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에 서다
⊙ 산행코스 : 중산리매표소 → (5.2km) 경남 자연학습원 → (1.6km) 로터리대피소/법계사
→ (1.2km) 개선문 → (0.5km) 천왕샘(남강발원지) → (0.3km) 천왕봉
→ (1.7km) 장터목대피소 →(5.3km) 중산리매표소(15.8㎞)
⊙ 매 점 : 로터리대피소, 장터목대피소
♠ 중산리에서 경남 자연학습원으로 가는 포장길 ♠
2009. 2. 20. 05:30
지리산 산행을 한다고 혼자서 차를 몰고 집을 나서다.
2월 19일은 폭설로 지리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내소의 말을 듣고
조마조마 하는 마음을 달래본다.
마산을 지나니 고속도로가 안개로 뒤덮여 차가 거북이처럼 느리다.
함안 못미처 주위의 산들이 온통 하얀 가루로 수놓아져 장관이다.
지리산도 저렇겠지…
♠ 나무는 흰옷으로 갈아입고… ♠
중산리 매표소에서 입장에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니
혼자만의 산행이 심히 부담스러운지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08:40
기대에 부풀어 산행을 시작하니 눈발이 조금씩 날린다.
기분이 좋다.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다.
♠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대하며 ♠
포장된 길을 따라 혼자서 터덜터덜 경남 자연학습원으로 가니 하얀 눈이 반긴다.
아무도 없다. 혼자뿐이다.
자연학습원을 거쳐 법계사 쪽으로 들어서니
온통 눈으로 뒤덮여 산로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럿셀…
멧돼지로 짐작되는 산짐승 발자국도 여기저기 선명하게 나있어
스틱으로 툭툭 치며 소리를 내고,
새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목탁소리처럼 들려오다.
태양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구름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앞으로 맨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점점 느껴진다.
♠ 로타리대피소 ♠
11:30
출렁다리를 건너 광덕사교를 지나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하다.
이곳에서 에서 잠시 고픈 배를 채우고 나니
법계사 건너편 칼바위가 안개 속에서 뿌옇게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까지는 2km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눈 속에 안개 속에…♠
법계사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칼바람에 눈까지 내려 속도가 느려진다.
군데군데 바윗길에다 경사마저 가팔라져 숨이 턱밑에서 맴돈다.
잠시 바람과 눈이 멈추고 태양이 머리를 내미니 푸른 하늘이 너무 반갑다.
눈앞에 펼쳐지는 하얀 색깔들…
나무들이 모두 눈옷을 입고 있다.
♠ 구상나무들 ♠
구상나무는 눈으로 만든 모자까지 쓰고 있고…
눈꽃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 끄집어내어 셔터를 누르려니
다시 하늘은 어두워지고 마는구나.
천왕봉은 날리는 눈발 때문에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고…
♠ 개선문을 지나고 ♠
♠ 개선문 안내판 ♠
개선문을 지나고 전망바위를 지난다.
바람은 강풍으로 변하고 기온마저 뚝 떨어진다.
너무 춥다.
땀이 나서 젖었던 모자가 얼어 철모처럼 변했다.
♠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안내판은 비스듬하게 기울고…♠
천왕샘에 이르니 목이 말라온다.
물맛을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움만 더하고…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이며,
이곳에서 솟아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흘러
경호강 발원지인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 저 위 어디쯤이 정상일텐데…♠
이제 천왕봉까지는 300m.
안개 속에 묻힌 저 위 어디쯤이 정상인 것 같은데…
바위로 된 비탈길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산위에서 아래로 부는 맞바람을 맞으며 오르려니 숨이 턱턱 막힌다.
눈을 뜨기도 어려워
그냥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디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 지리산 천왕봉 ♠
드디어 정상이다.
천왕봉. 1,915m
정상에는 세 사람만이 있을 뿐이고,
내리는 눈과 안개와 바람으로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고도에 홀로 있는 기분이다.
정말 매서운 추위다.
물병의 물은 꽁꽁 얼어 마실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손마저 얼고 삭풍으로 배낭 속에 있는 뜨거운 물을 꺼내 마시기도 쉽지 않으니 어쩌랴.
장터목대피소로 발길을 옮긴다.
천왕봉에 마음 한 방울 떨어뜨려 놓고서…
♠ 겨울 친구인 눈과 함께 지리산을 지키는 통천문 ♠
주목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땅으로 향해 있고,
바람에 울고 있는 고사목들을 지나 통천문에 다다르다.
장터목대피소까지는 이제 1.2km가 남았고…
♠ 바람은 계단 밑에 눈구릉을 만들어 놓다 ♠
강풍 때문에 계단 밑에는 눈으로 만들어진 구릉이 곳곳에 있고,
바다 속의 산호초를 옮겨온 것 같은 눈꽃나무들과
솜이불을 덮은 것 같은 주목나무 가지가 절경을 이루고 있지만,
카메라 가방 속까지 눈이 들어가는 바람에 카메라가 눈 범벅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필터를 닦아 봐도 소용이 없다.
이런 절경을 놓쳐야 되다니…
너무 아쉽다.
제석봉에 도착하여 전망대에 서 보았으나 하염없이 내리는 눈뿐이다.
♠ 천년을 건너뛰려 서 있는 주목 ♠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니 산꾼들 여남은 명이 반긴다.
컵라면 끓이는 냄새가 너무 좋다.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잠시 추위를 녹여본다.
옆에 있는 어느 분이
내일 아침에 천왕봉을 가보자고 권유하는 것을 뿌리치고 하산을 서두른다.
장터목대피소에의 한 컷 찰칵은 결국 포기하다.
강풍과 추위와 눈은 여전히 거칠 줄을 모르고…
♠ 아름다움에 마냥 취해보고 ♠
14:30
장터목대피소에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가파른 내리막길.
눈 속에 파묻혀 산로를 구분할 수가 없어 더듬듯이 갈 길을 재촉한다.
이제 바람과 눈은 잦아들어 시야는 확보되었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여 맥이 풀린 탓인지
터덜터덜 마냥 걷는다.
명성교를 지나 유암폭포에 다다르다.
추위 속에서도 유암폭포는 가는 물줄기를 흘러내리고 있다.
잠시 시선을 집중한다.
아! 그 아름다움에 내 마음을 놓아두고 싶어지다.
♠ 눈으로 된 구릉 ♠
끝없이 이어지는 눈 속에 파묻힌 미끄러운 돌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홈바위교를 거쳐 칼바위 갈림길을 지나 중산리로 향한다.
이제 질펀한 맨 땅이 더러 보이고 하늘은 어느새 개어있다.
17:30 중산리에 도착하여 오늘의 산행을 마감하다.
다시 부산으로…
♠ 눈으로 키가 작아진 듯한 주목 ♠
올 겨울 눈꽃을 찍으려는 무모하리만큼 집념어린 꿈은
마음에만 가득히 눈꽃을 담고서 조용히 접으련다.
내 마음은 녹아내린다.
봄눈 녹듯이…
♠ 눈발과 강풍으로 카메라는 이렇게 되다 ♠
왕복 350km 운전에
15.8km 8시간 50분의 산행
가슴앓이 / 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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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년전 친구랑 새벽4시50분에 모자에 후레쉬달고 올라가던 기억이 새롭다 설경이 환상적이네 구경 잘하고 갑니대이.
옛날에는 지리산 천왕봉에 1년에 한번씩은 다녀 왔는데 지금은 등산하기가 어려워 지는구나 정말 멋진 시진이구나 항상 건강하고 고맙구나
대단하다! 그리고 장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