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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류열풍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대한민국아아아
세계 속 한국 문화는 커가는데…한국인들 자긍심도 커가는지요?
곽원철의 ‘알프스 베베 레나’
레나가 커가면서 한국 방문이 더 잦아지고 있다.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고 싶어 안달하시는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 좀 더 자주 한국을 오가며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노출시키고 싶기도 하다.
일전에는 레나를 외갓집이 있는 지방 도시의 도서관에 데려갔는데 그 시설과 수준에 깜짝 놀랐다. 4층 건물의 중앙을 비워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계단식으로 의자를 배치하여 방문객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구조도 훌륭하고, 장서와 멀티미디어 장비의 수준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연령대별로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읽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재들과 활용 공간이 갖춰져 있어 감탄했다. 이런 훌륭한 시설이 모든 시민들에게 무료로 상시 개방되어 있다니! 프랑스에 살면서 마을마다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잘 갖춰져 있고 시민들이 활발히 이용하는 걸 보고 과연 문화선진국이구나 했는데, 이제는 한국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말이 나온 김에, 필자가 프랑스로 건너와 살아 온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한국에 대한 프랑스와 유럽인들의 인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인 면보다는 문화적인 면에서, 필자 주위 유럽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샤이니·나윤선·강남스타일에서 BTS와 ‘기생충’까지…
소수 마니아층이 즐기던 한국 문화가 유럽인을 사로잡으며
주류로 부상하는 것을 해마다 체감한 프랑스에서의 10년
가족과 잠시 귀국해선 지방 도서관의 시설과 수준에 놀라고
인터넷 뉴스 랭킹의 상위권이 ‘생존권’ 이야기라 또 놀랐다
한국,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돈 이상의 가치’도 중시해야
2009년에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필자의 프랑스어 선생님은 한국 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의 팬이었다. 임권택·박찬욱·봉준호·홍상수 등의 최신작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으나, 대만 영화감독인 차이밍량을 한국인으로 착각하고 있던 것이 내게 들통나 멋쩍어 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 부부가 살던 베르사유의 한 소극장에서는 ‘한국 영화 특별전’을 열어 일주일 내내 한국 영화만을 상영하기도 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프랑스인들의 문화 취향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일화였을 뿐이다. 같은 극장에서 그다음 주에는 ‘노르웨이 영화 특별전’, 그다음 주에는 ‘몽골 영화 특별전’을 했기 때문이다. 즉 이때만 해도 한국 문화는 어디까지나 소수 마니아층에게나 어필하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드러내는 장르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2011년에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유럽 투어를 했고 그중에서도 파리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어 국내에 화제가 되었다. 일요일에 파리 시내의 한국 슈퍼에 갔다가 그날따라 프랑스 청소년들이 바글바글 모여 메로나와 새우깡 등 한국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줄을 서서 사 먹고 있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사랑해요 샤이니’ 등 좋아하는 한국 가수의 이름을 서툰 한글로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샤이니가 누군지 몰랐다. 이때의 공연이 한국 언론에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느니 ‘K팝이 파리를 홀렸다’느니 하는 등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상찬되어, 한국의 지인들은 내게 프랑스에서 정말 그렇게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으냐를 묻고는 했다. 그때 나의 대답은 이랬다. “이번 공연이 프랑스의 일부 10대들에게 크게 성공적이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나도 놀랐다. 하지만 뭔가 하나 히트하면 전 국민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야만 하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고 다른 사람들이 뭘 즐기는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모든 프랑스인들이 K팝에 매료되었다는 듯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좀 과장된 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소수 마니아층이 아닌 프랑스 전체를 강타했다고 느낀 것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2012년이었다. 에펠탑을 바라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의 공연과 말춤, 플래시몹 등은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말춤의 인기는 엄청나서 프랑스 지인들과 동료들이 나만 보면 신이 나서 말춤을 춰대는 바람에 지겨울 지경이었다. 한번은 아내와 동네 아시안 식당에 갔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자꾸 우리를 쳐다보며 흘끔거리는 것이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듯했다. 모른 척하고 식사를 계속하려는데 급기야 마담이 못 참고는 우리에게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어 왔다. 또 싸이 말춤 얘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 부부는 한국의 재즈 가수 나윤선의 팬으로, 얼마 전에 그녀의 공연을 보고 온 감상을 우리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윤선을 비롯한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은 파리를 비롯하여 프랑스 곳곳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공연을 많이 해서, 상당히 저변이 넓다.
