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라 불리던 / 박영선
G.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비는 4년 11개월 이틀 동안 계속 내렸다.”는 문장이 있다. 비가 5년 동안 내리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온 세상이 이끼 식물로 뒤덮이겠지. 온갖 동물들이 우울증 같은 중증의 정신질환에 시달릴 테고 사람들 간의 충돌이 많아지겠지. 웬만한 저지대는 수상도시로 바뀔 것이고, 건물 일부는 부식되고 붕괴 위험에 흉물스레 변할 것이다. 썩어 죽어가는 뿌리 식물이 많아질 것이고 수생식물은 번창하고 어류 등의 생태계는 번성할 것이고 전염병도 창궐할 것이다. 또…. 기존의 질서가 재편성되면서 겪어야 할 많은 일이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장마가 반드시 나쁜 영향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많이 내리는 비가 지형의 균형을 맞추기도 하고 해류를 뒤집어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내 고향은 남양주 덕소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언덕 아래가 바로 강이었다. 그곳에서 결혼할 때까지 살았다. 지대가 낮아서 장마 때만 되면 어른들은 집까지 물이 찰까 초긴장 상태였다. 본격적으로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면사무소에서 우리 집 바깥마당에 천막을 치고 상황실을 차려 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장마를 ‘장마’라고 부르지 않고 ‘물난리’라고 불렀다.
“올해 물난리는 좀 늦게 온다는데.”
“그래도 작년 물난리처럼 추석 밑에 오진 않아야 할 텐데….” 했다.
그 해에도 그랬다. 비는 밤새 숨 한번 쉬지 않고 내렸다. 마른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 벌써 나흘째인가. 대문 밖에선 밝은 불 아래 웅성거리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아침이 되자 국방색 비옷에 장화로 중무장한 아버지가 삽을 들고 안팎으로 분주히 다녔다. 엄마의 몸뻬에는 진흙이 물감처럼 여기저기 덧칠되어 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할머니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보자기에 싸기 시작했다. 우리 5남매도 각자 책가방을 챙기고 책꽂이의 책들을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어 다락 위 제일 높은 선반으로 치올려 놓았다.
평소에는 집 마당에서 10m 이상 아래에 있던 아름답기 그지없는 푸른 호수 같은 강물이다. 그런 새색시 같은 강이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물 빛깔부터 진흙 색으로 변한다. 이삼일 멈추지 않고 내리면 수면이 5m 이상 쑥쑥 높아지고 성난 맹수들이 날뛰듯 강이 요동친다. 황톳물이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폭포처럼 치달린다. 맑고 투명해서 마음속까지 비출 듯하던 물빛은 황토색을 지나 검붉게 변하기 시작한다. 상류에서 끌고 내려온 온갖 잡동사니들과 뭉쳐서 서로 밀고 밀려서 떠내려간다. 집채만 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떠내려가고 실제로 어느 집 지붕도 찢겨 내려온다. 지붕 위에 소 돼지며 사람도 매달려 살려달라 소리친다. 윗마을이 통째로 떠내려갈 때도 있었다. 긴급 상황이라 판단되면 군인들이 동원된다. 긴 장대나 노 젓는 배에 밧줄을 연결해서 필사적인 힘으로 사람과 동물들을 건져낸다. 모터 달린 배는 이물질이 산처럼 떠다니는 강물 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건장한 동네 청년들과 이웃 동네 아저씨들이 합심해서 나무들이며 각종 집기를 건져 올려 목재소나 고물상에 팔아 짭짤한 소득을 보기도 했다.
그런 작업도 강물이 집 앞 마당을 2m 정도로 남겨놓고 치고 올라올 때쯤이면 모두 중단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보따리를 싸고 피란 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겪은 경험으로 그만큼 물이 차오르면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동네가 물에 잠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창고 슬레이트 지붕에 뒤집어 놓았던 매생이(작은 배)를 내려서 대문 앞에 묶어놓는다. 잠시 후면 앞마당까지 물이 차서 동무들과 땅따먹기하던 집 앞마당은 배를 띄우는 선착장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인 5남매는 책가방을 멘 채 벌써 배 위에 올라타 있다. 우리는 차올라 호수로 변한 마당에서 배를 타고 친척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에 즐거워 죽는다. 엄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충은 생각지도 않는다. 어른들은 당연히 그런 일을 힘들어하지 않고 겪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물이 들었다 빠진 집은 더이상 안온했던 내 집이 아니다. 구들이 있던 방은 바닥을 뜯어내고 구들을 다시 놓아야 했고, 연탄 때던 방은 아궁이에 빼곡하게 들어찬 밀가루 반죽 같은 개흙을 일일이 파내야 했다. 벽을 말리고 장판을 새로 하고 벽지를 다시 바르고, 마루며 마당에 들어찬 개흙을 치워내는 일을 한 달 가까이 하고 나면 소슬한 가을바람이 아침저녁 불었다. 그때까지 우리 남매들은 윗동네에 있는 친척집에 얹혀서 밥을 얻어먹었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한 달이나 되는 긴 시간 얹혀 지내도 친척집의 눈치를 본다거나 객식구 취급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는 거다. 고만고만한 다섯 남매가 안팎으로 쏘다니며 얼마나 난장을 쳐댔을까.
더구나 우리 남매들이 장마 때마다 피란 갔던 집은 말이 친척이지 그냥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 집이었다. 아버지가 5대 독자라서 우리에겐 가까운 친척이 없었다. 그 댁 어른들이 보살이었던가. 아래 윗동네 할 것 없이 한식구처럼 정이 넘치는 시절이어서 가능했을까. 아니면 그 둘 다에 해당하는 꽃밭 같은 어린 시절을 내가 살았던 게다.
호수가 된 동네를 배 타고 피란 간 횟수만도 네 번인가 다섯 번이었다.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쯤엔 이미 팔당댐이 만들어져서 더이상 여름 물난리를 겪지 않아도 된 다음이었다. 강에 댐을 설치하는 데 대한 찬반 논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일이건 장단점이 혼재한다. 댐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상류 마을이 있고, 더이상 장마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는 하류 마을이 있다. 희망과 절망이 손바닥 앞뒤처럼 붙어있으니 설왕설래할 수밖에.
상념에 젖어 이런저런 시절 생각하며 창밖을 보니, 이틀을 내리던 비가 주춤주춤 멈추고 있다. 요즘도 심심찮게 어디는 물 폭탄이 2백 밀리 내렸다느니 물이 동네 지형을 바꿨다느니 하는 뉴스가 생긴다. 나라에서 누가 잘못한 것을 따지고 있을 때, 이재민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이웃들이다. 아직 살 만한 세상인가.
한낮이 되니 이내 한여름의 열기가 햇빛을 받아 세상이 온통 습식사우나가 됐다. 목덜미 뒤로 쏟아지는 8월의 더위가 빗물 대신 땀을 뽑아낸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비가 그치면 비 그친 대로 한여름이 살아서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