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꽃이 피면
팔월 초순 금요일이다.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로 내려섰다. 이웃 동 뜰 꽃밭은 한여름에도 핀 꽃으로 화사했다. “여름날 근교 들녘 시골집 마당 구석 / 잎줄기 높이 자라 휘어져 쓰러질 듯 / 노랗게 꽃송이 맺은 삼잎국화 보았다 // 아파트 이웃 동 뜰 꽃대감 손길 닿아 / 도심 속 가꾸어진 나물로 뜯기고도 / 삼잎은 키를 낮추어 제 임무를 다했다”
앞 인용절은 초등 친구가 아파트단지 가꾼 꽃밭에 삼잎국화가 꽃을 피워 사진으로 남겨 즉석에서 떠올린 시상을 율조로 남겼다. 친구와는 내가 봄날 산행에서 마련한 산나물을 귀로에 나누기도 하는 사이다. 언젠가 친구에게 꽃밭의 화초에서 나물로 삼아 뜯어 먹어도 되는 것으로 몇 종 알려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삼잎국화로 나물로 삼아 키를 낮추니 꽃대가 쓰러질 일 없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 팔룡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창원역 앞에서 낙동강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더니 얼굴이 익은 몇 손님들과 같이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로 나갔다. 손님이 더 타고 내린 이후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주남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간 판신마을에서 내렸다. 거기부터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 이른 아침 산책의 기점으로 삼았다.
농가와 제법 떨어진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 지나온 주남저수지 둑을 되돌아봤다. 벼들이 자라는 들판 건너 저수지 둑이고 그 너머 백월산 산등선으로 낀 엷은 안개가 걷히는 즈음이었다. 바로 곁 남쪽으로는 동판저수지가 둑과 함께 무성한 갯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에는 동판지 둑으로 올라 주천강 둑길 남포로 간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산책 코스를 다르게 정해 주남으로 갔다.
주남저수지 배수문으로부터 흘러온 주천강 다리를 건너면서 펼쳐진 동쪽의 들판을 바라봤다. 아주 넓은 들판에는 볍씨 종자용으로 보급 시킬 벼들이 자랐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가보면 구역마다 볍씨 이름과 경작자의 성함을 적어둔 푯말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도 남포에서 상포로 걸어가 봤는데 멀게는 2시간이 걸리는 코스가 있어 날씨가 무더워 무리해 걷지 않았다.
주천강 강둑이나 들녘으로 걸어 남포에서 상포로 가는 코스가 아닌 주남삼거리로 나가 들판을 따라 신동으로 갈 참이다. 그곳으로도 비닐하우스 작물보다 일모작 벼농사 구역이 많았다. 그러기에 겨울이면 북녘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겨우내 머물면서 추수 후 논바닥에 떨어진 벼 낱알을 먹이로 주워 먹는 좋은 서식지였다. 주남마을에서 수로와 나란한 농로를 따라 들녘으로 걸었다.
시골 초등학교가 있는 신등에서 이웃한 신동마을에 닿았다. 본래부터 있던 마을은 신등이고, 그 곁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 ‘신동’이다. 소규모 공장과 창고와 함께 형성된 농가가 나왔는데 밭에는 참깨와 고추가 잘 영글어 갔다. 텃밭에 가꾼 부추는 꽃대가 솟으면서 하얀 꽃을 피웠다. 한 송이 매화가 봄소식을 전해주었듯 입추 앞두고 피는 부추꽃도 가을이 가까워짐을 알려줬다.
부추밭 곁에 한 노인이 까맣게 익은 녹두 꼬투리를 따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날씨가 조금이나마 선선한 아침에 녹두 이삭을 거두었는데, 다른 콩 농사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사연인즉 꼬투리가 한꺼번에 익지 않아 시나브로 따는 번거로운 만큼 값을 더 받아야 할 듯했다. 신동마을 어귀 연밭에는 연잎이 무성했는데 홍련이 한 송이 피어나 피사체로 삼아 사진으로 담았다.
상등에 이르러 임대아파트단지를 지나 대산 행정복지센터로 갔다. 아직 업무가 시작되지 않은 시간이라 환경미화원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부속 복지 시설 헬스장을 이용하는 몇몇 주민이 드나들었다. 화장실에서 땀방울을 씻고 현관을 쉼터 삼아 지기들에게 들녘을 지나오며 남긴 풍경 사진을 날리면서 아침 안부를 전했다. 아까 봤던 부추꽃에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2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