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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야34 원문보기 글쓴이: 이대성
左衝右突 智異山 縱走記
(지리산은 겸손과 인내의 미덕을 가르쳐주었다)
2007. 6월
한국석유공사 김 창 윤
1. 종주 개요
ㅇ 종주기간 : 2007. 6. 2.(토) ∼ 2007. 6. 3.(일) (1박 2일)
ㅇ 종주 목적
- 현재 진행형의 삶에 대한 자기성찰
-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체계적 대응
- 전야 회원 간 친목도모 및 자기 건강지수 체크
- 지리산 등정을 통한 겸손과 인내 함양 등
ㅇ 종주코스 : 성삼재 ~ 노고단 ~ 천왕봉 ~ 백무동
ㅇ 소요경비 : 전야회 회비로 전액 충당
ㅇ 종주대원 : 전야회원 (5명)
ㅇ 전야회(前夜會) 소개
- 결성목적 : 1985년 여수고 34회 졸업생으로 지란지교와 관포지교를 꿈꾸며 회원 간 친목 도모
- 회원구성
.이대성(고등학교 수학교사), 한정호(개인사업), 서영진(현대 자동차 연구원 차장),
유상범(리베아크림 마케팅팀장),김창윤(한국석유공사 평택지사 관리과장)
- 결성일시 : 1985. 3. 1.
- 주요활동
.제주도 종주 : 1986. 7월 (7박 8일, 한라산 등정)
.정례 가족모임 : 매년 상반기
.정례 부모님 감사 행사 : 매년 11월 둘째주 토요일
2. 준비사항
ㅇ 개인장비
- 배낭(40ℓ), 침낭(하계용), 에어베게, 산악용 전문 등산화
- 예비의류(팬티 2벌, 양말 2켤레, 모자, 수건), 바닥 깔개
- 무릎 보호대, 등산용 스틱(1쌍), 지도, 해드렌턴, 수저셑트
- 간식류(초코렛, 과자, 과일), 음료류(생수, 파프리카, 소주 등)
- 우의, 접는 우산, 휴대폰
ㅇ 공통장비
- 의약품(진통제, 지사제, 소화제, 에어파스, 압박붕대 등)
- 코펠, 등산용 가스버너(연료 포함), 바람막이
- 찌게, 양념류, 라면, 햇반, 물통
- 디지털 카메라, 필기도구
- 지도, 날씨정보, 핸드북
- 여행 세부일정표
- 대원 비상 연락망 등
ㅇ 대원별 역할
- 서영진 : 등반대장(장비)
- 이대성(식량), 한정호(총무), 유상범(촬영), 김창윤(기록)
ㅇ 집결장소/시간 및 방법
- 집결지 : 구례역
- 집결시간 : 2007. 6. 2.(토) 03:30
- 집결방법 : 개인별 집결지 이동
3. 지리산 소개
ㅇ 높이 1915 미터로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ㅇ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하는 지리산은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1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하고 있다.
ㅇ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흘러들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5동천’을 이루고 있다.
ㅇ 지형은 융기작용 및 침식·삭박에 의해 산간분지와 고원· 평탄면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어 있다. 최고봉은 섬록암(閃綠岩)으로 되어 있고 주변은 화강암·화강편마암의
지질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ㅇ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가 많으며,
800여 종의 식물과 400여 종의 동물 등 동식물상 또한 풍부하다. 1967년 국립공원 제2호로
지정되어있다.
ㅇ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여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하동군 함양군 등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면적 438.9㎢, 공원보호구역 8.4㎢이다.
ㅇ 1967년에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내 최대(해상 공원 제외)의 규모를 자랑하는
지리산국립공원은 산세의 웅장함에 있어서도 으뜸이어서 천왕봉(天王峰 : 1,915m),
반야봉(般若峰1,752m), 노고단(老姑壇 : 1,507m)의 3대 주봉을 비롯하여 해발고도 1,502m를
넘는 고봉들(帝釋, 烟霞, 三神, 촛대, 靈神, 德坪, 明善, 토끼봉 등)이 많다.
ㅇ 또한, 해발고도 1,000m 이상 되는 준령이 20여 봉, 그 밖에 수많은 대소 산봉이 서로 어우러져
거대한 산악군(山嶽群)을 형성하고 있으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가 42km이며,
10km 내외의 대소 능선도 17개를 헤아린다.
ㅇ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을 비롯하여 뱀사골, 칠선(七仙), 한신 등 4대 계곡 외에 심원(深院),
대성동(大成洞), 백무동 (白武洞) 등 21여 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특색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 외 불일, 구룡, 용추, 칠선, 차발목, 삼홍소 등 이름 있는 폭포들이 계곡을 따라 산재해 있다
ㅇ 한국 5대악(大嶽)의 하나인 지리산은 울창한 자연림과 운무로 뒤덮인 영산(靈山)이기도 하여
그에 어울릴 만한 유서깊은 고찰, 국보, 보물 등의 문화재도 풍성하게 모여 있다.
