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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을 곳이란 결국 누군가의 가슴밖에 없는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가슴 속에 살고있는지를. 그리고 내 가슴 속에는 또 누가 자리하고 있을까를.
내 가슴 속에 움트는 그 누군가를 키워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먼,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의 회상. 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 온다. 느린 시간의 악보 위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지난 시간 속의 사람들을 일깨워 말을 걸어본다. 돌아갈 수 없다고 포기했던 옛일. 나는 이삭을 줍듯 그 옛일을 줍는다.
어느듯 과거는 나의 편력이요 위안이 되었다. 넓고 깊은 구릉처럼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나팔꽃처럼 피어나 죽은 자를 위한 물빛 아다지오가 된다.
프로로그
무슨 글을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이다 벌써 5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召天의 아버지를 마음으로 다시 모셔오는 일. 모호하고 어두운 과거의 묵은 장막을 걷어내고 아버지와 대면하는 일.어디서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할지.몇번의 망설임 끝에 지리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래 산에 오르자.높은 산으로 가자. 이유는 알수 없으나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의무 같이 느껴졌고 동시에 일종의 계시라 믿었다 산. 산은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시발이요 유년 시절 내 감성을 익게했던 추억의 텃밭이다. 그 시절 그렇게 싫고 귀찮았던 아침 산행이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은 지금, 아버지로 다가가는 유일한 비상구가 될 줄이야. 먼 미지로 부터 한 가닥 운명선이 아버지와 나 사이의 업을 치밀하게 엮어 단단한 한줄기 緣起의 끈이 되어 내려왔다. 시간과 생명의 양단을 이은 이 끈을 이제 조심스레 당겨 본다.
2005년 5월 29일
사촌들과 어울려 외도에 놀러간 날이었다. 그 날은 바람이 불어 얇은 옷을 입은 나는 별 수 없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 날을 후로 나는 일주일간의 긴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그 긴 몸살 끝에 다리가 퉁퉁붓고 아파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나름의 온갖 조처를 다 해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니 다리의 부기가 빠지자 양 발끝에 감각이 죽어옴을 느꼈다. 대학병원을 찾아갔다.말초 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진행형 말초신경병증' 이것이 나에게 붙여진 병명이다.매일 낙동강변을 뛰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던 내가 200m도 못걸어 주저 앉게 되었을 때의 내 심정. 그 답답함.만일 내 성격에 낙천적인 면이 없었다면 인생을 자포자기하였을지도 몰랐다. 아예 못걷게 된것도 아니니 그만으로도 다행아니냐는게 나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렇게 나는 아픈 다리를 절며 약물에 절은 몸으로 쉰의 나이를 향해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를 맞이해 온 집안은 무거운 긴장 속에 놓여있었다.
2007년 11월 11일.
나는 우연히 가까운 지인의 권유로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산행팀을 따라가게되었다. 그 분들이야 조계산을 넘어 오겠지만 나는 걸을 수 없는 까닭에 경내를 어스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창 가을이 농익어 고찰이 계절에 물씬 젖었는데 소슬한 바람까지 불어 마음 한구석이 촛불로 밝힌 방처럼 위태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서글픔, 길 위에 놓여졌지만 사방 팔면이 캄캄한 산 꼭대기에 서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그후로 나는 매주 산사를 찾아갔다.아이를 위해 해 줄수있는 유일한 것이 불공이라 생각했다. 불교에 대한 몰이해라고 욕해도 어쩔수 없었다. 아이에 대한 애정은 옳고 그름을 떠나 때로는 이렇게 맹목적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것이 산행을 접하게된 나의 첫번째 에피소드다.
