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캐나다 갔다 구정 때나 다시 귀국할 거라며 인사하고 떠났던
전정원동문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모두 놀라며 반가워한다. 집안에
일이 생겨 잠시 귀국했다 이틀 뒤에 다시 떠나야 하는데 그 틈새에
산행에 참가하신 것이다. 본인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산행을 어찌
놓칠쏘냐 하지만 바쁜 총중에 잊지 않고 와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맙고 무엇보다 맛있는 찹쌀모찌를 또 먹게 돼 모두 좋아라한다.
전동문이 늘 사오는 특제 찹쌀모찌는 산행중 최고의 간식이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모찌로 못 먹어 본 사람만 억울하다.
그런데 오늘은 항상 "동물적 감각" 으로 우리를 이끌어온 김고문이
사정이 생겨 못 오셨다. 지도자 없이 어찌 가냐고 모두 울상이자
김회장이 임대장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나무란다. 허나, 길 잘
들여진 "山짐승" 없이 산길을 제대로 찾아갈지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고의 인기짱은 역시 젬마여사. 젬마보이의 약 올리기 작전이
성공했는지 오늘 드디어 출동하셨다. 여학생들한테 후지산 관광
기념 딸랑이 종까지 선물한다.
임대장의 산행안내: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 능경봉(1123m),
고루포기산(1238m)을 지나 닭목재까지 도상거리 12.1km, 실제
거리 22.3km며 등산로는 평탄하다. 백건회 기록 6시간 5분인데
우리는 6시간 반 정도 예상, 4시 하산을 목표로 한다. 김고문 대신
내가 후미에 선다. 선두 바오로는 리본을 자주 달아주고 나머지
대원들은 절대로 무전기 근처를 떠나지 않기 바란다.
유수자여사가 발목 부상으로 불참하면서도 고구마를 한 소쿠리
쪄서 보냈다. 김경자여사는 감자떡과 클램차우더를 한통 끓여와
일일이 한 국자씩 퍼준다. 김회장이 삶아온 계란까지 곁들여 아침
식사가 도무지 백두대간 산행가는 버스 안 풍경으로 상상하기
힘들게 걸판지다. 밥 먹었으니 돈 내라! 현총무의 독촉에 단골은
좀 깎아 주는 거 없냐, 이 동네는 어떻게 바겐세일도 한번 안하냐,
number two(김영길)는 마누라 안와서 3만원 벌어 좋겠다, 공짜
아침을 그렇게 거창하게 얻어먹으면서도 그냥 조용히 돈 내는
법이 없다.
9시 45분 대관령휴게소 도착. 탈레반 전사들처럼 눈만 내놓고
온통 둘러싸고 감고했는데도 매서운 대관령 칼바람에 정신이
버쩍 든다. 풍력발전 바람개비들이 날쌔게 돌아간다. 계속 이런
상태면 과연 등산을 할 수 있을지, 말은 안 해도 모두 표정에
불안이 역력하다. 얼른 증명사진 찍고 출발. 등산로엔 눈이
하얗게 쌓였고 쉴 새 없이 능선을 후려치는 삭풍은 적기의 공습
처럼 위협적이다. 1시간 남짓 가파른 능경봉을 향해 걷는다.
아무도 말이 없다. 쉬자 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어느 영혼의 방황인가, 숲으로 들어서니 바람이 우우 나뭇
가지 위로 몰려다닌다.
앞서간 선두가 아이젠을 착용하는 게 좋겠다고 알려온다.
10시 50분, 능경봉. 눈부시게 맑은 대기 속에 대관령 목장의
부드러운 구릉과 몇 년전 바람에 날려가 죽을 뻔했던 선자령이
눈에 들어온다. 능경봉 이후는 끝없는 내리막, 기껏 올라온
고도를 다 까 먹고 나서야 비로소 고루포기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고장 난 스틱 손보느라 뒤처진 남편이 후미로 바뀌고 임대장이
중간 통신병으로 선다. 김회장이 일찌감치 중간 선두를 달린다.
오늘 김고문이 안계시니 어리광할 데가 없어 씩씩하게 잘 간다고
장변호사님이 기특해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드냐고 늘 투덜
대던 젬마보이는 언제 가버렸는지 얼굴도 볼 수가 없다. 젬마
여사가 동행하니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다. 역시 젬마는 위대
하다. 장변호사님은 어부인을 앞에 보내고 계속 뒤쳐진 우리
남편 걱정을 하신다. 알아서 올 텐데 그냥 가자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기자를 야단쳐가면서까지 같이 기다려주신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을 뵌 적이 없다. 평소 후미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뺐던 우리가 새삼 부끄럽다.
아침에 클램차우더를 든든히 먹어서 그런지 2시가 가까워오는
데도 배가 안고프다. 1시 50분, 드디어 고루포기산. 5분쯤 더
내려가 낮은 둔덕을 등지고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는다. 얼음
덩이 같이 식어버린 점심밥을 대충 우겨넣고 갈 길을 재촉한다.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 그러나 지금부터 닭목재까지는 올라갈
봉우리가 없으니 안심이다. 왕산 제2쉼터를 지나 3시 35분
제1쉼터에 도착. 닭목재까지 2km 라는 이정표가 반갑다.
