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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흥미돋는글
출처 : 여성시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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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
밤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 마포구
...라는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 <김씨표류기>
김씨표류기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진의 김씨가 자살시도하다 꼬라박고 표류한 곳이 바로 밤섬이다
아마 이 영화 때문에 밤섬이라는 곳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 많고 빌딩 많은 서울 한복판에 인적 없는 무인도라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일까
아직 안 봤다고? 당장 가서 보길 바란다.
아무튼 김씨가 표류한 이 밤섬은 서울 한복판, 한강공원 망원지구와 여의도 사이에 있는 존나 큰 무인도이다
보면 알겠지만 바로 앞에는 국회의사당도 있고, 그야말로 서울 코 앞에 있다
애초에 사람이 살았다면 김씨 표류기가 아니고 김씨 밤섬잠깐들렸다가집에오기 가 영화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
이게 지금 지도로 봐서 얼마 안 돼 보이는 거지 못해도 1.3km 길이는 되고 서울 광장 21개 규모의 크기 정도는 된다.
심지어 원래 크기도 아니고 옛날보다 더 넓어진거다
사진은 1966년과 2012년을 비교한 것인데 자연적인 퇴적 작용때문에 하관이 넓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12년이 더 지났으니 아마 저것보다도 더 넓어졌을 것이다. 그간 비도 많이 왔고
거 가만히 냅두니 섬이 복사가 되더라니까
도시 한복판에 떨어졌는데 표류라고?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허접ㅋㅋㅋ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느정도는 맞다
여의도에서 밤섬까지의 거리는 채 1km조차 되지 않는다
반대편까지 합쳐도 1.2km정도이다
수영이야 좀 빡세지 육로로 간다 치면 도보 17분, 자전거 4분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이다
간혹 열리는 한강수영대회에서도 1.2km 횡단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도 옛날 어르신들 중에는 밤섬에 수영을 해서 갔다왔다는 썰을 푸는 사례가 종종 있으며
서울과 가깝다는 점이 보통 장점이 아니었던지라 옛날에는 꽤 번성한 섬이었다
심지어 여의도보다 강북쪽과 더 가깝다
밤섬의 역사는 요즈음 핫한 고려시대까지 올라가는데
고려는 수도가 개경이었던지라 한양 쪽은 옛날 삼국시대 틀니들이 먹어보겠다고 팬티레슬링하던 과거의 영광이 쫌 남아있는 콩라인이었다
그래서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고려는 이 밤섬을 한동안 귀양 간 애들을 저장해놓는 외장하드 정도로 썼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이성계의 조선이 들어서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성계가 한양으로 서버이전을 하게 되어 이 변방 외장하드 밤섬에도 사람들이 슬슬 유입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여기에 당도한 것은 배 만드는 조선공들이었고, 백사장과 한강 수운을 활용하여 조선업을 필두로 수운, 하역, 도선업이 발달했고 겸사겸사 어업으로 먹고 살게 된다
밤섬으로 몰린 주민들은 여기에 뽕나무를 하나 둘 심게 되었고
그 뽕나무가 어느세 군세를 이루어 사람들은 이 곳을 당시 뽕나무로 유명했던 잠실의 이름을 따서 서쪽 잠실이라는 뜻의 '서잠실',
혹은 그 당시 여의도의 별칭 '나의주(羅衣州)'에 상응하여 '율주(栗州)'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이 중 율주라는 명칭이 굳어져 일제강점기에는 이 섬이 율주에서 유래한 율도(栗島)로 불리게 되었고, 이 일대는 대한민국 출범 후 율도동에 속하게 된다
밤섬의 역사는 6.25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나갔다
이렇다 할 육로가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해서 맛이 갔기 때문에 한강 수운업은 여전히 맛좋은 사업이었고 이는 6.25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밤섬은 섬 주민 천여명을 자랑하는 존나 잘나가는 곳이었다
지도를 다시 보자. 아파트도 없던 시절에 천명이 하중도 치곤 좀 커서 그렇지 저 아파트 단지 몇개 합쳐놓은 크기의 섬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던 것이다
비록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었고 식수로는 한강물을 그대로 떠다 마시는 앙증맞은 찐빠가 있긴 했으나 저 시절에 저정도면 잘나가는게 맞다
반면 옆에 있던 여의도는 여의도 개발 계획 전까진 허허벌판이었다
현재 여의도가 핫플레이스고 밤섬이 무인도가 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밤섬은