한창 때 프랑스에서 싸이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실감한 일화는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한 통신사가 생쥐, 토끼 등 귀여운 동물들이 특정 유명인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고 나와 홍보하는 콘셉트로 시리즈 광고를 냈다. 첫번째는 마이클 잭슨 변장을 한 강아지였고 두번째는 엘리자베스 여왕 복장을 한 토끼였다. 유럽의 왕실들은 국가 지도자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셀럽’이라 종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는 하는데, 혁명의 나라이자 공화국의 원조인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연예인 누가 무슨 옷을 입었다더라 정도의 관심이지 존경이나 경외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번째는 프랑스의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 여기까지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길 만한 셀럽들이라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 시리즈 광고의 네번째가 바로 싸이였던 것이다. 물론 싸이가 직접 모델로 나온 것은 아니고 통통한 고양이가 싸이의 무대 의상을 하고 나와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런 광고 콘셉트가 가능하다는 것은 햄스터나 강아지에게 싸이 복장을 입히고 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그걸 싸이라고 인지한다는 얘기 아닌가! 어찌 보면 실제 인물을 직접 모델로 쓴 것보다도 더 놀랍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특출한 아티스트의 반짝 성공 정도라고 여겼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프랑스와 유럽인들의 호감도 상승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영화와 음악을 필두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문화가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주류로 부상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가령 재작년에 런던에서 열린 업계 행사에 출장을 가서 스페인에서 온 협력사 관계자들과 회의를 진행해야 할 일이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정리를 하려는데 상대 쪽에서 한 명이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얼마 전에 감명 깊게 본 한국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수줍게 고백을 했다. 그가 본 한국 영화는 송강호 주연의 <택시 운전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달한 선진국인 한국도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서 억압받고 고통당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스페인도 독재자 프랑코의 철권 통치에 오랜 기간 신음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다음 회의가 이어져 대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스페인어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사이트가 있는지 묻기에 스페인에 있는 한국 지인을 통해 알려 주기도 했다.
유럽인들이 가진 한국의 문화에 대한 호감은 때로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작년에는 이탈리아의 고객에게 우리 회사의 사업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 현지 사업본부장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었다. 같은 회사이기는 하나 본인의 업무가 아닌데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가며 성심 성의껏 도와 주길래 무척 고마웠다. 감사를 표시하니, 내가 한국인이라 더 돕고 싶었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는 취미로 바둑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스승이 한국인이었던 것. 서구에 흔히 알려져 있는 일본식 이름 ‘고(go)’가 아니라 ‘바둑(baduk)’이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서양식 장기에 비해 바둑이 얼마나 고차원의 게임인지 열을 내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현상은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번 미국 출장길에 만난 미국의 협력사 임원은, 40~50대인 자신들 세대는 프랑스를 문화 선진국이라고 여기고 동경했는데, 지금 10대인 자신의 자녀들은 드라마와 음악 등 한국의 문화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인 나를 만났으니, 집에 가서 아이들과 얘기할 거리가 오랜만에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현지에서 체감할 만한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다가 그 정점에 이른 것이, 첫째 지난 번 남북정상회담 당시 행사장에 숨어 있는 각종의 문화 코드와 냉면의 의미를 르몽드와 르피가로를 비롯한 프랑스 유력지들이 세세하게 설명했던 것, 그리고 둘째와 셋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BTS와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었다. 즉 유럽인들이 한국을 문화 선진국으로 자신들의 앞줄에 놓는 이러한 최근의 사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온 문화 자산 축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요새 용어로 ‘국뽕’ 차오르는 이런 에피소드들은 끝이 없지만 이 정도 하기로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이렇듯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럽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선진국으로 동경을 받고 있는 한국이지만, 정작 본고장에 사는 한국인들이 이를 실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번은 인터넷 포털의 뉴스 랭킹을 보는데, 1위부터 10위까지 사람들이 많이 본 뉴스 중 7개가 ‘생존권’에 관한 이야기라 깜짝 놀랐다. 세계 10위 안쪽의 경제대국이자 문화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니! 경제적인 이권에 얽힌 다툼들이야 여러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겠다 싶지만,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남들이 피하는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는 분들이 사회 일각에 아직도 존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국외에서 오래 생활하여 한국의 상황에 어두울 수 있는 필자가 말을 더 보태기에는 조심스러우나,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는 속담에 기대어 조심스레 외부인으로서의 시각을 전하려 한다. 어찌 되었던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야 실감이 안 날 수도 있겠으나 바깥에서 보기에는 분명히 그렇다. 그러니 조금 더 자부심을 갖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만 명실상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금에 이르러서는, 드러나 보이거나 돈으로 환산되는 것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돌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안전과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 다양성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그것이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위상은 대다수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높다. 세계인들의 기대치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는데 이는 비단 물질적인 풍요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가령 이웃 나라의 정치인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시비를 걸고 무역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시간을 늘리고 안전 기준을 완화해서 보충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보다도 더 철저히 안전하게 작업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그들을 추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지자체가 나서서 이웃 나라 손님들을 위협하는 광고물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찾아 준 손님들을 따뜻이 맞아 주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어 그들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그 정도 품위는 갖춰 줘야 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 있다. 만약 이웃 나라들이 그런 품격을 따라 주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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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류열풍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대한민국아아아
첫댓글 글 정말 잘쓰신다ㅎㅎ
맞아 국내에서도 꾸준히 비슷한 목소리와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너무 천천히 바뀌는 감이 있음ㅠ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있는거니까 10년이든 30년이든 계속 걱정하고 그 걱정을 해결하면서 언젠간 사회적인 성숙도도 높아질 거라고 기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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