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믄밤 파반느
잦아드는 잔영이 서녘에서 환한 등을 끈다 초저녁 이랑에 물별이 하나 둘 음표를 그린다 폭설의 잔해가 쓰다만 편지처럼 구겨진 골목 바람 현이 굽은 악보를 탄금한다
자정을 알리는 마감 뉴스 장밋빛 입술에서 핀 말의 꽃에는 향기가 없다 적막 안에서는 늘 무뇌가 근친이다 어둠은 편견을 취한 적 없어 얼마나 다행인가 초췌함으로 탕진한 아[我]를 검은 휘장이 위장해 준다
계절은 살얼음 빗장뼈 아래 물길을 트느라 꽃잠을 반납한다 어둠이 길인 밤 고양이 울음이 야윈 달빛을 불쑥 내밀고 멀어진다 나를 베낀 먼 후일 낡은 페이지에 쓰일 체언은 어떤 속절없는 서간체로 남겨질까
적도를 넘는 남풍에 편승한 이승을 머물던 인연들, 되 짚어오는 종종걸음 꽃차례 지표 위 나날이 연둣빛 전언을 타전한다 종착지 없는 여정, 몸 마디 하나 툭 꺽어지는 백야가 어둠의 묵정밭을 써레질이다
감상후기
첫 행부터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다.
나의 객관적인 시론이지만 시를 쓸 때 혹은 시를 읽으려고 할 때 무심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좋은 시가 나오고 또한 좋은 시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를 내내 읽을 때마다 함부로 시를 쓰지 않는 다는 느낌과 시인의 내공이 묻어 나오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시어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미지의 시로 발표를 했지만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며 시를 읽는 묘미를 느껴본다.
당신들도 이 시를 읽으며 다른 공간의 세계로 들어 가 보기를 권한다.
[독자의 글]김학지
잔영(殘影)
최정신
누비이불 씌웠던 홑청 바투 조였던 행간이 느슨해졌다 진작 나달나달 헤진 인조홑청이었으나 질긴 연민으로 간수하던 까닭은 가을 봄 없이 빈집 같은 마음 채워주던 풍경 한 채, 복사꽃 핀 울 엄마 따스했던 귓불 물큰하고 깊은 골 큼큼한 젖 냄새 자근 쟁여진 한여름밤 꿈의 재단으로 데려가곤 했기 때문이다 발가숭이 숫구멍 깃들어 풋잠 감싸주던, 내 최초 물음에 답해 주던 요람 손수 신성의 무지개 엮어 한 땀 한 땀 누볐을 강보, 더는 견딜 수 없어 뜯어 낸다 육신의 서랍도 낡아 모서리 닳아지고 기억 속 단층은 마모되어 헐거워진다 집착으로 남겼던 더 이상 젊지 않을 것들 무명실 보풀 무채색 나비 난다 *애지(-枝) 휘청 휜다
*나무나 풀의 줄기에서 갈라져 벋은 가는 줄기.
詩 이전의 말을 나눠볼 일이다. 바기라 술좀 끊어야아,
먼저 누나에게 감사의 마음 전해본다. 죽음 일보 직전 생명을 영유케 했던 말과 말들, 잠못이루며 달래주던 처절한 마음을 잊어선 안될 일이다. 아니, 잊혀져서도 안될 일이다.
살면서 많은 류의 사람을 대면하다가 스스로 자신의 껍질을 벗겨가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그것을 대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님을.
위의 시는 부모님께 바치는 성찬의 마음이며 또한, 아무에게도 표내지 않았던 시인 자신에 대한 속울음이다.
홑청 안에서 보듬던 어머니의 맨발을 기억할 일이다. 감내하며 지었을 잔영의 시어 앞에서 눈물 훔치는 최정신을 본다. 휘청 휘는 달빛을 본다 시인을 본다.
*오륙년 전, 수렁에 허우적이던 이에게 숨결 주던 이름에 바침.
北魚
-최정신-
긴 행렬로 단죄 중인 너의 죄목은 자유다.