그 역사와는 대비되게도 너무나도 빠르게 몰락하고 잊혀지게 된다
당시 서울시장으로 김현옥이라는 양반이 있었다
이 양반은 당시 권력의 정점 박통의 총애를 받는 동네 힘센사람으로
서울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온갖 대공사를 벌인 사람으로 역사에 그 이름이 남아있다
얼마나 공사를 많이 했는지 별명이 불도저였다
이 양반이 대충 뭘 했는지 몇개만 꼽아보자면
세종대로 건설
6.25때부터 내려온 대규모 판자촌을 밀고 그 위에 세운상가 건설
강변북로 건설
서울 시내의 온갖 터널 및 고가차도 건설
시민아파트 단지 건설 및 판자촌 주민들 유치 등등이 있다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도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김현옥은 이 와우아파트 참사의 책임을 지고 퇴임했다
아무튼 이 양반이 박정희 대통령을 뒤에 업고 벌인 공사 중에는 여의도 개발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밤섬은 여의도와 가깝다는 이유로 여기에 휘말리게 된다
위에서 판자촌이 많이 언급되었는데, 당시 서울시에는 전쟁 이후 서울로 몰려든 넘쳐나는 피난민들이 세운 판자촌이 급증하여 통제할 수 있는 선 밖으로 데드스페이스 커럽션마냥 열심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서울의 발전에 힘입어 상경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드니 서울시는 이 엄청난 인구를 어떻게 감당할지 머리를 싸고 고민해야 했다
이에 서울시의 주요 현안은 자연스럽게 이 판자촌들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이주민들을 서울에 우겨넣기 위해 도심을 재개발하는 것이 되었는데
불도저게이는 이 과정에서 여의도를 낙점하게 된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허허벌판 무주공산이었기 때문에 토지나 입주권 분쟁이 있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봐라 저게 ㅅㅂ 갯벌이지 여의도같이 생겼냐....
논밭 이런것도 아니고 그냥 모래사장이었기 때문에 주인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있는거라곤 옛날 일제가 지어놨던 비행장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간이 비행장이었다
두번째로는 당시 서울시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재정이 바닥나 상거지 신세가 되기 전에 빨리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한강은 주기적으로 홍수가 나는 강이고, 옛날엔 수도 서울이라 할 지라도 지금처럼 수해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나아졌다는 2022년에 서울 한복판에 물난리가 나서 사람이 실종되는데 당대라고 지금보다 나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소양강댐도 없었기 때문에 물 양을 조절할 방도도 없었다
그래서 저 여의도 아래쪽으로 난 샛강이 여의도 개발의 중대사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저 샛강을 섣불리 매립했다가는 유사시 쓸 유수로가 없어지기 때문에 물 범람되고 건물 잠기고 "우리 다 물냉면신세다 좆된다!" 고 건설부, 그러니까 지금의 국토부에서 서울시에게 야지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설부와 서울시는 여의도를 영등포에 붙이네, 제방을 쌓네 하면서 서로 싸우다가 결국 건설부의 주장대로 한강 폭을 1,300m로 하여 대홍수 시 유수로를 마련하기로 합의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은 밤섬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확장안을 시행하는 데 있어 밤섬은 강물 막는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당시 김현옥은 박정희 대통령이 여의도 계획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자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으로 만들 야심에 부풀어 있었고 그에게 있어 밤섬은 여의도에 비하면 그냥 섬에 불과했다
문제는 당시 밤섬은 진짜 존나 잘나갔기 때문에 조선시대때부터 내려오는 희귀성씨 집성촌까지 생길 정도였고
안 그래도 이주민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이 섬을 없앴다간 또 실향민들이 대규모로 발생하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 서울시는 밤섬을 없앨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데......
원조 불도저는 빠꾸없는 성격답게 여기를 폭파시켜 버리기로 한다
결국 1968년, 밤섬은 Bomb섬이 되고 말았다
밤섬이 뒤질 수 밖에 없던 큰 이유는 아까 설명했듯이 거지가 되기 일보직전인 서울시의 상황 역시 한몫했다
금고에 돈은 없는데, 당장 제방은 쌓아야 하고, 제방을 쌓으려면 석재가 필요하다
그것도 여의도같은 섬을 빙 둘러쳐서 제방을 쌓으려면 그야말로 존나 많은 석재가 필요하다
근데 또 하필 밤섬은 바위섬이라 석재 공급이 수월했다
외부에 손 빌리기 힘든 상황인데, 원래 폭파하기로 한 섬이 바위섬이네?
