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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름 있는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아는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이라는 비료를 바다 건너 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나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초를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事例)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요점 정리 |
작자 : 법정(法頂)
형식 : 경수필
성격 : 사색적. 체험적. 교훈적. 형이상학적, 종교적
제재 : 소유와 무소유
주제 :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욕심, 또는 집착에서 해방될 때 얻어지는 것이다. 무소유는 더 큰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가져다 줌, 진정한 자유와 무소유의 의미
구성 : 기, 서, 결의 3단구성으로 되어 있음
- 난초에 대한 애착
- 집착에서 괴로움이 나온다는 깨달음
- 무소유의 의미를 깨달음
표현상의 특징 : 교훈적 주제를 곁들여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불교적 사유 방식을 구체적이고, 쉽게 제시하고 있으며,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감정을 절제한 담담한 어조로 체험한 바를 서술하였다.
출전 : <영혼의 모음>
내용 연구 |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 : 집집마다 시주를 얻으러 다니는 중)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 인도나 아라비아 사람들의 복장에서 허리에 매는 넓은 띠)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프랑스 남부의 론 강 어귀에 있는 지중해 최대의 무역항)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 : 호적, 병적, 학적 따위의 공식 문서에 소속 관계를 나타낸 기록, 또는 그 등록된 소속 관계)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사실 이 세상에서 - 빈손으로 갈 것이다 : 불교의 무상관이 들어나는 것으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空手來空手去)하기 때문에 재물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불교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말로, 적당한 나이까지 살다가 죽게 될 때, 염라 대왕이 있는 명부에는 각 사람이 수명에 관한 장부가 있어, 사망시에는 그 이름을 산 사람의 장부에서 죽은 사람의 장부로 옮겨 적는다는 말.].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가지게 되지만, 소유욕이 앞서면 그 물건 때문에 오히려 사람이 물건에 얽매이는 결과가 된다는 뜻).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主客顚倒) : 삼루의 경중(輕重)·선후(先後)·완급(緩急)이 서로 바뀜. 객반위주(客反爲主)]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라기보다는, 그만큼 소유욕과 소유물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름 있는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아는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이라는 비료를 바다 건너 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나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난초를 사람처럼 여겼다는 것과 정성이 지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싱싱하게 푸르렀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햇볕에 난초가 늘어질 것을 생각하자 햇볕마저 원망스러워졌다는 뜻이다. 난초에 대한 걱정으로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 작가의 처지를 나타낸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 :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 괴로움인 것(집착한다는 것은 얽매이는 것이며, 얽매이는 것은 자유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처음에는 즐거움이 될 지 모르지만, 그 물건에 얽매이게 되는 순간, 오히려 그것은 괴로운 것이 된다는 의미)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 僧家의 遊行期 [안거(安居)를 끝낸 뒤 산사를 떠나 세속을 다니면서 수행하는 기간. 산철]-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글쓴이가 난에 얼마나 집착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으로 승려의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난에 집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마름쇠도 삼킬 놈,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감기 고뿔도 남은 안 준다. 한 섬 빼앗아 백 섬 채운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 그 집착의 원인이었던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자신은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가? 그 난초를 야생에 적응시켜 자연으로 돌려 보냈다면 하는 생각은 어떤가? 아니면 난초처럼 말이 없는 사람이기에 이미 도를 깨달은 사람이어서 그에게 주었을까?).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서운하고 - 마음이 앞섰다 : 삼년 가까이 정든 난과의 헤어짐이라 서운하고 허전해야할 것이 인정일진대, 난의 구속이 너무 컸기에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난초의 깨달음에서 매일 무소유를 실천하겠다는 다짐). 난초를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소유라는 관점으로 보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싸워온 역사 같다는 말이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 : 사양하지 않음)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 소유하려는 욕심은 이해가 크면 클수록 커지고, 이해가 작을수록 작아 진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盟邦 : 목적을 서로 같이 하여 동맹을 맺은 나라)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事例)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 소유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욕심으로 인하여 남의 것을 탐하고 싸움이 생기므로, 이것이 범죄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간디는 '지구는 인간이 검소하게 살기에는 한없이 풍족하지만 사치스럽게 살기에는 한없이 척박한 땅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시애틀 추장의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에서 자연을 파고 사는 것이 아닌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은 무소유자가 될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 표현].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마음을 모두 비웠을 때 비로소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진정으로 세상을 소유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 : 역설적인 논리)이니까.(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짐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모든 것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고 마음을 모두 비웠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 진리이다.)
(1) 작품 선정의 취지
이 작품은 수필의 본질과 특성을 공부하기 위해 선정되었다. 수필이 산문으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나 희곡과 어떻게 다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글쓴이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바와 그로부터 깨달은 바를 서술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수필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도 체험한 바를 기록하지만 그 체험은 글쓴이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변형된 것임에 비해, 수필의 체험은 있는 그대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소설은 그 주제를 감추고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지만 수필은 글쓴이가 직접 자신의 깨달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글의 주제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점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 글의 수필로서의 특징과 교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지도의 핵심
수필은 ‘체험+느낌(생각, 깨달음)’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다른 문학 장르들은 대체로 작가의 생각을 암시적으로 제시하는 데 비해, 수필은 작가의 느낌이나 생각 또는 깨달음을 직접 표출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지도한다.
