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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다시 FC서울의 선전에 따른 연고이전 논란이 많은듯합니다.
예전 (정확히 2년 2개월전) 제가 모싸이트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시점이 시점이다보니 그사이 이루어졌던 SK의 야반도주
,고양국민은행 승격사기사건등은 내용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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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전에..다들 잘아시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몇개 퀴즈를 내보고자 한다.
한국프로축구에서
1. 처음으로 서울을 연고로 한 당시 팀 명칭은?
2. 서울을 연고로 처음으로 리그 우승한 당시 팀 명칭은?
3. 서울을 연고로 처음으로 강북,강남 더비전은 벌였던 당시 두 팀명칭은?
4. 처음으로 강원도 연고로 한 당시 팀 명칭은?
5. 충청도 연고지역 최초 리그우승한 당시 팀명칭은?
6.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연고이전을 한 팀들은 ?
이 해답은 읽으면서 알게될것이기에 마지막에 답을 적어 놓고자 한다.
1983년 한국프로축구가 군사정권의 힘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미 프로야구보다 먼저 혹은 비슷한 시기에 프로축구팀들이
생겨났으니 할렐루야 (1980) ,유공 (1982) 였고..3년정도의 산고끝에 83년
슈퍼리그가 탄생한다. 하지만 산고끝에 나온 프로리그이지만 여러모로 보잘것없
었고 엉성한 점이 많았다.
1983년..당시 출범한 슈퍼리그의 5팀과 각각의 연고지역을 살펴보면
프로-할렐루야 축구단 - 충청도,강원도
프로-유공 코키리 축구단- 서울,인천,경기도
실업-대우 로얄즈- 부산,경상남도
실업-포항제철 돌핀스 - 대구,경상북도
실업-국민은행 까치축구단 - 전라남도,전라북도
이당시만해도 1년먼저 출범한 프로야구 또한 지역연고였지 도시연고가
아니었다. 당시 초등생이던 본인도 갖 출범한 프로축구 5개구단 마스코트와
선수명단이 적힌 수첩을 (기억에 아마도 100원) 수집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전년도에 프로야구6개구단 수첩또한 수집했었기에)
출범 첫해 여서인지 이해에 프로축구 인기가 상당했고 당시 티비로
트랙까지 꽉찬 관중들의 모습도 볼수 있었다. 게다가 이해엔 세계청소년대회4강
신화가 있던 해였고..이러한 프로와 아마가 뒤섞인 리그는 이듬해 프로팀들이
잇달아 창단되고 기존실업팀들도 프로로 전환했다.
1984년..새로이 창단한 프로팀들과 연고지역을 보면
럭키금성(現 LG) - 충청도
현대 - 강원도
과거 할렐루야의 연고지역을 두 팀이 나누어 받아 창단되었다.
특히 현대는 고 정주영회장의 고향이 강원도라는점에서 연고지역을
미리 요구했다는점이 특이했다.
83년-86년 동안 할렐루야가 프로팀 해체를 선언하고 국민은행, 이후
슈퍼리그에 뛰어든 한일은행 같은 아마팀들을 완전히 배재한 순수한
프로축구팀들만의 진정한 프로축구리그의 시작은 1987년부터다 .
이렇게 진정한 프로리그인 1987년 당시 프로 5팀과 그 연고지를 살펴보면
유공코끼리 - 인천,경기
대우로얄즈 - 부산,경남
럭키금성 황소 - 충청
포철 돌핀스 - 대구,경북
현대호랑이 - 강원
1989년...초기 서울이었던 유공이 서울을 떠나고 빈 서울 연고 구단도 없었지만
연고지역을 봐도 알수있듯 호남지역의 축구팀이 이때도 전혀 없었다.
호남축구팀 탄생이라는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1989년 당시 일화가
only 서울을 연고로 한 첫 프로축구팀을 창단한다.
일화천마축구단 - 서울
(1989년..이해에 건국대출신으로 드래프트된 일화에 입단한 고정운선수가
신인왕에, 세계청소년 4강신화의 박종환 감독이 일화의 초대감독이 된다.)
1990년...이해부터 더이상의 광역연고가 아닌 철저한 도시연고제로 바뀐다.
