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6】 10
(8) 부처님의 자재(自在)를 답하다
<1> 부처님의 열 가지 자재한 법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自在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諸佛이 於一切法에 悉得自在하사 明達種種句身味身하야 演說諸法에 辯才無礙이 是爲諸佛의 第一自在法이요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자재한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법에 모두 자유자재하여 갖가지 구절의 무더기와 의미의 무더기[句身味身]를 분명하게 통달하며 모든 법을 연설하는데 변재가 걸림이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첫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이 일체 법에 모두 자유자재하여 갖가지 구절의 무더기와 의미의 무더기[句身味身]를 분명하게 통달하였다는 것은 예컨대 “제행은 무상하다.”라고 하면 “제행”이라는 글귀와 “무상”이라는 글귀가 한 무더기를 만들어 한 가지 법을 나타낸 것이다. 또 “제행”이라는 뜻과 “무상”이라는 뜻이 한 무더기를 이루어 하나의 법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연설함에 변재가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
一切諸佛이 敎化衆生에 未曾失時하야 隨其願樂하야 爲說正法하사 咸令調伏하야 無有斷絶이 是爲諸佛의 第二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들의 소원을 따라 바른 법을 설하여 모두 조복시키되 사이가 끊어지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둘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보통의 중생들은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때를 놓치고 말지만 부처님은 중생을 교화하는데 결코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
一切諸佛이 能令盡虛空界無量無數種種莊嚴한 一切世界로 六種震動하야 令彼世界로 或擧或下하며 或大或小하며 或合或散호대 未曾惱害於一衆生이 其中衆生이 不覺不知하며 無疑無怪가 是爲諸佛의 第三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온 허공에 가득하여 한량없고 수없는 갖가지로 장엄한 일체세계를 여섯 가지로 진동케 하는데, 저 세계들을 들어 올리고 아래로 내리고, 크게 하고 작게 하고, 한 데 합하고 각각 흩어지게 하되 한 중생도 시끄럽게 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중생들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의심도 없고 놀라지도 않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셋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흔히 부처님이 법을 설하시면 그 감동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6종 18상으로 진동한다고 하였다. 그것의 의미는 6근과 6진과 6식이 큰 감동과 깨달음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모든 부처님은 언제나 큰 감동으로 인하여 온 우주가 흔들리듯 하지만 중생들에게는 작은 미동도 없어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중생들이 어찌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짐작이나 하겠는가.
一切諸佛이 以神通力으로 悉能嚴淨一切世界하사 於一念頃에 普現一切世界莊嚴하시니 此諸莊嚴이 經無數劫토록 說不能盡이라 悉皆離染하야 淸淨無比어든 一切佛刹嚴淨之事를 皆令平等하야 入一刹中이 是爲諸佛의 第四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일체세계를 깨끗하게 장엄하는데, 잠깐 동안에 일체세계의 장엄을 두루 나타내며, 이 모든 장엄을 한량없는 겁이 다하도록 말하더라도 다할 수 없으며, 모두 물들지 아니하고 비길 데 없이 청정하며, 일체세계의 장엄한 일이 다 평등하게 한 세계 안에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넷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일체세계를 청정하게 장엄하는데 특별한 도구나 장치를 시설하고 꾸며서 청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 느끼는 사람의 안목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부처님에게는 이 세상 이대로가 극락정토며 화장장엄세계이지만 삼독에 찌든 중생에게는 극락정토로 보지 못하고 화장장엄세계로 보지 못할 뿐이다.
