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하듯 드라이브…빠르고 정확하고 화려해진 계기판 / 김기범
주행 정보뿐 아니라 내비게이션 지도, 외부 풍경,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정보를 표시해주는 디지털 계기판이 주목받고 있다. 1 아우디의 디지털 계기판.
계기판은 자동차가 운전자와 소통하는 창구다. 운전자는 계기판으로 차의 상태를 가늠한다. 한때 빽빽하게 채운 바늘과 눈금이 첨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자동차에 전자장비와 각종 기술을 접목하면서 계기판에 띄울 정보가 넘쳐난다.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운전자에게 보여줄 지가 숙제다. 계기판이 빠르게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대체되는 이유다.
테슬라 모델S가 LCD 계기판 선도
벤츠·재규어·아우디 등으로 확산
한 번 개발하면 여러 차종에 활용
OLED로 만든 곡면 계기판도 등장
과거에도 한때 디지털 계기판이 유행한 적 있었다. 1976년 영국 스포츠카 회사 애스턴마틴이 내놓은 라곤다가 원조였다. 브라운관 TV와 같은 ‘음극선관(CRT)’ 모니터를 계기판 자리에 달았다. 90년대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현대 엘란트라, 기아 엔터프라이즈, 대우 에스페로 등이 고급형에 액정화면(LCD)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숫자나 그래프가 바뀌는 반응이 자연스럽지 않아 오히려 시인성과 판독성이 떨어졌고, 서체나 전반적 디자인 또한 조잡하고 투박했다.
반면 오늘날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바늘과 눈금이 없는 점을 빼면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고화질 TV와 같은 컬러 LCD를 주로 쓴다. 화면 전체를 활용해 사진과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선명하며, 또 화려하다. 그 결과 계기판의 기능과 영역이 극적으로 넓어졌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디스플레이 유행은 테슬라 모델S가 이끌었다. 계기판을 디지털로 꾸미고 센터펜시아에는 17인치짜리 LCD를 세로로 배치했다. 이후 기존 자동차 제조사도 발 빠르게 도입을 서둘렀다. 현재 가장 큰 디지털 계기판을 쓰는 자동차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다. 12.3인치 두 개를 나란히 붙여 각각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로 쓴다. 너비만 30㎝가 넘는 이 ‘와이드 스크린 콕핏 디스플레이’를 2013년 6세대 S클래스에 처음 단 후 가장 작은 A클래스까지 전 차종으로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자동차 실내 디자인도 크게 바꿨다. 가령 스위치가 현저히 줄었다. 터치스크린을 겸하는 디스플레이에서 주요 기능을 통합한 까닭이다. 이후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업계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재규어 F-페이스, 푸조 5008, 아우디 TT, 볼보 XC60 등이 이 디지털 계기판을 달았다. 공급업체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보쉬가 아우디, 비스테온이 랜드로버·재규어·푸조에 공급 중이다. LG 디스플레이는 메르세데스-벤츠에 납품한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한 번 공들여 개발해 놓으면 여러 차종에 두루 쓸 수 있다. 첨단 이미지도 부각시키면서 원가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또한, 다양한 구성과 테마의 그래픽을 띄울 수 있다. 이를테면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계기판의 서체와 배경색을 바꿀 수 있다. 실제 사진이나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으로 정보를 표시할 수도 있다. 마치 PC 게임 화면에 다양한 정보를 표시하듯이 자동차 디지털 계기판도 운전자와 소통하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수출 지역에서 쓰는 단위 때문에 눈금을 새로 그리거나 이중으로 새기는 수고도 필요 없다. 관련 부품의 무게와 부피도 줄일 수 있으니 연비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큼직한 디스플레이를 공유하다 보니 차종별 실내 디자인이 비슷비슷해진다.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시커먼 화면도 딱히 아름답진 않다. 극단적 사례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다. 시동을 켜지 않은 상태의 실내를 들여다보면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온통 시커먼 까닭에 당황스럽다. 시동버튼을 누르면 모든 디스플레이가 총천연색의 정교한 그래픽를 띄우며 분위기를 180바꾼다. 벨라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더불어 센터페시아에 10인치 디스플레이를 위아래로 두 개나 달았다.
아날로그 요소를 곁들여 극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 렉서스 LFA가 대표적인데, 100% 디지털 계기판을 사용하되 전동식으로 움직이는 금속 원반을 더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오른쪽에 치우쳐 있던 금속 원반이 가운데로 스르륵 움직인다. 동시에 바탕은 흰색으로 바뀌고 숫자는 굵어진다. 2D 계기판에 입체적이고 동적인 개념을 더한 경우다. 이 계기판을 고안한 렉서스 책임 엔지니어 나오키 고바야시는 “디지털 계기판은 편리한데다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표시하지만 흥미롭지는 않다”며 “우리가 금속 소재와 짝 지은 이유”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디지털 계기판은 곡면까지 소화한다. 지난해 캐딜락이 선보인 에스칼라 콘셉트의 계기판이 대표적이다.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클러스터를 사용했다. 앞으로는 나노기술을 접목한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해 앞 유리 전체를 정보창으로 만들 수도 있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진화에 한층 가속이 붙고 있다. *
김기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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