바위섬을 폭파하면 바위가 존나게 나오겠네?
마인크래프트만 해본 능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꿀거래였다
밤섬에 널려 있던 바위들은 여의도 윤중제를 쌓기 위한 석재로 이용되었고 토사 역시 매립용으로 사용되었다
돌댕이가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3교대로 110일만에 방죽공사가 완료되었다
1968년 폭파 당시 섬에 살던 62가구 443명의 주민들은 얼떨결에 실향민이 되어 섬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된다
한 때 잘나가던 섬의 주민들은 무인지대 개발을 위해 쫓겨나게 된 것이다
밤섬은 한줌 모래톱이었던 여의도를 위해 폭파되었고 밤섬의 번영은 여의도가 그의 갑절이 되는 스케일로 이어받는다
두 섬의 위상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밤섬은 서강대교 밑의 볼품없는 섬 로 전락하면서 기나긴 역사를 고하게 된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건 없군요
역사를 고한다 했지 수명이 다 됐다고는 안 했다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밤섬의 암반층에는 홍수 때문에 침수가 됐다가 안 됐다가 하는 상황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부터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했고, 밤섬은 바위 없는 바위섬에서 모래섬으로 노선을 변경한다
밤섬의 모래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계속해서 쌓였고, 결국 원본 섬의 크기보다도 더 커진 사이즈가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이전보다 커진 크기는 바로 이것을 말한다
1편의 바로샤가 그랬듯, 인간이 없어진 곳에는 자연이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 밤섬에는 억새, 버드나무, 물쑥, 갈대와 같은 온갖 식물들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모래 지형 사이로 흘러드는 물과 맞물려 밤섬은 도심 속의 작은 습지로 변모하게 된다
이에 왜가리, 청둥오리, 꿩, 민물가마우지 등 온갖 철새들과 물뱀, 곤충 등 기타 생물들이 호응하며 밤섬에 머무르게 되니 섬은 하나의 생태계를 다시 이루게 된다
포유류로는 2023년 들어 나타난 수달들이 살고 있다
이외에 너구리가 딱 한마리 존재한다는데, 홍수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너구리 불쌍해
정부 역시 이를 알게 되어 1986년부터 한강관리사업소가 발족하면서 밤섬의 통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8년에는 공식 철새도래지로 인정받아 여러 식물을 심는 사업이 진행되었고 1999년에는 밤섬 전체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다
그리고 2012년, 밤섬은 람사르 협약에 따른 습지로 인정된다
섬이 생명의 상징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
한편 실향민이 된 밤섬 주민들은 서울의 다른 곳으로 밀려나게 된다
밤섬 주민들은 최종 퇴거 통보를 받은 지 달포 만에 섬에서 나오게 되었다
당시에는 만화에 대통령 이름 석자 잘못 썼다고 경을 치던 시대이니만큼 이에 항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나마 장마 때마다 있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은 선택 아니겠냐는 위로뿐이 할 수 없었다
당초 밤섬 주민들에게 서울시가 제안한 조건은 창전동 와우산 쪽 연립주택 단지에 집단 이주하는 것이었는데, 밤섬 주거지에 하필 국유지가 35% 포함되어 있는데다가 하천부지라 턱없이 낮은 보상액이 책정되어 실향민들은 건물 값만 겨우 건지게 된다
결국 실향민들은 어쩔 수 없이 현재 당인동 137번지쯤 되는 자리에 천막촌을 형성하여 몇 달간 지내다가 결국 못 버티고 서울시에 항의하여 와우산 기슭 창전동을 주거지로 인정받게 된다
실향민들은 보상비를 모으고 직접 전기와 수도를 끌어와 마을 조직을 재건하여 신 밤섬마을을 만들게 된다
현재도 실향민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당시 밤섬에서 잘나가던 사당도 창전동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밤섬 주민들의 해당 사당에 대한 신앙심은 참으로 대단해서 6.25 전쟁 당시 북괴가 이 사당을 모욕하자 마을 주민들이 참교육했디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현재 실향민들은 주기적으로 귀향제를 지내고 있으며 마포구에서는 이들을 위해 고향방문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밤섬에 생명이 다시 찾아옴에 따라 좆간들이 섬을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리를 빡세게 할 필요가 커졌다
