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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뻐근한 건 40리가 넘는 길을 무대뽀로 걸은 탓이다.
그래도 새해 첫산행을 호미곶에서 마무리한다는 건 상당히 유의미(有意味)할 것이라고 봤다.
비록 지루한 임도를 늘어지게 걸었지만 어차피 길이란 그러한 것을...
미켈란젤로동기라는 말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명령으로 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릴 때의 일이다.
미켈란젤로는 무려 4년 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정의 모서리 부분을 정성을 다해 그려 나가는데,
한 친구가 "이보게 친구, 그렇게 구석진 곳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인물 하나를 그려 넣으려고 그 고생을 하는가?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그거야 내가 알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미켈란젤로처럼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미켈란젤로 동기(Michelangelo Motive)'라고 한다.
새해 첫산행을 궂이 호미곶에서 하려한 건 이러한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
운동이란 관점에서 살펴보면 짧은 시간에 농축된 에너지를 쓴 게 아니라 에너지를 분산시켰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걸은 호미지맥 40리길은 운동효과를 급작스럽게 끌어올린 게 아니라 천천히 끌어올리면서 지구력을 극대화시켰다는 이야기.
또하나 자기체면을 건다.
호미(虎尾)는 호랑이의 꼬리를 일컫는다.
백수의 제왕인 호랑이에게 꼬리는 氣가 모아져 있는 곳.
먹이를 좇아 전력을 다할 때 꼬리는 방향타를 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곳이다.
새해 첫산행을 그 호랑이 꼬리에서 맺었으니 개인은 물론이고 한마음산악회도 순항하리라는 건 떼논 당상이다.
또한 호미곶(虎尾串)은 우리나라에서 정동진,간절곶과 함께 해가 제일 빨리 뜨는 곳으로 알려진 곳.
또다른 이름인 장기반도(장기곶 長鬐串)가 의미하듯 긴 말갈기같은 생김새로 동해안으로 돌출돼있으니 해맞이 명소로선 딱이다.
해그름이 되면서 구룡포(九龍浦) 아홉마리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나즈막한 구릉성산지를 휘어돌아 동해에 잠기더니 이윽고 승천을 하더라.
우리가 구룡포 호미(虎尾)에서 고개를 쭈욱 내밀고 동해바다를 흠모한 건 이런 희망을 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 클릭하면 큰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호미지맥(虎尾枝脈)은 낙동정맥 백운산의 셋째 봉(일명;삼강봉 845m)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서 천마산(620.5m) 치술령(致述嶺766.9m)을 지나 북동진하여
포항의 호미곶(虎尾串)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액 98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는 형산강(兄山江)의 남쪽 울타리 역할을 하기에 강줄기의 분류체계를 따른다면 형남기맥(兄南岐脈)이라 불러야 하지만 이 산줄기가 끝나는 곳이
명소인 호미곶인 관계로 땅끝기맥과 같이 지역의 지명도를 살려 호미지맥(虎尾枝脈)이라 부른다.
백운산분기봉 삼강봉(三江峰 845m)-천마산(天馬山 620.5m)-치술령(致述嶺766.9m)-토함산(吐含山 745.1m)-삼봉산(三峰山 290.3m)-조항산(鳥項山 245m)-금오산(金鰲山 230.4m)-공개산(孔開山 213.8m)-우물재산(176m)-고금산(120m)으로 그중 백운산 분기봉 삼강봉(845m)이 최고봉이 된다
구룡포초등학교 오른쪽 ,하산외과의원'입구 한켠에 버스를 댔다. (929번 구도로는 왕복 2차선)
학교 울타리에 안내된 '읍민복지회관,읍보건지소,시립화장장'안내판.
구룡포초등학교 우측 하산외과 골목이 우리가 진입할 방향으로 마주 보이는 낮은 산자락을 우측으로 끼고 곧장 들어가야 한다.
하산외과 앞 우측 담벽에 '말목장성등산로'푯말이 붙어있다.
