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망, 인간의 소망 - 2010년 추석의 의미
조응태(선문대학교 교수)
<훈독 말씀>
“천지 궤도는 내가 졸고 있어도 변함이 없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하면 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목적에 직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 욕망의 궁극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선과 행복과 사랑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음식을 대해서도 먼저 하늘을 생각하고, 다음은 땅을 생각하고, 그 다음은 인류를 생각하고 나서 음식을 먹는다.” “천주지원 효진(天宙之願 孝進) 중생지원 충진(衆生之願 忠進)”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 화합하는 곳에 나타나신다. 복귀섭리의 목적도 화합되지 못한 피조세계에 화합할 수 있는 중심을 세워서 하늘의 사랑의 범위를 넓혀서 그 동안 맺혀진 한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에 충과 효를 다하라. 죽은 후에 충효를 한다고 푸짐한 상을 차리는 것은 간사한 짓이다.”(『축복가정과 이상천국』, 96, 97, 99, 104, 106, 225쪽)
“하나님께서는 억센 손으로 적을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갖가지 표적과 기적을 행하시어 적을 두려워 떨게 하시고 우리를 이집트로부터 구출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햇곡식을 거두어 들여서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너희들은 온갖 좋은 것을 먹으며 즐겨라. 너희 뿐만 아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도 함께 즐기도록 하여라. (신명기 26:8-11)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0년도 한가위, 중추절, 추석을 맞이하여서 <하나님의 소망, 인간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여러분이 복되고 흥겨운 명절을 맞이하시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유명 여류 시인이 쓴 시 한편을 낭독하겠습니다.
‘포도원 처녀들’
다문화 가정에 가서
포도농사를 지을 때
나비도 춤추고 꿀벌도 즐거워
땀 흘려 기른 베트남 포도송이들
처녀들은 잘 익은 포도냄새가 난다
집집마다 포도가 팔려 갈 때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다시 생각이 나겠지
환하고 밝은 포도축제를 위하여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모르지만
포도송이 되어 잘 살자
오래 오래 잘 살자.
(빈명숙, 『호랑나비 얼굴』 제5시집, 대전: 문경출판사, 2010. p.111.)
이 시는 베트남에서 한국 농촌으로 시집 온 다문화가정(국제축복가정)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비록 농사가 낯설지만 정성을 다하여 남편과 함께 포도를 재배하였고, 시장에 내다 팔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서 기록한 행복한 시입니다. 이 시는 다문화가정 여성을 예찬하는 시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대한 감사시이기도 합니다.
베트남 아가씨가 문화가 다른 한국 남편과 같이 축복을 받아서 봄이 되면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철에 포도나무 가지 손질을 하면서, 포도나무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여 재배하여서, 가을이 되면 아름답고 맛있게 무르익은 포도를 시장에 내다 팝니다. 농부는 자식처럼 잘 기른 포도를 팔면서 한편으로 돈을 마련하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슴에는 마치 자기의 살점을 도려내는 듯한 섭섭함과 아쉬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농부 여성의 아름다운 삶을 이 시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농부의 심정을 모른 채 돈으로 쉽게 과일을 구입합니다만, 농부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절에 가면 스님이나 불제자(佛弟子)들이 식사(공양(供養))를 할 적에 먼저 곡식을 재배한 이름을 모르는 농부들과 유통단계에서 노동을 한 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공양을 취하는 자신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몸 속에 엔돌핀이 솟아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가을이 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면서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농부는 하나님과 조상님들과 땅에게 감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됩니다. 베트남 출생이면서 한국 남편을 만나서 아름답고 행복한 농촌 생활을 꾸미는 국제축복가정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이 이 시에서도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추석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아주 기분이 좋은 명절입니다. 잘 익은 곡식들과 과일들을 큰 상에 차려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제사를 잘 지내고 나서는 가족 전체가 음식을 함께 맛있게 먹습니다. 함께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들면서 다 같이 행복한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1년 365일 더도 말고 적게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추석(秋夕)은 다른 말로 ‘한가위, 중추, 중추절, 가배일’로 부르는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입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하나님과 조상들과 땅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추석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전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추석이 되면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민족대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년 추석을 맞이하여서 정부에서는 교통대란을 막기 위하여 공사 중인 각종 도로를 좀 더 일찍 개통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흥겹고 유명한 ‘추석’에 대한 어원의 유래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삼국시대 궁중 기원설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六部)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王女)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기망(旣望;16일)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 편에서 이긴 편에 햇곡식과 햇과일로서 장만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져옵니다. 가(嘉)는 ‘아름답다, 훌륭하다, 뛰어나다, 기쁘다’는 의미를 갖고 있고, 배(俳)는 ‘장난, 광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배라는 말은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한’이란 의미는 ‘아주 크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한가위’는 ‘아주 크게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기원설로는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승려 원인(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산둥[山東(산동)]지방에 사는 신라인들이 발해와 싸워 이긴 8월 15일을 명절로 삼아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歌舞)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석에는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으며 새 옷이나 깨끗이 손질된 옷을 입는데 이것을 ‘추석빔’이라고 합니다.