그래서 여의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이 섬은 서울 도심의 작은 습지임과 동시에 작은 출입금지구역이기도 하다
현재도 허가 없이는 밤섬에 못 들어간다
김씨표류기는 서울시의 허가를 받고 촬영한 작품이다. 그마저도 촬영횟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고생을 꽤 했다고 한다
밤섬에는 인공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선박을 위한 접안시설도 없다
문을 걸어잠근지가 40여년이 되어가서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의 상태라고 한다
밤섬을 관통하는 서강대교는 동물 친구들을 위해 야간에는 조명을 제한하며, 서강대교에는 밤섬으로 내려갈 수 있는 육로가 없다
원래는 개통 때만 해도 있었는데 취객, 노숙자, 그 외 기타 인간들이 자꾸 밤섬으로 내려가는 일이 생기자 없앴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밤섬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배 타고 가거나, 수영해서 가거나, 서강대교에서 중력에 몸을 맡기는 방법밖에는 없다
성공해도 경찰이 쫓아오겠지만
그래서 작중 김씨가 한호열과 오도기합해병대에게 쫓기는 장면은 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영화보다도 더 빡세게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밤섬에 숨어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단순히 영화처럼 공익과 오도기합해병들이 쓰레기 몇 개 줍고 하는 식이 전부가 아니라 시 차원에서 합세하여 배에 호스를 싣고 와서 물을 뿌려 나무를 물청소하는 수준의 관리를 한강 청소할 때마다 같이 수시로 한다
왜 그런가 하니 새똥이 나무에 쌓인 채로 두면 나무가 말라죽기 때문에 그런거라고 한다
맨날 와서 물 뿌리고 섬 다 뒤져보고 가는데 그런 데에서 숨어사는게 직장생활 하는거보다 빡세지 않을까?
이런 섬에서 그만큼 오래 버티면서 농사도 짓고 짜장면도 말아먹은 김씨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충일여자고등학교 - 대전광역시 유성구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충일여고
충일여고는 본디 1979년 충남방적이라는 회사의 대전공장 준공과 함께 부설 실업고교 자격으로 개교하였으며, 1984년 인문계로 노선을 바꿨지만
90년대 섬유산업 하향세를 직격탄으로 맞아 2002년 결국 폐교한 이후 현재까지 22년동안 폐건물 신세로 방치되고 있는 곳이다
건축 관련 문제가 유독 많고 유치권 분쟁 많이 일어나는 대한민국에 산재한 폐건물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 충일여고는 2000년대 제천늘봄갈비, 영덕폐가, 모라폐교 등 그 난다 긴다 하는 폐건물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곳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는 출입금지구역으로 허가 없이 진입할 수 없다
충일여고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그 분위기가 뽑힌다
일단 학교 사이즈가 존나 크다
건물이 ㄱ자로 존나 길게 뻗어있는데 저 나무 듬성듬성 난 운동장까지 합하면 보통이 아니다
안개 낀 날 찍힌 사진을 보면 여기가 머한인지 우크라이나 초르노빌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수준이다
또한 충일여고가 망하면서 충남방적도 같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충일여고 옆에는 충남방적 폐공장 부지가 세트로 붙어 있어 안 그래도 큰 충일여고 부지가 더 크게 보이는 착각이 일어난다
두 번째 이유
여기는 진짜로 사람을 잡은 폐건물이라는 것이다
뭐 무속인도 가지 말랬다 귀신이 나온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내 알빠 아니고
그딴거때매 죽은거 아니니까 쫄지마라
우리나라 귀신들은 이미 테리지노사우루스 귀신이 처리한지 오래니까 겁 안먹어도 된다
2016년에 폐교체험을 하던 사람이 충일여고 인근 교도소의 하수처리장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충일여고가 아니긴 한데 충일여고 가까이 있으니까 폐교체험하러 온 양반이 갔지 않았겠냐?
해당 하수처리장은 보다시피 수생식물로 완전히 뒤덮혀 있다
폐교 체험하러 갔다 물에 빠졌다니 얼핏 들으면 말이 안되게 들릴 수 있지만 저걸 밤에 본다고 생각해보자. 저게 우레탄 바닥인지 물인지 분간이 안 될걸?
