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의 평준화 정책을 보면 가관이다...평준화를 폐지하면 일반서민들이 더 죽어 나간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이다.
부자들은 평준화던 비평준화던 자식교육을 철저히 시킬수 있으며, 그들은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않되면 유학이라도 보낸다...
그런데 평준화정책에 의한 최대 피해자는 평주화를 지지하는 바로 서민의 자식들이다. 근데 실제 서민들은 그것을 모른다..이제 서민들의 자식은 부자들의 자식에 비해 점점 경쟁력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요즘 웃기는 경제정책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서부터 재벌잡기, 기업가를 나쁜 놈으로 매도하고...그랬더니 돈이 재벌에서 빠져나와서 서민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 갔는가...천만의 말씀!!!..서민만 죽어 나자빠 지고 있지 않은가...왜 그럴까..?
이제 강남 사람들 때려 잡기가 시작되었다...그래서 무슨 부동산 대처방안이라고 정부가 호들갑을 떨고 있고, 서민들은 부동산 대처방안이 약하다고 생난리가 나고 있다...진짜 부자들이 망할까..천만의 말씀....서민과 중산층이 직격탄을 맞게 되어 있다...왜 그럴까..?
지금 이 시간에도 하루에 1300만불(150억원)씩이라는 엄청난 자본과 산업이 대한민국을 떠나나서 중국으로 대탈출하고 있다...
완전히 아르헨티나 재판이다...
빨갱이 이념과 포퓰리즘은 그렇게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민족 모두를...
망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미래에 또다른 기회는 없다.
근세조선이 망하고, 일제에 강제합병된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미국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미국이 보유한 군사,경제, 산업, 지적재산을 거의 꽁짜로 갖다 쓰고, 친일파의 지적재산,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대한민국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과 산업화의 리더쉽에 의해 천신만고, 삼신할머니가 도와주어서 겨우 재기에 성공했는데.....
미국땜에, 친일파 땜에, 독재땜에 대한민국이 이모양 이꼴이 란다...모든 것이 내잘못은 없고 다 남의 탓이란다...내재적인 발전론에 따르면 그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초일류 국가가 되었을 거란다...그럴까...지금 북한을 보자...그게 답이다.
고교 평준화가 강남 지역의 주택가격 폭등과 사교육비와 관련하여 다시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1974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어 그 역사가 30년이 지나면서 평준화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있어왔지만 아직 평준화를 유지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윤덕홍 교육부 장관은 “고교평준화는 입시경쟁을 해소해 중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고교 교육 기회 확대와 학교간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함으로써 평준화를 폐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고교 평준화는 평등을 통한 불평등의 고착화이며 한국의 사회 이동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에서 평준화 제도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지방부터라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고교 평준화에 대한 찬반양론이 모두 설득력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 이 문제가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한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 해결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공존하게 하는 것이다. 완전한 평준화와 완전한 비평준화를 포기하고 공립학교는 평준화를 유지하고 사립학교는 각자의 선택에 맡김으로써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교육은 제로섬이 아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은 교사 연봉이 10만 달러, 학생 대 교사 비율이 5:1, 교직원 20%가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초일류 사립학교를 맨해턴의 대학 캠퍼스에 설립했다. 자녀 교육을 염려하는 우수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한다. 반면 서울의 중동 고등학교는 1995년부터 재단으로부터 년간 60억여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추진해 왔지만 서울시 교육청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이 학교는 정부의 지원 없이 학교를 운영해 왔지만 교육 과정 개편이나 학생 선발권, 교사 증원 등 어떤 것 하나 학교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이 고수하고 있는 평준화 정책 때문이다.
우리가 교육 정책을 선택할 때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떤 교육 정책이 교육의 목표를 잘 성취해 줄 수 있는가이다. 국가 차원에서 국가 경쟁력의 강화가 교육의 목표라면 어떤 교육 정책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상대적으로 효과적인가를 척도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가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학교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보장해야 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제로섬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크게 보면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 사회적 평등이나 정의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붙잡혀 모든 학생의 교육비가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명문 사립의 경우 1년간 학생 1인당 교육비가 4-5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지만, 사회적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학교를 폐교하지는 않는다. 좋은 교육은 그 교육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고등학교와 대학에 많은 돈을 끌어들여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국가 예산이 무한하여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수혜자 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교육의 질이 개선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립학교의 공납금을 자율화하여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사립학교에 자유를 우리 교육의 문제는 좀더 근원적인 곳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 가운데 상당 부분은 국가의 주도적인 교육 관리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이다. 우리의 교육은 개인의 자발적 협동이 아니라 중앙 관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생산적인 교육이 시행될 수 없다. 정부가 중앙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규제하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자율과 자치, 창의와 혁신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시행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동일한 방식의 학사 행정, 교육 과정에 의해 운영된다.
우리나라의 모든 초`중등학교는 내용상 동일한 교과서를 가지고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한다. 학부모가 주거지 이전을 통해 학교를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전국의 동사무소나 파출소가 표준화된 지침에 따라 운영되듯이, 전국의 모든 학교도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다양성이 발붙일 곳이 없고 교육 주체의 선택과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
교육에서의 자유를 확대하려면 우선 학교의 설립, 입시 관리, 교육 과정 등을 학교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한 나라의 국민적 자질을 갖추기 위해 공통의 교육 과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그것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다양한 학교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은 참된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학교를 놓고 선택하는 것은 참다운 선택이 아니다. 정부의 통제는 학교의 다양성과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해 행사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평준화를 둘러싼 논쟁은 이처럼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현재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재의 교육 기관을 (국)공립교육, 사립교육, 사교육으로 다시 나누는 것이다. 고교 평준화 이전에는 공교육 가운데 공립 교육과 사립 교육 사이에 명백한 구분이 존재하였으나 평준화로 말미암아 이러한 구별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는 1,297개이고, 이 가운데 사립 고등학교는 628개이다. 현재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수는 1,224,452명이고, 이 가운데 사립 고등학교의 학생수는 645,720명이다. 평준화를 동시에 폐지하는 것이 교육이나 사회에 미치는 충격이 지나치게 크다면 우선 일반계 사립 고등학교 가운데 자율권을 원하는 경우 자율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 운영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