지리산 남서쪽의 제3관문 화엄사(華嚴寺)는 신라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으며, 그곳에는 각황전(覺皇殿 :국보 67), 사사자(四獅子) 3층석탑(국보 38),
석등(石燈:국보 12), 대웅전(국보 299), 동5층석탑(국보 132), 서5층석탑(국보 134) 등이 있다.
ㅇ 연곡사동부도(谷寺東浮屠:국보 53), 연곡사서부도(보물 154) 연곡사북부도(국보 54),
연곡사3층석탑(보물 151), 연곡사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보물 153) 등이 있고,
그 밖에 천은사(泉隱寺), 실상사(實相寺), 쌍계사(雙磎寺) 등이 모두 신라 때 세워진
고찰로 전해진다.
ㅇ 특히 화엄사 지장암 옆에 있는 수령 300여 년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38)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지리산국립공원에는 824종(목본 245, 초본 579)의 식물과 421종
(짐승 41, 조류 165, 곤충류 216)의 동물이 분포, 서식하고 있다
ㅇ 이에 명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을 위한 등산로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으며 지리산은
철따라 산 모습을 달리 하는 게 특징이며 명승과 비경을 열거한 지리산 11경(景)을 소개하면
- ① 노고운해(老姑雲海) ② 피아골 단풍 ③ 반야낙조(般若落照)
- ④ 섬진청류(蟾津淸流) ⑤ 벽소명월(碧沼明月) ⑥ 불일폭포
- ⑦ 세석(細石) 철쭉 ⑧ 연하선경(烟霞仙景)
- ⑨ 천왕일출(天王日出) ⑩ 칠선계곡 이다.
지리산 전경
4. 종주코스 소개
ㅇ 1코스 : 2박 3일 소요
- 노고단 → 임걸령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벽소령 → 세석평전 → 연하봉
→ 장터목산장 →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 → 백무동 → 마천 또는 천왕봉에서
대원사 → 평촌을 거치거나 법계사 - 중산리
ㅇ 2코스 : 5~7시간 소요
- 연곡사 → 피아골 대피소 → 임걸령 → 노고단
ㅇ 3코스 : 3~4시간 소요
- 화엄사 → 참샘 → 중재 → 집선대 → 눈썹바위 → 무냉기 → 노고단
ㅇ 4코스 : 3~4시간 소요
- 노고단 대피소 → 노고단 정상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ㅇ 5코스 : 3~4시간 소요
- 전적기념관 → 탁용소 → 간장소 → 대피소 → 화개재
ㅇ 6코스 : 1시간 소요
- 성삼재 휴게소 → 무냉기 →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 정상
ㅇ 7코스 : 1시간 소요
- 중산리 → 칼바위 → 망바위 → 법계사 → 천왕봉
지리산 주요 탐방로
5. 전야회 종주코스 (1박 2일)
ㅇ 성삼재 ~ 천왕봉 ~ 백무동
성삼재 → 노고단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산장(중식) → 삼각고지 형제봉 → 벽소령(2박)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평전 → 촛대봉 → 삼신봉 → 연하봉 → 장터목 산장 → 제석봉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 → 장터목 산장(중식, 상범 조우) 백무동 ← 광속정 산악회원 픽업(뱀사골)
→ 남원역 → 해산
6. 천왕봉 소개
ㅇ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경계에 솟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고도 1,915m이며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ㅇ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 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ㅇ 정상에는 1982년에 경상남도가 세운 높이 1.5m의 표지석이 서 있으며 함양 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을 이루고, 산청 방면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루어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진다.
ㅇ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 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올 정도이며, 지리산 8경 가운데 제1경이 천왕일출일 만큼 해돋이가 아름답다.
ㅇ 정상에 1칸 크기의 돌담벽이 있고, 그 안의 너와집 사당에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에 의해 파손된 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정상 아래에는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는 천왕샘이 있다.
ㅇ 정상에 오르려면 동쪽으로 개천문(개선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거쳐야 하며, 이 외에 칠선계곡을 지나는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중봉을 거쳐 오르는 험난한 길 등이 있다.
ㅇ 법계사를 지난 뒤에 나오는 개천문은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ㅇ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타야 지날 수 있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천왕봉 전경도
7. 전야회원 집결과정 소개
ㅇ 나(창윤) : 기차여행 (평택역 ~ 구례역)
- 기차를 타고 여행한 기억이 까마득하다.
- 언제 였던가 ! 아마도 학창시설 돈이 궁해 도둑기차(서울~영등포역 구간 까지만 표를 구입하고서 내 고향 전라남도 여수까지 무임승차 : 기차에서 차장을 피해 밤새 요리저리 피해 다니다 기차가 최종 종착지인 여수역 근처에서 서행 할 때 쯤 기회를 보아 기차에서 뛰어내려 귀향)를 탔 던 1980년대 중반 쯤 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 그 때에 비해 지금의 기차 여객환경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우선 무궁화호 인데도 불구하고 객실의 좌석이 넓고 편안할 뿐 아니라 간접조명에 시속 100㎞ 열차치곤 소음을 전혀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조용했다.