셋째, ‘가운데 날’이라는 어원이 있습니다.
가배(嘉俳)는 원래 순우리말로 그 옛 어형은 ‘’였고, 이것을 분철하면 ‘(中央)+(日)’가 되며, 그래서 가배는 ‘가운뎃 날’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1년을 음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한다면, 가을에 해당하는 것은 음력으로 7월, 8월, 9월인데, 8월 15일은 바로 그 중간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결실기의 중간에 해당하는 날에 하늘과 땅과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가족들끼리 한데 모여서 축제를 즐기는 날입니다.
‘가위’라는 이름이 또한 달리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는데, 이 단어 역시 ‘가을 계절의 중간에 있는 명절’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을 계절 기간이 음력으로 7월 8월 9월인데, 이 세달을 삼추(三秋)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있는 8월을 ‘가운데 가을’이라는 의미로 중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이 추석, 한가위, 중추절 등의 단어에 대한 기원이 다양한데, 이 날이 나중에 유교 문화와 결합되면서 하나님과 조상님과 땅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면서 가족들의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갖는 날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기원이 어떠하든, 문화도 유기체처럼 <생성-성장과 변화-결실>의 단계를 거치게 마련인 바, 높고 푸른 가을 하늘아래에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바라보면서 함께 하나님과 조상님과 땅에 대해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밤이 되면 두둥실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면서 축제를 만끽하는 날이 바로 한가위, 추석 명절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천지 만물이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존재든지 존재하는 목적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원래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사람이나 만물은 그 고유한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물은 그 자체로써 창조주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존재 궤도를 탈선하지 않고 잘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재 목적을 잘 드러냅니다.
예로써, 가을이 되면 각종 과일들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서 시장에 나오게 됩니다. 각종 오곡(五穀)백과(百果)들은 봄이 되면 씨앗을 피우고, 여름이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이 되면 맛있고 알차고 보기에도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다양한 곡식과 과일들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과 멋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위의 훈독 말씀에 “천지 궤도는 내가 졸고 있어도 변함이 없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지 만물은 수억 년 전부터 지금의 모습과 같이 그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성장과 결실의 주기를 따라왔습니다. 광물질과 식물과 동물 등은 태초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재 궤도를 따라서 살면서 존재 목적을 구현하여서 바야흐로 이 가을이 되면 그들이 갖고 있는 온갖 아름답고 멋진 자태를 뽐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으로 계십니다.
