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익 목사는 세 번에 걸쳐서 총회장을 역임하시면서도 바르게 정치를 하시고 평생 농촌교회를 성실하게 섬기신 한국 장로교단의 올곧은 지도자셨다. 그래서 가을 총회가 다가오면서 더 생각나는 분이시다.
제13회 총회가 열렸을 때 117명의 총대가 투표해 43살의 이자익 목사을 총회장에 선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이자익 목사는 총회에 더 이상 참석하지도 않았고, 창씨개명도 거절해 고난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셨다.
1947년 제33대 총회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 이자익 목사는 다시 총회장으로 선출됐고, 1948년 4월에 신학생 51명의 진정서 사건이 총회에 접수됐을 때, 총회는 이자익 목사를 심사위원장으로 선출해 신학 문제를 수습하고 제34대 총회장으로 다시 선출했다.
한국 교회사에서 유래가 없는 세 차례나 총회장을 역임한 그의 삶을 살펴봄으로 교훈을 얻자.
첫째, 이자익 목사는 성실을 인정받은 분이었다.
그는 김제 금산의 제일의 지주인 조덕삼의 머슴으로, 1904년 봄 미국 남장로교 최의덕 선교사에 의해서 조덕삼의 집에서 금산교회가 시작됐을 때, 테이트 선교사의 지도로 이자익은 그 주인 조덕삼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1907년 그 교회에서 그 유명한 장로 피택 사건에서 이자익은 머슴으로 그 주인 조덕삼보다 나이가 12살이나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장로로 피택됐다. 나중에 장로가 된 조덕삼 장로는 자신의 집 머슴인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고 전적으로 후원해 줬다.
그는 이처럼 교회와 주인에게 성실성과 신앙심을 인정받았다. 이자익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조덕삼 장로와 교인들로부터 금산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목사로서도 그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오늘 우리도 어디에서 섬기느냐보다는 서 있는 그곳에서 교회와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성실성을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둘째, 이자익 목사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평생을 헌신했다.
이자익 목사는 처녀목회 시절에 대형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농촌교회를 지키며 헌신했고, 신학교 후배 함태영 부통령의 입각 권유도 뿌리치고 농촌교회의 목사로 평생을 종신할 것으로 선언하고 섬긴 진실한 목회자였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은사였던 카슨 교수는 “설교를 정말 잘 하는 목사는 큰 교회의 바쁜 목사가 아니라, 적은 교회에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하는 목사”라고 했다.
우리는 교회의 규모에 목숨을 걸고 눈치를 보고 기가 죽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성경말씀을 진실하게 뜨겁게 설교하고 성도를 섬기며 목회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셋째, 이자익 목사는 지역도 신분도 뛰어넘어서 신앙의 순결을 지켰다.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는 종과 주인의 관계였지만 서로 섬기고 존경한 것은 한국교회의 가장 감동적이고 모범적인 미담이다. 목사와 장로가 이들처럼 서로 진정으로 섬기고 존경하면서 오래도록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아마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남해에서 태어나 전북노회에 목사 안수를 받고 섬기다가 다시 경남노회에서 섬기고 다시 대전노회에 섬기면서 지역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셨다.
넷째, 이자익 목사는 교회의 어렵고 굿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참 지도자였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 개혁헌법의 기초를 세웠고, 개교회의 어려운 갈등과 분규의 문제에 중재하고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1948년 4월의 신학생 51명의 진정서 사건을 총회가 받아들여서 심사위원장을 하시면서 만든 심사보고서는 지금 읽어봐도 감동적이다.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가 만연돼 주변의 교회의 어려운 갈등과 문제에 눈 감고 살아가고, 교회 문제 해결에 서투르고, 일에 개입하면 이해타산에 따라서 편파적으로 판결해 일반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이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닌가?
총회 헌법이 있고 정당한 상식이 있고 공동의회 표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은 참 부끄럽다.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영광을 탈취하지 않도록 제대로 섬겨야 한다.
다섯째, 이자익 목사는 검소한 농촌목회자의 생활에 익숙했다.
이 목사는 마부에서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는 인생 역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정치적 흥정에 흔들림이 없었고, 최고의 법통이었지만 돈에 깨끗한 정치인의 표상이었고, 명예나 권력이나 일신상의 유익을 위해 신앙의 변절이 없었던 최고의 거목이셨다.
가을 총회를 앞두고 이자익 목사를 생각하며, 돈 때문에 부끄럽지 않고, 이기심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판단하고 표결하는 가을총회가 되도록 하자. 또 예리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성실하게 마지막 날까지 눈을 부릅뜨고 총회를 살펴보자.
민남기 목사 / 광주 대성교회 기독교보 ksnews@chol.com |
출처: 미래를 향한 도약 원문보기 글쓴이: 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