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속 연암의 발자취를 쫓아서
바.D +5Day (엿새째날)
3) 의무려산 입구에서 원천 봉쇄당하다
의무려산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옛 이름은 미려(微閭), 무려산(無慮山)이였는데 지금은 또 려산(閭山)이라 한다.
료녕성 북녕시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630㎢, 최고봉의 해발고는 866.6m이다. 우순(虞舜)은 려산을 중국 12대명산으로 봉했고 또한 중화 "오악오진(五嶽五鎭)"중 유주(幽州)의 진산(鎭山)이였다. 《전료지(全遼誌)》에 "료녕경내 산으로 말하면 의무려산이 제일 아름답다."고 기재돼있다.
려산은 미, 향, 기, 웅의 통일체를 이룬 미이며 산, 석, 송, 천, 동이 하나로 합쳐 대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려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험한 골짜기들은 인간선경을 그려놓은 듯 하다.
흰 구름, 짙은 안개, 불광, 월색, 고송은 참으로 신비하다. 봄이면 배꽃이 만발하여 설해를 이루고, 여름이면 청산이 응취(凝聚)돼있으며 먼 산은 마치 여자의 눈섭과 같다.
가을이면 단풍이 온 산을 뒤덥고 과일 향기가 골짜기에 가득 차며, 겨울은 층층이 쌓인 백설이 은 같기도 하고 옥 같기도 하다. 려산은 한폭의 천연 장편 단청화이다.
의무려산은 역사가 오래며 인문경관이 아주 풍부하다. 역대 황제들이 려산을 다음과 같이 봉하였다. 당나라 때는 "광녕공(廣寧公)", 금나라 때는 "광녕왕(廣寧王)", 원나라 때는 "정덕광녕왕(禎德廣寧王)",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는 "의무려산지신(醫巫閭山之神)"이라 봉했다. 려산은 역대 조정에서 숭배하는 령산성지였으며 료나라의 여섯 황제가 선후로 40여 차례나 이곳에 와 산제와 조상제를 지냈다.
많은 영웅호걸들과 현명한 지사들이 이곳에 많은 시문과 석문, 비문을 남겼다. 그 중 전국(戰國)시대의 굴원(屈原)이 그의 명작 《원유(遠遊)》에서 려산을 그리는 그의 마음을 표달했다.
려산은 수천년 내려오면서 불교와 도교의 수양지였으며 황실의 산신제사지였다. 궁, 관, 사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정각, 누대들도 유구하고 심후한 종교문화를 형성하고있다. 관음각, 망해사(백운관이라고도 함), 옥천사, 약왕묘들엔 연기구름이 에돌고 향객들이 끊기지 않아 려산에 더더욱 신기한 색채를 부여하고있다.
철책 만들어 절대 못들어가!!!!
Bad 님들아!!! 너희는 소비에트의 최후를 아느뇨...
니덜 역사의 단원 페이지도 결코 많지 않을진데...
배우라 !!한국을... 우리는 최소 500 Year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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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철기군은 어디가고 청군이 서 있느냐..
역사의 발자취에 색연필로 낙서마라!
왜들...... 지장 찍었쓔???
왜 못들어가는지 설명을 제대로 못해주는 가이드...
한국인과 일본인은 왜 절대 입장 불가인지.... 뭐 땜시...!!
국경선 만든다 마음마져 막을쏘냐... 그리움이 넘치면 한이 되는 법!
이스라엘과 팔레의 관계를 보시라!
역사의 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이거늘...우리도 이런건 원치 않는데..
대국이면 대국 답게...다운....살자 같이.
영어루 With 여!!!!! Together도 있꾸....
기회는 한번만이 아니다. 만화책을 보시라....
마지막 맨 끝장에 작가가 쓰는 말....
다음편에 계속!!!
호박이 참 예쁘구나....^^&
이쁘게 보이는 너...내 눈이 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