범어사를 매주 찾아가면서 한가지 의아스러운 일은 내가 아직 한번도 범어사 절집 뒤란으로는 올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그날은 모처럼 마음을 먹고 범어사를 벗어나 절집을 품고 있는 그 뒤란을 탐험해 보기로 작정했다.원효암으로 가는 길, 1시간 남짓의 길이 나에게는 마치 숨겨둔 비밀의 화원에 숨어드는 기분이 들게했다. 호젓한 겨울 산이 주는 적막감.스스로에게 던지는 도전장.몸 저쪽에서 나도 모르는 용기가 솟구쳤다.어짜피 손해 볼것 없는 도전이었다. 원효암 가는 길은 또한 어찌 그리 아름 답던지.고졸한 석탑.세월을 흠뻑 빨아들인 부도.지중해를 뜨올리게했던 노란 탱자나무 울타리. 아 ,이것이 내가 발견한 신세계란 말인가.나는 내 스스로를 위로했다.그리고 자축했다.몇번의 원효암까지의 산행을 뒤로 나는 모종의 계획을 세웠다. 내친 김에 금정산 꼭대기까지 가보자. 그리고 그 계획은 마침내 현실로 실현되었다.4시간에 걸친 산행은 나에게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그리고 이제 나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참아야하며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체득하였다. 나무에서 태어난 불이 스스로를 태우듯 고통은 나를 태웠다.나는 타는 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기쁨이 지나가듯,슬픔이 지나가듯 그냥 시내 버스처럼 지나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맷집을 키워나가는 격투기 선수처럼 내 고통의 역치를 높여나갔다. 긴 산행 후의 후유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아무리 닫아도 스며드는 달빛처럼 나는 마음을 활짝 열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성취감과 함께 고통을 뛰어넘는것은 나에게는 오히려 축복이었다. 숨이 목을 넘어 차오르는 고통을 감내하며 나는 걸었다. 삼보 일배를 하는 심정으로 비오는 청도 남산을 넘었다. 술에 취한듯 비틀거리는 다리를 스틱으로 지탱하며 두타산을 넘었다. 가지산을 넘고 지리산을 넘었다. 매주 쉬지않고 닥치는대로 산을 넘었다 산을 넘고 넘는 사이 나는 정말 내가 나다와 진다는것을 느꼈다. 나무를, 바위를, 산의 고도를, 비바람의 실체를 몸으로 느껴가며 마침내 내가 나를 느끼는 일. 더 강해지는 나를 느끼는 일. 산은 나에게 이렇게 일찌기 체험하지 못한 자신감을 내려 주었다.
2009.06.06 자정
뚜~ 하고 자정을 알리는 아날로그의 음이 들린다. 떠나갈 시간이다.시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것이 아니라 마치 목관 악기처럼 아득히 먼 과거를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아버지라는 한 개인의 실존적 과거를 이제 더 이상 회상으로만 덮어 둘 수 없다.몇장 남지않은 자명한 아버지의 인상들을 들추어 그 낱낱에 내 나름의 의미를 달아 보고자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이 도도한 강물의 간극을 뛰어넘어, 말로서 표현할 수없는 그 모호함을 넘어, 깨어진 조각으로 선사의 토기를 맞추어가듯 산에 비친 마지막 아버지의 그늘 속으로 나는 나아간다. 아버지가 마지막 바라 본 산.그 어떤 언어보다 명석한 슬픔.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언어 이전의 언어를 향해 나는 비로소 첫 발을 내딛는것이다.
여덟명의 동료를 싣고 은밀히 이동하는 유격대처럼 우리를 실은 차량은 남해안 고속도로를 빠져나갔다.중년의 여행처럼 큰 설렘은 없었지만 꼭 해야할 일을 하러가는듯 마음은 담담했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새벽 3시 40분에 차는 이미 성삼재에 도달했다. 성삼재는 휴일을 맞아 전국에서 몰려온 산악인들로 만원이었다.참 신기한 일이다. 이 시간 산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는것은.숨쉴 틈도 없이 일행들은 노고단을 향해 오른다.랜턴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어둠을 떠다닌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은 지근지처가 아닌가.노고단에서 이른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고개넘어 노루목을 향해 나아간다. 조금 늦은 시간 일출을 맞이했다. 노고단에서 맞이한 이른 해는 세상을 온통 진홍의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슬픔은 비장함도 아울러 상징한다.진홍으로 물든 일행의 얼굴에 금방 생기가 묻어난다. 걸음을 재촉해 길을 떠난다.노루목에서 몇번을 망설였지만 아무래도 반야봉을 두고간다는것이 마음에 걸려 그냥 뒤따라 오르기로 했다. 지난번 만복대를 오를 때 구름에 가린 반야봉을 찾지 못해 얼마나 서운했던가. 지리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모성적 포근함과 엄격하고 강직한 부성적 이미지를 두루 갖춘 산이라고 한다면 반야봉이야말로 가장 모성에 근접한 아름다움을 주는 봉우리이라 할 수 있겠다. 반야봉에 오르면 지리산의 서북능 조망 하나는 완벽히 보장되리라는 짐작대로 마치 병풍을 펼쳐 논듯 노고단에서 만복대에 이르는 부드러운 능선길이 한 시야에 들어왔다. 반야의 지혜가 어떤 경지를 의미하는것인지는 몰라도 봉우리는 한없이 부드럽고 원만해 용서와 화해의 기운이 넘치는듯 했다.세상을 깨닫는 지혜란 결국 반야봉의 모습처럼 원만한것이리라는 전제를 미리 만들어 본다.천왕봉 봉우리가 거친 돌로 이루어진 남성상을 상징한다면 반야봉이야말로 세상을 품는 어머니의 가슴이다.