(3) 작품 연구
법정의 무소유는 독서와 체험, 즉 간디 어록을 읽은 뒤의 소감과 ‘난(蘭)’에 얽힌 자신의 사연을 토대로 진정한 행복은 ‘버림’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는 수필이다. 이러한 ‘버림’, 즉 무소유(無所有)의 깨달음은 작가 자신이 수도승(修道僧)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수도승마저도 모든 것을 다 버리지 못하고 특정한 사물에 ‘집착’을 함으로써 고통과 번뇌로 인해 괴로워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작가는 수도승이라기보다는 소유욕(所有慾)을 지닌 보편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존재이며, ‘난’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소유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누구나 무소유의 자세를 갖게 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작가는 인간의 역사와 문명이 소유욕으로 인해 갈등과 투쟁을 일으켜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수필이 일상 세계에서 관찰한 바에 대해 관조(觀照)하고 사색과 명상한 바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수필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난(蘭)’의 습성과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관찰,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깨우침 등을 토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간디 어록을 통해 주제를 미리 제시한 뒤, ‘난(蘭)’에 얽힌 구체적 체험을 보여 주고 나서 다시 주제를 명확히 해 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주제를 강조하는 효과 이외에도 글을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해 주고 있다. 특히 강한 논조(論調)나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자기 고백적 말하기 방식은 독자에게 신뢰감과 공감을 주기에 적절하다.
학습 활동
친해지기
1)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인간의 소유욕이 삶을 어떻게 구속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활동이다. 각자 자신의 경험을 말해 보게 하되,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자의식이 강하고 특히 소유욕이 강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유했을 때의 즐거움에 비해 소유하기 전까지의 괴로움과 소유한 뒤의 허탈감이나 보관의 어려움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도록 한다.
예시 답안 :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휴대 전화가 무척 갖고 싶어서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중학생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하시며 사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한번 휴대 전화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걸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라댄 이후로는 모든 것을 휴대 전화와 연관시켰습니다. 부모님께서 심부름을 시키시면 “휴대 전화도 안 사 주면서…….” 하고 투덜거렸고, 친구에게 급한 연락을 할 때는 휴대 전화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성적이 좀 떨어졌을 때도 “휴대 전화를 사 주지 않아서…….” 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휴대 전화를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괴로웠고, 모든 생활이 정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이라며 휴대 전화를 사 주셨습니다. 처음엔 뛸 듯이 기뻤고, 한동안 신이 나서 휴대 전화를 꼭 끼고 살았습니다. 잠잘 때도 손에 꼭 쥐고 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전화 요금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용돈의 반이나 되는 큰 돈을 내고 나니 군것질할 돈도 없고 학교도 걸어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조용히 있고 싶을 때 전화가 오면 받지 않을 수도 없어 참 귀찮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휴대 전화가 싫어졌습니다. 사실 학생인 제게 별로 쓸데없는 것을 왜 그리 원했는지…….
꼼꼼히 읽기
1.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보자.
지도방법 : 문맥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속에 담긴 인간 역사에 대한 글쓴이의 깨달음을 이해해 보는 활동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근거로 인류 역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교수·학습 과정에서 주관적 관점의 위험성을 경고해 주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깨달음은 역사의 한 단면일 뿐이지 그것으로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두어야 한다.
풀이 : 소유 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해 온 것이 인간의 역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역사관은 역사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보는 ‘유물 사관(唯物史觀)’과 통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역사를 그렇게 인식하면서 인간이 소유욕을 버리면 갈등과 투쟁도 없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이다.
도우미
유물 사관(唯物史觀) : 사회의 제 현상의 성립·연관·발전 방법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설명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 사회의 정치적·문화적 특징은 근본적으로는 생산 양식에 규정되며, 생산 양식은 생산력의 발전에 대응하여 변혁된다고 한다.
탐구
성찰과 관조
성찰(省察) :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한 일을 마음속으로 되돌아보고 살피는 것
예) ‘무소유’에서 작가가 ‘난(蘭)’으로 인해 어떤 마음의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관조(觀照) : 대상을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근원적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관찰하는 것
예) ‘무소유’에서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확대해서 인류의 역사에까지 적용시켜 보는 태도
지도 방법 : 우선 성찰과 관조의 사전적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바탕으로 글 속에 그러한 태도가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제시된 작품「무소유」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발표해 보게 하고, 그러한 태도가 나타난 다른 작품의 예를 찾아 발표해 보게 한다.
2. ‘난’에 얽힌 체험을 통해서 글쓴이가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도 방법 : 글이 주는 교훈 또는 글의 주제를 파악하는 활동이다. 수필의 주제나 글쓴이의 깨달음은 비교적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점이 다른 문학 갈래와 수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수필은 글쓴이가 자신을 직접 노출시켜서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쓴이가 직접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 또는 깨달음을 제시한 부분을 찾아보도록 한다.
풀이 : 글의 마지막에서 글쓴이는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라고 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이는 난(蘭)을 소유했을 때는 스스로를 구속하고 부자유스러웠지만 난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자유스럽고 해방감을 맛볼 수 있어서, 결국 소유하지 않는 상태에서 소유한 상태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감 또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3.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지도방법 : 역설적 표현법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활동이다. 우선 글 속에 구사된 표현 방법을 이해하도록 한 뒤, 그 의미를 파악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글쓴이의 깨달음을 글쓴이의 삶과 연관시켜 보는 것도 좋은 활동이다.
