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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순 글로벌인간경영연구원 원장, 대한법률경제신문사 대표이사 등 |
1945년 8월 6일 미군의 B29 폭격기 에놀라이 게이호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같은 해 말까지 당시 히로시마 주민 약 35만여 명 가운데 14만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 중 약 2만여 명이 한국인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일본 히로시마(廣島)현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 1945년 8월 6일 미군의 B29 폭격기 에놀라이 게이호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부여된 코드명 리틀 보이 (Little Boy) ,윈스턴 처칠은 “분노한 신의 두번째 강림”이라 말했다.
“오 하느님,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나이까?” 최초의 원폭공격기에서 진홍색 섬광을 본 에놀라이 게이 부조종사 로버트A 루이스 대위의 탄식이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2시 45분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이 게이호는 태평양 매리애나 군도 티니안 섬에서 이륙했다. 에놀라이 게이호는 기장 폴 티베츠대령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에놀라이 게이호 12명의 승무원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시어도어 판커크 중위(항법사)가 7월 29일 미국 조지아 주 자택에서 93세로 숨짐으로써 원자탄 투하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원자탄 투하일을 평화의 날로 부른다. 일본은 투하자들로부터 후회한다는 말을 듣고자 했다.
“리틀보이로 전쟁을 빨리 끝내 더 많은 인명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 판커크
“승무원 가운데 원폭 투하작전에 참여한 사실을 후회했던 사람은 없다” - 폴티베츠
마지막 생존자의 죽음으로 그동안 집요하게 사과와 유감 표명을 요구해온 일본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원폭 사용 결정 책임을 놓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져왔다. 전쟁을 다른 방법으로 막을 수 없을까는 지금의 이야기다.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 보이 (Little Boy) 투하일에 멈추어진 시계
▲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 내 평화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계. 원자폭탄 투하 시간인 8시 15분을 가르킨 채 멈춰 있다. 이 시계는 당시 59세였던 켄고 니카와씨의 것이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 내 평화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계가 원자폭탄 투하 시간인 8시 15분을 가르킨 채 멈춰 있다. 이 시계는 당시 59세였던 켄고 니카와씨의 것으로, 일을 하러 나서던 니카와씨는 당시 원자폭탄 폭심지에서 약 1,600m 거리에서 폭격에 노출되었으며 원자폭탄 투하 16일 후인 8월 22일 사망했다.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원자폭탄의 위력이 그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다면 핵폭탄은 어떠할까.
전 세계의 핵은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