긴 숲길을 따라 봉우리를 내려온다. 세상은 적멸이다.산에서 듣는 산의 소리와 세상에서 듣는 세상소리는 어떻게 다른 걸까.산에서 듣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마른잎 밟는 소리, 풀벌레 소리. 이것이 다 산의 소리다.산의 소리는 산이라는 거대한 법당이 들려 주는 산의 내면의 소리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야하는 소리는 이 소리들이 안내하는 궁극의 소리 즉 心音이다. 나는 이 내면의 소리를 일깨워 내는것을 자각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자각을 통해 움추려 지내던 자아가 깨어난다.이렇게 깨어난 자신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자신을 日新하는것을 우리는 산행이라는 수행을 통해 얻게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에 이르는 내리막길은 산행길을 아직 많이 남겨둔 나로서는 참 막연한 길이었다.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듯 나는 내려가는 길에서 올라가는 길을 걱정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산길을 오를 때 모름지기 오르는 길만 생각할 일이다. 산길을 내려갈 때 오로지 내려가는 길만을 생각할 일이다.오르고 내리는 일은 세상사의 이치이니 길에 몸을 의탁하고 길과 내가 하나가 될 일이다.길이 길을 풀어내듯 길 위에 다만 나를 올려놓는것이 산을 걷는자의 의무인 것이다.
토끼봉은 화개재 내려 온 만큼 되 올라야하는 오름길이다.卯峰이란 뜻은 반야봉의 정동 즉 卯方에 위치해있다는데서 나온 이름이다.마음은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달리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잠깐 휴식을 취한 뒤 연하천으로 발길을 옮긴다. 토끼봉 오르는 길이 힘든 줄 몰랐는데 연하천 가는 너들길에 발 아래가 둔해온다. 나는 이 둔중한 기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아킬레스근에서 부터 종아리를타고 허벅지에 이르는 이 둔중감.이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가, 고통의 기억이 훗날 박하사탕처럼 나를 여기로 되돌리는 힘이 된다는것.이 고통을 이겨내고 내가 종주를 완성할때 마치 중독성이 강한 물질을 섭취했을 때의 알싸함을 줄것이란것을.
한개의 산속을 나아가 하나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산은 새롭다.만개의 산에서 만개의 산을 또 만나게 된다.그러니 그 새로움도 결국 덧없는 것이다.그래서 산행을 통해 결국 다다르는것은 이 확고부동한 덧없음이다. 덧없음. 이 덧없음을 무상이라 생각한다.같지 않다는, 늘 常住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무상의 세계속에서 불변하는 그 무엇을 찾는 일.이것이 산행의 궁극적 목표일 터이지만 나에게는 이미 요원한 허상일 뿐이다. 내가 不知의 세계 속으로 나를 끊임 없이 내 보내는 이유는 삶이란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것이아니라,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온갖 노력의 총화라 생각하기 때문이다.이것이 내 신념이요,삶의 신조다.
아버지는 늘 내가 가는 길 위의 별이다.나는 내가 별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의 별을 내 가슴에 담아야한다. 그것은 아직 풀지 못한 과제요 수수께끼다.아버지는 그 자체로도 나에게는 화두이다. 산행은 화두를 향한 긴 참구이자 수행인것이다.사람의 눈 높이에따라 산은 가까와지고 또 멀어진다.산에 가까와 질수록 산은 위압적이고 인간은 순해진다.먼 원경에 산이 놓일때 산은 부드럽고 순하다.산에서 멀어져야만 비로소 산은 제 모습으로 완연해지는 것이다. 완연한 산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사람의 산이 아닌 자연의 산이다.산은 역시 근경 속에, 가장 근경인 마음속에 자리할 때 비로소 인간의 산이된다.인간의 산.내가 산을 이루는 일부로서의 산. 나와 산의 구분이 없는 경지.나는 언젠가 이런 경지를 느낄 때 나의 화두인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거라 가정했다.산. 아버지의산.마지막 가시는 날조차 나를 바라보는 대신 산을 바라 보셨던 당신.이제 내가 산을 거울 삼아 그날 고개 돌린 아버지를 바라 볼 차례이다.