풀이 : ‘크게 버리는’과 ‘크게 얻을’은 서로 상반된 내용으로 모순된 논리 적용을 통해 어떤 깨달음이나 진리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역설법이 구사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설법에서는 앞의 내용은 실제적인 행동이나 사실을, 뒤의 내용은 그로 인한 결과나 믿음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은 무소유자가 될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시야 넓히기
인간의 욕심(慾心)과 관련된 속담을 찾고, 그 의미를 알아보자.
지도 방법 : 인간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속담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활동이다. 속담은 오랜 기간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 얻어진 깨달음이다. 따라서 이 활동을 통해, 지나친 욕심 또는 소유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학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는 것이 학습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풀이 :
속담 | 의미 |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 처음에는 말이나 탔으면 하고 바라다가, 말을 타게 되면 다시 말을 부리는 사람까지 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
한 섬 빼앗아 백 섬 채운다. | 곡식을 99섬 가진 사람이 한 섬밖에 갖지 못한 사람의 곡식을 빼앗아 100섬을 채운다는 뜻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남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한 말이다. |
감기 고뿔도 남은 안 준다. | 감기 고뿔은 병이므로 남에게 줄 수만 있으면 당연히 주어야겠지만 자기 것이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주려 하지 않는다는 말로, 지독하게 인색하다는 의미이다. |
공것이라면 양잿물도 먹는다. | 공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거머들인다는 뜻으로, 욕심을 부리면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 |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서 금품을 뜯어냄을 비유하는 말로, 욕심 때문에 더럽고 인색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
표현하기
‘무소유’를 읽고 느낀 인상이나 감동을, 아래의 글을 참고하여 써 보자.
지도 방법 : 글의 주제 또는 글쓴이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교훈을 학생 스스로 형상화해 보는 활동이다. 문학에서의 형상화는 추상적인 주제를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말한다. 따라서 글 속에서 얻은 추상적인 교훈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는 글의 내용이 짧을 수밖에 없고 올바른 독후감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의 구체적 삶과 연관시켜 서술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주의시킨다.
예시 답안 : 이 글은 무소유로부터 얻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갖기는 매우 힘들다. 소유하지 않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글쓴이도 그러한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글쓴이가 주고자 하는 진정한 교훈은 ‘지나친 소유욕에 대한 경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에 너무 연연해하다가 자신의 노력과 능력은 무시한 채 부정행위를 하고자 한다던가, 친구가 좋은 옷을 입었다고 백화점에서 훔쳐서라도 입어 보려는 태도 등과 같은 행위에 대한 경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도 반성해야 할 것은 없는지……. 지나친 욕심 때문에 내 삶이 구속받은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보아야겠다.
참고 자료
수필집 ‘무소유’ 서평
집착과 소유에 대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설파한 승려의 수필집. 평생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을 걷는 종교인의 세상을 보는 예안과 깨우침이 맑은 언어로 표현됐다.
우리 시대의 나아가는 속도에 비하면 엄청 오래 된 책이다. 초판이 1976년이니 내 나이에 비춰 보더라도 내가 3살 때 나온 책이다. 하지만 ‘무소유’를 읽노라면 바로 지금의 이야길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만큼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밝아짐을 느낀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특별한 것 없이 그냥 평소의 승려 생활을 하면서 느낀 일들을 적어 놓은 것인데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알려진 내용을 모아 놓았다. 자연, 인간, 정신, 우리, 환경, 문화, 교통, 질서, 예의 등에 관한 여러 수필들이 있다.
사람을 살지만 인간은 죽어 가는, 돈과 욕심은 활개를 치지만 인정과 자비는 사라져 가는 현실. 욕망은 있지만 꿈, 사랑이 사라져 가는 지금. 하지만 암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희망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노래하여 우리들에게 가슴을 적시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소유하지 않아 애써 지키려 들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마음이 텅 비어 있음의 여유,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만함……. 그래서 우리의 자연과 동화되어 어우러질 수 있는 하나됨…….
요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을은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憂愁)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오늘 낮 사소한 일로 직장 동료를 서운하게 해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불 아래서 주소록을 펼쳐 들고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 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歸巢)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박힌 지체(肢體)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 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곳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딛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 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 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을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 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런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 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 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 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법정, ‘무소유’, 범우사, 1976.
도우미 : 가을을 맞아 삶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있는지 살펴볼 만한 작품이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을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 이곡, ‘가정집(稼亭集)’
도우미 : 이 작품은 고려 때의 한문 수필로, 주제가 ‘무소유’와 통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할 만한 작품이다.
더 읽을거리
법정, ‘무소유’, 범우사, 1999.
김시헌, ‘수필을 말한다’, 수필과 비평사, 2000.
김은수, ‘수필이란 무엇인가’, 다나기획, 2000.