읍민복지회관 좌측 뒤로 돌아가는데, 갈림길 전봇대 볼록거울에 역시 '말목장성등산로'푯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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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분 만에 '말목장성등산로'안내판과 첫번째 들머리가 나온다. 이 코스는 말그대로 '말목장성등산로'이다.
이 염창골(구룡포길 57번길)에는 이렇게 헷갈리는 이름의 들머리가 세군데가 있다.
첫번째가 이곳 '말목장성등산로'이고,두번째가 우리가 진입한 그냥 '등산로' 마지막 세번째 들머리가 국제신문에서 안내한 '말목장성탐방로'들머리이다.
조선시대 국영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니 지리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입구가 되는 구룡포돌문(石門)에서 말의 출입을 통제하던 문지기 두 명이 있었다고 하니 그들은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인 셈.
그 길을 '말 목장성 옛길'이란 이름으로,또 '말 목장성 탐방로'라는 이름으로 조성돼 있다고...
첫번째 들머리인 '말목장성 옛길'들머리를 지나치면서 우측으로 올려다보니 산불조심 깃발아래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곧장 염창골안으로 계속 진입을 한다. ('목장성 탐방로 700m' 안내푯말이 붙어있다.)
좌로 크게 휘어지는 토담가든에 닿았다.
등산로는 토담가든 휀스를 우로 돌아 산으로 붙도록 뚫려있다.
이정표엔 '목장성탐방로 350m'라는 안내가 붙어있었지만 우리는 그만 단순 '등산로'라는 안내가 가리키는 토담가든 휀스를 따라 올라가고 말았다.
그건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일행들이 응암산을 놓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국제신문 가이드를 따라 가려면 이 곳에서 350m를 더 진행하여 작은 다리를 건너며 폐가와 밭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토담가든 우측 담벼락을 타고 점선을 따라 올랐다. 현위치에서 350m를 더 계곡 끝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
작은 능선에 올라서니 아까 지났던 목장성 옛길에서 올라오는 길(구룡포초교)과 만난다.
이제부터 각종 이정표는 오히려 헷갈릴 정도로 많이 붙어있다.
돌아보니 '목장성 옛길'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동해바다의 지평이 열리고 있다.
잘 다듬어진 체육공원을 지나면...
각종 안내판이 난무하는 지점을 지나고...
육각정자(구룡정 九龍亭)가 있는 곳에 닿는다.
구룡정 뒤로돌아 응암산을 바라보며 살짝 당겨 본다. 이 낮은 구릉같은 산기슭 기똥찬 명당자리에 응암산 박바위가 서있다.
그냥 산에있는 정자이지만 내부 천정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원목의 결(結)과 구조가 그냥 허투로 지은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솔숲으로 이루어진 평이한 길을 가다가...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 음암산을 바라본다.
좌측의 도드라진 바위가 박바위로 박(바가지)을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임도를 따라가다 좌측 이정표를 확인하여야만 응암산을 갈 수 있지만...
산길로 갈아타면 임도에 내려서서 이정표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등로 중간에 세워진 사각정자는 그 기둥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천정의 세부적 모습은 어느 古건축물보다도 하나도 모자라지 않는다.
거기다 지붕은 너와지붕으로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치있고 고풍스런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을 올라선 이 길은 결국 응암산으로 가려니 하였으나 자꾸만 우로 빠지더니 응암산과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주례 오사장님과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 응암산을 갔다오기로 하였다.
되돌아 가면서 보는'정자 박바위'를 찾아가는 이정표
임도에서 박바위로 진입하는 이정표.
박바위 안내문에는 박(바가지)과 관련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해를 향하여 우뚝 솟아있는 박바위의 위용.
바위 봉우리인 응암산엔 겨울바람이 세차다.
유일하게 정상석이 있는 응암산(鷹巖山)은 이름 그대로 매(鷹)바위(巖)를 일컫는다.
