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 조선족,
별고을 촌자,
예전에 촌에서 상경할 적 마다 절로 가슴속 흐르는 선율이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영등포가 보이거나 영등포를 가거나 지나거나 하면 '추억어린 영등포의 밤'이~....
한강가에 나룻배를 정박시키던 포구였을 영등포(永登浦).
영등(永登)은~
신길동 방아곶이 나루터(신길동 50번지)부근 성황당에서~ 영등 굿을 하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 강남의 영동(永東)은, 영등포의 동쪽~
영등포(永登浦)의 밤 - 오기택(吳基澤)
특유의 매혹적인 저음~~~ '저음의 마법사'
영등포의 밤' 노래비 제막식은 2010년 .12월 . 22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문화광장에서 열렸다.
<영등포의 밤>은 가수 오기택(1939~2022) 의 1963년도 데뷔작.
'영등포의 밤'은 산업 현장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당시 서민들의 꿈과 애환이 담긴 노래로
1966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오기택(吳基澤, 1939년 11월 18일~2022년 3월 23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아마추어 골퍼였다.
오기택은 1939년(호적상 1943년 4월 2일생)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무매독자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북일초등학교와 해남중학교를 졸업하였고,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중학교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에서 계속 살기가 어려워지자 서울에 살던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상경하여 성동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에서 고복수가 운영하던 동화예술학원에서 노래를 배우던 중 1961년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로 데뷔하였다.
1962년 12월에 발표된 그의 데뷔곡이었던 《영등포의 밤》은 당대 대한민국 사람들의 척박했던 생활상과 가사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을 들었고, 1966년 남궁원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이 영화에 오기택도 함께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63년 《우중의 여인》...
* 2010년 '영등포의 밤'의 무대인 서울 영등포에는 이 노래를 기리는 노래비가 세워졌고, 2018년에는 해남에도 '오기택 노래비'가 만들어졌다. 평생 미혼으로 지냈다.
오기택 <영등포의 밤> 노래비, 영등포 타임스퀘어
* 옛 경성방직(京城紡織)공장 터
데뷔 직후인 1963년 4월 해병대 홍보단 사병으로 입대한 오기택은 1965년 전역한 후 1966년 한 해동안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마도로스 박》 등의 곡들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빠른 시간에 국민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67년에는 부산문화방송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대 들어서는 일본에서 원정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직으로 선임된 데 이어, 1980년 1월 19일에는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제19회 정기총회에서 가수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가수 활동과는 별개로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던 오기택은 1980년 골프에 처음 입문한 이후 아마추어 골퍼로도 활약하며 제69~71회 전국체육대회에 전남 대표로 출전하여 4차례 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는 싱가포르 렉스오픈 골프 아마추어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1997년 1월 제주도 북제주군(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의 무인도에 낚시를 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119 구조대에 의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어 뇌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언어장애와 마비증세가 나타났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1998년에는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2007년 고향인 해남에서 이름을 딴 오기택전국가요제가 개최되었다.
2011년 이후 건강이 다시 악화되었다가,
2022년 3월 2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로가수 오기택 별세…평생 미혼, 재산은 장학금으로 / 연합뉴스 (Yonhapnews) 2022년 3월 23일
평생 미혼의 오기택은
자신의 전 재산을 전남 해남고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영등포의 밤 - 오기택
1962
작사 : 라희 / 작곡 : 김부해s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 내 가슴에 안겨 오는 사랑의 불길 /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어린 영등포의 밤 / 영원 속에 스쳐 오는 사랑의 불길 / 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 / 아~ 영원히 잊지 못 할 영등포의 밤이여~
첫댓글 오기택의 일생을 읽어봅니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영등포에서 늦으면 부평 집에 가는
총알택시를 이용했는데, 요즘은 버스가 늦게까지
있어서 아주 편해졌습니다.
예전에
밤 늦은 시각엔 서울 외곽지역은 버스가 없으니
총알 택시가 달렸지요.
지금은 전국이 스무네시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다정다감 명랑파 다빈님도
무슨 말씀을
고로코롬 하신다요.
더구나 무엇이 죄송까지 나가세요 ㅉㅉㅉ...
평상심의 보살처럼
마음 편히 즐겁게 지내시고 행복하세요.
그것은 다빈님을 아는 모든 분들의
바람일 것이네라.
즐거운 주말
복된 다빈님!!!
영등포가 요즘은 시들했지만 예전에는 유동인구가 하루에 백만명이 움직였다는군요 ^~^
한 때 영등포는
서울의 한강 이남 중심지였으니요...
영등포 라는 이름의 유래를
처음 듣네요. 어려서 서울서
살았지만 영등포 까지 갈
일도 없으니 그저 귀 동냥으로만
들었네요.
오기택 가수의 이름은 예전에 많이
들었네요. 노래도 들었던 기억도 나네요.
오기택님의 일생을 들여다 보니
그도 역시 힘든 생을 살았군요.
노래도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일찌기 조실 부모하고
외로운 인생여정을...
그래도 일찌기 히트곡을 내면서
성공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결혼이라도 하여 여인의 사랑이라도 좀 받고 살았더라면....
마음이 짠해서... ㅉㅉㅉ
그의 히트송 ,우중의 여인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