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박달재 목각공원 #1
2022.6.6(월) 박달재 천년목찰 목굴암을 둘러보고 나서 박달재 목각공원으로 이동한다.
천등산(天登山) 박달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 453m, 길이 500m.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또한 인근의 지등산·인등산과 함께 천(天)·지(地)·인(人)을 모두 갖춘 신령스런 곳으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성소로 알려져 있다.
산에는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육송 등의 상록수가 울창하며,
도로가 구비돌아 9곡(曲)의 유서 깊은 박달재로 유명하다.
박달과 금봉 조각상과 그 뒤로 전망대
박달재 목각공원 종합안내도
박달재 전설을 볼 수 있는 박달과 금봉 조각상
노랫말에 담긴 사랑 이야기는 조각으로 표현돼 박달재 조각공원과 박달재 목각공원 곳곳에 있다.
금봉과 박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상 아래 박달재 이름의 유래를 새겨놓았다.
때는 조선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박달재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이곳에 사는 어여쁜 처녀 금봉과 첫눈에 반했다.
며칠간 사랑을 나눈 박달은 장원급제를 다짐하며 떠난 뒤 감감무소식.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은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고 한다.
박달재의 이야기
울고넘는 박달재 표시석
박달재는 충북 제천 봉양읍과 백운면 경계에 있는 험한 고갯길로
박달도령과 금봉처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고갯길이다.
박달재 노래비 표시석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 가을이 깊은 박달재엔 오늘도 어김없이 노래가 흐른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1절)”로 시작해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2절)”로 끝나는 노래.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다.
1948년 발표된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와 악극으로도 만들어져,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국에 알렸다.
2005년에는 KBS-1TV 〈가요무대〉가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방송 횟수 1위곡’에 올랐다.
가수 반야월의 일제하 협력행위 기록
박달이와 금봉이 캐릭터 석상
고려 김취려 장군의 유적지
1217년(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유명하다.
1216년(고종 3년) 거란 왕자가 대수요국 왕이라 자칭함에 따라
몽고군에 쫓기게 된 거란대군 10만명이 내침을 하였다.
1217년(고종 4년) 7월 고려군은 김치려 장군의 휘하에
박달재의 협곡과 고갯마루의 지형을 이용한 전략으로 적군을 협공으로 퇴각시켰다.
이후 1258년(고종 45년)에 몽고군이 침략했을때 충주, 제천, 청풍의 별초군이 몽고군을 격파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김취려 장군 전적비
제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송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