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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05
세 사람 모두 믿을 수 있지만, 그중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타미에게 슈샤인 부스의 운영을 맡기고 지하철을 탔다. 핀치역 환승 주차장에 주차해 둔 말리부가 필요했다.
나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의문이 계속 따랐다. 무엇에 대한 경고 싸인인가? 누가? 왜? 불안한 느낌이 든 것은 순간이었다. 이그링턴역에서 아이를 안은 아주머니가 내 옆의 빈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내가 신기한 듯 맑은 눈망울을 한 번도 감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미소 지으면 헤헤거리듯 웃었지만, 아직 눈 한번 감지 않았다. 나는 혹 장애를 가진 아이인가 생각도했었다.
페르시아(펄~셔)계의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눈이 너무 크고 맑고 검어서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눈에 고인다. 불안한 동거는 두 정거장이 지나서야 끝나고 나는 다시 문제의 고민에 집착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역사의 추적이라는 폼나는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문가의 번쩍인 느낌에 대한 예리한 감성은 예사롭지 않게 다루어진다. 그것이 내가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고 아직 건재한 이유이다. 나는 옥빌의 집과 그들과 모종의 끈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생각했다. 당장 에드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지금부터는 핀치역을 나설 때까지 전화가 되지 않는다. 이 망할 넘들의 전화회사는 지하철 안에서는 두 곳을 제외하고는 휴대폰 연결이 되지 않게 해 놓았다. 그 이유도 내가 이곳에사는 동안은 밝혀야 할 것들 중 하나이다. 10 년 전 한국에서는 이미 휴대폰 연결이 다 되었잖은가. 그렇게 불평하고 있는 사이 핀치역에 닿았다. 신호가 몇 번 울리자 에드가 받았다.
“에드. 집에 별 일 없는가? 나 지금 자네 집으로 가는 중일세”
“아니. 중간에서 만났으면 좋겠는데, 어디가 좋을까?”
에드의 말소리는 굳어 있었다. 불안한목소리였다.
“알렌로드에 있는 욕데일 몰 실버시티 앞에서 만나세”
짐작으로는 이미 그들이 에드의 집을 알거나 파악하였었고 접촉을 시도하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수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몰이 우리가 만나기에는 적격이었다. 실버시티는 몰 안에 있는 극장이었다. 캐나다의 중요한 도시의 큰 몰마다 하나 내지는 수 개씩 극장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극장 프랜차이즈 회사였다. 실버시티 앞이라면 눈에 띄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스틸 웨스트로 달렸다. 더프린에서 남쪽으로 속도를 내어 엘런로드를 타고 순식간에 욕 데일 몰에 닿았다. 내가 에드보다는 일찍 도착하였으리라 하였는데 그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에드. 벌써 도착했단 말이야!”
“자네 전화를 401 들어서면서 받았네. 자네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서 집으로 가려고.”
그는 불안한 얼굴로 입구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몰 안쪽 사람들이 가득한 스타벅스 커피 샾으로 들어갔다.
“제임스. 근처 복덕방에서 집을 팔라고 하네. 좋은 가격으로 팔아 주겠다는 거야”
“그 일 후 집을 팔려고 하였는가?”
“아니. 나는 집을 팔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직은 팔 생각이 없네. 팔게 되더라도 이 일이 해결된 후에나 생각해 볼 것이네”
그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팔지 않겠다면 되는거고… 그걸로 그만 아닌가.”
“내가 신경과민인지 몰라도 그 일 이후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일과 연관 지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어떤 일이란, 마미가 발견된 그 일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네.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부동산회사에서 집을 팔라고 하겠는가?”
“그런 일은 통상 있는 일 아닌가. 전망좋은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든가 해서…”
나는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이렇게 불안하고 수선스러워서는 일에 도움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다른 일은 없었는가?”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물었다. 뭔가 눈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숨기지 않고 말하길 바라며.
“1 시간 전에 두 사람이 찾아왔었네. J 부동산에서 은밀히 자기들에게 소개하였다고 하면서. 나는 J 부동산이라는 곳을 모를 뿐만 아니라 집 매각을 위하여 부동산 회사를 찾은 적이 없네.”
