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가 견성하게 하는가? / 심봉사가 눈을 뜬 것은...
간화선에서는 화두를 타파하면 견성성불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과연 화두가 견성으로 가는 제 일 요인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더 있는지 한번 살펴봅니다.
간화선에서는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세 가지 큰마음을 내라고 합니다.
그 셋은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입니다.
크게 믿고 크게 분하게 여기고 크게 의심하면 깨달음도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언제나 이 세 가지 마음을 내라고 하며,
이 세 가지 마음만 있으면 화두를 타파하고 견성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다고 하십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세 가지 큰마음이 있을 때
화두 타파가 오는 것이라면, 진정으로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은
'화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은 화두가 아니라 '세 가지 마음'입니다.
믿는 마음, 분한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
화두로 하여금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화두는 단지 그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
필요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 세 가지 마음만 있으면
화두를 타파할 필요도 한편으로는 없습니다.
또 화두가 타파되는데 그 세 가지 마음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종합해 보면, 정녕 필요한 것은 화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간절한 그 마음이 화두를 불사르게 하고
화두를 무너지게 하고 진리의 세계가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화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간화’ 그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화두를 보는 마음, 간화를 하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진리를 믿고 진리에 사무치며
진리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지금까지 주객이 전도된
간화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간절한 보리심을 내기보다, 단지 화두를 타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마음을 생각지 않았을까요?
내게 필요한 것은 화두 타파인데,
왜 그 마음이 안 와서 나로 하여금 이렇게 고생하게 만드나?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또는 화두 타파하면 도인되고 부처된다는 말에 솔깃해,
밝은 마음을 내기보다 화두 깨칠 '욕심 '만 가득하지는 않았을까요?
만약 그러하다면 당연히 화두가 타파될 리 없을 것입니다.
공부를 거꾸로 하고 있으니까 말입지요.
화두나 간화, 어쩌면 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밝고 간절한 마음'입니다.
간절한 믿음, 간절한 구도심, 그리고 모든 정성을 쏟는 구체적 공부,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일러주는 것이 정녕 간화선의 세 가지
큰마음의 가르침이라 할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그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을 우리도 알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생각만큼 잘 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저절로' 일으키게 하는 것이
보현행원의 가르침입니다.
보현행원을 하면
믿음도 '저절로', 간절한 보리심도 '저절로' 일어납니다.
보현행원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깨달음은 이미 와 있다! 네 주위에 넘치고 있다!
단지 네가 그것을 모르고 있고 못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세계는 밝고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대로 보인다.
그러니 간절한 마음만 내라! 그리고 눈만 뜨라!
그러면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찬란한 깨달음이 네 눈앞에 쏟아진다.
눈앞에 부처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如大目前)
그렇게 마음을 일으켜라!
이미 네 옆에 와 있는 일체의 부처님을 사무치게 사모하고
그렇게 공경하고 찬탄하며 섬기고 공양하며 살아가라!
그러면 깨달음이 올 뿐 아니라
지금 당장 부처님으로 살아가게 된다!
너도 부처님처럼 그렇게 밝고 자비롭고 원만하게 살아가게 된다!
네 본래의 노래를 불러라!
보현행원은 성불로 가는 인(因)이었을 뿐 아니라,
부처가 된 후 부처로 살아가는 과(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리는 본래부처라!
다시 불과(佛果)는 성불의 인이 되어 화엄의 세계는 너와 나,
모두가 서로 인이 되고 과가 되어 나의 깨침이 너의 깨침으로,
다시 너의 깨침이 더 많은 '우리의 깨침'으로 거듭 나는,
그리하여 일체 중생이 중중무진의 부처 세계로 함께 가는
'인과불이(因果不二)의 장엄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세계'입니다.
普賢合掌
출처: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