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딸 라니리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 대열에 합류하여 고용 절벽이라는 거대한 세상에 맞서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픈 청춘'이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와 지식들이 과연 사회에서 제대로 쓰임을 할 것인지 체험해 보기도 전에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와 자기 소개서의 무게에 짓눌려 한숨의 세월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요즘 청춘들을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 부르더니 최근에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 세대라 일컫고 있으니 엄마의 자리를 떠나서 이러한 사회의 구조를 낳은 기성세대로서 공범임을 통감한다.
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일까? 몇 년 전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책이 구조 조정과 실업 위기 등 중장년의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듯 읽혀졌다. 두 권의 책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자라나 취업을 하여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부모의 지원과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으나 이제 자식의 일자리를 위하여 부모의 조기 퇴직과 임금 삭감을 종용하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방관하고만 있다.
큰 아이가 수능을 보고나서 크게 실망하여 좌절한 적이 있었다. 수능 점수를 본인이 납득할 수 없어하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하고 지지하여 주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대학 입시의 실패와 함께 삶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쓰라린 경험을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하였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돌아보고 후회하였기에 인생이 재미가 없었고 삶이 행복하지가 않았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가는 삶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대학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올릴 멋진 작품을 구상하며, 처음으로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면서 꿈을 펼쳐나가기 위한 연습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대본을 가지고 어찌 만족스런 무대를 연출할 수 있겠는가. 멀고 먼 인생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무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첫 번째의 선택이 혹시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후회하면서 뒤돌아보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큰 아이에 반해 작은 아이는 재수할 것을 은근히 권하는 나에게 자신은 절대로 재수를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동안 공부를 지겹게 하였노라며 이제부터는 실컷 놀고 싶다더니 실제로 대학에 들어가서 일 년 넘게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놀자 판이어서 은근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노는 것도 잠시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걸 보고 한 숨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선택으로 대학에 진학하였고, 이제는 서로를 격려하며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아이들도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보내면서 점점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나 결혼 소식을 이야기 하며, 기뻐하고 축하의 인사를 보내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컷 즐기면서 꿈을 꾸고 세상을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의 선택과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꿈을 응원하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엄마의 자리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볼 따름이다.
예로부터 뜻을 세우고 독립하는 나이인 이립(而立)은 30세를 일컫는 말이었다. 공자 시대의 청춘들이 30세에 자립을 하였으니 평균 수명 80세를 살고 있는 요즘 세대의 서른은 그 옛날 15세의 댕기머리 소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리따운 청춘인 것이다. 먼 미래의 멋진 자신들을 향하여 오늘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고 내일의 꿈을 키워나가기에 충분한 시기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린 날의 소풍처럼 마냥 즐거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천상병 시인이 그랬듯이 삶은 어쩌면 햇살 좋은 어느 봄날이나 가을날에 우주의 어느 별에서 지구라는 별로 잠시 왔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소풍인 것이리라.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풍이 없는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 왔다. 소풍이라는 자리에는 어느새 현장학습이라는 어정쩡한 단어가 들어앉았다. 교실을 떠나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학습을 요구하여 온 것이다.
나의 두 딸 라니리니와 더불어 살아갈 이 시대의 청춘들이 7포세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꿈꾸는 아름다운 청춘이기를 바란다. 무리들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현실을 비관하는 갈매기가 아니라 더 높은 하늘을 날아가기 위한 꿈을 꾸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나가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되기를 바란다. 현실의 무게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조금은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깊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은 더 높은 꿈을 키우는 즐거운 청춘이기를 바란다.
첫댓글 함께 아픔을 공감하며
좋은소식 함께하길 희망합니다
청년실업 100만...
고졸이면 취업이 쉽다고 하던데 우리 아들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더군요.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 뒤에
항상 붙어나니기 마련이지요.
졸업은 하나, 취업은 하나,
결혼는 하나, 잘 지내고 있나.
짐짓 모른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