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16대 국회는 문을 닫고 31일부터 17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6월 7일 처음 본회의를 열고 힘차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6월 7일 오후에 새 국회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글은 많이 쓰고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국회의원회관에 갔다.
축하 꽃을 나르는 사람, 새로 들어온 가구가 널려있고 아직 내부 수리까지 하는 곳도 있어 의원회관은 어수선했지만 의원들 방 문패가 거의 한글이어서 의원회관이 밝아 보였다. 나는 승강기에서 내려 의원들 방이 보이는 골마루에서 의원들 문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앞뒤 양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한자 문패는 없고 온통 한글 문패만 보였기 때문이다. 김근태의원과 김성호의원만 한글 문패를 달고 모두 한자 문패였던 16대 국회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래서 국회 사무처에서 모두 한글로 바꾼 것인가 생각이 들어 골마루 끝까지 가면서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한자 문패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국회 사무처에서 모두 한글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한글 이름패를 원한 분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글 이름패 쓰기 실태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의원실에 가서 자료를 보니 299명 가운데 264명이 한글로서 88.3%였다. 얼마 전 신문에서 75% 정도 한글 이름패를 신청했다는 보도를 봤는데 뜻밖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모두 한글이었고 한나라당은 121명 가운데 35명만 빼고 모두 한글이고 민주당은 9영 가운데 6명, 자민련은 4명 가운데 2명이 한글이었다. 한자 이름패를 단 35명은 남다른 생각으로 한자 문패를 고집한 것으로 보였다. 아래 위 층으로 오르내리며 한글 문패가 가득한 의원 실을 살펴보면서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한자 문패를 단 의원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본회의가 열려 자리에 없기에 다음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미루었다.
이제 몇 안 되는 사람만 빼고 모든 국회의원 이름패가 한글인데 국회 상징인 깃발과 정문, 본회의장 정면의 휘장, 배지에 쓴 글씨가 한자 或자로 보이고 議長, 國務議員席 들 명패가 한자로 된 게 눈에 몹시 거슬렸다. 그러나 일제 한자혼용세대가 아닌 대한민국 한글세대 국회의원이 많은 17대 국회에선 그 꼴이 맞지 않기에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 굳게 믿는다. 마찬가지 한자 이름패를 쓴 국회의원들도 17대 국회가 문 닫기 전에 생각을 바꾸어 모두 한글 문패를 달 것이라 믿고 바란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깃발과 이름패 글씨는 오래 전부터 ‘정부’, ‘법원’이라고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만 或자로 보여서 안타깝고 눈꼴사나웠는데 이제 겨레 얼이 찬 국회의원들이 많고 애쓰는 분들이 있어 희망을 갖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회가 제 나라 글자인 한글을 업신여기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쓴 사람으로서 국회 사무처와 국회의원 몇 사람이 한자를 고집하는 게 섭섭했지만 한글 이름패를 단 분들이 많아서 고마운 마음이 더 켰다. 10년 전 14대 국회 때 299명 국회의원의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다 주어도 받지 않았을 때 제 나라 국회에 제 나라 글자를 쓰게 하기가 이렇게 힘든가 한숨이 나오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으나 이제 대한민국 국회다운 제 모습을 찾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국회,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회 모습을 볼 날이 멀지 않다는 기대감을 가진 국회 나들이였다.
우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한자 명패 대신 한글 명패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의 관행을 이유로 한글명패 사용이 보류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가 그 동안 한자 명패를 사용해 온 것은 1948년 제헌 국회가 제정한 '한글전용에관한법률'에서 규정하는 한글전용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의 권위적인 관행이다.
민족의 스승인 주시경 선생은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일은 자기의 말과 글을 존중하여 씀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 국회가 한글명패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글인 한글을 존중하여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과 상통하며, '누구나 널리 읽고 쓰라'는 한글창제의 정신에 담겨있는 인본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아울러,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 될 정도로 세계적인 우수성을 인정받고, '인류가 쌓은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한글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해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필자 이대로 선생은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1967년 동국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초대 회장
1990년 한말글사랑겨레모임 공동대표
1994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윈장
1996년 국어정보학회 감사(현)
1997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현)
2000년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현)
2004년 한글날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