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예봉 산행기...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중 전모세 집사님의 번개를 맞아 비몽사몽간에 일산호수를 두어 바퀴 돌고나서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하여 더욱 몽롱한 기운으로 그만 약속을 하였습니다.
오리 고기 집에서 오리발도 구하지 못해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되었기에 어제는 답사를 떠났습니다. 아침 열 시경 토요일이고 연휴 막바지라서 그런지 운길산역에는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의 주차료를 알아보고, 주차공간을 찜한 뒤, 그곳의 명물인 장어요리 집을 수소문 하고나서 맛있는 옥수수를 사들고 출발하니 이미 열한시를 지나고 있었지요.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마을을 지나 밤나무 숲을 통과하니 제법 그늘은 시원합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큰비에 많이 패여 조금 위험한 구간도 있어 등산초보는 조금 힘들겠다 생각하며 올라가는데 뒤에 오는 아내의 발걸음이 완전 초보시절의 모습. 한 시간을 넘게 올라가도 쉬지 말자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늦게 출발해서 갈 길이 먼데 어떡하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되돌이는 없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보조를 맞춥니다.
한 시간을 꼬박 오르니 수종사 건너편 능선입니다.
운길산(높이 610M)은 다도를 체험(무료)할 수 있는 수종사가 있고 수종사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은행나무 보호수 두 그루가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새벽에 일출을 보러 올라왔다가 펼쳐진 운해에 감탄하기도 한다는 그곳...
그곳을 보려면 수종사를 가야하므로 방향을 틀어 수종사로 내려갑니다. 수종사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간 반이 지났습니다. 예전에 송촌초교 뒤에서 오를 때는 30분 남짓밖에 안 걸렸는데 걸음이 느려진 건지 코스가 그런 건지 생각하며 수종사 경내를 둘러보고 차 마시는 분위기도 훔쳐보고 은행나무 밑으로 가서 역사안내를 탐독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굽이쳐 만나 하나가 되는 곳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한눈에 들어옵니다. 200 여 년 전 다산선생이 이곳에 올라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호연지기를 키웠을 상상을 해봅니다. 저 굽이쳐 만나는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당파싸움을 용해시켜 하나로 만들 지혜를 키웠을 법 합니다.
아쉬움을 남기며 수종사를 출발하려하니 벌써 오후 한시를 가리킵니다. 아내가 걱정을 합니다. 갈 길이 먼데 걸을 수 있을까?... 그래도 발길은 산위로 향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릅니다. 10분을 오르니 쉼터가 나오고 표지판이 보입니다. 450M를 올랐습니다. 그리고 정상까지는 350M.
그곳에 재미있는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나무와 풀의 차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가장 벼슬이 높은 나무는? 등 등
운길산 정상 직전에서 쉴 곳을 찾아봅니다. 정상엔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고 정상을 지나면 한 시간 가량 머무를 곳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송편과 사과반쪽으로 점심을 때우고 쉬면서 다음 토요일 계획을 짭니다. 오늘 걸어본 결과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종사주차장까지 차량이동을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 새재고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예봉산 정상을 가면 넉넉잡아 5시간 정도 걷고 두어 시간 먹고 쉬더라도 7시간 이내에 팔당역에 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정상에 오르니 오후 2시.
이제는 잠시의 지체도 없이 가야 합니다. 발길은 무거워도 쉼 없이 따라오는 아내를 돌아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러진 않았는데... 험한 곳을 제외하곤 저보다 곧잘 걷던 아내입니다. 이제부턴 헬스를 시작하라고 꼭 권유하리라 다짐하면서... 느린 걸음에 보조를 맞추가며 연신 시계를 봅니다.
능선길이라 단체로 오면 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식사 장소를 몇 곳 마음에 두고 조그만 봉우리 너 댓 개를 지나니 새재고개를 만납니다. 능선코스 절반을 지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이젠 다섯 시 전엔 정상에 가겠어.. 별것 아니네 하며 용기를 줍니다. 새재고개가 해발 350미터 전후이니 높이 250미터를 3킬로 내려와 다시 300미터를 2.5킬로 오르며 작은 봉우리를 만나는 것이므로 별게 아닌데 초반에 힘을 너무 빼서 지쳐서 힘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적갑산에 오르니 오후 4시. 자신감이 생깁니다. 전망이 아름답게 펼쳐진 패러글라이더 타는 곳도 잠시 머무르고 발길을 재촉하니 금새 철문봉. 다산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자주 올랐다는 설명을 뒤로하고 발길을 계속하니 무성한 억새밭을 지나 예봉산 정상. 그렇게 많던 등산객들은 대부분 하산하고 썰렁한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예정시간을 맞췄다는 안도감 속에 포도를 나누어 먹고 길을 물어 빠른 코스로 하산을 결정 합니다.
원래 운길산/예봉산 종주는 예봉산에서 능선길을 따라 율리봉을 거쳐 신년일출로 유명한 예빈산(직녀봉, 견우봉)을 지나 천주교 공원묘지로 내려가야 하는데 우리 새맘의 보다 많은 참여를 위하여 단축코스를 찾아야 하기에 가본 적 없는 팔당역으로 바로 내려가기로 한 것입니다.
길을 물어가며 조심조심 하산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지고 아내의 한걸음 한걸음이 더욱 느려졌습니다. 마지막엔 팔당역을 눈앞에 두고 길을 잃어 공동묘지를 한 바퀴 돌아 잠자는 영혼들에게 문안까지 하고서야 겨우 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장장 8시간을 걸었고 긴 하루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려 봅니다. 거의 다 내려와서 안내 표지판이 없어 고생했기에 역무실에 들러 건의도하고 기차를 기다리는데 추위가 몰려옵니다. 승객이 별로 없다보니 한 시간에 겨우 두 편뿐. 전화로 장어 집에 주문을 하고 남은 옥수수와 오이로 허기를 채우면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다시 돌아온 운길산역. 긴 하루를 마감하는 오래간만의 산행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힘든 길을 불평 없이 동행해준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애들에게 장어로 저녁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너무 늦어 집으로 서둘러 갑니다. 그런데 내비는 둘러가라 합니다. 88강변도로가 귀경차량들로 막히는 모양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내비가 다시 한 번 가르쳐 줍니다. 내비의 명령에 따라 Go 하였답니다.
긴 글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후5시에 초행산행 정상도착...재밌고? 도 스릴있게 잘 읽었습니다. 킴수아주연의 동영상을 보는것 같습니다 ㅎ
이강애집사님이 무릎이 아프다더니 이유가 있었네요 대단하십니다
8시간을 걸었다니요...이집사님 푹 쉬세요 ~~
고생 많으셨습니다..등산 초보 시절에 가본 산 인데, 기대 됩니다...많은 사람들 참석을 위해 단코스도 준비 하는게 어떠할까요.
재미있네요..길을잃고..산중에서.. 차에와보니...기름까지 [제로]가 되었던...지나간 아름다운추억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