그들은 나를 찾아온 자들이었다. 부동산에서 그렇게 사람을 보낼 수는 없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들의 행적은 의문 투성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정도의 나이로는 어떤 일을 직접 계획하여 움직일 능력은 안된다. 그 뒤에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고 그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왜?
나는 에드와 그의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하얀 크림이 듬뿍 든 시나몬 빵과 녹지않게 잘 포장된 아이스크림을 샀다. 노인네들은 단 것을 좋아하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 특히 시나몬 향이 든 빵을. 나는 서쪽을 향해 401 고속도로를질주했다. 이 길을 통하여 내가 구엘프며 나이아가라 등지를 밤낮없이 다녔을 때를 생각하며 거침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엘리자벳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제니도 한국에서 왔다 했는데…”
그때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기에 돌아서며 예사로 들었다. 그러나 지금 엘리자벳 할머니가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때렸다. 그렇게 관심이 많은 엘리자벳이 이웃하여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아무것도 모를 리는 없다. 최소한 전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는 말해 줄 것이다.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는 절박함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엘리자벳의 집 앞은 고요하였다. 에드는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에드의 집 권역인 도로의 가장자리 보도에 차를 바짝 붙여 주차하고는 에드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조경순이 반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어머! 제임스. 에드는?”
“제가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저하고 같이 엘리자벳 할머니 집으로 가서 이야길 좀 들어야겠습니다.”
조경순이 머리를 매만지며 의아해 하면서 실내용인 듯한 물방울 무늬가 듬성듬성 난분홍색 원피스 차림으로 주춤주춤 앞서서 잔디밭 돌 경계를 넘어 엘리자벳의 집 대문 중간쯤에 붙은 빨간색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포치아래 잔디밭에 서서 기다렸다. 벨이 서너 번 울렸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조경순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문으로 다가서서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나는 문을 열고 조경순이 먼저 들어가도록 하였다. 알 수 없는 분위기로 긴장되었지만, 문가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조용하였다.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먼저 들어간 조경순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조용한 집의 분위기를 흔들었다.
내가 급히 거실로 들어섰을 때 엘리자벳은 짙은 커피색 소파에 머리를 오른쪽 팔걸이에 두고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눈은 감겨 있었다. 아래로 처진 왼쪽 팔목에선 피가 흐르다 굳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였다. 그 머리를 둔 소파 아래쪽에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날이 얇고 좁은 사시미용 같은 긴 칼이 피가 묻은 채 카펫 위에 놓여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우선 엘리자벳의 목에 손바닥을 대어봤다. 동맥은 뛰고 있었다. 조경순에게 911 로 전화를 하도록 하였다. 조경순은 당황하여 자기 집으로 나가려하였다.
“Ms. Cho! 이 집 전화를 사용하십시오. 911 을 누르면 바로 주소와 위치가 알려질 겁니다.”
내가 큰 소리로 말하자 놀라며 페치카가 있는 벽 책장 중간에 놓여 있는 전화를 들었다.
나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엘리자벳의 왼손을 위로 쳐들고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심장 가까운 곳을 지혈하기 위하여 묶었다. 그러자 아픔으로 엘리자벳이 겨우 눈을 떴다.
“누구? 제임스 본드구먼. 내가 누운 의자 쿠션을 뒤져봐. 나는 제임스 본드를 좋아해.”
겨우 숨 쉴 수 있는 목소리로 내 쪽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말하였다. 나는 소파 쿠션 밑에서 낡은 가죽으로 커버된 작은 책을 발견하고 끄집어내었다.
“엘리자벳! 이 책 말인가요?”
그 책을 얼굴 가까이 보이며 물었다. 조경순은 전화를 잡고 당황한 채 이곳의 위치와 엘리자벳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었다. 엘리자벳은 그 책과 나를 번갈아보다가 각오를 한 듯 말하였다.