이 사건으로 인해 충일여고는 국내 폐건물들 중 사망자를 낳은 얼마 안 되는 폐건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저기 말고도 충일여고에는 폐건물답게 위험요소가 이곳저곳 산재해 있다
충일여고는 부지가 워낙 크다보니 지하시설이 상당히 많은데
장장 22년을 폐건물로 썩은 만큼 배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온 지하시설과 구멍에 전부 물이 들어차있다
그래서 밤에 바닥이라도 잘못 디디면 저 사람처럼 익사하는 건 순식간이다
특히 충일여고는 옆의 폐공장 부지까지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데
이 폐공장이 하필 염료를 다룬 곳이기 때문에 깊은 저수조는 물론이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온갖 구조물들이 녹슨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더 위험하다
그야말로 건물 자체가 언제 뭘로 뒤질지 모르는 트랩으로 뒤덮여 있는 셈이다
근데 폐건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폐건물은 주인이 존재하고, 소유권 문제가 얽혀 있다
따라서 사유지 취급을 받아 원래 함부로 못 들어가는 폐건물이 수두룩하다
멋모르고 발을 들였다간 법적 처벌을 받는 곳도 굉장히 많다
아니 그럼 분량늘리려고 그런 흔해빠진 폐건물을 우겨넣었나요...?
일단 들어봐....
충일여고가 출입금지 지역이 된 데에는 사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존재한다
충일여고가 폐쇄된 가장 큰 이유
아까 여기서 죽은 사람이 어디서 죽었다고 했지?
충일여고 근처의 하수처리장이다. 충일여고 시설은 아니라 이거다
그렇다면 어디 하수처리장이지?
맞다. 교도소의 하수 처리장이다
어? 교도소?
그렇다. 충일여고 옆에는 교도소가 떡하니 붙어있다
그리고 그 교도소는 바로
ㅎㅇ~
대전교도소다
대전교도소가 뭐 하는 곳이냐?
대한민국에서 사형 집행 시설을 갖춘 다섯 교도소 중 하나로
작년까지만 해도 유영철이 수감되어 있던 곳이다
대전교도소를 거쳐간 수감자로는 이외에도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10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정두영 등등 있으며
2004년에는 수감자가 교도관을 때려죽인 사건도 있는 만큼 유수의 흉악범들이 많이 갇혀 있는 곳이다
충일여고는 이 대전교도소 옆에 꼭 붙어있다
사실 원래 충일여고는 지금처럼 쭉 폐교로 남을 예정이 아니었다
해당 부지는 무쌩긴 로고로 유명한 부영그룹이 이미 사들인 부지로
원래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사들인 부지였다
근데 여기에 아파트를 지으면 대전교도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게 된다
이는 중대한 보안 문제이기 때문에 허가가 결국 나지 않았고 현재까지 저 상태로 방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부영그룹이 해당 부지를 그대로 사유지로 가지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못 짓는데 땅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부지가 폐건물이라 온갖 불한당 잡것들이 다 몰려들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저기서 드론이라도 날리거나 누가 교도소 사진이라도 찍으면 그냥 좆되는거다
하는 수 없이 사유지로 해당 부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혹시나 대전교도소 관련하여 생길 보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부영그룹은 충일여고 부지에 높은 펜스를 둘러쳤고 경비초소와 야간조명을 도배해놨다
또한 주변 지역은 우범지역으로 설정되어 경찰이 상시 순찰하게 되었다
현재도 충일여고 근처에 접근하면 높은 확률로 경비원이나 경찰관과 마주치는 경우가 잦다고 하고 이 때문에 신고당하거나 처벌받은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들도 함부로 갔다가는 무단침입죄로 신고당할 수 있으니 괜시리 가서 화이트데이 경찰과도둑 그런거 하지 말고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걸려본 사람의 말로는 벌금 200만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볕들날은 온다고 23년 들어 대전교도소의 이전 사업이 다시 물망에 오르기 시작했고
현재 대전교도소는 2027년 전후로 완전히 이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대전교도소가 이전하는 즉시 부영과 대전광역시가 교도소와 충일여고, 충남방적 부지를 전부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사람 잡아먹은 폐건물 충일여고와 충남방적 폐부지는 마침내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다
용유지 (용비저수지) - 충청남도 서산시
사진 참 예쁘지 않은가?
