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주태후 허황옥
기원 48년 7월 27일.
허황옥은 수로왕의 초청을 받아 가야국에 무사히 도착하여, 신하와 백성들로 부터많은 축복을 받으며, 수로왕과 혼례식을 올렸다. 그리고 아들 10명과 딸을 낳고 백년해로 百年偕老 하였다.
허황옥은 자신의 가문 家門이 천축국에서부터 최고의 신분인 ‘사제 司祭’ 집안이라고 밝히고, 왕에게 사정하여 차남과 삼남을 가문의 명예스러운 사제직을 이을 수 있게끔 해달라 청하여, 두 아들에게 어머니 성인 허씨 성을 사용하게 하였다.
김해 허씨 金海 許氏의 탄생 배경이다.
* 삼국유사에서는 ‘허황옥이 157세로 먼저 죽고 김수로왕이 10년을 더 산후 158세로 붕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은 어폐 語弊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수로 首露라는 호칭은 사람 이름, 즉 고유명사 固有名詞가 아니라 장인 匠人의 최고 기술자(우두머리)를 칭하는 용어 즉, 일반명사 一般名辭로 볼 수 있다.
‘露’ 로는 이슬을 뜻하며, ‘희다,’ ‘깨끗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수로’ 首露는 머리가 희다는 뜻이다.
즉. 나이가 든 ‘수장’ 首長. 그러니까 기술이 뛰어난 ‘우두머리’를 일컫는다.
장인 匠人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수로’ 首露와 ‘수장’ 首長은 같은 뜻이다.
수로의 상대어 相對語로는 ‘검수’ 黔首란 단어가 있다.
검수는 ‘머리가 검다’라는 의미 즉, ‘관을 쓰지 않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여민 黎民(어두운 백성, 서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수로’는 밝은 은관 銀冠이나 빛나는 금관 金冠을 쓴 수장 首長이라고 해석이 가능한 일반명사인 것이다.
그러니 가야 초기의 최고 통치권자를 일컫는 호칭이다.
사로국에서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으로 최고통치자의 호칭을 불렸듯이 가야에서는 수로로 칭하였다.
그러니 한 명의 수로왕이 158년 (- 158년은 재위 기간임)이상을 살면서 가야국을 키워, 한반도 남부지역과 倭(왜는 당시에는 국가의 기틀조차도 없었다.)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4~5대 代의 수로 首露가 걸쳐 이룬 업적으로 보아야 무난할 것이다.
또 삼국유사에서는 ‘허황옥이 수로왕보다 10년 먼저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기록으로 여겨진다.
* 사진 - 파사 사탑
* 사진 - ‘보주 태후 허씨 능’ 비
왕후가 왕보다 먼저 죽었다면 일반적으로 ‘수로왕비 보주 허씨’가 올바른 표현이다.
또 다른 설명이나 서술은 필요하지 않다.
모든 묘비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런데,
김해의 허황옥의 무덤인 왕릉 앞 비석에는 분명히 ‘普州太后 許氏陵’ ‘보주태후 허씨능’이라 새겨져 있다.
우측에 가로로 ‘駕洛國 首露王妃’ 라 표기해놓고
좌측에 가로로 ‘普州太后 許氏陵’ 으로 되어있다.
우측에는 ‘왕비’라고 적혀있고 좌측에는 ‘태후’라고 음각 陰刻으로 새겨있다.
태후는 왕의 어머니란 뜻이다.
태후 太后와 모후 母后는 같은 말이다.
즉, 선왕 先王의 왕후 王后를 칭하는 단어다.
그러니 배우자인 왕이 먼저 사망하고 난 후, 자기 아들이 왕이 된 후,
왕의 어머니 즉, 모후 母后로써 어느 기간 동안 살아 있다가 죽었다는 의미다.
즉, 시간상의 흐름을 보면 부왕이 붕어한 후, 아들이 왕으로 등극하는 즉위식을 거행한 후에 왕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수로왕이 158세까지 살아 허황옥 왕비보다 늦게 죽었다는 것은 사실과 부합되지 아니한다.
즉, 가야의 제 1대 代 수로왕인 김청예는 삼국유사의 기록보다 훨씬 전에 허황옥 태후보다 먼저 사망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제례 祭禮를 가문의 큰 행사로 여겨오던 유도 儒道의 관점에서는 그 제례의 주관자 主管者인 장손 長孫을 특별히 우대하였다.
그러한 유교적인 시점 視點에서는 방계 傍系 혈족의 상세한 기록을 생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龜旨歌 (구지가)
龜何龜何 (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밀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내밀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먹으리.
김청예를 가야의 수로왕으로 추대하는 밀당 과정을 노래하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백성들이 왕으로 추대하는 데도, 무슨 이유인지?.
수로왕은 선 듯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청예는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뛰어난 제철 기술을 담보로 하여, 기존의 지역 호족 豪族들에게 어떠한 조건을 먼저 제시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을 따르는 상당수의 이주민들에 대한, 안전보장과 파격적인 대우를 기존의 토착민 土着民들에게 요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토착민인 기존의 호족들도 당당하게 텃세를 부린다.
그러니,
토착인들은 김수로왕의 전매특허 專賣特許인 쇠를 녹이는 고열 高熱을 역으로 이용하여, 오히려 김수로왕을 상대로 하여 불로 희롱하는 듯한 해학적 諧謔的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당신이 자랑하는 고열 高熱이 오히려 당신을 해할지도 모를 일이니, 이쯤에서 그대의 농성(미타협으로 인하여 대화를 끊고 장기간 칩거함. 즉, 철기 제품 생산 중단.)을 풀고, ‘그대의 완곡한 주장을 보류하고 다시 대화를 해보자’라는 의미다.
당시,
수로왕이 가야에 정착하고,
왕으로 추대되는 밀고 당기는 - 밀당 - 과정을 노래하는 재미있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 80.
첫댓글 배우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