지느러미에 젖은 파도의 앙금까지 게워내고 할복割腹을 감내한 알몸을 눈밭에 얼린다 암갈빛 영혼까지 말리라는 보속을 받아 싸리줄로 포승졌던 빙의의 몸짓.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이 백태 낀 퀭한 눈자위가 나와 눈을 맞춘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가에서 처얼석 철석.
진부령을 넘어온 마파람을 타고 그의 흐느낌이 귓청에 닿는다.
오오츠크해 유빙을 따라 너울진 파랑을 넘나들던 그대 변명할 한 방울 핏기도 남아있지 않은 마지막 날 그 앞에 선 쪽배 같은 나.
붉게 취하지 않고는 못배겨 北향으로 魚를 두고 참이슬 한 잔 진설한다.
[위의 시를 처음 접할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한다. 시인이 노심초사 했을 시어의 선택에 같은 글쟁이로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이 돋는다. 글쟁이라 함은 말을 부리는 것이다. 시어 하나가 독자로 하여금 잘 숙성된 거름으로 다가선다면 성공한 시인 것이다. 모든 시는 사람 사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 안과 밖을 열쇠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 시인이다.
우리는 어쩌면 저 파랑을 헤쳐오다가 굳게 말라버린 북어였고 자유인이었다.] [박일]
배롱에게 길을 묻다
염천 불볕을 안단티노로 휘감는 천엽백화*(千葉百花), 사라락 낙화를 발등에 덮고 폭염처럼 만개중입니다 한 조각의 수피도 허욕이라는 듯 거침없이 벗어버린 나신 위 시울 저린 저 화무는 부끄러운 업장이 티끌만치도 없는 까닭입니다 피빛 문자로 꽃상여를 띄운 청매의 허공 관능적이라 칭하기 감히 불경스럽지만 그리 부른들 무연한 그대 나무랄리 만무해 마음을 합장해 길을 묻습니다 백일홍을 입 안에 넣어 알사탕처럼 굴려 무릉천지 배롱배롱 환생한 부처님 늑골에서 열반으로 피어 올린 꽃, 눈 흘기던 이름 거둬 혀 위에 올려 놓고 석 달 열흘 녹여 굴리면 절명의 꽃구름으로 뭉게뭉게 피어날까요 필생의 꽃부림으로 조락하는 수 천 수 만 천사의 날개 난분분 잘디잔 파편 아래 나는 올려다 보기도 면구한 수인(囚人)일 뿐입니다 텅, 비어 가볍고 적막한 눈 먼 바람의 시간 한 백일 겉과 속 하나 되어 정념의 각혈을 앓아나 보았던가요
*천개의 꽃잎을 가진 목백일홍
|
[배롱] 부처꽃 科, 낙엽 교목, 키가 5미터 정도 자라는, 몰랐는데.배웠습니다.
[텅, 비어 가볍고 적막한 눈 먼 바람의 시간 ]
가벼움과 적막함의 묘한 대비와 일치 어찌 보면 (홀로) 라는 개념에서 보면 일맥상통할 수 있지만, 달리 보면 (혼자) 라는 개념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단어의 묘한 배치는 독자로 하여금, 면구한 수인이 되게 하기도 하고, 정념의 각혈을 앓아본 적이 있는지? 되묻는 낡은 독백의 수사 같기도 한, 내가 목백일홍 자신일지........
목백일홍 에게는 우연한 타인인 내가 어쩌면 또 다른 客의 그저 시선의 하나에 불과할지 모를 我와 他의 교감을 느끼게 하는, 둘은 서로에게 길을 묻는다.
분명 살아온 길을 묻는 서로에게 살아갈 길을 묻는 아dl러니를 마음에 품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운 업장이 티끌만치도 없는 까닭입니다]
화자는 목백일홍의 업장이 없는 연유를 자신, 내면의 업장이 그리 많아, 그런 시선을 갖고 보는지도 모른다.