- 희미하게 회상되는 학창시절 기차 풍속도는 입석 매진의 만원객실에서 여기저기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전혀 생면부지 남이지만 전라도 말씨만 들으면 형님 동생 하던 정겨움이 있었다.
- 그런데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기차는 시설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 하였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너무 경직되어 사뭇 생소한 낮 설움마저 생길정도였다.
- 하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진 수려한 경치는 이내 나의 마음을 편안하고 포근하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푸르고 아름다웠다.
- 캔 맥주와 오징어를 안주 삼아 지루함을 이겨내면서 앞으로 있을 우리들의 험난한 지리산 종주에 대한 깊은 사색도 잠깐 어느새 기차는 3시간 40분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구례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
ㅇ 대성, 정호 : 기차여행 (여수역 ~ 구례역)
- 혼자서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여수에서 출발한 팀 인 대성 이와 정호를 구례역에서 오후 11시 25분에 만났다.
- 만남의 반가움과 곧 만날 상범 이와 영진 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구례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인 찜질방(보석 사우나) 에 여장을 풀고서 통닭에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그동안 서로에 대한 안부를 확인하는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 마음 같아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이기에 밤새 환담을 나누고 싶었으나 다음날 새벽에 있을 산행을 염려해 간단히 샤워만 하고서 새벽 1시쯤에 잠을 청했다
- 잠깐 이다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라고 느낄 여지도 없이 대성이가 잠을 깨우자 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아닌가 !
- 우리 일행은 상범이와 영진이를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샤워 하고서 찜질방을 나왔다.
ㅇ 상범, 영진 : 기차여행 (서울(전주)역 ~ 구례역)
- 상범이는 회사 사정상 업무가 끝나고서야 지친 몸으로 야간기차인 22시 50분 서울발 구례행 열차에 몸을 실었으나 금요일 인지라 입석도 매진이 될 정도로 승객이 많아 5시간 가까이를 시름 하면서 기차여행을 한 끝에 새벽 3시 30분에 도착한 모양이다.
- 불혹이 넘은 나이에 좌석도 없이 거의 5시간이 넘는 시간을 입석 여행에 최소한의 수면도 없이 인내와 끈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리산 종주를 한다는 게 어쩌면 무리인줄 알지만 소중한 친구들과의 산행인지라 감내 한 듯 하다.
- 한편 영진이는 사기업(현대자동차)의 특성으로 인해 밤 늦게 까지 업무를 하면서도 등반대장으로써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산행계획에서부터 장비점검 및 생필품 조달 등 전반적인 준비에 여념이 없어 상범이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수면조차 취하지 않고 상범이가 타고 내려오는 기차를 전주에서 타고 구례에 온 듯 싶다.
- 후일담 이지만 서울발 구례행 열차에 산행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한 탓에 전주에서 탄 영진 이는 기차에서 상범 이를 만나지 못하고 구례역에 내려서야 만났다고 한다.
ㅇ 조 찬 (03:40~04:00)
- 드디어 새벽 3시 40분 ! 우리 일행 모두(5명)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 등반대장(영진)의 지시대로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 일행은 새벽 3시 40분에 일은 아침을 먹어야 했으며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와 함께 식사하고 계신 분이들 상당히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친구들은 해장국을 주문했지만 난 신경성 대장증후군을 염려하여 양념이 안 들어간 설렁탕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ㅇ 이 동 (구례 ~ 성삼재 휴게소, 04:00 ~ 04:30)
- 택시 운전기사님이 아주 인상적 이었다. 전날 구례역에서 만난 분인데 그 인연으로 새벽에도 수고해 주셨을 뿐 아니라 일행이 5명인데도 불구하고 한 차로 성삼재 휴게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물론 정호가 택시비를 넉넉하게 지불했다고 한다.
- 아직 여명이 시작되기 전의 새벽녘 어스름한 시간에 약 30여분간의 택시 여행을 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진 지리산의 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 드디어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하니 산행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우리 일행의 지리산 종주 성공과 지리산 종주를 통해 인내와 겸손 그리고 우정을 배가 할 수 있기를 !
8. 지리산 종주
□ 등 정
1) 성삼재 : 종주 시작 (04:40분)
ㅇ 드디어 인내와 겸손 그리고 우정을 배우기 위한 지리산 종주의 대 장정이 시작 되었다.
ㅇ 산행시간이 이른 새벽이어서 주위가 어수룩했지만 친구들의 얼굴에서 종주 성공에 대한 의연한 결의를 엿볼 수 있었다.
