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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우리가 어떤 일을 맡게 될 때 겸허히 사양하는 것과 구차한 핑계를 대서 회피하는 것은 근본이 다릅니다. 겸손한 사양은 빈 마음이지만, 회피하려는 핑계는 약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약점에 위축되지 말고, 자기에게 있는 강점을 가지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합니다.
오늘도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로 둘러대고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 성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핑계가 많을수록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또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리하지 말고, 자신이 처한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까를 고민해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변명보다는, 여자니까 오히려 잘 할 수 있다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기 한계 극복정신으로 대통령 임기를 두 번째나 맡고 있는 21세기 여성인물이 있습니다. 필란드 여성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Tarja Hallonen)입니다.
그러므로 이따금 ‘때문에’라고 말하는 대신, ‘이지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역경극복 신념이 참 감동적입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말단 수비 장교로 변방오지를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수차례 파면을 당했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됐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무 세 번 싸워 스무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하지 마라. 나는 임금의 끊임없는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을 쓰면서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처럼 역경을 극복한 승리자들은 구차한 핑계 대신, 한계에 도전하는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어느 노인이 65세가 되자 매월 은행창구에 가서 노인연금을 받아 살았습니다. 어느 날도 그는 은행에서 연금을 찾아 나오다가 가까운 교회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다.’는 찬양이었습니다.
그는 이 찬송소리와 함께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65세였고, 몸도 성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이 탓을 하지 않고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닭튀김 가게를 연 것이 오늘날의 KFC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Harland Sanders입니다.
우리는 먼저 마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고, 결심만 하면 강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나 시험이 찾아올 때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고 허둥대거나, 너무 빨리 좌절감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외부상황이 우리를 쓰러뜨릴 때 승리의 삶을 사는 비결은 내부, 즉 마음에서부터 일어서는 것입니다.
의사에게 절망적인 통보를 받았습니까? 사업경영이 마지막 한계에 다다랐습니까? 승진의 여명이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까? 부부 사이에 어떤 발전적 희망이 안 보이는 것 같습니까? 자녀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까? 당신의 인생이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고 있습니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 앞에서도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넘어져 있어도 내면으로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일어서는 사람은 어떤 시련과 역경에서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외부적인 억압이나 부정적인 비판의 소리에 상심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의 힘이 가득해. 내 곁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셔. 나는 극복할 수 있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혹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거나 무시당하는 뼈아픈 경험이 있으십니까? 제가 참 좋은 글을 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무시(無視)라는 단어를 분석해보면, ‘볼 시(視), 없을 무(無)’입니다. 즉 보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당신을 무시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당신의 숨은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당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지 못한 소치입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못 본 처사입니다.
무시(無視)라는 그들이 나를 제대로 못 본 것입니다.
혹시 자기 스스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 자기 안에 있는 숨은 가치와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을 어둠 속에서 의심치 말아야합니다.
즉 오프라 윈프리의 말대로“당신의 상처를 지혜로 만들어야합니다.”(Turn your wounds into wisdom)
그러므로 오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보는 새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40년 세월동안 씁쓸한 실패의식과 좌절감으로 살았습니다. 의욕을 상실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왕실을 도망쳐 아라비아 사막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집트 왕자가 아닌 광야의 방랑자였습니다. 원시적 생활을 하는 베드인족들과 밑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주십니다. 이집트 왕실로 다시 돌아가 바로와 정면 대결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렇게 볼멘소리로 대답합니다.(11절)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모세는 자기로서는 가당치도 않다고 자조적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나는 그럴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초라한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주 간단하면서도 선명하게 말씀하십니다.(12절)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Certainly I will be with you.)
오늘 우리도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한 내 인생은 염려 없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계셔’
20세기 미국 교회의 거장 로버트 슐러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가 한참 성공적인 목회를 하실 때 고등학생이었던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가 커서 17살 된 딸 캐롤은 한 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캐롤은 의족을 하여 기우뚱 거리며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가족이 휴가를 가졌습니다.
태평양 앞 바다에서 크루즈 여행을 했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행객들은 갑판 위에 나와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자기 가족들을 소개했습니다. 가족별로 장기자랑을 했습니다. 순번을 따라 로버트 슐러 목사님 가족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7살 난 금발의 소녀가 클러치를 딛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왔습니다. 흥겨운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캐롤은 담대하면서도 또랑또랑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어떻게 걷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와 함께 걷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캐롤은 은은하게 노래했습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이 노래와 함께 모든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뒤안길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나와 동행 하여 주십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여 주십니다.
야곱이 적막하고 황량한 들판에서 어두운 밤을 보내는 처지가 되었을 때 하늘의 사다리 환상을 통해 들은 음성이 이것입니다.(창세기 28:15)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
사도 바울이 지중해 한 복판에서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 되었어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7:23)
다윗은 시편 23편 4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너츠를 꼽으라면 단연 던킨 도너츠일 것입니다. 창업자는 고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빌 로젠버그입니다. 그가 72세 생일 파티 때 “당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감동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몹시 어둡고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동행자가 되셔서 늘 함께 짐을 져주셨고, 밝은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당신은 어떤 역경의 골짜기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이 말씀 한 마디로 자신의 실패의식과 좌절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XZ.'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오늘도 내 삶의 모든 정황에서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도 이점을 확신시켜 주십니다.(마태복음 28:20)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기도 초청) (내가 어둠 속에서 … 주님은 함께 계셔)
우리는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지만 잘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핑계를 극복하는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마음으로 일어서야합니다.
우리는 외부적인 억압이나 부정적인 비판의 소리에 상심하지 말고, 오늘도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한다는 내면의 소리,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어두운 상황과 환경보다, 누가 나와 함께 하고 있는지만 분명히 알면 됩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XZ.'
조봉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