이해와 감상 |
수필은 삶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사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단순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도 삶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발견해 낸다. "무소유(無所有)"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간디 어록>을 읽고 생각한 간디의 생활상. 또 하나는 지은이의 난(蘭)에 얽힌 체험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소유욕이 빚어내는 역사의 비극과 인간성의 상실을 경계하며, 이러한 욕심에서 해방될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는 이 수필의 결구는 우리가 깊게 생각해야 할 인생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지은이 자신의 인생관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작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괴로움과 번뇌는 어떤 것에 집착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는 수필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무한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에 의해 괴로움과 번뇌가 생겨나고, 소유함으로써 그것에 얽매이고 만다. 인간의 역사는 자기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소유사(所有史)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작자는 소유욕을 버림으로써 그것보다 더 큰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평범한 마음 자세 가운데 삶의 깊은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주제와 작자의 종교가 갖는 상관성 때문에, 주제가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되는 이치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실 평범한 인간에게는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의 필요성의 정도에 관계없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작자의 표현대로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성정, 이런 상황에서 인간에게 소유욕을 버리라는 권유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이 글이다.
작자는 그러한 의문을 소유욕에서 비롯되는 폐해를 직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풀어 보고자 한다. 불도에 정진하는 승려인 필자조차도 무엇인가를 가짐으로써 저절로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작자가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의해 자신이 얽매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승(佛僧)으로서의 작자의 깨달음의 한 과정으로서 무소유 사상을 얻게 된 이치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글은 작자 자신이 가고 있는 구도의 길이 주는 경건함과 구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의 무소유의 사상이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해지는 것은 필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 글의 전개 과정에서 앞뒤에 철학적인 내용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 필자의 사색적이고 담담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심화 자료 |
법정(法頂 1931- )
승려. 수필가. 법정(法頂)은 법명. 1954년에 효봉 선사(曉峰禪師)의 문하에 입산하여 불도에 정진함. 불교적 지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쳐 삶의 깊은 진리를 불교적 득도(得道)의 모습으로 보여 준다. 저서로는 <텅 빈 충만>,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母音)>, <버리고 떠나기>,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물소리 바람소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으며, <불교성전>을 엮어 내기도 하였으며 많은 번역서도 있다.
수필과 소설
소설과 수필은 전자가 픽션인 반면, 후자는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그런데 소설 중에서 일인칭 화법으로 서술되는 특히 작자의 감성과 회고가 주가 되고 있는 경우에는 수필의 문체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런 것이 수기소설과 사소설의 경우이다.
1. 수필의 구성
수필은 체험의 기록이다. 그 체험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일 수도 있고, 독서나 남의 이야기 등을 통한 간접 체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수필은 단순히 체험한 바를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체험에 대한 자신의 느낌, 생각, 깨달음 등을 덧붙여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수필은 ‘체험+느낌(생각, 깨달음)’을 그 구성의 본질로 하는 문학이다.
2. 수필의 특성
(1) 자유로운 형식 : 수필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따라서 일기, 편지, 기행문 등의 다양한 형식을 수용하고 있다.
(2) 제재의 다양성 : 수필은 제재의 선정이 매우 자유롭고 또 제재를 다루어 가는 방식도 자유롭기 때문에 그 종류도 다양하다.
(3) 자기 고백적 : 수필은 작가가 직접 자신을 노출시켜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4) 개성적 : 수필은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과 문체를 드러낸다.
(5) 기지(機智)와 해학(諧謔) : 수필은 일상적인 내용을 솔직하게 쓰되, 기지와 해학을 가미함으로써 문학적 향취와 멋을 부여한다. 수필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지성의 문학, 독자에게 미소를 띠게 하는 멋의 문학이 된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6) 관조적(觀照的) : 수필은 생활의 편익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글이 아니며, 사실을 설명하거나 논리를 추구하는 학문적인 글도 아니다. 수필은 관조적 자세로 자아와 사물을 통찰하여 문학적 기능을 다하는 문학 갈래이다.
3. 수필의 요건
(1) 격조 있는 지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2) 겸허하고 품위 있는 개성이 표현되어야 한다.
(3) 대상에 대한 꾸준한 관찰과 깊은 관조(觀照), 사색과 명상에서 나온 글이어야 한다.
(4) 작가가 표현하려는 가치 있는 사상은 직접적 설교(說敎)를 통해서가 아니라 제재(題材) 속에 육화(肉化)되어 나타나야 한다.
(5) 수필은 예술적 산문이어야 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사색의 결과가 예술적 직관을 통해 형상화되어야 한다.
(6) 유머, 위트, 비평 정신, 가치 감각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활동 안내(교과서 345쪽)
다음 자료를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가) ○○일보 불길 속에 자식 구하고 어머니 숨져!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 사는 ○○○씨가 불길에 휩싸인 아파트에 들어가 (나) 얼마 전에 한 아파트에 불이 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그 아파트에 사는 어머니는 미처 집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자식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휩싸인 아파트에 들어가 자식을 구해 내고는, 뒤이어 자신도 빠져 나오려다가 7층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처럼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도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과연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면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
(1) (나)는 어떠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인가?
지도 방법 : 수필의 다양한 제재적 특성을 이해하는 활동이다. 수필은 그 제재가 매우 다양하여 나의 체험뿐만 아니라 남의 경험담과 심지어는 신문 기사의 사건까지도 제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가)와 (나)를 비교하여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지 말해 보게 한다.