매가 사냥을 하기 위해선 먹잇감을 살필 수 있는 조망이 좋은 돌출된 곳에서 사냥감을 노린다.
응암산 박바위는 딱 그런 곳이다.
세찬 동해바람을 뚫고 박바위 꼭대기로 올라본다.
바위 꼭대기엔 금정산의 금정처럼 이렇게 웅덩이가 파여져 있는데,여간 갈수기가 아니면 마르지 않아 매가 목을 축이기도 한다고 한다.
* 사진엔 바위 꼭대기가 제법 너르게 보이지만 불과 한 평이 될까말까한 작은 공간이다.
내려와서 올려다 보는 박바위
박바위 아래엔 누군가 향불을 피워놓고 기도를 한 듯 타다 만 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은 내가 한마리의 매가 되어서 매의 눈으로 산하를 살피기로 한다.
남서쪽으로 호미기맥이 달려온 곳인 경주의 토함산과 함월산이 있을 것.
야트막한 구릉성 산지인 응암산에서 매의 눈으로 1,000m대의 고도감을 느낀다.
응암산의 육각정자와 이정표.
목장성 옛길은...
돌울타리(석책 石柵)를 따라 이어져 있다.
돌울타리는 말을 가둬놓는 울타리.
전망대와 봉수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전망대를 다녀와서 봉수대로 가야한다.
전망대에선 다시 트이는 조망으로 가슴이 뻥 뚫린다.
1,000m가 넘는 산첩첩(山疊疊)에서 누릴 수 있는 150m의 호강이 감히 이런 것.
산허리를 감도는 장기 목장성 돌울타리 위로 봉수대가 바라보인다.
임도를 가로질러...
장기목장성 안내문.
봉수대를 향한다.
말 조형물은 아빠말과 엄마말 과 세끼말.
그리고 사방 조망이 트이는 이 2층 망루는...
마봉루(馬烽樓)이다.
말 가족 앞으로 봉수대가 흔적만 남아 있다.
조망을 즐기는 일행들.
그러나 조망은 이제 여기까지다.
<상 략>
해돋이 기다리다 문득
회오리 치며 비상하는 갈매기떼들을
보는 숙취의 구룡포 앞바다
오늘 아침은 또 속이 쓰리다
<상략>
해풍이 얼마나 거칠었으면 구룡포
올망졸망 작은 거처들을 열매로 매달고
어판장 왁자한 웃음들 꽃으로 피웠을까
켜지지 않은 집어등 초라한 배경 위에
구룡포 잠시 머물다 떠난
사람들 아름다워 목이 메었던 것이다 -김윤배-
발산봉수대는 그 흔적만 남아있다.
발산봉수대는 조선 중기에 신설되어 조선 후기까지 존속되었다가 고종31년에 철폐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봉수대처럼 재건될 날이 있을 것이다.
되내려와서 만난 삼거리에선...
삼거리에서의 안내도.
호미곶해맞이광장 11.9km를 따른다.
지루한 임도를 내내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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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해파랑길'의 이정표가 함께 걸려있다.
해파랑길은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진 길로서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장장 770km의 걷기 길을 말한다.
해파랑길 이정표
50여 분을 내내 임도를 걷다가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명월산을 향한다.
명월산은 사유지인가?
2층 초소엔 산불아저씨가 열근을 하고 계신다.
준 희님의 명월산 푯말
명월산을 내려와 또 걷는다.
호미지맥 끝자락은 우리가 걷기 전에 임도가 먼저 앞서 가고 있었다.
임도가 앞서간 삼거리에서...
안내판을 일별하고...
아직 갈 길이 먼 호미곶으로 운동에너지를 분산시키며 걷는다.
'ㅓ'자 갈림길의 좌측으론 호미지맥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국제신문 가이드는 산행거리를 단축하기 위하여 애를 쓴 흔적이 역역하다. (들머리와 날머리에서...)
