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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에서'난적'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하고 월드컵 6연속 본선진출의 금자탑을 세운 본프레레호 |
팀 컨디션 그리고 본프레레
스일단 목표는 무리없이 달성했다. 원정 2연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으나,
당초 계획대로 승점 4를 보태며 본선직행 티켓을 확보했다. 역시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승점 1을 추가한 게 컸다. 만일 막판 동점골 사냥에 실패, 0-1로 패했더라면 쿠웨이트를
상대하기 더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분위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한차례 가라앉은 공기를
원상태로 회복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통상 이를 ‘팀 컨디션’이라 부르는데,
승패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흔히들 이야기하는 ‘정신력’의 상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는 해석도 더러 존재한다. 팀 컨디션 저하가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전력의 손실이다. 쉬 말해 기본 전투력을 감소시킨다. 부분·팀 전술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각개 플레이어의 투쟁욕까지 와해하는 것이다. ‘담맘 쇼크’로 기억되는 3월25일
사우디아라비아전이 대표적이다. 평시 실력으로 치자면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결코 뒤질 게 없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어이없게도 완패했다. 적절한 전술 대응 처방이 부재한 것도
물론 패인으로 꼽혔으나, 그래도 첫째 이유는 팀 컨디션 악화에 기인했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팀 컨디션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는 하재훈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당시 한국 선수들의 몸 상태는 전반적으로 무거웠다.
단지 한 두 선수에 국한되는
현상이었다면 개인 컨디션 난조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베스트일레븐 대다수가
일시에 침체돼 있었다는 것은 결국 팀 컨디션 문제라는 사실에 힘과 무게감을 실어준다.
개인 컨디션 조절은 각자의 몫이지만 팀 컨디션에 대한 책임은 보통 감독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우즈베키스탄전 결과가 무승부로 막을 내린 것은 다시 반추해보더라도 천만다행한 일이다.
더욱이 리드하고 있다 동점골을 허용한 게 아니라 패색이 짙던 상황에 회생의 불씨를 찾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요는 결과적으로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동력 역할을 한 때문이다.
반대 경우,
즉 이기고 있다 막판 동점골을 내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응당 힘이 빠지는
한편 부담감은 가중됐을 공산이 큰 탓이다. 그러나 역시 아쉬운 점은 우즈베키스탄전이나
쿠웨이트전 모두 전술상 형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포지션 이동이 결여된 천편일률적
포메이션에 압박심도 약화, 단조롭기 짝이 없는 경기운영 패턴 등 고질적 단점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은 다소 억울하겠지만, 본프레레 감독이 한국을 월드컵에 진출시키고도 욕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원칙이 무엇인가
풍전등화 지경에서 정경호가 팀을 구했다. 본프레레 감독이 후반24분 차두리를 불러들이는 대신
‘정경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날 3차례 선수 교체 가운데 가장 시의적절한 용병술로 평가된다.
정경호의 호쾌한 돌파와 의욕적인 몸놀림은 경기 흐름 자체를 일거에 뒤집어놓는 힘을 발휘했다.
경기 종료 직전 터치라인을 뚫고 골라인마저 잠식한 후 김두현에게 내준 패스, 곧이어 골대 맞고
튕겨 나온 볼을 박주영에게 연결한 침착성도 상찬할 만하다. ‘오프사이드 논란’이 제법 있었으나,
심판이 골을 인정한 만큼 크게 개의할 필요는 없다.
또 다수 언론의 평가처럼 동점골을 성공시킨 A팀
새내기 박주영 또한 수훈갑이다. ‘드라마 같은 A매치 데뷔골’이니, ‘천재성의 발현’이니 하는
과장된 수식은 경계하지만 꼭 필요한 시기에 골을 터뜨린 ‘킬러 본능’만큼은 주시할 가치가 있다.
이것으로 사실상 칭찬은 끝이다. 경기 내용을 냉정히 짚어볼 때 더는 점수 줄 만한 대목이 없다.
경기 전·후로 나뉘어 되돌아본다. 우선 경기前이다. 베스트11 구성부터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70% 정도의 컨디션”이라고 공언한 유상철을 선발 출장시킨 것은 상식
이하의 기용이다. 그리 출전해서 제 몫을 했더라도 뒷말이 나올 법 한데, 예상대로 유상철은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후 전문가들의 관심은 과연 본프레레 감독이
쿠웨이트전에도 유상철을 중용하느냐 아니냐에 쏠렸다.
중용했다면 본프레레 감독은 늦었지만
그래도 나름 뚝심 있는 사령탑으로 인식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유상철은 빠졌다.