풀이 : (가)는 신문에 난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사이다. 그런데 (나)의 줄거리는 (가)의 사건 내용과 동일하다. 따라서 (나)는 (가)를 읽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2) (나)가 수필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수필의 본질과 특성을 알고 그에 따라 수필을 구분해 내는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어떤 특성이 있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도록 한다. 특히 구성상 빼서는 안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확인한 뒤에 이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풀이 : 수필은 ‘체험+느낌(생각, 깨달음)’의 구성을 취한다. 그런데 (가)는 단순히 체험, 즉 사건을 전달하고 있지만, (나)는 (가)를 읽은 체험에 자신의 견해와 느낌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3)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나)의 글을 자유롭게 이어 써 보자.
지도 방법 : 글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스스로 창작을 해 보는 활동이다. 글에 대한 감수성을 익히고 창의력과 추리력을 기르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제시된 글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읽으면서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과 문체상의 특징들을 파악하게 한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점에 대해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 또는 경험 등과 관련시켜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 답안 : 자식을 구한 어머니의 행동에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나는 다소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물론 봉사 활동도 하고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적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나를 위한 행동일 뿐이다. 봉사 활동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이고, 적선하는 것은 동정심도 있기는 하지만 별로 쓸데없는 동전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나 같은 성격은 그 어머니와 같은 상황에서 당연히 혼자 살아 나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훗날 부모의 입장이 된다면 그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과 같은 것이니까.
참고자료
수필의 특성
수필은 문학으로써 5가지의 특성을 갖는다고 했다. (이철호 - ‘수필 창작의 이론과 실기’)
(1) 무형식성, (2) 산문성, (3) 자기 고백성, (4) 광범성, (5) 창조성과 문학성이다.
무형식 문학, 산문 문학, 자기 고백의 문학이라고 하는 데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범성의 면에서 수필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형식성과 구분된다. 어떠한 형식이나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특성이야말로 수필 문학이 가진 매력일 수 있으리라. 그래서 어문학회의 국어학 개론에선 ‘국문학 산문(散文)중에서 소설, 희곡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수필이다.’라고 까지 정의되고 있다. 때문에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 감상문, 칼럼, 전기, 자서전, 권두언, 연설문까지 수필 속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수필가들에게 있어서의 수필은 내용, 구성, 문체, 논리성, 문학성, 작품성 등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작품을 말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조성과 문학성 면에서 수필은 창조성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수필이 자기 체험을 기술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인데 수필은 그런 사실 기록과는 다르다. 마치 물을 얼려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상의 얼음 조각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다 할까. 형질은 같지만 아주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수필이기 때문이다. 과자 공장에서 재료가 컨베이어 라인을 통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여러 과정을 거쳐 얼마 후엔 맛좋고 먹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과자가 되어 나오듯 작품도 작가라는 통과관을 거치는 동안 작은 체험이 여러 가지의 감동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윤오영 님은 수필과 잡문을 감나무와 고욤나무로 비교하고 수필은 감나무에 열린 감이 아주 탐스럽게 잘 커 가서 찬서리를 맞으며 붉게 물들었다가 껍질이 벗기워져 다시 찬서리 속에서 말리워진 것에 시설(?雪)이 앉게 되는데 그것이 참 맛나는 곶감으로,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곶감이라고 했다. 곧 수필의 창조성 내지 문학성은 그런 면에서 다른 문학 장르와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원현, 수필 문학의 특성
안거
승려들이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 한곳에 모여 일체의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
본래는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안거제도가 생겨났는데, 그 연유는 우기(雨期)인 여름철에 수행자들이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는 사태가 많으므로, 이 시기에는 아예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던 데서 유래한다. 이것이 불교 수행자들에게도 관습이 되어 왔는데, 북방불교권에서는 여름 안거 외에도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날까지를 겨울 안거라고 하여 시행하고 있다.
하안거
불교에서 승려들이 여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일.
안거(安居)라고도 하며 한국·중국·일본 등 북방불교에서만 실시하는 동안거(冬安居)에 대응하는 말이다.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이른다. 안거는 산스크리트(범어)의 ‘바르샤’를 번역한 말인데, 우기(雨期)를 뜻하며 하행(夏行)·하경(夏經)·하단(夏斷)·하좌(夏坐)·좌하(座夏)·백하(白夏)라고도 한다.
원래 인도에서는 우계인 몬순기에 3개월 동안 비가 오는데, 이 때 치러지는 불교 교단의 특수한 연중행사를 안거라 하였다. 즉 이 시기에는 바깥에서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따르고, 나아가 비를 피하기 위하여 초목과 벌레들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아예 외출을 삼가고 일정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과 참선에 힘쓴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지방마다 우계가 다르기 때문에 전(前)·중(中)·후(後) 3종의 안거 기간을 정하였다.
안거 첫날은 여름 안거의 제도를 맺는다는 뜻에서 결하(結夏)·결제(結制)라고 하였고 안거를 마치는 것을 과하(過夏), 7월 16일 이후에 안거 제도를 푸는 것을 해하(解夏)·해제(解制)라고 하였다. 또한 안거중에 죄를 짓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파하(破夏)라고 하였다. 안거를 마친 뒤에는 안거중에 죄를 저지른 일이 없었는가를 서로 묻고 답하는 자자(自恣)를 벌였는데, 이 날을 특별히 자자일(自恣日)이라고 하였다.
