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는 수운 대신사(최제우)가 경주 용담정에서 수련에 열중하던 37세 때 경신년(1860) 4월 5일(천일기념일) 한울님의 계시로 창도하였습니다. 이 때 수운은 갑자기 몸과 마음이 몹시 떨리는데 병이라 해도 증세를 알아낼 수 없고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한울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고 한다."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치라."
"나의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천지는 안다 하여도 귀신은 알지 못하였나니 귀신이라 함도 나니라. 너에게 무궁 무궁의 도를 내리노니 갈고 닦고 다듬어서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세상에 펴면 너 또한 장생하여 천하게 빛나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수운이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정신에 기운이 들고 마음에 새 생각이 일어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 속에서 밝고 밝은 광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수운 스스로 무극대도의 이치를 밝히고 온 누리에 한울님의 덕을 펼 수 있는 큰 법(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주문(呪文)을 짓고 용담가를 비롯한 [용담유사]의 각 가사와 포덕문을 비롯한 [동경대전]의 각 경전 내용을 저술하셨으며 포덕 2년(1861)년 6월부터는 널리 세상사람들에게 동학을 포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덕이 시작되자 날로 입도 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입도 하는 성황을 이루자 이를 음해하고 시기 중상하며 심지어 서학(西學=天主敎)으로 지목하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대신사는 잠시동안 지목을 피하여 11월에는 고향을 떠나 여러 날만에 전라도 남원에 이르러 은적암에서 도를 닦는 한편 앞서 말한 경전 중의 여러 편을 지었습니다.
은적암에서 새해를 맞고, 1862년에 다시 경주로 돌아와 그해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는 더욱 많은 포덕을 하였는데 다시금 동학의 교도가 날로 늘어나자 관에서는 동학을 이단시하여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이 해 섣달에 수운은 다시 경주를 떠나 경상북도의 영해, 흥덕 등지를 순방하고 천도교의 조직의 기초가 되는 접주제를 시행하여 조직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포덕한 지 3년째 되던 그 이듬해(1863년) 8월 14일에 수제자인 해월 최시형(崔時亨)에게 도통(道統)을 전수하니 이로부터 해월이 동학의 제2세 교조가 되고 동학은 해월을 정점으로 하여 접주들을 통해 각지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 후 수운은 1863년 12월 10일에 관에 체포당하여 다음해인 포덕5(1864)년 3월 10일 대구 장대에서 좌도난정률로 참수형을 당하여 순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