ㅇ 최종 출발 전 다시 한번 우리 일행은 개인 및 공통장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였으며 종주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기념촬영을 하고서 지리산 종주의 첫발을 내 딛었다.
ㅇ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길은 거의 산책코스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비단길 이었다 아마도 지리산에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ㅇ 신의 축복임에 분명하다 !
산행 전 날씨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날씨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무척이나 좋았다. 특히 산행 시작 시점인 성삼재~노고단 구간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풍경은 등정 내내 아니 등정이 끝난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을 정도로 인상적 이었다.
한마디로 지리산의 경관에 압도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2) 연하장 산장 (11:20분) ← 중식 (라면, 햇반)
ㅇ 지리산의 날씨와 경치가 인상적이어서 노고단에서 돼지령, 임걸령,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점심 장소인 연하장산장 까지 산행하면서 우리 일행은 가급적 지리산 주변경관을 가슴으로 눈으로 느끼기 위해 수시로 휴식을 취하면서 기념촬영도 병행하였으며 아울러 이번 산행이 어린시절 제주도 여행 이후 의미 있고 친구들 간의 아름다운 추억과 우정에 대한 재확인의 장이 되길 기원하면서 힘차게 한발자국씩 전진해 나아갔다.
ㅇ 아뿔사 !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 일행의 뒤에서 따라오던 상범이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괜찮냐 ! 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대답은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상범이의 집결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은 점을 고려해보면 지금 상범이의 상태가 대충 어떠한 것인지 우리 일행은 이해할 수 있었다.
ㅇ 그러나 상범 이의 지리산 종주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 강하다는 것을 우리 일행 모두가 잘 알고 있는지라 어느 누구도 감히 종주를 포기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고로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ㅇ 하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상범 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제일 뒤에서 오게 하고 대신 상범 이가 매고 있는 배낭을 차례로 번갈아 가면서 들고 가기로 했다.
ㅇ 물론 상범 이는 극구 사양했지만 20년이 넘게 쌓아온 우리의 진심어린 우정을 이해하고 우리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ㅇ 지리산의 날씨 ! 새벽엔 그렇게도 좋던 날씨는 우리 일행의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새 보슬비로 변해 있었다.
ㅇ 드디어 우리 일행은 악전고투 끝에 오전 11시 20분에야 6시간 40분 만에 1차 목적지인 연하장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으며 참고로 연하장산장은 개인 소유로 규모가 협소했을 뿐만 아니라 비위생적 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무질서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ㅇ 중식은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 했는데 영진이가 준비해온 볶은김치가 라면과 아주 잘 어울렸으며 처음으로 맛본 햇반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ㅇ 점심식사가 끝난 뒤 연하장산장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비도 내리고 장소도 협소하여 그냥 다음 목적지인 벽소령산장으로 이동하기로 결정, 12시 정각에 벽소령산장을 향해 산행을 계속했다.
3) 벽소령 대피소 (12:00 ~ 15:30분) ← 석식, 1박
ㅇ 새벽부터 강행군한 때문도 있고 전문 등산화가 아닌 트레킹화를 신은 때문도 있는지 서서히 다리근육의 피로함을 느꼈으나 상범 이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면서 고통을 잊으려 노력했다.
ㅇ 상범 이는 산행 중간 중간에 아픈 다리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냉찜질 및 파스부착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ㅇ 힘든 산행에 잠시 15시 30분 마침내 3시간 30분의 힘든 여정 끝에 2차 목적지인 벽소령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ㅇ 반가운 손님 ! 벽소령산장에 도착해보니 반가운 손님이 우리 일행을 환대해 주었다. 그분들은 다름 아닌 바로 영진이가 소속된 산악회로 일명 산에 미치고 빨리 산행 한다는 의미의 광속단(狂速團) 소속 세분(만복대, 아멜리아, 초스피드) 이셨다.
ㅇ 여기서 그분들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영진 왈) 각자 분야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을 가지신 산악인으로 지리산 산행을 좀 하신 분들 사이에선 거의 전설로 각인 되어 있으며 혹여 산행하다 한번이라도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영광일 정도로 지리산에 대해서는 걸어 다니는 만물박사라고 한다.
ㅇ 이렇듯 유명하신 분들이 산행 초심자인 우리 일행에게 따스한 격려와 환대를 해 주셨다고 생각하니 천군만마가 따로 없으며 어깨가 저절로 우쭐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 자리를 빌 어 그분들의 호의(소주 1.8ℓ, 쵸코렛 제공 등 )에 진심 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ㅇ 다시 우리 얘기를 하자면 벽소령산장에서 우리의 숙박 목적지인 세석산장까지는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거리로, 상범 이의 다리 상태와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고려하여 무리하여 산행을 강행하지 않고 벽소령산장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ㅇ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벽소령산장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나자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일 먼저 산장 예약을 안 한 까닭에 우리 일행은 선택의 여지없이 산장 밖에서 밤을 보내야(전문용어로 “ 비박” 이라고 함) 하고, 또한 다음날 최종 목적지인 천왕봉 등정을 위해서는 최소한 새벽 5시 이전에는 산행을 해야 하는 점 등이었다.