안거는 석가가 부처가 된 다음해부터 열반하기까지 계속되었고 그 뒤에도 불교가 전해진 모든 지역에서 치러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름과 겨울의 2회로 나누어 각각 하안거와 동안거라 한다.
동안거
불교에서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수행에 힘쓰는 일.
여름의 하안거에 대응하는 말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와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1년에 두 차례를 각각 동안거와 하안거라고 해서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안거제도라 하는데, 이 제도는 석가가 살아 있을 때부터 시행되어 왔다.
본래 출가한 수행자들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우기가 되면 땅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기 때문에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벌레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었고 또 교통이 불편한 데다가 각종 질병이 나도는 경우도 있어서 돌아다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석가는 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기의 3개월 동안 돌아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했는데, 여기에서 안거가 유래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부와 수행에만 전념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자자(自恣)라는 독특한 참회 의식을 치르는 것이 승가의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안거 풍습은 그 뒤 부유한 재가 신자나 왕족들이 기부한 건물이나 토지에 승려들이 사원을 짓고 정착해서 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또 각지로 돌아다니던 승려들이 주기적으로 모여서 계율이나 승단의 제도 등을 정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기후 조건에 따라 여름의 3개월과 겨울의 3개월 동안을 안거 기간으로 삼게 되었는데, 안거를 시작하는 것을 결제(結制)라 하고 끝내는 것을 해제(解制)라 한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간디 [1869.10.2~1948.1.30]
서부의 포르반다르 출생.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다. 1887년 18세 때 런던에 유학하여 법률을 배우고, 1891년 귀국하여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893년 소송사건을 의뢰받아 1년간의 계약으로 부인과 함께 남(南)아프리카 연방의 더반으로 건너갔다. 이 남아프리카 여행은 간디의 생애에 커다란 전기를 가져왔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약 7만 명의 인도 사람이 이주해 있었는데 백인에게 박해를 받고 있었다. 이에 그는 거기에 사는 인도사람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보호하고자 결심하고 남아프리카 연방 당국에 대한 인종차별 반대투쟁단체를 조직, 1914년까지 그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그 동안 진리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을 하였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 아힝사(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살생)를 중심으로 하는 간디주의를 형성하였다. 간디 자신이 전개한 인종차별, 압박에 대한 투쟁(사티아그라하:satyagraha) 및 자기실현을 위한 인격의 도야와 수양(修養)의 노력은 어느 것이나 훗날 간디가 인도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의 모형이 되었고, 또한 아슈라마(嚆飽 rama:修道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도인의 정신개조계획의 토대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최초의 사티아그라하 투쟁은 1906년 아시아인 등록법을 제정한 트란스발주(州)에서 일어났다.
이 투쟁은 그로부터 약 8년 동안 인두세(人頭稅)를 비롯한 여러 차별법에 반대하기 위하여 계속되었으며, 남아프리카의 여러 주로 퍼져나갔다. 특히 1913년에 44세가 된 간디가 선두에 서서 행진한 나탈주(州)에서 트란스발주까지의 ‘사티아그라하 행진’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간디를 비롯한 행진 참가자 4,000명은 남아프리카 당국에 체포되었으나, 악법을 반대하는 주장은 세계적 여론의 동정을 모아 당국을 굴복시켰다. 결국 아시아인 구제법이 제정되어 인도인에 대한 차별법은 모두 폐지되기에 이르렀으며, 이 투쟁으로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간디에서 일약 세계의 간디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사명을 다한 간디는 1915년에 귀국하였는데, 정치운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토지분쟁의 해결 등에 노력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인도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나, 전쟁 후 영국의 배신과 1919년의 롤라트 법안(Rowlatt Act)과 같은 반란진압조령(條令)의 시행 때문에, 사티아그라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를 위하여 인도 여러 곳을 두루 순회하였고 수방(手紡:charkha)운동을 장려하였다. 1919년 인도국민회의파의 연차대회에서는 간디의 지도 하에 영국에 대한 비협력운동 방침이 채택, 납세거부 ·취업거부 ·상품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 저항을 실시하였다. 이듬해에 반영 ·비협력 운동이 선언되고 외국제 직물의 불매운동은 성공하였으나, 인도 각지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자, 1922년 간디의 호소로 운동은 잠시 중지되었다.
그 동안 간디는 투옥되었다가 풀려 나왔으며, 1924년부터 1년간 인도국민회의파의 의장으로 있으면서 수방운동으로써 인도인이 자력에 의한 농촌구제에 나설 것을 역설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1929년의 연차대회에서 국민회의파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완전독립을 선언하였고, 61세가 된 간디는 1930년 3월에 사티아그라하운동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소금세 신설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구금되었으며, 1931년 석방 후, 어윈 총독과 절충한 결과, 간디어윈 협정을 체결하여 반영(反英) 불복종운동을 중지하였다. 간디어윈협정에도 불구하고 다시 탄압정책을 쓰는 영국 당국에 항의하기 위한 불복종운동을 재개하여 투옥되었다가 1932년 석방된 이후부터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에 진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인도의 찬성을 얻지도 않고 인도를 전쟁에 투입하였다. 이 기회를 이용한 인도는 완전독립의 약속을 얻어 내려고 노력하였으나, 상반된 이해관계로 타결을 보지 못하고, 1942년의 봄베이대회에서 국민회의파는 영국세력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여 공전의 대규모 반영불복종운동에 돌입하였다. 이로 인해 간디는 73세의 노령으로 다시 체포되어 1년 9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전쟁 후에는 인도를 하나의 감옥으로 보고 전화(戰禍)와 굶주림으로 거칠어진 인심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하여 인도의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힌두 ·이슬람의 화해에 따른 인도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영국이 주권을 넘겨줌에 있어서 인도의 대정당인 국민회의파와 전인도(全印度) 이슬람 연맹이 인도를 둘로 분할 독립할 것을 협정한 결과 오히려 격렬한 힌두 ·이슬람의 대립소동이 벌어졌다.
