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이니아의 흥망과 그 교훈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1. 펜의 숲에서 시작된 거대한 역사
미국 동부 지역에 있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州)는 USA(United States of America)를 이루는 50개 주(州)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는 필라델피아와 독립기념관이 있어서 미국 독립과 헌법 제정에 뿌리 깊은 관련이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현재도 이곳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선거인단을 가진 핵심 경합주여서 여기서 지지를 받은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 거대한 주의 이름은 펜실베이니아, 즉 ‘펜의 숲’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펜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그 옛날에 숲이 우거진 이 땅에 정착한 영국의 귀족 펜(Penn) 가문의 이름과 숲을 뜻하는 라틴어 실베이니아(Sylvania)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국가만큼이나 막강한 위상을 자랑하는 주(State)의 이름에 특정 가문의 성이 붙게 된 배경에는 17세기 영국 왕실이 빚더미에 앉은 역사의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2. 찰스 2세의 꿩 먹고 알 먹는 거래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주장하며 의회를 무시하고 청교도들을 탄압하다가 크롬웰이 주도한 청교도 혁명으로 의회의 재판을 받고 참수되었다.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하자, 아버지가 처형당하는 비극을 겪으며 오랜 망명 생활을 하던 찰스 2세가 1660년에 왕위에 올랐지만, 그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 왕정복고 과정에서 거액의 사비를 털어 군자금을 대주었던 영국 해군의 지휘관 윌리엄 펜 제독(Sir William Penn)에게 왕실은 16,000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다.
펜 제독이 사망하자 이 채권은 그의 아들인 젊은 윌리엄 펜에게 상속되었다. 현금으로 도무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찰스 2세는 묘안을 떠 올렸다. 윌리엄 펜에게 현금을 주는 대신 아메리카 신대륙의 땅을 떼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의 면적이 무려 11만 9,000㎢로, 잉글랜드 본토와 맞먹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이 거래는 찰스 2세에게 꿩 먹고 알 먹는 최고의 수완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왕실의 골칫거리였던 거액의 채무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말끔히 청산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윌리엄 펜은, 신분제를 부정하고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퀘이커교에 빠져있었는데 그런 퀘이커교도들을 신대륙으로 보내어 버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1681년, 윌리엄 펜은 왕에게 하사받은 “숲이 우거진 땅”을 그냥 실베이니아(Sylvania, 숲)라고 부르고 싶어 했다. 자기 가문의 이름을 땅 이름에 붙이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 2세는 펜 제독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펜(Penn)을 앞에 붙여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로 명명하도록 강하게 권하였고, 결국 지금의 이름으로 확정되었다.
3. 선량한 영주 윌리엄 펜의 인간미
아버지의 빚을 대신 받아낸 윌리엄 펜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 이단으로 몰리던 퀘이커(Quaker) 교도였다. 퀘이커교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한 빛이 있으며, 신 앞에서는 왕도 거지도 평등하다”라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왕 앞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고, 전쟁과 무력을 거부했다.
퀘이커교도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신대륙 땅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은 윌리엄 펜에게도 솔깃한 거래였다. 윌리엄 펜은 왕에게 받은 신대륙의 땅을 신앙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실험실로 삼았다.
여기서 윌리엄 펜의 인간미가 빛을 발했다. 찰스 2세에게 받은 권리는 유럽인들끼리의 법적 통치권일 뿐, 펜은 그 땅의 진짜 주인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이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다른 개척자들이 무력으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땅을 빼앗을 때, 펜은 무기 없이 원주민들을 만났고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직물, 놋쇠 냄비, 철제 도끼 등 당시 원주민들에게 혁신적이었던 생필품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로 땅을 사들였다. 그래서 펜이 살아있는 동안 펜실베이니아는 원주민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4. 이단의 용광로가 된 펜의 숲
한편으로, 윌리엄 펜은 자기가 영국에서 박해받은 경험을 되살려 독일, 스위스 등에서 소수 집단으로 소외당하던 종파들을 다 포용하였다. 그 결과 펜실베이니아는 경건주의만이 아니라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 다양한 이단까지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다. 세속 역사는 이를 관용의 모범이라 평가할지 몰라도 이는 미국 초기 기독교의 종교적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바른 신학의 시각에서 볼 때, 펜실베이니아는 다원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성경 말씀보다 개인의 내적 체험을 우선시하는 퀘이커주의 위에 온갖 사이비·신비주의 교리들이 섞이면서 “무엇이 참된 진리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무엇이든 믿어도 된다”라는 인본주의와 상대주의가 자라났다.