요컨대 ‘희생양’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 현장에서 경기를 생중계한 신문선 SBS해설위원은
“유상철은 분명 자신의 온전치 않은 컨디션을 문제 삼으며 우즈베키스탄은 건너뛰고 쿠웨이트전에
출전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며 “따라서 기대만큼의 경기력을 보이지 못한 유상철을 비판하기보다
본프레레 감독의 선수 기용을 탓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표의 능력을 반감시키면서까지
김동진을 옹골차게 고집하는 現윙백 체제도 도마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레프트윙미드로 뛸 때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이영표를 왼편에 포진하고, 라이트윙미드는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게 적잖은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김대길 KBS스카이 해설위원은 “아무런 대안없이 지금처럼 左동진
右영표만을 고집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 가는 것은
이영표의 파워마저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향후 심각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대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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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프레레 감독은 한국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고도 전략,전술과 용병술 문제 등으로 전문가 및 팬들
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
프레싱 왕국 실종 사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후에는 팬들에게 그야말로 끝 모를 좌불안석의 불안감을 친절히 선사했다.
‘전반5~10분을 특히 조심하라’는 불문율도 무참히 깨졌다. 한국은 5~10분 사이 우즈베키스탄에
무려 4차례의 코너킥을 헌납하며 위기를 자초했을 뿐더러 그 중 1, 2차례는 맨마킹도 실패했다.
작게는 위치선정 등 역할 분담이 실행되지 않은 결과이며 크게는 사전약속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누군가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었다는 방증이다. 그간 누누이 일침을 받아온 수비조직력,
또 그간 본프레레 감독이 수차례 가다듬을 수 있다고 호언한 그 수비조직력은 실상 딱히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우왕좌왕했으며 여전히 손발이 맞지 않은 까닭에 종국에는 여전히 비유기적이었다.
공격의 시발 기능 또한 허했다. 현대축구에서 수비수는 비단 방어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전진의 첫 단추를 꿰는 일도 다름없이 디펜더의 몫이다. 그러자면, 다시 말해 미드필드 또는
공격 진영에 볼을 효율적으로 배급하자면 패스의 ①정확성 ②신속성 ③판단력이 필요하다.
①②③의 요소를 고루 지니고 있다면 더할 나위없겠으나,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그나마 ③을 갖췄다면 상황 따라 ①②를 합당하게 택할 수 있어 꽤 위협적이다.
그마저 아니라면
①②중 하나라도 확실히 장착하고 있을 경우 생존의 이유를 부여받는다. 한국 수비수들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한다. 중원은 압박이 허술했다. 실은 처음있는 일도 아닌 터라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다.
한때 ‘프레싱 왕국’이라고 불리던 한국의 허리는 근래 들어 시나브로 느슨해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불을 켜고 볼을 탈취, 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판세까지 쥐고 게임을
풀어나가던 2002월드컵 시절과 비교하면 실로 대조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포메이션은 동일하다. 그러나 3-4-3시스템을 운용하는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미드필드의
경우 그 차이가 현격하다. 과거 히딩크 감독이 내세운 원칙은 강력한 프레싱을 통한
중원 장악→점유율 강화→승기 쟁취로 요약된다. 때문에 미드필더들의 협조 플레이 뿐 아니라
수비수-미드필더 또는 미드필더-공격수,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등 다채널의 유기적 관계
형성이 불가피했다. 이는 물론 필드 플레이어 전체의 역량을 한데 모아 폭발시키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언제나 MF였다.
반면 본프레레 감독이 구사하는 3-4-3진용에선
척추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짙다는 분석이다. 이는 측면과 중앙을 철저히 분리, 운영하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다시 설명하자면 좌우 미드필더에게는 측면 침투를, 중앙 요원들에게는
역습 차단과 볼 배급을 주로 강조하는 탓에 힘이 분산되는 것이다. 이같은 방침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각기 특성과 장점을 십분 살린다면 효험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태생적으로
공간을 노출하게 마련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 우려는 매번 적나라하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전 또한 다르지 않았다. 끝으로 공격은 침투 유형이 단순했다. 활로 개척 방법이
단순했다는 뜻이다. 상대가 밀집대형을 이루며 자기 위험지역을 사수하고 있을 때는 전담 마크맨을
유인,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창출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때문에 부지런히, 또 넓게 움직여주는 게
기본이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공격수들은 위치 변경을 하지 않는다.