1947년 7월 인도가 이러한 분란 속에서 분할 독립했을 때, 간디의 나이는 78세였으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소동이 가장 격화되어 있던 벵갈에서 힌두 ·이슬람의 융화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듬해인 1948년 l월, 이 활동의 행선지를 뉴델리로 연장, 뉴델리의 소요를 진압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1월 30일 반(反)이슬람 극우파인 한 청년의 흉탄에 쓰러졌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R.타고르의 방문을 받아 ‘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한 시를 받고, 그 후로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의 위대한 영혼은 인도민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폭력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나, 인도에 있어서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사상에 입각하여 평화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간디의 주저 《인도의 자치(自治)》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서구사상(反西歐思想)은 그의 단편적인 편모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평화사상과 평화에 바친 업적은 실천면에서 볼 때 민주적 민족주의자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며, 특히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간디주의
간디가 반영(反英)항쟁 때 주장한 불복종 ·비협력 ·비폭력주의적 무저항주의를 뜻한다. 간디는 독특한 철학으로 사티아그라하(진리파악), 브라흐마차랴(brahmacharya:자기정화), 아힌사의 3가지를 내세우고, 나아가 이것에 스와라지(swaraj:자치)를 결부시켜 비폭력 ·비협력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베옷을 입고 염소젖을 마시며,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천을 짜면서 민중을 지도한 간디의 모습은 이와 같은 독특한 사상의 실천이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아힘사는 겸허의 궁극점이다
……
생명 가진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자기 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 정화가 없으면서 아힘사의 법칙을 지킨다는 것은 허망한 꿈일 뿐이다.
혼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정화는 생활의 모든 행동의 정화를 뜻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정화란 잘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정화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환경 정화에까지 가고야 만다.
그러나 자기 정화의 길은 좁고 험하다. 완전한 정화에 이르려면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절대적으로 정욕을 버려야 한다. 사랑과 미움,
친밀함과 소원(疎遠)함의 대립이 이어지는 세속의 흐름을 초월해야 한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도 아직도 내 속에 그 세 겹의
정결이 되어 있지 못함을 안다. 세상의 칭찬이 내게 달갑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슴을 찌르는 때가 많다.
교활한 정욕을 정복하기란 내가 보기에는, 무력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인도에 돌아온 후에도 언제나 내 속에 보이지 않게 정욕이 잠재해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낙심은 하지 않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경험과 실험은 나를 붙들어 버티게 해 주고, 기쁨을 준다. 그러나 아직은
지나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 내 앞에 있음을 안다.
나는 나를 무(無)에까지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피조물 중의 맨끝에 세우지 않는 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아힘사는 겸허의 궁극점이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독자와 이별을 해야 하는 이 마당에 나는 독자에게
내가 진리의 신 앞에, 마음과 말과 행동에 아힘사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비는 이 기도에 같이 참여해주기를 바란다.
--- 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 - 함석헌 옮김 ---
간디, 히틀러 그림자 - 진실과 인간의 한계란 무엇인가
( 전략)
그렇다면, 무소유와 계급 조화를 주창한 간디에게 노동자들의 신분해방 투쟁은 과연 식민통치를 연장시키는 악질적인 조건이었을까? 그가 원했던 공동체나 더 나아가 국가의 개념에서 과연 노동자들의 위치는 어디쯤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디는 자신의 철학을 실행하기 위해 태생적 신분제가 지배하는 인도의 불평등 계급주의적 사회구조를 은폐했거나 적어도 무시해 버렸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간디가 '불가촉천민'을 어떻게 바라보았던가!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려면 단결해야 하는데, 불가촉천민이 사회를 분열시킨다."
이런 간디의 입장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했던 달리트(Dalit,'핍박받는 자'라는 뜻. 불가촉천민을 포함한 최극빈계급)운동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당시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 이후에는 오히려 불가촉천민을 힌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인도 헌법의 주요 기안자가 된 인물 - 가 주도한 달리트 운동은 시간당 '표준노동량'을 요구했고 또 달리트 대표자의 의석 확보를 위해 '분리 선거'를 주장하며 세를 불려나갔다. 참고로 그 달리트 운동은 지금까지도 주류 힌두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지방인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달리트 운동이 분리주의 기운을 획책한다고 믿었던 간디는 1932년 주무기였던 '단식투쟁'을 벌이며 달리트 운동 지도자 암베드카르가 분리 선거를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결국 달리트에게 15% 의석을 할애하고 불가촉천민들에게 학교 입학을 허가한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물론 달리트운동 요구와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 것이었지만.
