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자하가 이르기를, “군자의 모습에 세 가지 변하는 것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엄연하고, 가까이 나아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으면 확실한 것이다.”고 하였다. 儼然者 貌之莊 溫者 色之和 厲者 辭之確 ○ 程子曰 他人儼然則不溫 溫則不厲 惟孔子全之 謝氏曰 此非有意於變 蓋並行而不相悖也 如良玉溫潤而栗然 儼然이라는 것은 모습이 장엄한 것이다. 溫이라는 것은 얼굴빛이 온화한 것이다. 厲라는 것은 말이 확실한 것이다. 정자가 말하길, “다른 사람들은 위엄이 있으면 곧 온화하지 않고, 온화하면 말이 확실하지 않다. 오직 공자만이 그것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사씨가 말하길, “이것은 변함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 대개 나란히 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좋은 옥은 따뜻하고 윤기가 나면서도 밤같이 단단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記聘義 昔者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 仁也 縝密以栗 知也 예기 빙의 편에, 옛날에 군자는 덕을 옥에 비유하였는데, 따뜻하고 윤기가 나되 윤택함은 仁이고, 촘촘하고 엄밀하여 단단함은 知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望之儼然 敬而重也 卽之也溫 和而厚也 聽其言也 厲 約而法也 夫其望之儼然 若不可得而親也 及其卽之 則溫焉 卽之也溫 若可得而親也 而聽其言 則厲焉 其爲三變 豈君子之强爲之哉 禮樂無斯須而去身 故其成就發見如此 남헌장씨가 말하길,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다는 것은, 공경하면서도 중후한 것이다. 가까이 가면 따뜻하다는 것은, 온화하면서도 후덕한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확실하다는 것은, 요약되어 있으면서도 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무릇 그가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기에, 마치 친밀해질 수 없을 것 같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감에 이르면, 곧 온화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온화하니, 마치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말을 들으면 곧 확실하다. 군자가 세 가지로 변함에 있어서, 어찌 군자가 억지로 그것을 하겠는가? 예악이 잠시라도 몸에서 떠남이 없기 때문에, 그 성취가 발현됨이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儼者手恭而足重 溫者心平而氣和 厲者義精而辭確 면재황씨가 말하길, “儼이라는 것은 손은 공손하고 발은 무겁게 한다는 것이고, 溫이라는 것은 마음은 평온하고 기운은 온화한 것이며, 厲라는 것은 뜻은 정확하고 말은 확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聖人本無三變 但自他人觀之 則遠望是一般 近就之是一般 聽其言又是一般 似乎有三變耳 問厲之當訓嚴而云確 何也 曰 厲也有嚴意 但曰嚴 恐人認做猛烈 確者是是非非確乎不易之義 形容言厲最切 쌍봉요씨가 말하길, “성인은 본래 세 가지로 변함이 없다. 다만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종류고, 가까이 나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종류이며, 그 말을 듣는 것도 또한 하나의 종류로서, 마치 세 가지로 변함이 있는 것과 같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厲자는 마땅히 엄격하다고 뜻풀이를 해야 함에도 확실하다고 운운하였는데,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厲에는 엄격하다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엄격하다고 말하면, 아마도 사람들이 맹렬하다는 뜻으로 인식할 것이다. 確이라는 것은 是是非非가 변함이 없이 확실하다는 뜻으로서, ‘말이 厲하다’는 것을 형용함에 있어 제일 적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儼然而溫 剛中有柔也 溫而厲 柔中有剛也 剛柔不偏 陰陽合德 惟夫子有之 人見其然 以爲三變 聖人自然而然 豈有意於變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위엄이 있으면서 온화한 것은 굳셈 안에 부드러움이 있는 것이고, 온화하면서 확실한 것은 부드러움 안에 굳셈이 있는 것이다. 굳셈과 부드러움이 치우치지 않고, 음과 양이 모두 덕에 부합하는 것은 오직 공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자께서 그러한 것을 보고서 세 가지로 변한다고 여겼으나, 성인께서는 자연적으로 그러한 것이니, 어찌 변하는 것에 뜻을 두었겠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