5. 펜의 쓸쓸한 말년과 사라진 사유지
펜의 따뜻한 인간미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예상 밖으로 돌아갔다. 펜은 이상주의적인 영지를 건설하려 했으나, 영지 관리의 실패로 빚더미에 앉았다. 급기야 펜은 영국에서 채무자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었고, 풀려난 뒤에는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1718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더 큰 역사의 반전은 그가 죽고 약 60년 뒤에 찾아왔다. 1776년, 미국이 영국 국왕의 폭정에 맞서 독립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때 윌리엄 펜의 후손들은 독립에 반대하고 영국 왕실을 지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독립 전쟁에 승리하면서 영국 국왕이 하사한 펜 가문의 토지 소유권은 무효가 되었다. 펜 가문의 식민지 지배권은 1779년 커먼웰스(Commonwealth)의 통치로 넘어갔고 펜실베이니아는 오늘날 공식적으로 주(State)가 아닌 커먼웰스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커먼웰스는 ‘공공의 복리’라는 뜻인데 펜실베이니아 외에도 매사추세츠, 버지니아, 켄터키 등이 이 명칭을 쓰고 있다. 물론 커먼웰스는 법적으로는 주(State)와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여간 이로써 영국 왕실의 빚 때문에 시작된 사유지 펜실베이니아는 다시 주민 모두의 공공 재산으로 돌아갔다.
6. 아들들의 야비함과 펜 가문의 종말
윌리엄 펜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달리 탐욕스러웠고 실속만 챙겼다. 윌리엄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목숨처럼 지켰던 평화주의와 비폭력 퀘이커 신앙에서 이탈했다. 그중 토머스 펜은 원주민과의 평화를 깨뜨리고 걸어서 땅따먹기(Walking Purchase)라는 야비한 사기 계약으로 원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다.
‘걸어서 땅따먹기’란 “백인이 특정 지점에서 출발하여 하루 반 동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만큼의 땅을 펜실베이니아 영지가 매입한다.”라는 계약 내용이었다. 원주민(레나페족)은 이 계약을 낭만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원주민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동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펜 가문은 빠른 경보 선수를 준비하고 걸어갈 코스에 장애물도 제거해 놓았다고 한다. 1737년 9월 19일 아침, 출발신호와 함께 이 선수들을 죽기 살기로 걸어갔다. 그 결과 원주민들은 광대한 땅을 한순간에 빼앗기고 말았다.
한편, 미국 독립 전쟁으로 주 정부에 땅을 빼앗겼을 때도, 아들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의 실속을 차렸다. 미국 주 정부로부터 13만 파운드의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냈고, 영국 정부로부터도 “독립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왕당파 귀족”으로 인정받아 매년 4천 파운드의 연금을 챙겼다. 그 돈으로 영국으로 돌아가 웅장한 저택을 사고 귀족들과 결혼하며 대대손손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하늘의 이치는 오묘했다. 아버지가 세운 정의와 평화를 버리고 챙긴 부귀영화였지만, 펜 가문의 남성 직계 혈통은 19세기 중반에 결국 끊어졌고 펜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 펜의 숲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
‘펜의 숲’ 펜실베이니아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두 가지 명확한 교훈을 전한다.
첫째, 바른 신념과 유산의 가치다. 윌리엄 펜 본인은 가난과 병마 속에 죽었으나 그의 이름은 대륙의 주 이름으로 영원히 남았다. 반면 교리와 신앙을 버리고 탐욕을 좇았던 아들들의 이름과 혈통은 불과 몇 대를 못 가 소멸했다.
둘째, 진리 없는 관용의 위험성이다. 교리적 정통성을 버린 무조건적인 관용은 세속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개혁주의 신앙을 지닌 우리는 시대의 관용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진리를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한다.
이로써 ‘펜의 숲’을 스쳐 가는 역사의 바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무겁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댓글 펜실베니아의 유래를 잘 설명해 주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집사님을 정회원으로 변경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