백건회 기록은 못 맞춰도 4시 30분 정도에는 도착하겠구나
생각하고 모두 느긋해진다. 눈과 추운 날씨 때문에 산행시간이
길어질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다들 잘 걷는다고 임대장이 현총무
한테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많이 사주라고 해야겠다며 기뻐한다.
뒤돌아보니 능경봉, 고루포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득하다.
오늘 하루 걸어온 장쾌한 능선을 바라보며 우리가 저걸 다 지나
왔단 말이냐, 정말 대단하다, 스스로 성취감에 취해 있는 바로
그때 선두로부터 무전이 온다. 왼쪽 발아래 목장이 나타나면
우리 리본을 따라오지 말고 ‘남의 리본’을 따라 내려오라 한다.
바오로가 리본을 붙여가며 큰길로 내려섰는데 그곳이 닭목재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니 제대로 찾아
오라는 얘기다. ‘남의 리본’ 찾기 전에 인원점검부터 하자.
젬마커플과 징기스칸(김택열)이 없다. 임대장이 바오로한테
세 사람과 핸드폰으로 교신을 시도해보라고 지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남의 리본’을 찾았고 목장 길을 따라 제길로
하산하게 됐다. 세 사람과 핸드폰 교신에 성공한 바오로는
무개차를 수배해 3인을 닭목재로 안전하게 수송했다고 다시
무전을 보내온다. 무전기 옆을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하여간 말 안 듣는다.
붉게 물들기 시작한 서쪽하늘과 눈 덮인 목장길...이렇게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길을 언제 또 걸어볼 것인가. 5시, 우리는
모두 가슴 가득 행복을 안고 닭목재로 하산했다. 6시간 30분이
아니라 7시간 20분이 걸린 것이다.
횡계에서 목욕하고 황태회관에서 쫑파티. 스키시즌의 주말이라
횡계시내는 젊은 스키어들로 시끌벅적하다. 목욕 안하면 밥도
못 먹는다는 김회장이 목욕시간을 쪼개 식당에 먼저 들러 예약
하고 오신다. 대단한 정성이다.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와
황태찜, 시원한 황태국으로 포식하고 7시 50분 출발. 집에 가서
대조영 보게 됐다고 현총무가 좋아한다.
임대장이 다음 산행계획을 발표한다. 하산후 김고문과도 전화로
이미 상의를 했다며 두 가지 안을 제시한다. 다음 대간 구간은
선자령-소황병산 구간인데 240분으로 비교적 짧고 쉬운 구간
이니 예정대로 백두대간을 하는 안이 그 하나. 삼양목장과 잘
교섭하면 버스나 택시로 목장을 통과할 수도 있단다. 폭설로
대간산행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남쪽나라 따뜻한 곳에서의
근사한 ‘식도락+웰빙산행’을 준비하겠다는 것이 그 둘.
2차 멀미로 몽롱한 와중에도 2대장(김영길)이 “집행부 하는
게 괜찮네.” 소리했다가 대장한테 “넘버 2는 조용히 해라”는
주의만 듣는다. 만장일치 박수!
12월 22일 산행은 산악회 2007년 납회산행 및 망년회가 될
행사입니다. 전원 참석해 주십시오. 특히 젬마여사는 꼭 오셔야
됩니다. 준회원, 비회원도 환영!
참가자(15명):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영길, 김윤기(김계숙),
김택열, 박정수(노순옥), 임종수(김경자), 임종홍, 임한석, 전정원,
현해수 (노순옥 기록)
뱀다리: 버스안 2차 멀미로 뒷자리가 소란한데 박정수 통신병이
‘오늘의 명언’을 날렸다. “야, 내가 지난 일요일 북한산 갔다
오면서 광화문 술집에서 취해갖고 차도 안 갖고 갔으면서 대리를
불렀잖냐. 지하철 타려고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고 있는데
대리기사 왔다고 전화와서 미안해 죽을 뻔 했다.” 술모임 많은
연말, 멀미꾼들 모두 조심하세요.
첫댓글 임종수 대장님, 김종남 고문님 대신까지 하느라 애 많이 쓰셨읍니다. 이제 대관령 이남 구간은 성공적으로 다 마쳤읍니다. 앞으로도 더 큰 사랑으로 동참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금년 겨울 첫번째 눈길 산행을 아주 제대로 한 우리 회원여러분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백두대간도 10구간밖에 안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 분발합시다.
칼바람에 감기설사만나서 현총무 다죽게생겼다!
미안합니다. 또 대열을 이탈해서. 이번 산행에서는 눈길에 찍어 놓은 구명회 선두의 족적과 리본만 죽어라 하고 따라간 죄 밖에 없읍니다. 앞서간 이유는 점심 먹고 얼마 안되서 부터 젬마의 아이젠 한쪽이 부서저서 한쪽발에만 아이젠을 하고 내려 오느라 해 떨어지기 전에 산 자락에 도착할 욕심으로 속도를 냈으며 T.Y.께서 동행해 주어서 그렇게 하였읍니다. 미안 합니다.
뭘, 그런 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