형제봉 지나 벽소령 가는길에 나는 비로소 나 혼자 놓여났다. 간혹 등산객들이 지나갔지만 호젓한 길을 나 홀로 걷는 재미는 즐길만한 것이었다.멀리 벽소령 너머 덕평봉,영신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봉인 천왕봉과 중봉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이 힐끗 힐끗 나타난다.지도상에는 거의 직선처럼 보이던 길이 산에서는 이렇게 마주 보이니 산중에서의 위치는 정말 가늠하기 힘들다.함박나무 꽃들이 정성껏 꽃을 피웠다. 하얀 작약같은 꽃잎이 더없이 청순해 보인다.함박나무 곁에 층층나무의 흰꽃들도 한낮의 햇살을 덤뿍 받아 눈부시게 피어있다. 붉은 병꽃나무나 노린재 나무는 하도 지천이어서 눈이 가지도 않을 정도다.
벽소령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동안 하늘에서는 해를 가리는 무거운 구름이 밀려왔다. 음력 열나흘의 둥근 달을 희망하였건만 어디 그게 마음 먹는대로 되는 일인가.구름은 점점 짙어지며 마침내 굵은 비를 뿌린다. 순식간에 대피소가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래도 여기 까지 온 이들은 어지간히 산행에 대한 사전 지식들이 있는 이들이라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다행히 일행은 대피소 내에서 편한 잠을 잘수 있었다. 대피소 바깥은 그야말로 오로지 생존을 위한 "대피"의 현장이었다.
2009.06.07 새벽4시
새벽길을 떠난다.앞사람을 의지해 어둠을 헤쳐간다.적막한 산길을 걸어본 지가 얼마만이냐.지수 시절 달빛을 벗삼아 산을 넘어 갔던 일이 떠올랐다. 참 순수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기분 그대로이다.일찍 일어난 휘파람새가 이따금 경계음으로 운다.칠흙같은 밤하늘에 푸르스름한 여명이 깨어난다.새들이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 고요한 숲에 저렇게 많은 새들이 잠들어 있었구나.고요를 뚫고 쏟아지는 소리이기에 새 소리는 더 명료하고 맑다.등골에 붙어있던 피로가 떨어져 나간다.하지만 어제의 피로가 다 회복된것은 아니다. 걸을 수록 다리는 무겁고 신경의 끝은 내 몸에서 멀어진다. 빛이 나무들 사이로 쏟아진다.처녀의 햇살을 맞으며 나는 행진한다.나는 살아있다. 나는 잘 있다.묻지도 않은 안부에 스스로 대답하며 나는 나아간다.저 먼 옛날의 새벽이 연이어 머리 속에 뜨오른다.산을 오르던 우리 세 부자중 둘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이렇게 눈부신 死者의 추억이 있을까.햇살 속을 나아가거나 사라지는 온갖 모습들 속에서 조차 과거가 스며있다.그 과거가 비로소 오롯이 빛나는것이다.적요의 세계,회상의 세계,그 긴 추모의 길을 나는 혼자가 되어 이 아침 걷고 있는것이다.
꽃은 죽으면서도 웃는다.나무는 고요한 밤에 꽃을 피운다. 코끼리는 밝은 달밤 숲으로 가 사랑을 나눈다.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산이 산을 토해낸다.아침은 감성의 세일을 준비하고 있다.먼 신기루처럼 오밀 조밀 산들이 다가왔다.우무질과도 같은 생각이 생각의 길을 막고 있다.가던 발길을 마침내 멈춘다.한걸음 뒤가 죽음의 세상처럼 느껴진다.다음 한 발자국은 이미 내세이다.내가 살다간 흔적처럼 세상은 희미하다."위함"이 안닌 삶.나 혼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기에 나는 더 고독하다.길 위에 죽은 꽃들이 웃고있다.죽음은 내것이 아니라 내가 남긴것을 회고하는 이들의 것이다.고요한 밤에 무수한 꽃을 피워낸 나무처럼.
나는 산에 오르는것을 연주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내는 소리를 들어가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는것. 내가 걸어가며 동시에 산행을 완성하듯 연주자들에게는 무대가 곧 산이 아닐까.지리산. 지리산은 슈베르트적이면서도 말러적이다.급하지 않은 가운데 한없이 웅장하고 거대한 물너울을 바라보는듯 관념과 철학의 무게에 압도되는 산.말러적인 너무도 말러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한편 지리산은 또한 너무도 슈베르트적이다. 군더더기 없는 아르페지오네적 절제미.끝없는 인내와 자기 극복을 요구하는 산.섬세하면서도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치장을 통한것이 아니라 절제의 典範처럼 느껴지는 산.탄성을 목구멍 깊이 감추게 하는 산.느낌의 무게가 너무도 확고하여 그 느낌을 얻고 난 후 모든 느낌의 기준이 되는 법계의 산.아침의 지리산은 물기에 젖은 채 고요했다.적멸이 동쪽에서 허물어지기 까지는.