一切諸佛이 見一衆生의 應受化者하고 爲其住壽하사 經不可說不可說劫하며 乃至盡未來際토록 結跏趺坐하사대 身心無倦하야 專心憶念하사 未曾廢忘하고 方便調伏하야 而不失時하나니 如爲一衆生하야 爲一切衆生도 悉亦如是가 是爲諸佛의 第五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교화를 받을 만한 한 중생을 보고는 그를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살아계시며[住壽], 오는 세월이 끝날 때까지 가부좌하고 앉아서 몸이나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며, 전심(專心)으로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방편으로 조복시키되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한 중생을 위함과 같이 일체중생을 위하여도 또한 그와 같이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다섯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부처님은 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무수한 세월을 살면서 그를 잊지 않고 온갖 방편으로 조복하되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체중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일일이 다 그렇게 한다. 어찌 법회에 사람이 많고 적음을 탓하겠는가.
一切諸佛이 悉能徧往一切世界一切如來所行之處하사대 而不暫捨하며 一切法界가 十方各別한 一一方에 有無量世界海하고 一一世界海에 有無量世界種이어든 佛以神力으로 一念咸到하사 轉於無礙淸淨法輪이 是爲諸佛의 第六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세계에 있는 일체여래의 수행하던 곳에 두루 가서 잠깐도 버리지 아니하며, 일체법계에 시방이 각각 다르고, 낱낱 방위마다 한량없는 세계바다가 있고, 낱낱 세계바다에 한량없는 세계종(世界種)이 있는 데를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잠깐 동안에 모두 이르러 가서 걸림 없고 청정한 법륜을 굴리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여섯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시방세계가 이와 같이 넓고 넓은데 부처님은 어느 한 작고 특별한 곳도 버리지 않고 한 순간에 일일이 다 가서 걸림이 없는 청정한 법륜을 굴린다. 부처님이 남겨두고 제외한 곳은 있을 수 없다. 장소를 그렇게 하듯이 낱낱 중생도 어느 누구도 부처님이 남겨두거나 제외한 중생은 없다. 참으로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一切諸佛이 爲欲調伏一切衆生하사 念念中에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사대 而於一切佛法에 非已現覺이며 亦非當覺이며 亦不住於有學之地하고 而悉知見하야 通達無礙하사 無量智慧와 無量自在로 敎化調伏一切衆生이 是爲諸佛의 第七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하여 생각 생각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마는, 일체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이미 깨닫지도 않았고 장차 깨닫지도 않으며, 또한 배우는 지위에 있지도 아니하면서 모두 보고 알아서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한량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자유자재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일곱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진실로 깨달은 부처님에게는 일체 불법을 깨달은 바도 없으며 앞으로 깨달을 일도 없다. 무슨 특별히 배우는 지위에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 일체 법을 보고 알아서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한량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자유자재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한다. 실로 부처님 세계는 불가사의하다.
一切諸佛이 能以眼處로 作耳處佛事하며 能以耳處로 作鼻處佛事하며 能以鼻處로 作舌處佛事하며 能以舌處로 作身處佛事하며 能以身處로 作意處佛事하며 能以意處로 於一切世界中에 住世出世間種種境界하사 一一境界中에 能作無量廣大佛事가 是爲諸佛의 第八自在法이요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눈으로써 귀로 하는 불사(佛事)를 짓고, 귀로써 코로 하는 불사를 짓고, 코로써 혀로 하는 불사를 짓고, 혀로써 몸으로 하는 불사를 짓고, 몸으로써 뜻으로 하는 불사를 지으며, 능히 뜻으로써 일체세계에서 세간과 출세간의 갖가지 경계에 머무르며, 낱낱 경계에서 한량없이 광대한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여덟째 자재한 법이니라.”
▶강설 ; 육근호용(六根互用)이라는 말이 있다. 일체 부처님의 세계에서는 눈과 귀와 코와 혀 등을 서로 서로 같이 작용한다. 예컨대 손이 없는 사람이 입이나 발로써 손을 대신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을 집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청량스님은 소에서, “업이 자유자재한 것이다. 육근을 호용하여 광대하게 불사를 하는 것이 이것이 부처님의 업[佛業]이다. 그러나 고치거나 바꾸지 아니하였으며 하나의 근도 변하지 않은 채 본래 갖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