모든 만물들도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 질서를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잘 만들면서 아름답고 멋있고 풍성하게 존재합니다. 광물질과 식물과 동물 등의 만물들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재 목적과 정확하게 일치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존재 목적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부여하신 창조 목적과 일치하여야 하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한 채 타락과 전쟁과 슬픔과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위의 훈독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목적에 직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 욕망의 궁극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선과 행복과 사랑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일치되는 삶을 살 때에야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생애를 지낼 수 있다는 가르침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추석 명절은 하나님의 소망과 만물의 소망과 생존하고 있는 인간의 소망과 하늘나라로 가신 조상을 비롯한 영인체들의 소망이 한데 일치하는 축제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을 모신 추석이야말로 진정한 명절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아는 사람이 참인간, 참자녀로서 추석의 참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인간의 소망이 일치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소망과 인간의 소망이 일치하지 못하여 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태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인간은 자꾸만 하나님이 아닌 사탄편 세력에서 소망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한탄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하고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대자연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풍성하게 무르익은 오곡백과들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감사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시는 가운데 가족 친지들이 한데 모여서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뭐 어떤 거창한 무엇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자식된 인간들이 하나님을 부모로 섬기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행복한 표정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찬미와 경배를 올리면서 더불어 먹고 마시는 흥겨운 시간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간단한 진리가 없습니다. 이 보다 더 명쾌한 인생의 비밀이 없습니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쾌한 인생숨겨져 온 천비(天秘)가 바로 하나님의 소망과 인간의 소망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쉽다면 이보다 더 쉬운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다면 이 보다 더 어려운 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이성과 감성이 닫혀 있고, 오관(五官)의 기능이 사탄을 향하여 열려 있어서 <하나님을 모시면서 가족들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는 추석>의 개념이 타락성을 가진 인간들에게 인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뚜껑이 열려 있는 그릇에 물을 부으면 금방 물이 채워지지만, 뚜껑이 닫혀 있는 그릇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이 담겨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무지에 갇혀 있는 이에게는 아무리 진리와 축복을 주어도 그것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무릇 이 땅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만 대하는 절대적인 효자효녀가 되고 충신 열사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거대하고 장엄하고 신비롭고 무한한 대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대우주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소망은 효와 충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훈독 말씀에 “천주지원 효진(天宙之願 孝進) 중생지원 충진(衆生之願 忠進)”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효와 충은 하나님의 소망이요 인간의 소망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우주 안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흉내를 내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지극히 적은 분야이지만, 만물을 조작해보고 변화시켜보고 바꾸어보면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한 지극한 효도를 하는 것과 충신열사의 자세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것입니다.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주인공으로 살았던 아담과 해와는 잘 먹과 잘 사는 웰빙을 추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효와 충의 자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보다도 효와 충의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효와 충은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지만, 권리 이전에 의무로서 부과된 효와 충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사상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땅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사상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사상을 갖고 사는 사람은 가족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사상을 갖고 사는 사람은 삶을 크게 볼 줄 알고, 긍정적으로 살게 되며, 자연스럽게 웰빙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효의 사상을 갖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망을 자기와 가족의 소망으로 여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훈독 말씀을 다시 확인해 봅시다.
“선한 사람은 음식을 대해서도 먼저 하늘을 생각하고, 다음은 땅을 생각하고, 그 다음은 인류를 생각하고 나서 음식을 먹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 화합하는 곳에 나타나신다. 복귀섭리의 목적도 화합되지 못한 피조세계에 화합할 수 있는 중심을 세워서 하늘의 사랑의 범위를 넓혀서 그 동안 맺혀진 한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상님께 감사하고, 땅에 대해 감사를 하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온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는 잔치 분위기를 만드는 그러한 자리는 지극히 복된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복을 주실 것이고, 조상님들이 찾아오셔서 복을 주실 것이고,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찾아와서 복을 줄 것입니다. 