간디의 모든 것을 숭상하는 간디주의자들의 유산, 그러나 사회 해방의 등불이라던 간디는 이처럼 계급과 신분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인도 사회의 기본 과제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간디가 큰 지도자였고, 간디주의 유산이 의심할 여지 없이 자유투쟁의 심장이었다는 사실을 존경하더라도, 계급·신분제도로부터 해방이라는 대원칙을 묵살해 버린 간디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인도라는 국가 건설이 노동자의 인격과 자유에 우선한다가 간디가 떠들어대는 동안, 노동자의 신분 해방과 계급 평등의 자유는 더 멀어져 가고 말았다.
결국 인도는 이런 모순적인 간디를 지닌 대가를 톡특히 치러왔다. 계급간 갈등과 신분제 사회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인도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비수로 작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고, 간디는 말이 없다. (출처 : 아시아네트워크 지음 프라풀 비드와이(전'타임스 오브 인디아' 편집장이자 핵전문 칼럼니스트)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에서. 한겨레신문사)
"간디에게 섹스는 공해였다"
프라폴 : 마주르 마하잔 상의 구실을 어떻게 보았는가?
수자타 : 노동조합이라 했지만, 사실은 법인조직과 같은 형태로 아흐메디바드 기업가들이 개념화시켰고 간디가 그걸 적극 수용했다. 기업가들이 추진했던 장기 산없화 계획 중 하나였고, 말썽 없는 노동 문제를 전제로 했으니, 노동자들 권리보다 고용주를 위한 철학 같은.
프라폴 : 왜 간디가 그걸 보지 못했나?
수자타 : 그의 머릿속에는 국가만 있었지 나머지는 모두 종속적인 것쯤이었다.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위해 공동체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이었다. 이러다 보니 자유 쟁취만 중요했지. 노동자 권리 같은 건 자연 밀려날 수밖에.
프라폴 : 간디에게 신분제 타파나 평등 같은 사회개혁안이 없었다는 말인가?
수자타 : 간디는 확실하게 사회 개혁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공동체를 창조했고 또 새국가 건설에서 식민통치자들을 대신하기도 했다. 내 뜻은 그가 사회에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계급과 그 집단들을 용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국가라는 차원만을 강조했을 뿐.
프라폴 : 간디가 지녔던 엄격주의와 금욕에 대한 강박관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수자타 : 그는 섹스를 공해처럼 여겼다. 간디는 욕정을 죄짓는 일이라 생각했고, 놀랍게도 여성들을 성욕 과잉자로 보았다.
프라폴 : 그럼에도 간디는 여성들의 정치와 사회 참여를 성원하지 않았나?
수자타 : 옳다. 간디는 여성을 강하고 값진 존재라 여겼다. 다만 새로운 인도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가족들을 돌보는 어머니로서, 다시 말해, 만개한 여성이 아니라 난소가 제거된, 또는 성적 매력을 없앤 생물이거나, 아니면 성적 욕망이 없다고 표방한 과부로서.
프라폴 : 그렇게 심했나?
수자타 : 간디는 실제로 매우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예를 들면, 간디는 자기 아내 카드톨바를 자신이 나서는 행진에 참석하지 못하다록 했다. 카스톨바가 대중 앞에 노출되어 성적 관심의 대상으로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수자타 파텔은 푸네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간디 연구자
.(출처 : 아시아네트워크 지음 프라풀 비드와이(전'타임스 오브 인디아' 편집장이자 핵전문 칼럼니스트)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에서. 한겨레신문사)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봄이 오면 들은 많은 꽃을 피운다. 그 언덕에 크고 작은 많은 꽃들을 피게 한다. 냉이꽃, 꽃다지, 제비꽃, 할미꽃, 노랑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꽃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 차 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보낸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할 수 있다. 제 것으로 가두어두려는 욕심이 앞서면 물은 썩게 된다. 강물은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다. 그 그늘로 찾아와 둥지를 틀고 깃들어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늘 풍요롭다. 산짐승들이 모여들고 온갖 나무들이 거기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 그것들이 모여서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산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새들이 마음껏 날게치게 하는 것은 하늘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철새들의 길이 되어주고 자유로운 삶터가 되어줄 뿐 단 한 마리도 제 것으로 묶어 두지 않는다. 새들의 발자국 하나 훔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은 더욱 넓고 푸르다.
생이불유(生而不有)
'노자'에서는 이런 모습을 "천지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않으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하여 '생이불유(生而不有)'라 한다.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들지만 그 안을 비워두기 때문에 그릇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릇의 안이 진흙으로 꽉 차 있다면 그 그릇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릇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흙덩어리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사람이 그릇이 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은 큰 그릇이 될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것은 그만큼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다는 뜻인데, 다른 사람을 품어 안고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으려면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한다.
집을 짓고 방을 만들 때 그 내부를 비워둠으로 해서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비워둠으로 해서 비로소 가득 차게 할 수 있는 이 진리, 이 무한한 크기.
사람의 마음도 삶도 비울 줄 알 때 진정으로 크게 채워지는 것을 만날 수 있다. (출처 : 도종환 저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