있는 하늘에 한 무리의 먼지가 휘날리면서 거의 자신들을 덮쳐올 듯했다. 이어서 말발굽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울리면서 땅을 진동시켰다. 웅묘아의 표정이 변했다. "이런 사막에서 무슨 천군만마(千軍萬馬)일까?" 심랑이 약간 웃으며 말했다. "용권풍을 잊지 말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필의 건장한 말 위에 앉은 네 명의 기사가 나타났다. 그 기사들은 심랑 등을 발견하자 곧 휘파람 소리를 내고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달려갔다. 왕련화는 초조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봐! 당신들 왜 그냥 가는 거야? 설마 보고도 그냥 가려는 거야?"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이들은 다만 용권풍의 척후병일 뿐이지. 이제 우리들을 발견했으니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고 보고를 하러 돌아간 거야." 왕련화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랐다. "용권풍은 사막에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이는 강도인데 우리들이 그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쩌면......." "용권풍의 선악에 대해서는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에게는 신비한 군사참모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군사참모가 어쨌다는 거요? 당신이 그를 알고 있소?"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는 내 친구일 거요." 이때 멀리서 다시 몇 필의 말이 달려왔다. 맨 악의 기사는 검은 옷에 검은 말, 검은 복면에 괴이함이 가득한 매서운 눈빛을 발했다. 흑의기사는 가까이 접근하더니 갑자기 몸을 날려 달려와서는 그 자리에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심랑을 바라보았다. 마치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웃음짓는 심랑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김 형, 김무망, 당신이 맞소?" 흑의기사는 몸을 한 차례 떨더니 말을 더듬었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알......." 심랑이 크게 웃었다. "김무망 말고 그 누가 쾌락왕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겠소? 또 김무망 말고 그 누가 연일 쾌락왕을 이기겠소?" 흑의기사는 갑자기 덮쳐 오더니 심랑을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울다가 웃다가 했는데 왕련화조차도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주칠칠과 웅묘아는 말할 나위도 없이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참 후, 김무망이 길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심랑아! 심랑아! 자네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심랑이 미소지었다. "나는 그만두고 먼저 김 형 애기를 하세." 김무망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쾌락왕을 먼저 배신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나를 버렸네. 내가 병신이 되어 돌아가자 그는 나를 폐물취급 하고 나를 제거하려고 했네. 다행히 나는 그의 악독한 마음을 미리 알고 떠나갈 방도를 생각했지. 그때 나는 맹세했네. 반드시 쾌락왕에게 나 김무망이 폐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심랑이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자네는 충분히 그 점을 증명해 보였다네. 전에 그는 일부러 편지 한 통을 써서 자네가 남긴 거라고 내게 보여 주더군. 그때 나는 이미 그 속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지." 김무망도 역시 앙천대소를 했다. 의기양양한 웃음 속에서 뜻밖에도 쓸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한참 동안 광소를 날린 후, 서서히 웃음을 멈추고는 탄식을 했다. "이제 그를 격패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인생은 기껏해야 백 년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질 텐데 승패야 어찌됐든 죽으면 전부 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 아닌가?" 웅묘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를 죽였소?" 김무망이 말했다. "지난 번에는 공격에 실패해서 이번에 다시 병력을 집결시켜 재차 진군하고 공격해 들어갔었소. 그런데 쾌락왕의 소굴은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소. 온통 시체로 가득했고 이미 다 타버려 뼈만 남았더군. 그 중에 두 구의 시체가 엉켜붙어 있었는데 비록 몸은 불에 타서 먼지로 화했지만 그 세 개의 반지는 아직도 있었소." 그는 처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소? 일세를 풍미한 쾌락왕이 불구덩이에서 죽었다는 것을 말이오."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쾌락왕과 함께 엉켜있는 것은 분명 왕 부인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심랑도 참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토하더니 중얼거렸다. "뒤엉킨 사랑은 죽어서 끝을 맺는구나! 아! 부질없는 일이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련화가 대성통곡을 했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역시 최후에 가서는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김무망이 매섭게 말했다. "왕련화, 난 본래 네 놈을 죽이리라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너의 이 울음으로 아직도 양심은 남아 있는 점을 생각해서 이번만은 다시 한 번 살려 주겠다." 그는 곧 사람들을 다 풀어줬다. 그리고는 갑자기 심랑을 보면서 물었다. "쾌락왕의 죽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네. 그와 겨루지 못한 점에 대해서 혹시 감정이 있지 않나?" 심랑이 담담하게 웃었다. "사람이란 본시 우둔해서 서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네. 머리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은 머리싸움을 하고 그렇지 못한자는 힘을 겨루게 되지. 나와 쾌락왕은 줄곧 서로가 상대방을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서로 아끼는 마음이 생기는 듯했네. 그런데 나와 그가 정말로 칼부림이나 했다면 너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김무망이 크게 웃었다. "심랑의 멋은 정말로 따라갈 사람이 없단 말이야." 주칠칠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우리들을 구하게 된 거죠?" "그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소. 쾌락왕의 소굴에서 돌아온 뒤에 이곳을 지나는데 어제 저녁에 갑자기 편지 한 통을 받았소. 편지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나보고 여기에 와서 당신들을 구하라는 것이었소.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올까말까 한참 동안 망서렸었지. 여기에 오기로 결심을 한 것이 천만 다행이었소." 주칠칠이 조용히 말했다. "백비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역시 심랑이군요." 그녀는 마치 심랑이 도망이라고 갈 것처럼 심랑의 손을 꼬옥 잡았다. 웅묘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어떻게 김 형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 심랑이 말을 받았다. "그녀는 이 곳을 오면서 분명히 김 형이 행군할 때 내는 먼지를 봤을거야. 그때 우리가 봤더라면 우리는 그저 모래 바람이려거니 했겠지. 하지만 그녀는 이곳 사막의 모든 변화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금방 말발굽에 의한 먼지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래 바람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지." 주칠칠, 웅묘아, 김무망, 왕련화는 동시에 외쳤다. "과연 아무도 심랑을 속일 수는 없군." 네 사람은 동시에 입을 벌리고 또 동시에 입을 다물고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심랑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대들이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면 약간은 멋적더라도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내 이 처지에 그대들이 그렇게 말하니 난 정말로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을 뿐이네."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때 멀리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에 이름을 떨친 심랑은 어디에 있소? 우리들을 좀 볼 수 있겠소?" 외치는 소리는 연달아 이어졌고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이 사막에 울렸다. 김무망은 심랑의 손을 잡고는 크게 웃었다. "자네가 땅 속으로 꺼지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자네를 놔주지 않을 걸세. 다만......." 그는 두어 번 심랑을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심랑이 오늘 패한 것을 알면 모두가 이상하게 여길 거야." 심랑은 또다시 그 멋지고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종잡을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느 누구든지 실패할 때가 있는 법이지. 다만 그들이 승리를 했을 때 너무 의기양양하지만 않는다면 비록 실패를 한다고 해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니야!" - 완 결 |
첫댓글 그동안 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잘봤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리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감사합니다
역시나,,,심랑,,
올려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감사 즐독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