ㅇ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단지 서론 일 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상범 이가 산행을 계속 할 수 있느냐 ? 였다.
ㅇ 만약 산행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우리 일행도 여기서 산행을 중단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하는가 ?
ㅇ 이러한 심각한 문제 때문에 우리 일행은 저녁 준비도 미룬체 격렬한 난상토론을 벌려야 했으며 결론은 상범 이만 탈출하고 나머지 일행은 천왕봉 등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ㅇ 여기서 한 가지 상범 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의 지나친 천왕봉 등정에 대한 집착으로 상범 에게 해서는 안 될 상식 이하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진정 고의가 아니었으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길 바란다.
ㅇ 사실 일요일이 셋째아이 생일인데도 불구하고 가족의 비난을 무릎 쓰고 산행을 강행 한 지라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ㅇ 향후 거취를 결정하고 난 뒤 우리 일행은 산악인들로 붐비는 산장 취사장에서 라면, 햇반, 그리고 스페셜 음식인 삼겹살에 소주의 성찬으로 그 간의 피로와 앞으로 있을 힘든 여정을 격려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신악인 들의 술 마시는 법(소주 2병에 맥주 5병을 혼합) 이었으며 참고로 나는 그 혼합주 몇 잔에 취해 취사장에서 바로 쓰러져 버렸다.
ㅇ 얼마나 지났을까 ? 술에 취해 쓰러진 후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아직도 취사장에선 또 다른 산악인들의 밥 짓는 모습과 지리산 종주에 대한 자랑으로 활기참이 넘쳐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ㅇ 천우신조 ! 당초 우리 일행은 산장을 예약할 수 없어 취사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했는데 다행히 산장 측에서 거실을 제공함에 따라 좀 더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할 수 가 있었다.
ㅇ 모처럼 저녁도 맛있게 먹고 산장 거실에 숙소도 정하고 난 뒤 우리 일행은 산장 밖에서 이런 저런 환담으로 지리산의 어둠을 아쉬워하면서 다음날의 있을 산행(04:00)과 하루 종일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10시 정도에 지리산 잠 신 의 노예가 되었다.
4) 벽소령 → 세석대피소 (05:20 ~ 08:00분)
ㅇ 부지런한 산 사람들 ! 산행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간밤에 잠을 설쳤다. 이런 저런 상념(가정, 친구, 직장, 행군, 미래설계 등)들이 아마도 나의 숙면을 방해한 것 같다.
ㅇ 새벽 4시가 되니 지리산 정령이 산장의 잠 신을 쫓아 버렸는지 산장에서 기숙하던 이 들의 기침 소리에 우리 일행 또한 일어나 곧 있을 산행을 위해 장비를 점검 했다.
ㅇ 우리 일행은 상범 이의 탈출을 아쉬워하면서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아침도 거른 체 5시 20분 당초 목적지인 세석산장을 향 했으나 전 날의 활발함과는 달리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산행을 하면서도 별다른 얘기 없이 산행 속도만 재촉했다.
ㅇ 이러한 우리 일행의 처지를 이해라도 했는지 하는지 지리산 정령은 산행 내내 활기차고 아름다운 풍경 대신 운무와 보슬비만을 경험하게 했다.
ㅇ 벽소령에서 세석산장까지의 길은 시작은 평길 이었으나 험난의 연속이었으며 이번엔 정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음을 감지 할 수 있었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어 내색도 안 하고 영진 이와 함께 산행하도록 하고서 대성 이와 나는 앞서 산행을 재촉했다.
ㅇ 우리 일행은 3시간의 여정 끝에 8시 경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 마침내 세석산장에 도착했으나 상범 이가 기다릴 것을 염두 해 두고서 간단히 허기만 달래고 (초콜렛) 천왕봉의 8부 능선인 장터목산장을 향해 산행을 재촉했다.
5) 세석대피소 → 장터목산장 (08:00 ~ 10:40분)
ㅇ 운무와 보슬비를 벗 삼아 우리 일행은 더더욱 힘을 내어 장태목 산장을 향해 산행 속도를 높였으나 정호가 무척 힘들어했지만 이젠 되돌아 갈 수 도 없어 산행을 계속 하면서 친구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결론은 참으로 진지하고 열정과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 이지만 그 평범함에서 일탈하고 싶은 강한 열망과 실행력을 겸비한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ㅇ 고등학교을 졸업하고서 결성한 친구들의 모임인 전야회는 어느새 20년이 지나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도 끈끈함을 유지하고 있으며 아마도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아닌가 생각해보면서 계속 지속 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ㅇ 이런 저런 상념을 앉고서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을 가로지르는 3시간 가량의 산행 끝에 지리산의 최고봉이자 우리 일행의 목표인 천왕봉 등정의 8부 등선인 장터목산장에 10시 40분쯤 도착했다.
