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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교 건너서 화원반도의 끝자락
목포대교는 목포 북항에서 고하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지난 7월부터 개통되어 화원반도로 가는 서남해안의 주요 관문이 되었다. 총연장 4.129km를 잇는 왕복4차로 목포대교 개통으로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신외항까지 60여 분이 걸리던 것이 20여 분으로 40여 분이 단축됐으며, 출퇴근 시간대 극심한 정체를 보였던 영산강 하구둑 교차로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단다.
우리는 목포대교를 건너서 금호방조제를 지나 화원반도 끝에 있는 목포구등대로 애마를 몰았다.
목포대교 사진은 다리를 통과하면서 사진을 담기 어려워 다른이의 사진을 모셔왔다.
목포구 등대
목포항에서 흑산도, 홍도를 오고가는 사람들은 여객선 터미널을 벗어나 10여 분쯤 지나면서 붉은 닭 벼슬 같은 머리를 이고 서 있는 특이한 등대를 보게 된다. 이 목포구 등대는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696-1번지에 있으며 달리도 앞 협수로에 위치한다.
해남반도 북단 화원반도와 달리도 사이의 좁은 물목을 차지한 협로, 위치가 절묘하여 목포항을 드나드는 배들의 길라잡이로 어디서 들어오는 배도 목포구 등대를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없다. 건너편 섬은 외달도, 멀리 압해도 송공산이다.
1908년 등대국 연보의 공식기록에는 ‘목포항의 인후(咽喉)로서 부근 해상의 암초가 산재하여 야간 항해에 위험하고 급류가 급격하여 위험한 항로’라 되어 있다. 목포구 등대는 글자 그대로 목포항의 입에 해당하는 위치인 ‘목포구’로서 목포의 개항과 맞물려 있다. 1897년 7월 4일, 조선 정부는 각국 사신 앞으로 동년 10월 1일을 기해 목포와 진남포 두 항구를 외국과의 통상을 위하여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가하는 칙령을 통보한다. 1897년 7월 16일 「독립신문」의 기사에 ‘목포와 진남포는 금년 십월 초 일일에 항구를 열기로 작정이 되앗다더라’고 나와 있다.
개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집중되어 있다. 압록강의 신의주, 한강의 인천, 금강의 군산, 영산강의 목포가 그러하다.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 제국들이 뭍의 젖줄인 강을 따라서 식민 내륙까지 뻗어 나가려던 세계사적, 보편적 경로에서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음을 뜻한다.
목포와 일본항로는 1900년 개항 초에 오사카 상선회사가 ‘부산-목포-군산’ 항로를 개설하면서 열린다.
그 이후에 전라남도 다도해 섬들과 제주도, 부산, 인천 그리고 일본과 중국으로 배편이 운행하였다.
우리는 35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왔다. 이곳은 배 뿐만 아니라 바람도 스쳐가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촘촘하게 짜인 해상교통로가 구비되면서 추자도, 제주도 산지, 거문도, 부산, 영산포, 조도, 흑산도 등지에 모두 등대가 들어섰으며 이들은 대개 100년 세월을 지낸 등대들이다.
이와 같이 목포구 등대도 1908년 1월 1일 불을 밝혔다. 일제 강점기에는 100여년 세월의 다른 등대들과 같이 목포구 등대도 일제 식민수탈의 길잡이로 그 역할을 하였다.
건너편 멀리 보이는 섬은 우측부터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
우리나의 서남해상 목포, 진도권에 위치한 6개 유인 등대(당사도, 가사도, 하조도, 홍도, 소흑산도, 목포구) 중 배를 타지 않고 차량으로 탐방할 수 있는 유일한 등대가 목포구 등대이다. 1908년 건립 당시에는 무인 등대였으나 배편이 증가하면서 1964년 유인등대로 바뀌었다.
저 배는 우리나라 수출의 효자품목인 기아의 자동차들를 해외로 싣고가는 배라고....
2003년 12월에 높이 36.5m의 새로운 등탑이 건립되었는데 힘차게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형상화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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