복된 삶의 뿌리는 하나님과 조상님과 부모님께 충효를 다하고, 만물에 대해서도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선포에 근거하여서 명절날에 제사상을 차리고 하나님과 조상님들에게 감사하는 표현으로써 절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소치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늘과 땅과 물 속에 있는 어떤 존재를 형상화(우상(偶像))해 놓고 그 앞에서 절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 하나님과 조상에 대한 공경하는 태도로서 행하는 절하는 행위마저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십계명의 전반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절하지 말라’는 구절만 떼어서 인용하면서 설날 때나 추석 때에 절하는 것은 우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참 어리석고 불쌍한 행위요 무지의 소치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우상은 동식물 모양을 본 딴 것으로써, 히브리어로 ‘페셀’(לספ)입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도 신이고, 개구리도 신이고 뱀도 신으로 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종교문화를 개혁시키기 위하여 모세는 참문화의 모습을 소개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절하는 것, 경배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권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배를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절하면서 극진히 모시는 마음, 충효의 자세를 가졌기에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세계 국가들 중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이스라엘백성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유 중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면서 충효의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훈독 본문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명절을 맞이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억센 손으로 적을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갖가지 표적과 기적을 행하시어 적을 두려워 떨게 하시고 우리를 이집트로부터 구출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햇곡식을 거두어 들여서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너희들은 온갖 좋은 것을 먹으며 즐겨라. 너희 뿐만 아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인(다문화가정)들도 함께 즐기도록 하여라. (신명기 26:8-11, 공동번역)
이 말씀에는 곡식을 갖추고 제단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라 그리고 나서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하여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웨하쉐타하위타 리프네 야훼’(הוהי ינפל תיוחתשהו)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라(절을 하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라’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려라’라는 번역은 절하는 것을 우상시하고 배척한 잘못된 선교 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세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에 있어서 절하는 문화, 경배드리는 문화는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적에도 동방박사들이 멀리서 방문하여서 경배를 드리면서 최대한의 예의를 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사한 문화를 가진 이슬람교인들도 경배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절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금지하기 위하여 해석을 원문과 뉘앙스가 다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이 만든 왜곡된 절 문화에 대한 반성이 기독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조상에 대한 공경의 표현 방법이 서양과 동양이 다릅니다. 우리가 절을 하는 것은 최대한의 존경과 흠모의 뜻을 함의합니다.
통일교에서는 경배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조상님들을 공경하는 효 사상을 경배를 통하여 일상적으로 체휼하고 있습니다. 경배하는 놀라운 문화를 가진 통일교를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번 추석 기간에 고향에 가게 되면 절을 할 때에 정말 지극한 정성어린 마음으로 절하십시오.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조상님들을 모시고 경배를 드리는 자세로 절하십시오. 온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과 조상님들과 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감사의 절을 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십시오. 지극한 정성어린 마음으로 절을 하면, 그 정성에 비례하여서 하나님과 조상이 주시는 복이 여러분과 가족과 친지들에게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여러분 각자의 소망을 일치시키는 간절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이하십시오. 하나님의 소망과 여러분 가족 전체의 소망을 일치시키는 특별히 은혜를 받는 기간으로 명절을 맞이하십시오. 특히 명절 기간에 소외되기 쉬운 독거 가정과 다문화가정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십시오. 지금부터 350여년 전, 모세는 출애굽 당시부터 다문화가정과 더불어 하나님을 모시면서 잘 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인들은 웰빙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면서 복된 삶을 추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불행하게도 복을 받는 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된 삶의 근원은 하나님과 조상님과 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충과 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충과 효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야, 승화하고 난 이후에야 부산을 떨면서 값비싼 상을 차리고 명절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가치가 있는 것은 부모님 생존시에 효도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훈독 본문 말씀에서 참부모님은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살아있을 때에 충과 효를 다하라. 죽은 후에 충효를 한다고 푸짐한 상을 차리는 것은 간사한 짓이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즐겁고 흥겨운 추석 명절 기간에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조상님들과 부모님께 충과 효도를 실천해 보는 특별한 날들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맛있게 먹으면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대자연, 식물과 동물들, 곡식들과 과일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특별히 표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일주일 정도의 추석 연휴 기간에 하나님의 소망과 자신의 소망을 재확인해 보십시오.
이 흥겨운 기간에 효와 충의 삶을 실천해 보십시오. 그런 후에 가족 친지들과 함께 맘껏 즐기시고 흥겨운 추억거리를 많이 만드십시오.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하나님과 영계의 조상들과 인간과 만물이 하나가 되는 그 자리는 하나님의 소망과 인간의 소망이 하나가 되는 거룩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1년 365일 중에서 특별한 날로써 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잘 알고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이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망에 자신의 소망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가는 곳에 한가위 추석이 주는 멋과 흥겨움이 더욱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정말 의미있고 보람있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