6) 장터목산장 → 천왕봉 등정 (10:40 ~ 11:40)
ㅇ 장터목산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천왕봉 등정의 조급함을 억제할 수 가 없어 담배 함 모금에 물만 보충하고서 곧바로 천왕봉을 등정하기로 결정했다
ㅇ 장터목산장은 천왕봉 등정을 위한 일종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이 곳 산장에 산악 장비를 놓아두고서 맨몸으로 천왕봉을 등정한 뒤 다시 이곳에 들러 중식 등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하산을 하는 것 같았다.
ㅇ 여기서 잠깐 장터목의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시대부터 고지대 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장(場) 이 형성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의 교역장소가 되었다고 하여 장터목이라 불린다고 한다.
ㅇ 우리 일행이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자 날씨는 비바람과 운무로 인해 사방 십 미터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으나 오히려 그런 날씨가 우리 일행의 전의를 불태우게 했으며 천왕봉 등정에는 유리한 작용을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으나 등정 당시에느꼈던 감정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실망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ㅇ 천왕봉 등정 길은 고지대여서 그런지 경사도 가파를 뿐 아니라 비바람과 운무가 혼재하여 주위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엔 우리 일행의 등정을 호락호락하게 허락 하지 않는 태세였으나 우리 일행의 결의에 결국은 탄복하여 허락하는 눈치였다.
ㅇ 성삼재를 출발점으로 노고단, 벽소령, 세석, 장터목산장 그리고 제석봉, 통천문으로 이어지는 험난하고 힘든 산행의 종착지인 천왕봉이 가까이 있음을 감지한 나와 대성 이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정호와 지친 친구를 에스코트 하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진의 모습이 밟혔지만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한 1시간여의 사투 끝에 마침내 11시 40분 꿈에 그리던 천왕봉 등정에 성공했다.
7) 천왕봉 등정 (11:40)
ㅇ 아 ! 민족의 영산, 우리 민족의 恨이 설인 지리산이여 !
ㅇ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고 나니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 으며 그 순간 나 스스로에게 반문에 보았다.
- 왜 ! 이 고생을 하면서 이곳엘 왔을까 ?
- 나는 천왕봉을 등정하면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
ㅇ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커녕 천왕봉 정상의 매서운 칼바람과 운무로 인해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 추위와 허기를 느끼고 있을 무렵 천왕봉을 식별할 수 있는 식별석을 발견 할 수 있었다.
ㅇ 그 식별석을 주변으로 구름같이 많은 인파가 등정을 기념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했으며 나와 대성이 또한 그 인파에 묻혀 등정의 기쁨을 함께 맛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ㅇ 기념촬영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사악한 정상의 날씨로 인해 당초 천왕봉을 등정 시 꿈꿨던 바램 즉 천왕봉에서의 지리산 전체 전경에 대한 조망이 사라져 버림에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 천왕봉 등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다시금 정상등정의 흥분된 감정이 살아남을 느꼈다.
ㅇ 정상 등정의 환희와 기쁨을 나누고자 집, 동료, 선배 등 휴대폰으로 기쁨을 전하고 있노라니 마침내 정호, 영진 이도 합류함에 따라 비록 상범 이의 빈 자리가 아쉽지만 우리 일행은 단체사진은 물론 처음으로 개인별 사진촬영에 열을 올리는 등 나름대로 정상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냈다.
ㅇ 정상정복이 끝나자 시장함을 느낀 우리 일행은 천왕봉 주변에서 간단히 허기를 달래며 환담을 나눈 뒤 여기저기 고사목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장터목산장 까지 여유 있는 하산을 시작했다.
□ 하 산
1) 장터목 산장 (13:00 ~ 14:00, 점심 : 라면, 햇반)
ㅇ 장태목산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상범이를 생각하면서 서둘러 라면에 햇반으로 점심을 해결하고서 하산을 위해 담배 한 까치를 입에 물자 말자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우리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ㅇ 상범 재등장 ! 벽소령산장에서 탈출하기로 한 상범 이가 온갖 힘든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 일행 앞에 나타나서는 결코 천왕봉 등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굳은 결의로 천왕봉 재 등정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뭔가.
ㅇ 상범 이의 몸 상태를 고려해 만류를 했지만 상범 이의 굳은 결심을 알아차린 우리 일행은 상범 이의 천왕봉 재 등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면서 상범 이의 입장을 고려, 영진이가 뒤 따르고 나머지 일행은 백무동 입구에서 영진이가 소속된 광속단 회원들과 만나기로 하고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산을 결심했다.