“제임스 본드. 이건 내 일기장이야. 마지막 부분에는 옆집 일로 당신을 만난 후 내가 기억을 더듬어 적어 둔 것이니 잘 읽어 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소파 팔걸이에 떨구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일단 응급조치를 하였고, 상처를 살펴보니 바닥에 떨어진 칼로 왼 손목 위를 긋듯 잘랐는데 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지혈하였으므로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조경순에게는 지금 그대로 어느 것도 만지거나 움직여 놓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현장 보존을 하여야 초동수사에서 혼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층에는 별 다른 흔적이 없었다. 크게 어지러워지지 않았다. 카펫이 깔려서 특별한 발자국도 없었다. 조경순은 911 에 상세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계속 전화를 잡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메모용지를 꺼내어 그 위에 바른 글씨로 내 휴대폰 전화번호를 적어서 접은 후 엘리자벳의 오른 손바닥에 올려 놓고 손가락들을 접어 꼭 잡아 주었다.
“Pick up the phone to me anytime when you need.”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엘리자벳은 미소로 답했다. 전화를하고 난 조경순이 엘리자벳 곁에서 물수건으로 얼굴을 씻어주고 있는 것을 보며 이층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이층 마지막 계단 모서리에 신발로 눌린 듯한 자국이 있었다. 좌 우로. 두명이었다. 이 층에 난 침실 문은 열려 있었고 역시 특별한 흔적은 없었다. 화장실 문도 열려있었다. 변기 아래 바닥에는 백색 타일이 깔렸었고 그 바로 앞에 소변을 본 구두바닥 자국이 희미하게 있었다. 무심히 본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국이었다. 그들은 고무창을 댄 구두를 신었다. 미끄럼 방지 무늬가 엇갈리게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사계절용 신발이었다. 그들은 대담하였거나 엘리자벳 혼자 있음을 알고 그렇게 서두르진않았던 걸로 짐작되었다. 역시 대담하였다. 그들은 가구나 방안의 옷장 등 어느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일층 거실의 탁자와 부엌칼이 옮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그대로였다. 내가 본 상황에서는. 그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살인 미수를 감행하였던 걸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짐작되었다.뭔가를 알아내기 위한 협박이었다. 동맥을 끊으려 했던 것은 강력한 입막음과 협박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내가 짐작하는 것 같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서툴렀다. 그들은 내 짐작대로라면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짐작한 것들을 확인시켜 주려는듯 흔적을 남겼다. 전문가는 아니었다.
정확히 10 분이 경과한 후 경찰과 엠브렌스가 도착하였다. 나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 엘리자벳이 준 노트를 자동차 다시 방 서랍 안에 내가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와 함께 넣어 두고 잠갔다. 유능한 담당 형사라면 틀림없이 내 차도 수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자벳이 엠브렌스에 실려 병원으로 출발하고 담당 경찰이 조경순에게 뭔가를 묻고있었다.
나는 앞 정원의 단풍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그때 에드가 도착하였다. 그리고 형사로 보이는 경찰 두 사람이 내게로 왔다. 한 사람은 거구였다. 그는 혼혈이었다. 키는나만 하였지만 아마도 100kg 은 쉽게 될 것 같았다. 그는앞으로 불쑥 나온 인격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갈지자 걸음으로 걸었고, 그 옆의 사람은 170cm 정도의 비교적 작은 키에 몸집 또한 날렵하였다. 백색 피부로봐서는 유럽계일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하였다고요? 잘하셨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까지에 이르렀을 겁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였다.
“옥빌지역 경찰 강력계의 경감 릭 커틀랜드입니다.그리고 이쪽은 OPP(온타리오 주립경찰)의 사건조사담당 형사 아크샤 스코노프입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짐작했다. 릭은 영국계일 것이고 아크샤는 러시아계 이름일 것이라고. 순간, 어떻게 OPP 까지 관여하는가? 의문이 생겼다. 에드가 내 옆으로 와서 나를소개했다.
“나는 목격자의 남편인 에드먼드 강이고 바로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친구인 제임스입니다. 사설탐정이지요.”
에드는 열변을 토하듯 매끄럽지 못한 영어로 내가 하기 싫은 소개를 대신 해 주었다. 나는 CSIS (캐나다 시크릿 인텔리전시 서비스 협회)에서 발행한 증명서를 보여 주었다. 실제로 내가 받은 증명서는 캐나다정부 기관의 어떤 것과 혼동할 소지가 많았다. 그러나 마크와 내용에서 쉽게 구별하도록 협회에서는 애쓴 흔적이 역력하였다. 굳이 ‘not government agency’라고 표기하지 않았어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구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