호미곶으로 가기위해선 좌측 호미지맥으로 올라서서 지맥을 타고 호미곶으로 가도록 했으면 좋았겠다.
이 안내판의 호미곶(2.7km)과...
10분 후 이 안내판의 호미곶(4.6km)은 아마도 다른 곳인갑다.ㅠㅠ
산허리를 뱀이 기어가듯 비비 꼬아놓더니 이제사 동호 요양실버타운이 보인다.
산중턱으로 비비 꼬인 자연훼손길이 보인다.
동호 된장을 담아서 판매도 하는 모양이다.
동호사엔 달랑 당우 한 채와 허연 배를 드러낸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전부
동호요양실버타운 입구의 안내판과 ...
해파랑길 이정표
대보저수지를 휘돌아...
호미곶과 대보정류장 가는 'ㅏ'자 갈림길에 닿았다. 우리는 호미곶으로 가기 위하여 비석 우측으로 직진을 해야한다.
호미기맥 끝자락엔 이렇게 '감사나눔 둘레길'이 안내되어 있다.
비석은 별로 오래되지 않은 '성농하병락송덕비'
또 감사나눔 둘레길 안내판
좌로 호미기맥의 끝자락에 군부대인 듯 시설물이 있다.
논 한 귀퉁이에 버려진 듯 나뒹구는 아무렇게나 생긴 바위 하나. 고인돌이다.
바위 위에 선명하게 구멍이 파인 아홉개의 성혈(性穴)이 보인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있는 '새천년 기념관'옆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대어 있다.
거대한 비석은 아까 보았던 동호사(東虎寺) 표석이다. 사찰보다 표석이 더 우람하다.
호미기맥의 끝자락인 고금산에 보이는 시설물
호미지맥은 이제 동해바다에 살을 섞는다.
10여분 산행마감시간을 남겨놓고 부랴부랴 광장을 파고든다. 등대박물관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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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최동단을 측정하기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번이나 답사 측정 한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
호랑이 꼬리부분 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육당 최남은 백두산호랑이가 연해주를 할퀴고 있는 형상으로 한반도를 묘사하면서 이곳을 '호랑이꼬리'라고 이름하였다.
호미곶등대는 조선 고종 7년(1903)에 건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포항시 시도기념물 제39호이다.
등대를 바라보고 있는 '호미곶 호랑이 상'
해를 등진 등대.
'상생의 손'이라 이름 지어진 한 손이 물속에서 불쑥 손을 내민다.
시린 겨울바다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하얀 포말.
새해를 맞아 여행객들의 발길은 쉼이 없다.
등대박물관은 무료입장이고...
바다에 있는 손과 마주 보는 다른 한 손.
상생(相生)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말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생각난다. 타인의 이익이 결국엔 곧 나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해그름의 광장엔 괜히 바쁜 나의 발걸음만 있다.
그러면서도 박물관 견학은 물론 연오랑세오녀탑과 국내 최대 가마솥을 보지 못했으니...
차로 귀환하여 구룡포의 특산물인 과메기와 소주 한 잔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하고...
동해바다 구룡포에서 새해 희망을 주섬주섬 염원한다.
구룡포
온 밤을 걸어서 왔다.
도대체 입 다문 구룡포
아무리 몸부림치며 일어서려 해도
파도는 파도일 뿐
돌아누운 방파제 앞에서 서러운 것을
어디 한두 번 태풍이 인다고
쉬 폐항이 될까마는
못다한 속울음
뭍으로 뭍으로 달려와 통곡해도
도대체 구룡포는 말이 없다
깜박등 등대 하나 켜두고
먼바다 오징어배를 기다리며
소주를 마시는 구룡포
갈매기 섬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제 스스로 한 점 섬이 되고픈 것일까
해돋이 기다리다 문득
회오리 치며 비상하는 갈매기떼들을
보는 숙취의 구룡포 앞바다
오늘 아침은 또 속이 쓰리다
<이 원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