스리톱 좌측의 박주영이
미드필드로 내려온다거나, 우측의 차두리가 때에 따라 좌측으로도 이동하는 등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상대 수비가 부담을 느낄 텐데 제 영역만 지키고 있으니 도통 얻을 게 없다. 공격수들의 잦은 위치변경과
수시로 등번호를 바꾸는 전략 중 상대 교란에 진정 득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본프레레 감독은 지금이라도
찬찬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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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색이 짙던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막판 기적처럼 팀을 구해낸 박주영과 정경호 |
전술의 진리는 고정불변?
4-0대승을 거둔 팀에 비판의 날을 들이밀기는 자못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나 승리 뒤에 숨어있는 티를 집어내지 않고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잘했다. 지긋지긋하던 원정 징크스를 시원하게 털어냈고, 시종 여유있게 상대를 압도했다.
특히 지역예선 전경기를 통틀어 가장 순도 높은 결정력으로 오랜 골가뭄을 한방에 해갈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냉철히 복기할 때 혹자의 외마디 평가처럼 “한국이 월등하게 잘했다기보다
쿠웨이트가 유난히 못한 경기”라 종합해도 느닷없는 확대 해석은 아니다.
응당 근거는 있다.
5일전의 우즈베키스탄전과 비교해 한국은 ▲패스의 정밀도 ▲압박 심도 ▲포지션 연계 밀도
등이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았다. 수비조직력은 따로 논하지 않는다. 애초에 쿠웨이트의 창끝이
녹슬어 있어 왈가왈부할 상황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다. 전술 전개 형태 역시 종전과 유사했다.
다만 전과 달리 이기겠다는 집념과 의욕만큼은 강했다. 또 예상보다 일찍 터진 첫 골은 승부욕에
불을 붙이는 효과를 낳았다. 경기장 분위기도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성난 쿠웨이트 관중들이
앞 다퉈 물병을 투척, 경기가 지연된 게 오히려 쿠웨이트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 원인이 됐다.
전반전에 한국이 선제골을 넣지 못했더라면 경기 양상이 어찌 흘러갔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소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예상 정도는 가능하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대승을 거두고 개선한
본프레레 감독을 고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간명하다.
전략·전술이 아닌 플레이어 역량에 뿌리를
두는 승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김동진-박주영이 합작한 선제골 외엔 모두 개인전술에 의한
골이라는 점도 유념할 만하다. 이는 또 골에만 한정되는 지적은 아니다. 경기 운영도 다르지 않다.
요컨대 조직적이지 않다.
한편 쿠웨이트는 첫 골 실점 후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설상가상,
후반전에는 아예 경기를 포기한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경기 전반적으로도 쿠웨이트는 부실했다.
비장의 무기라던 중앙 침투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무디고 패스는 지속성이
부족, 후방 지원에서 결정적 허점을 노출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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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팀 전력 극대화 차원에서 측면의 핵심 멤버인 이영표가 본래의 레프트윙미드로 복귀하는게
합당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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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의 미학은 계속 되는가
향후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월드컵 예선 모든 경기에 대해
냉엄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이다.
칼을 대고 손봐야 할 과제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났다.
넓게는 ▲선수선발 시스템 정비
▲전술의 다양성 연구 ▲조직력 개선 등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멤버의 장단 파악
▲객관 실력에 기초한 뉴 페이스 발굴 ▲코칭스태프-기술위원회 관계 재정립 ▲부분 전술 강화
▲팀 전술 세밀화 ▲유효적절한 동기부여 및 짜임새 있는 협력체계 방안 수립 등이다.
이 중
▲코칭스태프-기술위원회 관계 재정립은 지금처럼 기술위원회가 코칭스태프를 단순 지원하는
선을 넘어 두 집단 사이에 상호견제 기능을 추가, 한 편의 독단을 차단해야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견해이다.
본프레레 감독 개인으로서는 이제라도 확실한 자기 색깔을 드러내야 할 것이라는
안팎의 음성이 비등하다. 도대체 알쏭달쏭한 전략의 알맹이가 무엇이며 지향하는 전술의 요체는
무엇인지, 또 그래서 팀에 무엇을 가져다 줄 생각인지 한번쯤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본선진출 기쁨에 마냥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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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발 모든 경질논자들을 냄비라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나라 축구팬들 이기면 그저 좋아하고 지면 화내는 냄비 아닙니다.
'모든'은 아니구요. 80~90%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잘라라'밖에 모르는 사람들뿐입니다. 물론 영표갠기님처럼 제대로 알고 경질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죠.
반대론자들은 축구 콧구멍으로 봅니까.. 80~90%라니요.. 국대경기후 본프레레 짜르라는의견이 80~90%였겠죠.. 전 시간지나면 옹호하는 사람들이 더 우습더군요. 축구전문가들도 등돌린마당에 뭔 옹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