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61)무밭 갈아엎기
억울하게 옥에 갇힌 억보
아비에게 서찰을 쓰는데
소백산 자락 수철리 사람들은 밭농사도 짓지만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고 재수 좋은 날엔 산삼도 만나며 산에 기대어 살아간다. 열여덟살 억보는 몇달 전 혼자 산에 들어갔다가 멧돼지를 만나 혼이 난 후로부터는 꼭 짝을 지어 올라간다.
심마니 송씨가 산으로 간다기에 따라붙었다. 둘이서 온종일 소백산을 헤매다가 날이 저물어 희방사 요사채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이튿날도 헤집고 돌아다녔다. 억보는 소백산에서 채취한 걸 풍기장에 내다 팔고 번 돈을 모두 몸져누운 아버지 약값으로 댄다.
송씨가 운 좋게 산삼을 일곱뿌리 캤다. 사실 먼저 발견한 사람은 억보였다. 억보가 네뿌리, 송씨가 세뿌리를 가졌다. 백년근도 아니고 일이십년근이라 억보는 제 아버지 달여 드리려고 하산하려는데 송씨가 혼자서 더 돌아다니겠다고 산에 남았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효자 총각 억보가 산삼 네뿌리를 정성스럽게 달여 아버지에게 드렸다.
“얘야, 저기 매달린 무씨를 뿌릴 때가 다가오는구나. 이번 가을에 무를 팔면 며느리를 봐야지.” 억보네 억새 삼간은 두마지기 밭 속에 앉았다. 수철리는 땅도 좁은 데다 화전 밭뙈기란 게 모두 기울어진 돌밭인데 억보네 마당 겸 텃밭은 그나마 반듯한 편이다.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위해 억보네 마당 텃밭에 호미를 들고 와서 돌을 빼내서 돌무더기가 산이 됐다.
억보네 마당 텃밭은 독특한 땅이다. 가을에 무씨만 뿌려놓으면 김장철엔 처녀 장딴지만 한 무가 되는데 속살이 단단할뿐더러 맛도 좋다. 김장철에 만든 깍두기나 물김치가 이듬해 사월까지 맛이 변하지 않아 무 수확 철이 되면 풍기에서, 단양에서, 영주에서 우마차를 끌고 와서 무 쟁탈전이 벌어진다. 희한한 것은 억보네 밭만 벗어나면 무가 맛도 없고 모양새부터 다르다.
억보 아버지 박 생원은 봄부터 여름까지 그 밭에 아무것도 경작하지 않고 오로지 가을 한철 무농사만 짓는다. 그런데 무농사가 문제가 아니라 날벼락이 떨어졌다. 풍기 관아에서 형방이 포졸 셋을 데리고 와 억보를 오랏줄로 묶어 압송해간 것이다. 아버지 박 생원이 매달리며 연유나 알자고 울부짖자 살인 혐의라 말했다. 심마니 송씨를 죽였다는 것이다.
억보는 고래고래 고함치다 포졸의 육모방망이 세례로 기절했다. 동헌으로 끌려간 그는 찬물 한바가지를 덮어쓰고 정신을 차렸다. 심마니 송씨가 이레가 지났는데도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은 억보가 송씨를 죽이고 송씨가 캔 산삼을 가로챈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억보가 아무리 자초지종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억보는 옥에 갇혔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멍청한 형방은 칠십여명의 포졸을 데리고 소백산을 뒤지다가 그에게 곤장을 치며 자백을 강요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고 무릎을 쳤다. 억보가 몰래 아버지에게 보내는 서찰을 가로챈 옥졸이 그 서찰을 형방에게 건네준 것이다.
“아부지, 병환은 좀 어떠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밭을 갈지 마세요. 거기에 그놈을 묻어놓았어요.” 형방은 무릎을 치고 포졸 수십명을 데리고 억보네 집으로 갔다. 손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마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에 무를 뽑은 후에 이날 이때껏 아이들이 돼지 오줌통 축구를 하고 뛰어놀던 곳이라 돌덩이처럼 굳어 있어 마당 텃밭을 파는 데 애를 먹었다. 횃불을 밝혀놓고 새참을 먹어가며 거의 두자 깊이로 파고 파도 송씨의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사흘 후 핼쑥해진 심마니 송씨가 어기적어기적 수철리 집으로 돌아왔다. 입을 다물고 있다가 풍기 관아에 호출되어 곤장 틀에 묶여서야 실토했다. 산삼은 있는 자리에 또 있는 법. 억보를 내려보내고 그 주위에서 백년근 산삼 세뿌리를 더 캐 제천으로 올라가 약재상에 팔아서 보름 동안 기생집에 파묻혀 지내다 왔다는 것이다. 사또가 억보에게 물었다. “그놈을 파묻었다는 건 무슨 소리냐?” “우리 닭을 잡아먹은 여우를 잡아 털가죽을 벗겨 팔고 몸뚱어리는 밭에 묻었다는 얘기입니다.” 그해 억보네 무농사는 대풍이었다. 그 딱딱한 밭을 두자 깊이로 갈아엎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