영신봉 마주보는 전망대에 서자 신기하게 영신봉,촛대봉 멀리 천왕봉이 직선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지리 종주의 대미만을 남겨 논 것일까.오밀조밀한 주위경관을 즐기며 역량껏 나는 잘 걷고 있다.피로감도 별 느껴지지않는다. 가야할 봉우리들이 발길보다 먼저 마음에 자리잡는다.설레임이다.그러나 현실은 설레임보다는 가혹했다.남아있는 봉우리가 줄어들수록 길은 더 멀게 느껴지고 목표는 더 더디게 나타났다. 길을 묻는 횟수가 늘어나고 고립감은 더해갔다.길에 갖힌것이다.길이 길어질수록, 목표가 멀리있을수록 고립감은 더해갔다.나에게는 오로지 길위의 율법만 남아있는듯했다. 오로지 걷는 일.오르막을 만나면 오르고 내리막을 만나면 내려서는 일. 지극히 간단하게 줄여진 두가지 임무를 받아들고 나는 안거에 든 스님들처럼 길을 걷는다.말을 끊고 주어진 행동만을 취한다는것은 더 이상 업을 만들어내지 않는것과 같다.업이란 세상사를 통해 말과 생각으로 만들어내는 모든것을 말한다.산을 홀로 걷는 동안 말이 먼저 떨어져 나간다.생각이 고통과 마주해 고통이 기쁨이나 슬픔처럼 또 덧없이 사라진다. 나의 가슴 속에 오로지 아버지만이 화두처럼 자리잡는다.아버지란 화두는 결국 내가 나에게로 나아가는 쪽배이다.생각을 버리고 고통을 버려 나는 맑은 마음을 만난다. 아버지를, 산행의 정점을.
기다려 보지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 기다림의 의미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25년을 기다린 셈이다.아무리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려도,문 밖을 지나가는 아무리 사소한 의미들을 붙들고 살펴봐도 그것은 내 기다림의 결과물은 아니었다.결국 오지 않을 대상을 두고 내가 기다림을 만든것에 불과 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이 모두 무위로 끝난것은 아니었다.설명할 수 없었지만 내 나이가 돌아가실 때 당신의 나이에 근접할 수록 나는 서서히 아버지를 향해 다가 가고 있음을 느꼈다.내가 다가가는 만큼 마침내 아버지도 나를 향해 움직여 왔다.결국 기다린다는것은 다가간다는 것이다. 남들이 들어서는 문을 향해 나는 기꺼이 나아가 당신을 만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석 늪지를 지나 촛대봉에 오른다. 마사가 깔린 산길이 미끄럽다.이제 연하봉 넘어가면 제석이다.그기부터는 지난 사월 다녀간 곳이니 걷기가 한결 편할성도 싶다. 발아래로 조릿대 스치는 소리는 저만치 멀어지고 때죽나무 흰꽃은 하염없이 지는데 박무에 반쯤가린 연하봉은 선경을 만들어 낸다. 세상의 운무는 다 이 봉우리에 머물다 가는지 꽃잎이 벙그듯 연하봉은 피고 지고, 나는 문득 나비가 되어 날고 있었다.아! 사랑이다.지리산을 이렇게 길게 걸으며 사랑의 느낌을 산으로부터 받은것은 연하봉이 처음이다.나는 해석도 할수 없는 감정을 바위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외길을 바라보며 떠올린다.저 사랑스러우리 만큼 아름다운 비경은 어디서 만들어 지는걸까. 좋은 배경이 되는 구상나무와 뒤로 보이는 봉우리들.각각 풍경이 놓인 비례의 아름다움, 연무에 가려진 신비한 자태.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이런 수려함을 수놓는다.
산으로 가는 길 때늦은 철쭉이 목의 가시처럼 아프게 피어있다.고요의 대지에 홀로 피어있는 저 연분홍의 애처러움이 여간 시리지가 않다.내 마음의 거울일까.아버님이 철쭉꽃처럼 절절하다.하루 하루, 한해 또 한해가 당신의 생과 내 생을 아득히 갈라놓았다.세월이 흐를수록 아득하기만한 빛고운 그리움.대체 누가 이 기분을 공감할 수 있을까.사랑은 깊어질수록 개인적인것,나눌수 없는것이 되는가보다.슬픔도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이되고 또 그리운것이 사랑인 모양이다.아버지와 나를 잇는 이 카르마의 줄.내 몸 속으로들어 오신 당신을 추억하는 일. 그 아버지를 만나러 온 이 지리산이야말로 나에게는 회당이요 절집이다.그리움이 맑은 공기처럼 가득하다.그리움은 그리움끼리 몸을 빌어 이렇게 닮아가나보다.