기존 광활한 연고지역을 갖고있는 각 프로구단의 흥행이 참패하고 있었고
반면 서울만을 연고지로 하고 있었던 신생팀 일화의 관중몰이가 큰영향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국민들에게 히딩크급이었던 박종환감독의 인기가
절대적이었다 생각한다)
1990년 부터 바뀐 각 구단의 연고이전 사항을 보면
유공코끼리 - 인천,경기 --> 인천
포항제철아톰스 - 대구,경북 --> 포항
대우로얄즈 - 부산,경남 --> 부산
이 3 구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지역내의 거점을 정한것이니 연고지 이전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럭키금성황소 - 충청 --> 서울
현대호랑이 - 강원 --> 울산
이 두팀은 당시 두팀의 흥행참패문제로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옮긴 제대로된
연고지 이전의 첫사례이다.
현대는 고 정주영회장의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현대중공업의 거점 울산으로,
그리고 럭키금성은 이 해 프로야구 MBC를 인수 ,서울 연고 LG트윈스를
창단했고 90년부터 럭키금성(Luck GoldStar)라는 그룹을 LG라고 모든 그룹을
통합변경하여 프로축구,프로야구 모두 서울을 연고로 한 통합 연고지의 발판이
되게 된다. (당시 일화는 강북을, LG는 강남을 연고로 한 서울 더비매치가 있었다)
이러한 도시연고제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지며 중도에 유공이 연고를
서울로 다시 재이전하는것 외엔 나름대로 정착이 이루어졌다.
94년엔 전북버팔로라는 팀이 창단되었으나 감독,선수들은 월급도 못받고
시즌을 겨우 연명하다가 해체되고 이것이 현재 전북 현대의 모체가된다.
95년무렵..정몽준회장이 월드컵개최에 뛰어들것을 선언하고
프로축구의 판을 키우게 된다. 그동안 공석이었던 호남지역에 역시 같은
현대그룹이 전북현대다이노스를, 포항제철은 광양을 기반으로 전남드래곤즈를
창단하여 현대,포철이 프로축구를 2팀씩이나 거느리고..95년부터는포항제철이
아닌 독립법인 포항아톰스로 명칭이 변하고..드디어 문제의 96년에 다다른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근시안적,단세포적,무뇌아적인 행태는 90년대 중반부터
절정에 달하는데 바로 93년 출범한 일본제이리그의 운영을 고대로 본딴 전후기
리그 및 챔피언결정전,그리고 수도 도꾜를 비우고 철저한 중소도시 지역연고
제를 수행한것을 벤치마킹하기에 이른다.(물론 84년 프로야구를 본따 한번
전후기리그를 일시적으로 수행한적이 있긴하다만)
이전에는 따라할 모태가 없어서 못했지만 바로 옆나라 일본제이리그가 생긴후
후 숱하게 변하는 리그제도(전후기,챔피언결정전,프로야구를 본딴 변태 사다리
타기4강플레이오프,다시 단일리그,다시 전후기와 요상한 포스트시즌 등)와
아직까지 물의를 일으키는 당시 서울연고구단 축출이 과연 현명한,앞을 내다본
정책이었는지..판단은 읽는분들께 맡긴다.
어쨌든 1996년 수원삼성이 리그에 처음 뛰어들고 팀명앞에 도시,지역명을
그리고 프로리그의 지방활성화를 위해 서울구단을 강제로 축출하게된다.
당시 프로축구팬이었기에 이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한다.
당시 팬으로써 지방축구의 활성화는 본인도그랬고 많은 분들도 찬성했다.
하지만 매끄럽지 못했던..불씨를 남겨둔 연맹의 문제가 컸다.
프로연맹은..지방축구의 활성화를 모토로 우선적으로 서울 3구단을 축출했지만
나중에 재입성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신규구장을 지을경우 재입성 가능이라는)
상암월드컵경기장 건설부담금을 찬조시 입성가능..같은 불씨를 남겨놓는다.
96년당시 연맹의 방침에 따라 제일먼저 연고이전한 구단은 일화였다.
일화는 천안으로 이전했는데 당시 일화가 무슨생각이었느니 알순 없다.
