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최옥자/글무늬문학사랑회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 쌀쌀하고 눅눅해진 실내공기를 몰아내고자 난로로 적당히 덥혀놓은 실내는 훈훈하고
쾌적하다.
난롯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터에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노라니 창가에 앉아 담배연기를 날리며 청자빛 도자기를 어루만지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눈에 차온다.
그는 도자기를 사 들고 돌아오던 날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도 한 갑 사 들고 들어왔다.
"애써 끊은 담배는 왜 또 피우느냐?" 는 나의 성화에도 아랑곳
없이 하얀 학이 두 날개와 두 다리를 곧게 펴고 나는 듯한 문양과 꽃잎이 다문다문 아로새겨진 청자빛 도자기를 어루만질 때면 그는 영락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었다.
그가 피워내는 담배 연기 속에는 도자기를 더듬듯 지금은 갈수 없게 된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한 어린 마음이 녹아있는 듯 보여 마음이 일순 숙연해지기도
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평일보다 차량소통이 적은 도로를 유쾌하게 달리노라면 옆에 앉아 말없이 운전하던 그는 어김없이
"아니 다들 어디로 피난을 갔나. 왜 이리 조용해.” 하며 나의 잔잔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들 여행을 떠났나, 왜 이리 조용해 하면 어디 덧나요?" 하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가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큰애를 임신하여 한참 입덧으로 고생할 때다.
북한의 대남 공작에 따라 김 신조를 비롯한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라는 임무를 받고 내려오다 발각된 사건이 터졌었다. 전국은 북한의 남침
전쟁우려로 온통 들끓고 불안에 휩싸였었다.
아직 신혼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앞 날에 대한 설계를 펼치며 남편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그 때마다 사람은 항상 앞 일을 대비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갈 때에 비행기가 폭격을 하면 잽싸게 방공호로 뛰어
들어가야 하며 주위에 방공호가 없을 때에는 무섭다고 허겁지겁 뛰지 말고 낮은 곳을
찾아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대화에 늘어놓아 결국은 화까지 몰아올 때가 종종 있었다. 한 밤 잠자리에서 조용히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나와는 반대로 그는 잠자리에서조차 전쟁이야기를
서슴지 않았으니까. 그렇듯 그의 일상은 그가
겪은 전쟁과 그의 고향 산천인 북한을 떠나 있지 못하고 항상 그 주위를 맴돌았다.
남한에서 부모형제와 더불어 큰 고생 없이 자라온 나로서 그러한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소년기에 전쟁 속에서 부모형제를 잃고, 청년기를 전쟁 후의 어려운 삶
속에서 보낸 그다. 내 나이 이쯤 되니 조금 철이 들었다고 나 할까, 그런 그를 바라보노라면 이젠 연민이 앞선다. 부부 일심동체 라 하나 동상이몽이라,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함이 다르니 전쟁 상흔으로 속 깊이 맺힌 응어리를 진작 헤아려 주지 못했음이 안쓰럽다.
오래 전 북한 미술 공예품 전시회가 노스 파라마타(North
Parramatta)에서 열렸었다,
개장 첫날 전시회장에 갔는데 평소와는 달리 그는 도자기 한 점과 그림 한 점을
주저 없이 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상과는 다른 눈빛으로 무슨 중요한 행사라도 치르듯 무슨 구실을 삼아서라도,
예를 들면 수재를 만난 북한 동포들이 불쌍하다. 타향살이 오래면 고향까마귀도 그립다는데,
하며 출근하다시피 전시장을 드나들고 그럴 때마다 손에는 그림을 말아 들고 들어왔다.
밤에는 거실바닥에 그 그림을 쭉 펴놓고 담배연기를 날리며 모란봉의 청류벽이 어떻고, 울밀대가 어떻고, 금강산의 가을 풍경이 봄 풍경보다 단풍이 있어 일품이라느니,
달밤에 비친 금강산 또한 절경이며 그 안에 있는 산사 이름이 보덕암이고 여기 묘향산 그림에 나온 산사는 보현사다.
그런데 강계의 임풍루나 의주의 통군정은 그 동무(?)들도 모르더라,
조금은 으스대며 감상을 거듭한다.
그러더니 그림을 펴 놓았다 말았다 하는 것도 어려운지 아예 방에 도배를 하듯이
이리저리 붙여놓고는 연신 담배연기를 날린다. 그는 그림의 예술성을 감상기보다 앞서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동족에 대한 막연한 사랑을, 분단된 남북한의 애달픔을 그림
속에서 애써 찾아 채우려는 듯 보였다.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은 먼 이국도 지척인데 부모형제 일가친척이 살고 있는
내 고향산천을 자유로이 가볼 수도 없고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 애닯다.
전쟁상흔, 남북분단으로 그의 심해 깊이
가라앉은 저 한의 응어리를 풀 날은
언제가 될 것인지.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흰
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그가 생전에 고향산천을 자유롭게 찾게 되는 날은 정녕 올 것인가.
나 또한 그의 고향인 시댁을 생전에 방문할 수 있을는지.
실내엔 한 어린 담배 연기가 창문에 어른거리고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