바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사선을 넘는것 만큼 힘들다.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조금씩 뜯어먹는 빵이 더 맛있는것처럼 한발 한발 작은 에피소드들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가는거다.중요한것은 내 인생의 보폭이지 타인의 속도가 아니다.느긋하게 길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하듯 내 목표, 내 갈곳을 향해 내 능력을 조금씩 나누어 내 속도로 나아가는거다. 지금의 나나 과거의 나나 미래의 나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치 달라진것도 없다. 다만 내 육신만이 내 나이의 속도를 맞추지 못해 지치고 시달리는것이다.절망, 절망 속의 삶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떳떳하지 않을까.무전기를 통해 걸음을 재촉하는 낯익은 기계음이 들려 온다. 그래 가자 가자 흔들리면 좀 어떻랴.보폭은 넓게 스틱은 멀리 찍어 신들린듯 길위로 나를 밀어 보낸다.
산 위로, 위를 향해 나를 올려 보낸다.내가 찾던 그 의미들은 여전히 멀어보인다.나를 밀어 올린 그 매운 오기도 저만치 달아나고 걸어라,걸어라던 환청도 사라졌다.나를 가르친 외줄의 시간 위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깨닫은듯 고개를 끄덕여본다.남아있는 길과 지나간 길을 가늠할 수 없듯 남은 시간과 지나간 시간들의 경중도 비교할 수 없다.그래도 나는 나를 괴롭혀 아버지를 향해 나아간다.수행과 고통 뒤의 그 영롱함,영혼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를 기도한다. 사랑한다는것은 젖는것이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물기를 덤뿍 머금고 접착성을 가지는것.머리 속에 떠다니는 온갖 기억의 편린들을 젖은 티슈처럼 가슴에 척척 붙여내는것. 그것이 사랑이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한다는것이다.살게끔한다는것.숨통을 틔어주고 사고의 자유를 주는것.사랑에 조바심나지 않게하는것.사람답게 제대로 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 하는것이겠지만 지금 나는 오로지 아버지를 招魂하여 내 가슴 속으로부터 새처럼 당신을 자유롭게 하고 싶을 뿐이다. 새들이 나무가지에 앉아 흰 바람 견디며 울고 있다.사랑하니 외로운것이다.외로움을 이기려 하지 말자.구름이 석양빛을 거두듯 그냥 내것으로 여기자. 살아간다는 것이 혹은 사랑한다는것이 내 안의 작은 두려움일지라도 내것으로 여겨야한다.좀 외로우면 어떠냐, 그래서 좀 더 고통스러운들 어떠랴.너와 나 어짜피 나무가지 위의 새다.흰바람 견디며 자유의 하늘 나르는 새다.
고통
나는 걸어서, 새는 날아서, 벌레는 기어서 그리고 바위는 앉은채 고통을 받아들인다.세상 만물은 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는것이다.타인의 고통으로 나의 고통을 대신할 수 있을까.나는 아버지의 긴 고통을 생각한다.진통제로 생명의 가는 줄을 이어가던 그 마지막 모습.생기를 잃어가는 짙은 흑색의 얼굴 위로 죽음이 언제던 아버지를 삼킬듯이 넘나들었을 때 아버지는 깊은 침묵으로 고통을 견뎌내셨다.나도 때로는 타인의 고통으로라도 내 고통을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고통을 참는것이 어쩌면 종교적이라고, 시련을 극복하면 할수록 삶이 더 삶다와 지고 나는 강해 질것이라고.나는 믿음을 담금질하여 고통을 참아낸다.이 끊어 질듯 아픈 두 다리와 허리.영광이 쉬 가듯 내 고통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고통을 삼켜버리자 서늘한 슬픔이 찾아왔다."잘 참는다 아들아.내가 나의 고통을 참아 넘겼듯 너도 너의 고통을,아니 너의 고통을 받아들여라." 무미의 산에서 무취의 공기를 마신다.뽕잎을 먹은 누에가 비단을 만들어 내듯 나의 고통이 희망을 만들어 내리라.반딧불도 낮에는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저 길 끝에는 어떤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고통을 산산히 부수어 그 푸른 형광으로 밤길을 밝힐 소박한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죽음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잘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께서 끝끝내 함구하신 당신의 죽음을 늘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 왔다.아버지는 한마디도 자신의 죽음에대해 나에게 언급하신적이 없었다. 왜 그러셨을까. 한 마디 유언도,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받아들임 그 어느것에 대해서도 일언 반구 없어셨다.나는 그 서늘한 침묵의 그림자가 늘 두려웠다. 내가 본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꺼지기 직전의 마지막 불빛같은 그 바스라진 모습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요 행위였다. 죽음에 대한 감정적 비관보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인정. 그것을 아버지는 아셨을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오랜 성찰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것일까.아직은 죽음을 웃을 일로 받아들일 만큼 철학적 성찰을 이룩한것은 아니지만 죽음은 몸 밖에서 내 몸뚱아리를 기다리는 들짐승이 아니다. 죽음이란 삶과 함께 공존하다 개인의 삶과 함께 죽음도 끝이난다는 것이 내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이다. 끝이 없는 삶이란 생각하기에도 지루하다.영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망자의 삶은 간장 종지만큼 쪼그라들어 마침내 미모사 씨앗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존재란 것이다.바람에 희석된 공기처럼 아버지는 사라져 버린걸까. 사라진 아버지를 향해 높은 하늘을 바라 본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내가 누구인가에대한 물음은 아버지의 존재감을 묻는 동어반복이다. 내 이전의 나나 내 아버지 이전의 아버지나 다 하나란 생각을 일전에 한적이 있다. 이것으로 불생불멸 生死不二의 답이 될수 있을까.