하지만..지금도 그랬고 그때도 그랬다. 관중수,팬들은 전혀 관심없는 성적에만
신경쓰던 팀이었고 천안 경기장에 야간조명시설 되는지 확인도 안하고
마케팅,팬층등은 전혀 신경안 쓴 근시안적인 이전이었다 생각한다.
(결국 경기장문제로 성남으로 또다시 이전)
이어서 유공이 서울과 인접한 부천으로 이전했고...가장끝까지 서울 연고를 주장
하고 버티던 LG는..끝긑내 연맹의 압력을 못이겨 인근 안양으로 연고를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향후 불씨가 될 상암월드컵 건설 부담금 보조 시 향후 재입성 가능..
즉 연맹에서는 당장은 서울에서 내쫒지만 향후 월드컵이후 재입성의 가능성을
남겨둔것 이것도 요즘 같아서는 주목할만한 사실이지만 그당시 연고이전한다고
패륜소리듣는 구단은 없었고 자연스러웠기에 구단관계자, 연맹, 그리고 축구팬
에 이르기 까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간 질리도록 옮겨다닌 96년 당시 팀들 최종 기착지를 보면
유공 (서울) -> 부천유공
LG (서울) -> 안양LG
일화 (서울) -> 천안일화
대우(부산) -> 부산대우
포항아톰스 -> 포항스틸러스
현대 (울산) -> 울산현대
전북다이노스
전남드래곤즈
수원삼성
96년 연고이전이후..한국은 월드컵공동개최, 97년 최종예선 당시 붉은악마의 출현과
차범근호의 범국민적인 축구열풍 그리고 2002년월드컵을 계기로 엄청난 축구팬의
증가가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로 그 이후는 언급하지 않고 이만 줄인다.
하지만..예전 프로축구팬의 관점으로 이거 하나는 생각해 보자.
일화,유공,LG..적어도 금전적으로 재력으로 부족할것이 없는 대기업이었던
이 3기업이 왜 하나같이 서울인근 위성도시로 연고이전을 꾀했을까?
엄연히 대도시이자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 새로운 축구구장이 건설될 대구,
광주같은 대도시는 비어있었고 지역적인 절대흥행을 원한다면 강릉이나 창원
같은 축구열기가 높은 중소도시가 많았음에도 굳이 서울 인근도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타대도시가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았다라는점도 부인할 수 는 없지만
처음 서울에서 나가라고 떠밀때부터 나중에 조건부 재입성을 암묵적으로
동의해준 결과다.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연맹은 연고이전에 대해
숱하게 번복을 해왔다. 당시 월드컵개최를 위한 전국적인 축구붐을 위해
일시적으로 서울 구단들을 몰아내었고 다시 복귀의 여지를 남겨둔것뿐이다.
이래서 구단들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임시둥지를 틀게 되었고 별 축구에
투자에 관심이 없었던 SK(구 유공),일화와는 달리 삼성과 함께 최대 스포츠단을
이끌고 있는 LG였기에 과연 안양이라는 둥지가 성에 찼을까 추리해본다.
수원시는 삼성의 협조도 있었지만 96년 시점 월드컵개최도시 후보로 지원할
정도로 축구에 적극적이었고 월드컵을 유치했으며 세계에 손꼽히는 최신식 전용
구장을 짓게되었다. 전자업계의 라이벌로써 라이벌의식이 강한 LG와삼성이
비슷한 서울의 인근도시였지만 H/W에서 삼성보다 모자랐던 LG가..만약 안양이
월드컵 개최도시였고 최신식 축구전용구장 이 있었다면 그래도 서울로 이전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그간 숱하게 복덕방 방빼듯 연고이전을 해왔던 고무줄 행정의
프로연맹만의 책임인지..지금껏 그래왔기에 아파트이사하듯 연고이전은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기업들의 만의 문제인지..예전 프로축구의 이전
상황은 전혀 생각치 않고 자신이 팬이었던 시점만 생각하는 팬의 책임인지..
분명히 연고이전을 통해 팬들에게 상처를 준 원죄는 크다. 하지만..
과연 패륜이라는 말은 LG에만 해당하고 다른 구단,연맹에는 비해당사항인지..
분명한건 본인이 프로축구를 보러다니던 94년,95년까지 분명히 서울에도 수많은
서울 축구팬이 존재했었고 동대문구장에는 많은 관중들이 있었다.