위 사진이 찍힌 곳은 용비지, 용유지, 혹은 용비저수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 때 서산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서산 벚꽃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곳이었고
특히 웨딩 촬영으로 유명했다
근데 모르고 보면 마냥 관광지로 보이는 이 저수지는 사실 국가중요시설로 출입금지구역이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사진을 찍고 간 사람이 너무도 많다
사진을 올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으로는 통제가 영 부실했다고 한다
통제가 어지간히 부실했는지 관광지로 주로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문이 다 녹슬어있는데 어느 날은 굳게 닫혀있는 반면 또 어느 날에는 열려있고
펜스에는 개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들어가기 너무도 쉬웠다고 블로그에 대놓고 써놓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뚫는 방법을 대놓고 공유하거나 지인들에게 알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단체로 가서 찍은 사진도 있다
사실 벚꽃 핀 풍경이 ㄹㅇ 뒤지게 이쁘기에 여기가 출입금지인줄도 모른 사람들이 꽤 됐을 것이다
저게 어딜봐서 출입금지구역이냐 그냥 벚꽃포토존이지
그러한 허벌 출입금지구역 용유지였지만 2022년부터 이러한 용유지 사진을 올린 블로거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가 가게 된다
해당 메시지에는 용유지가 왜 출입금지 구역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다시는 그러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용유지는 사실 서산 한우개량사업소의 사유지로 있는 곳이었다. 용유지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운산면 일대 초지와 임야 337.8만평이 전부 한우개량사업소의 사유지이다
그러니까 용유지에서 사진 안찍고 용유지 근처에서만 겨우 찍었어요~ 도 무단침입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로 유명했던 과거와 달리 용유지는 민간에 한 번도 개방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저 예쁜 외관과 달리 자연호수도 아니다. 사실 저수지가 어떻게 자연호수겠냐만은
그럼 이전에 사진 잘 찍고 돌아간 사람들은 뭐냐?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목장이 들어서면서 목장의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고, 그 때부터 출입을 통제했지만 사람이 너무 몰리다보니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은 어느 정도 봐주고 있던 거라고 한다
한우개량사업소에서는 우리나라 전체 한우의 인공수정에 공급되는 중요한 개체인 보증씨수소, 즉 종자소를 100마리 이상 이 부지에서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 소는 6년의 육성 과정이 걸리고 엄격한 선발을 거쳐 한 해에 30마리 이내가 나올까 말까 한 존나 중요한 개체이며 한 마리에 20억 이상 가치가 나오는 비싼 몸이다
그런 곳에 사진 찍겠다고 들어온 외지인이 구제역 등 전염병을 묻히고 들어오면 우리나라 소 자체에 비상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용유지와 그 근처 부지가 출입금지가 된 것이었다
특히 저 비싼 소들 먹는 물이 나오는 근원인 용유지는 오염이라도 되면 진짜 다 좆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빡세게 관리할 필요가 있던 것이었다
근데 이게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안다고
위에서 얘기한 블로거들처럼 양심 뒤진 새끼들이 자기 지인에게 공유하네~ 우회로를 찾네~ 이지랄을 하다가
마침내 철조망 구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퍼지기 시작하자
결국 한우개량사업소가 드디어 갈!을 외치고 나온 것이다
펜스에 숭숭 뚫려있는 개구멍과 맨날 열려 있던 녹슨 문은 아마 이들의 흔적이리라
안 그래도 337.8만평을 철저하게 관리하기가 여간 빡센 것이 아닌데
봐주고 있던 관광객들까지 개 지랄을 시작하자
결국 2022년을 기점으로 한우개량사업소는 용유지 부지 전체의 경계를 대폭 강화하게 되었고
2022년 이후로 용유지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한우개량사업소 측에서 친절하게 해당 장소가 무엇하는 장소인지 전부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양반들이 정신 못 차리고 용유지를 개방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고 한다
첫댓글 ㅋㅋㅋ흥미돋,,,,,
근데 뜬금없어서미안한데 이거구교환임??
맞음ㅋㅋㅋㅋ
오 완전 흥미돋이다
지역 모지리 기자가 또 떠드네
와 한우개량사업소 개신기해 저런일을 하는 곳이 있는지도 저렇게 중요하게 관리하는지도 전혀 몰랐어
중간에 너구리 불쌍해 개웃김 ㅋㅋㅋ
와 개재밋다 글 엄청 찰져 ㅋㅋㅋㅋㅋㅋ
오랫만에 글 정독햇다 진짜 흥미돋이야!
개 흥미로워 글 진짜 잘봤어!!!
와… 흥미돋아 글잘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