본래 아버지가 주인이셨던 이 빈산을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산이라 부른다.아버지의 밀도를 느낄 수 없는 이 공간에서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나는 때로는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에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그것은 솔직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듯 내 삶의 희망,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힘찬 동력이 되고 있음을 깨닫았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에 대한, 다시 말해 살아갈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나는 이 시간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 삶을 더 치열하고 더 적극적인것으로 만들었다.시간은 내 삶의 비유이자 그 자체이다.산을 걸어가면 시간이 다가와 내 마음 속에 삼투된다.과거가 꼬리연의 꼬리처럼 마음에 붙어 풍경을 만들어 낸다.그래서 이 꿈꾸는듯 떠오르는 풍경들이 , 풍경들의 데자부가 현재의 것인지 과거의 것인지 구분되지않는다.이것이야말로 시간의 회유이다.나는 과거로 나를 보내고 과거에서 다시 나를 찾아 돌아온다. 그 과거 속에 아버지가 계신다.산에 얽힌 아버지의 모든것이.내 감성의 원천이.
새로운 시간은 생명 앞에 늘 나란히 놓여있다.시간앞에 모든 생명들이 공평하게 마주 앉아있다.아주 빨리가던지 아주 느리게 간다는것이 도대체 삶에 무슨 의미인지.다리가 아픈날.걸음이 늦은날 나를 한없이 위로하는 말이다. 황새가 날아오는 시간이나 굼벵이가 기어서 도달하는 시간이나 새해 아침을 맞는 시간은 어짜피 다같다. 물, 구름, 바람.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운수 납행 납의의 승려처럼 천천히 걷는다.세상을 거슬러 내가 나아간다.느리되 본연의 자세로,마음으로 하나의 가감도 없이 한마리 민달팽이처럼 걷는다.걷다 아프면 멈추어라.멈춤 또한 걷는것이다.멈추되 멈춤의 아픔을 속이지 말고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여라.아픔을 아픔으로 위로 받아라.생각을 만들지 말라.스스로에게,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오로지 위로받아라.운수 납행.납의의 스님처럼 걸어라.
아쉬움을 뒤로 장터목을 향한다.장터목은 중산리 계곡으로 내려갔던 곳이다.그기서 한시간 남짓 더 걸으면 더디어 천왕봉이다.남은 시간이 나에게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눈에 익은 풍경들이다.제석의 고사목 사이로 늦은 철쭉이 피어있었다. 잿빛 풍경 위의 연분홍은 저렇게 슬픈 빛일까.나는 나를 위무하듯 꽃들을 위무한다.고사목 사이로 새로이 자라나는 구상나무들이 이 평전을 다 채우는 날 산은 어떤 모습으로 인간을 대하게 될까.한없이 수직에 가까운 슬픔을 밀어내고 이 땅의 서정을 대신할 그날의 풍경들을 부질없이 그려본다. 통천문 지나며 그 무거운 눈을 받치고 서 있던 나무들은 이미 초록의 새옷으로 몸 단장을 하고 있었다. 불과 달반 전의 일이다.그동안 나는 지리산을 두번 올랐다.그 긴 태극 능선의 양단을 둘러보며 오늘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이란게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천왕봉을 앞에 두고 철벽같은 의문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답은 운무처럼 알듯 모를듯 내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움직였다.나는 소리죽여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한조각의 생각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기에는 다만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내가 서있을 뿐이었다.산을 아무리 오르고 산에서 아무리 나를 괴롭혀 걸어도 결국은 나는 나에게로 겨우 돌아았을 뿐이었다.