ㅇ 결과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상범 이의 불굴의 의지로 인해 우리 전야회원 모두의 염원이었던 지리산 종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상범 그리고 영진 이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2) 장터목 산장 → 백무동 (14:00 ~ 16:00)
ㅇ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그렇게 만만 하지만은 않았다. 계속되는 내리막 경사로 전문 등산화가 아닌 트레킹화를 선택한 대성 이와 나는 고생을 좀더 감내 해야 했으나 정상등정의 희열과 감동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엔 충분했다.
ㅇ 하산 길에 나는 지리산 영봉들의 위용이 그야말로 대단하다는걸 새삼 실감하면서 과연 이번 지리산 종주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 가 ? 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론은 겸손과 인내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싶다.
ㅇ 3시간여의 지루한 하산 끝에 드디어 우리 일행은 16시 40분 백무동에 도착했는데 또 한번 반가운 손님이 우리 일행을 감동시켰다. 그 분들은 다름 아닌 광속단의 다른 회원들 (장발짱, 강산애) 이었으며 하산한 우리 일행을 남원역 까지 픽업해 주시기 위해, 그리고 상범 이가 탈출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안내 해 주시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고 말씀하셔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ㅇ 우리 일행은 그분들의 봉고차를 이용, 영진이가 말한 광속정(狂速亭)으로 이동했으며 그 곳에서 전날 벽소령산장에서 만났던 세 분(만복대, 아멜리아, 초스피드) 과도 뜻밖의 해우를 할 수 있었으나 그 분들의 다른 일정 때문에 눈인사만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ㅇ 광속정(狂速亭)에 대한 잠간 언급하면 회원들(전문회원 14명 으로 구성)의 성금으로 옛 우체국 건물을 구입, 리모델링하여 깨끗하게 광속단 회원들의 전용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 으며 특이 할 만 한 점은 산악인들이 쓰는 버너를 전시해 두었다
ㅇ 우리 일행은 광속정에서 지친 때를 닦아내기 위해 샤워를 깨끗하게 하고 옷도 갈아입고서 강산애와 장발짱(지금은 형님으로 모심) 님의 안내로 뱀사골 차량관광 기회까지 맛 볼 수 있었다.
3) 뱀사골 차량관광 → 맥주5병/소주2병 혼합(17:30 ~ 19:00)
ㅇ 영진, 상범 이가 천왕봉 등정을 마치고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하산하고 있다는 전화를 16시에 연락해 와 상범 이의 몸 컨디션을 고려 할 경우 최소 4시간의 하산 시간을 감안, 우리 일행은 뱀사골 차량관광을 하면서 1박 2일간의 힘든 여정을 정리하기로 했으며 뱀사골 입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강산애와 장발짱님의 단골 식당에서 산악인들의 시음방법(소주 2병 : 맥주 5병)에 따라1차 하산주로 서로의 노고를 달랬다.
ㅇ 혼합주 한 순배가 돌아가고 장발짱과 강산애님의 구수한 입담을 통해 지리산 종주 이력에 대한 오랜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노라니 어느덧 우리 관계는 형님 동생관계로 변해 있었다. 다시금 이 자리를 빌어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3) 백무동 이동 → 상범, 영진 환영 (19:30)
ㅇ 우리 일행은 혼합주를 적당히 마시고서 상범, 영진이의 하산을 추가하기 위해 다시 백무동으로 이동했다.
ㅇ 백무동에 도착하니 해는 어느새 어둑어둑 해져가고 있었으며, 기다리는 지루함도 잠시 7시 30분쯤 상범이와 영진이가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우리 일행 앞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
ㅇ 드디어 전야회원 5명 전원이 아무런 사고 없이 지리산 등정에 성공하는 순간이 아닌가 ! 우리 일행은 진심으로 영광스럽고 고통스런 천왕봉 등정에 성공한 상범 이와 그리고 헌신과 우정을 몸소 실천한 영진 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의 큰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아울러 다섯명 이 다시금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ㅇ 상범 이의 집념에 존경과 경외감을 표하며 아울러 다시금 나의 어리석은 언행에 고개 숙여 사죄하고 싶다.
4) 하산 축하 파티 (20:00~22:00)
ㅇ 비록 당초 예정보다 하산 시간이 늦어졌지만 우리들은 그냥 헤어질 수 가 없어 광속정 근처 흑돼지 전문집에서 하산주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ㅇ 하산 추하연은 20시부터 22시까지 약 2시간동안 우리 일행 5명과 우리를 도와주신 강산애, 장발짱 형님과 함께 했으며 물론 산악인들이 즐겨 마시는 혼합주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ㅇ 하산주가 한 순배 돌아갈 즈음 우리들은 왜 상범 이가 탈출하지 않고 다시 천왕봉 등정을 하러 되돌아 왔는지 궁굼 하여 물어보았다. 한번 뱉은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 없다 !