또한 엄연히 서울을 연고로한 프로축구팀이 있었고 더비도 존재했었다.
판단과 의견은 읽는 분들께 맡깁니다.
끝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도입 시 낸 퀴즈의 답을 밝힙니다.
1. 처음으로 서울을 연고로 한 당시 팀 명칭은?
-- 유공(現 부천SK) ,1983
2. 서울을 연고로 처음으로 리그 우승한 당시 팀 명칭은?
-- 일화(현 성남일화), 1993 (주:유공은 서울에서 인천,경기로 연고이전)
3. 서울을 연고로 처음으로 강북,강남 더비전은 벌였던 당시 두 팀명칭은?
-- 일화(서울강북),LG(서울강남)
4. 처음으로 강원도 연고로 한 당시 팀 명칭은?
-- 할렐루야 1983
5. 충청도 연고지역 최초 리그우승한 당시 팀명칭은?
-- 할렐루야 1983
6. 지금까지 자의건 타의건 한번이라도 연고이전을 한 팀들은 ?
-- LG (충남,충북 -> 서울 -> 안양 -> 서울)
-- 현대 (강원 -> 울산)
-- SK (서울,인천,경기 -> 인천,경기 -> 서울 -> 부천)
-- 일화 (서울 -> 천안 -> 성남 )
-- 대우,포철은 연고광역지 에서 연고내 도시로 옮긴관계로 연고이전의 예외로함.
출처. FLAMMA 방성준님의 글에서
첫댓글 그동안 프로축구판에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고이전또한 하나의 성장통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 진정한 연고의식이 정착되어지길
예전에 이랬으니 이번에도 넘어가주자....이런식은 안된다고 봅니다.....개인적으로 서울이나 제주에 대한 어떠한 나쁜글도 올린적은 없으나 이런글은 변명으로 보입니다. 서울분들이나 제주분들도 피해자일 것입니다. 왜하필 우리지역에...란 생각 서울,제주분들의 팬이였으면 한번쯤 생각했을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연고정착이 되어 이런 슬픈일은 없어야죠...
"예전 프로축구의 이전 상황은 전혀 생각치 않고 자신이 팬이었던 시점만 생각하는 팬의 책임" 동대문 시절부터 LG치타스 경기와 윤상철 선수를 좋아하던 저로써는 작금의 연고이전 비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을 늘 이야기했었죠. 언제나 96년부터 연고지 시작이었다는 말로 연맹의 잘못과 연맹의 결정을 좌시한 각 구단의 구단주들에 대한 비판은 없이 오직 연고이전한 팀과 그 팀과 새로이 시작한 사람들만을 향해 날린 비난은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이었던 걸로만 기억합니다.
좋은글이네요~ 자신이 팬이었던 시점만 생각하는 팬의 책임!! 반성하게 만듭니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연고 이전 당시의 상황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업이 국가의 정책에 끌려다니거나 연맹의 독단에 반항할 수 없었던 시절, 팬들도 연고지 이전에 대해 불만과 항의를 쉽게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전은 LG나 SK의 연고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프로축구 출범하기 전부터 축구를 봐 왔었지만 저 조차도 연고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기업의 개념이었습니다. 부산이 아닌 대우를 좋아했고, 인천이 아닌 유공을 좋아했었죠. 지금은 아닙니다. 인천 유나이티드를 좋아하고 포항 스틸러스를 좋아합니다.
안양 치타스를 좋아했고, 부산 로얄즈를 좋아했습니다. 뭐가 달라졌는지 아시겠죠. 패륜이라며 비난하시는 분들은 안양에서 치타스를 빼앗아가고 부천에서 코끼리들을 빼앗아간 기업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업을 쌍수로 환영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있을까요? 전 이해합니다. 분명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비난입니다만 저절로 수그러들 때까지 서울팬은 FC 서울을, 제주팬은 제주 유나이티드를 응원하시면서 기존 안양이나 부천의 사태에 민감한 분들을 자극하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
굳이 이글을 쓴분과 같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한번쯤은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저 중간쯤 끼어있는 형태인데 사실 정확한 과정 정도는 알 필요가 있거든요. 서울을 응원하시는 분들이나 비판하시는 분들이나. 서울 편향적인 글이긴 하나 정보만 아시면 될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