아버님 신후 몇년간이나 찾아가지 않았던 구봉산 정상 너머로 어디선가 본 듯한 구름 한 조각을 보았다.허, 하고 무심코 뱉은 한숨 속에 무한한 슬픔이 베어있었다.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다시 산을 보아도 그 슬픔의 깊이는 변함이 없다. 시가 글을 말하듯 세상살이의 짧은 행간 속에 이토록 깊은 슬픔의 골이 지나가고 있을 줄이야.죽음이 죽음을 부르고 있을 때도 모르고 있었던 내가 죽음이 부르는 삶의 노래를 다 듣는다. 평생을 넘나들던 그 산자락 한번 보실려고 그 날 아버지는 마당에 나오셨다.그리고 문득 그 산으로 돌아가셔야겠다는듯이 그 길로 운명을 달리하셨다.지금쯤 아버지는 저 산의 푸른 잎이 되어 눌러 사시거나 마른 날 부리를 쪼는 새가 되어 앉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버지가 산으로 돌아가신 날 지금은 그 산에 깃던 묵은 때와 같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이토록 모질게 나를 사로잡아 나는 이 고통을 뒤로하여 비로소 아버지를 아버지라 소리죽여 불러본다.
다시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를 좇아 산을 오른것이 아니라 내 내면 속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나 자신과의 긴 싸움을 한 것이다.아버지를 찾으러 산으로 간 나는 결국 길을 잃은 셈일까.산행은 끝났으나 나는 평생동안 내 가슴에 담아 둘 바위 하나를 지고 내려온 기분이다.아버지도 최후의 순간 병마와 맞서 그 하루 하루 멀어져가는 당신의 이상과 가치를 지키려 싸우셨을 것이다.내 영혼은 그 이상과 고통의 산물이다.그야 어찌됐던 나는 아버지를 회고해야할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지켜야한다.아버지가 목숨을 담보로 지키시려했던 그 무언의 가치를 내가 아니라 후대에게 전하고 싶다.그날 아버지는 산을 넘어셨다.어느 산마루인지 모르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휴식이었을 것이다.삶과 죽음이 악수 하던 그 순간에 도달하자 휘리릭하며 내 머리 속 필름은 헛돌기 시작했다.신열을 앓고 난듯 몸이 가벼워 짐을 느꼈다.느린 아다지오의 바람이 불어왔다.천왕봉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울컥 겸연쩍은 감동이 솓구쳐 올라왔다.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오던 길을 돌아보았다. 지나 온 길이 다 순해 보였다.문득 눈에 익은 모습이 멀리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에필로그
긴 고통 뒤의 시간은 의외로 평온했다.다리는 아프고 무거웠지만 견딜만했다.이번 산행을 통해 아버지를 만났는가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결국 명확한 답은 할 수가 없다. 만난것 같기도 하고 만나지 못한것 같기도 한 이 답답함. 나는 결국 이 중도적 결론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다. 아무래도 또 산을 올라야할까보다. 어려운것을 극복한다는것은 자신의 고유함을 지키는 일이다.어렵기 때문에,사랑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것이다.생명 이전, 죽음 이후 아버지는 늘 내 삶의 해석자였다.삶에도 길이 있다. 삶의 길은 막힌다고 돌아 갈수도 없는 길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답게 참으로 명확한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던 분이다.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내 삶을 해석한다.이제 마침내 조율된 피아노처럼 아버지의 음으로 나의 음을 조율할 시간이 되었다. 둘은 하나의 음으로 공명될것이다.아! 비로소 내가 아버지의 산을 오르는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낮은 'E'音이 플랫을 이루며 아주 느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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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황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나무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이원규 -
긴 장편의 소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으로 흐르는데 감히 댓글 쓸 자신이없어
다른분의 시로 대신합니다
유구무언 입니다
단
저는 산이
육신의 아픔으로 산행은 물론이고 생사에 갈림길을 왔다갔다 할때가 있었답니다
그럴때도 저는 육신의 아픔도 아픔 이겠지만 산을 오를수 없는 고통까지 가미되어
정말 힘든 고통 이었던것 이었답니다
지금 산을 알게 되고 산을 오를수 있는 님
정말 다행이고 진심어린 격려로
앞으로도 산에 큰품을 심신으로 느끼며 육신의 아픔과 마음의 무거움을
멋진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