ㅇ 결론부터 말하면 상범 이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들 수 도 없었을 뿐 아니라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유인즉 벽소령산장에서 내가 무심코 내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오기가 생겨서 천왕봉을 종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세치 혀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이며 아울러 그 세치 혀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한번 상범 이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ㅇ 친구들은 주거니 받거니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나는 술이 별로 받지 않아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어느새 시간은 22시를 향해 가고 있어 강산애 형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 일행은 아쉬운 회식자리를 뒤로하고 남원역으로 이동했다.
□ 해 산
ㅇ 남원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념 촬영을 한 뒤 기차표를 샀다. 상범 이는 피곤하기도 하고 서울 가는 기차가 입석 밖에 없어 여수 고향집에서 자고 다음날 비행기로 서울 간다면서 대성, 정호와 함께 22시 30분 여수행 기차표를 구입했으며, 영진 이는 집이 전주 인지라 나와 같이 22시 55분 서울행 입석 기차표를 구입했다.
ㅇ 먼저 세 친구를 배웅하고 영진 이와 나는 전주까지 약 1시간여를 지리산 종주 강평 및 신변잡기를 얘기하면서 불편함을 달랬으나 영진 이가 전주역에서 내리고 막상 나 혼자만 남은 나머지 4시간은 최악이었으나 그 기차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나 할까 아무튼지 나쁘지만은 않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ㅇ 기차가 평택역에 도착하니 새벽 3시 14분, 다행이도 회사 동료의 차량을 이용하여 집에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으며,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졸린 눈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충 샤워를 끝내고서 잠자리에 홀로 누워 있노라니 입가엔 나도 모르게 염화시중의 미소가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고단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린 지리산 종주를 정리했다.
智異山 아 ! 忍耐, 謙遜, 그리고 友情
9. 종주 후기
ㅇ 20여년 전 우리 일행이 20살의 나이에 제주도 여행을 떠났던 때가 생각난다. 여름방학 기간 중 이었으며 아마도 그때는 그냥 제주도에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ㅇ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이번엔 유희와 오락이 아닌 고통과 인내가 수반되는 지리산 종주(성삼재~노고단~천왕봉~백무동) 에 대한 제안을 받고서 회사문제(축구대회) 및 가정문제(세째 생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체력문제 등으로 처음엔 망설였던 게 사실 이었으나 20여년 이상 소중하게 유지해온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ㅇ 지리산 종주를 결정하고서 산악 전문점에 들러 신발과 옷도 구입하고 틈틈이 전문가와 컴퓨의 도움을 받아 지리산에 대해 공부도 하는 등 부산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ㅇ 시작이 반 ! 이라고 했던가. 이렇듯 부산한 준비 속에 1박 2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이렇게 종주후기를 쓰고 있는 나 자신과 친구들이 진정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ㅇ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지리산 종주의 의미를 겸손, 인내 그리고 우정의 확인에 두었는데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이 무척이나 기쁘다.
ㅇ 성인이 되고부터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철이 들고부터 일기 쓰는 걸 습관화 하면서 나름대로 현재 진행형인 삶에 대한 강한 피드백과 잡히지 않은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위해 늘 노력하는 생활을 영위해 왔다고 자부해 왔으나 이번 지리산 종주를 통해 자칫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삶을 추구하지나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ㅇ 사실 매년 가족과 함께 친구들의 연례행사인 부모님 모시기 행사(매년 11월 둘째주 토요일 18:00) 를 끝내고 지리산 화엄사 부근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성삼재까지는 차량을 이용하고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산행을 하면서 지리산의 웅장함을 경험하곤 했기 때문에 지리산에 대한 나름대로의 식견은 가지고 있었다.
ㅇ 이에, 몇 년 전 열반하신 성철 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고 말씀하신 궁극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분께서 지리산을 염두 해 두시고 산이라 표현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을 통해 지리산과 좀 더 친숙할 수 있었다.
ㅇ 결론적으로 나는 나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한 이번 지리산 종주를 통해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삶의 값진 교훈을 얻었음을 감히 이야기 하면서 다음에 있을 전야회의 야심 찬 계획을 기대하면서 친구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한편으론 물심양면으로 호의를 아끼시지 않은 광속단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면서 종주후기를 마친다.
忍耐, 謙遜, 友情
글 : 김창윤 편집 : 그 외 친구들...
첫댓글 장문의 산행기 잘보았습니다.무엇보다 5명 친구분들의 우정이 아름답고 협력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또한 지리산을 처음 대하시는 듯 한데 저역시 처음 지리산왔을때의 감흥이 생각납니다. 지리산을 경외의 대상으로 보던 " 선인들의 지리산유람기"를 보는듯한 착각이 일기도 하고 지리산을 경시(?)하는 저 자신을 반성도 해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종주 다시한번 축하하고... 헌디 산행기가 아니고 책을 한권 발간한것 같은디....ㅋ ㅋ ㅋ
멋진 산행이 부럽네요.^^ 3:2 로 섞어 마시는건 광속단만? ㅋ
오랜 우정이 부릅고 아름답습니다 . 좋은 추억들 계속 만들어가시고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