[그리 부른들 무연한 그대 나무랄리 만무해 마음을 합장해 길을 묻습니다/
관능이란 어찌 보면 불경스러운 호칭조차 감싸주고 포용해 줄 것 같은 목백일홍,
그래서, 화자는 그에게 길을 묻는다. 그라면 스스럼없는 답을 해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無言이라는 누구에게나 정답 일 수밖에 없는 답을.목백일홍은 해 주려고 그 자리에서 그댈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이 모든 감상의 백미는 제목에 있음을.... 부처꽃 科에 속하는 그 이름이 삶의 지난한 일들과 간난의 독백을 묻어주듯이......
최정신 시인님의 좋은 작품에 오독의 결례가 있었다면, 너른 양해와 질책을 기다리면서, 좋은 시를 감상하는 오후가 바이올린의 G 현 쯤에서 무너집니다.......애절하게.[김부회]
어떤 다비를 보았다/ 최정신
팔월이 무르익는 보도블럭 틈새 마지막 남은 습기를 거두는 안쓰러운 몸부림, 한 뼘도 안 되는 곳에 수풀 촉촉한 낙원을 두고 어떤 잘못 환산한 수치가 그를 다비의 길로 들어서게 했을까 영악한 계산을 끝내고도 잘 못 들어선 길에서 허덕이던 때가 있었다 그 선택이 벼랑 끝으로 가는 것임을 꽤 긴 길을 지나고서야 알았었다 선택이란 뼈 없는 미물에게도 결코 만만한 대상은 아니었나 보다 온몸으로 꽃상여를 둘러맨 개미떼들 길을 내어 만장을 펄럭인다 저 한 몸 보시가 꽃상여가 된 숨들에게 한 철 끼니로 새경은 치루는 셈이니, 빚 없이 가는 삶이 흔한 일이던가 흔적 없이 가벼워진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던가.
경기도 파주 출생 <문학세계> 詩부문으로 등단
<감상평>
다비!! 하면 승가의 고승의 다비식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구름떼로 모인 불자들 앞에서 사리를 남기고 영겁의 동안거에 들어가는 모습을 경외로 바라보던..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런 고정관념으로 시제를 보고, 과연 어떤 다비인가 궁금증으로 시작한 시선이 납작해진 아주 작은 보잘것 없는 다비식!!! 어쩌면 다비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미물의 행렬에 가슴에 짠한 눈물이 소름처럼 돋았습니다. 버려질 수 밖에 없고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된 무리들의 죽음이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최고의, 최상의 다비식이었음을 알게 되었거든요. 최고만 기억되고 1등만 기억되는 세상에 익숙해진, 우리의 정형화된 감정의 메마름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세상에서 많은 영광을 받으면 하늘에서 받을 영광이 없어진다..라는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단지 내게 주신 오늘의 세상에서는 겸손하라는 말씀이지요. 이름있고 유명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광영을 다 받았고 그렇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은 하늘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에 닿는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인님이 보신, 잘못된 삶으로 들어선 벼랑끝에 시달리고 애타던 삶, 그 애증의 삶 마감에서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작은 몸으로 받은 새경까지도 몽땅 보시로 내어놓고 가는 그 의식이 경건이 아니라 이웃과의 살가운 사랑과 정처럼 잔잔하게 스며듭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리없이 소문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선행이 따듯해지는 그 조용한 다비식이 빛으로 시선을 밝혀줌을 느꼈습니다. 좋은 시 주셔서 가슴이 행복 만땅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래기 / 최정신
보름나물을 하려고 시래기를 담근다 저도 뼈대가 있다는 듯 지난 가실을 빼앗긴 오기가 쉽게 꺽이지 않는다 우겨 넣어 하루를 달래니 고집을 접은 줄기마다 햇살과 바람 먹장구름 때론 지독한 열대야까지 진득한 가슴으로 품어 엄동설한을 묵힌 행적이 탱탱한 기억을 풀어 놓는다 풍경이 나부낀다 무꽃에 입 맞추고 남새밭 헤집던 나비 한 마리 봄빛 아래 천방지방 남실대던 날갯짓 순연한 날들이 보인다 남겨두고 온 초록이 가물거린다 들통에 물을 갈아 붓고 불을 켠다 빛바랜 색깔과 매캐한 향기가 초로(初老)의 친구처럼 낯설지 않다 온 전신을 적시는 습한 기운이 그렁하다 묵어서 쫄깃한 사랑으로 남은 시간을 건넌다
<감상> 시래기의 덕장은 처마밑입니다. 황태처럼 눈비 고스란히 맞지는 않았지만, 한해의 풍상을 은근하게 쪼이고 태어납니다. 버려질 땐 쓰레기 같았지만 새로운 상품가치를 스스로 마련해 놓는 질긴 운명으로 보여집니다 죽어서도 뼈대를 찾는다는 그 시선이 예사롭게 비쳐지지 않는 것은,그 맛과 그 향 제대로 알고 있는 깊이있는 식도락가의 평일 것입니다 제대로 삭아서 맛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통통하게 씹히는 맛을 즐거움 주려는 그 뼈대는 가히 전통이 깊습니다. 시래기 하면 어쩌면 어머니의 손맛과 통할 것입니다. 아니 어머니의 맛입니다. 그가 가져온 햇살, 바람, 먹장구름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정성에서 태어났으니까요. 우리의 오늘이 지난날 어머니의 손때와 걱정, 염려,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인님의 그려주신 시래기가 주름살 깊이 파인 어머니의 주름과 검버섯 넓게 핀 손등과 팔뚝과 어떻게 다른지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묵어서 쫄깃한 사랑!!! 그 핵심의 국물 한 숟가락 맛나게 먹습니다.[이종원]
겨울신전
최정신
무주無主 허공을 그리며 산정에 드네 상고머리 앳된 철부지 되어 실없이 메나리조로 나 오늘 해찰하네 정강이에 몇 낱 잔가지 품은 빈 등걸 위 거친 숨 내리니 노구를 누인 먼 산이 수묵진경으로 안겨 오네 인적 뜸한 골짜기 반짝이던 물소리 잦아드는데 참 가벼히 알몸이 알몸에 기대 혹한을 견디네 숲이 되라는 말씀, 지난함이 아니었네 두 팔 벌려 오래도록 벌 서고 싶었네 냉기가 벼린 솔바람 당겨드니 살쩍 소름 돋아 냉찬 전언이 명치끝에 차오르네 마음과 마음의 다툼으로 비등점보다 뜨겁게 자글거리던 진탕밭을 식혀주네 한사코 편해지려 이 숲에 담겨 응석 부리네 헛몸 한 채 바람의 계단을 밟아 구릉으로 오르는 하얀 소롯길에 덤불을 씻기는 햇살이 은색 비늘을 뿌리네 적막 털던 산 새 한 쌍, 성근 살림 쪼아 솔방울 숭어리 내려 주네 이도 그도 다 지극함이네
-최정신-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시마을> 동인 시집 [구상나무에게 듣다]
[감상] 이 계절을 더욱 실감나게 살려주는, 신선하다 못해 온몸이 짜릿한, 톡 쏘는 이 맛을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 평소 여행을 즐기고 사찰을 찾아 마음의 덕을 쌓고 있는 시인의 성정이 잘 드러난, 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 처럼 맑고 투명한 울림이 있는 시다. 메아리가 깊은 시다. 이 겨울 메마르고 갈증 난 가슴 있거든 겨울산에 올라가 보라. 산은 마음의 문을 열고 넉넉 히 그대를 품어 줄 것이니. 그대 겨울신전에 들게 될 것이니. 산은 산이라는 이름 자체로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또 베풀고 있다. 어머니 품 같은, 아니 저 거룩한 신전에 폭 안겨 하루쯤 잠들고 나면 철없던 마음 조금은 성숙해 지려나. 그렇게 세상에서 물든 온갖 번뇌며 죄 차가운 바람에 씻기우고 푸르게 푸르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 오늘도 겨울산이 전하는 차가운 말씀이 있으니, 그대 주저 말고 겨울산으로 향하라. 가거든 신전 앞에 꿇어 앉아 그 말씀 귀담아 들으라.(조경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