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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기가 막힐 때 내게 행하신 일
시편40:1~3
2009년 8월 2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설교:
우리는 간혹 어처구니없다 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 ‘어처구니’가 뭘까요?
손잡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또 “氣가 막힌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사용합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을 때, 그때 氣가 막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우리 몸의 기가 막히면 꼼짝할 수 없이 굳어버립니다. 그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기가 막힌다’ 표현 합니다.
반면에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가 막힌다” 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광경, 대단한 모습,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기가 막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기가 막힐 정도의 어려움을 겪어 보셨나요?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당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때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때도 기가 막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아마 노대통령이 자살을 했을 때도 우리 모두가 기가 막히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을 보면 다윗은 그의 생애에서 기가 막히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가 막힐 웅덩이, 그것은 그의 상황을 짐작할 만한 표현입니다.
어느 날 사울 왕을 모시는 중 왕이 갑자기 자기를 향해 창을 던집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기가 막힐 상황이지요.
또 사랑하던 아들 압살놈이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그 아들을 피해 도망치는 다윗의 신세가 기가 막할 상황이지요.
웅덩이와 수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기가 막힐 상황입니다. 진흙 웅덩이와 수렁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보셨나요? 그렇다면 그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나요?
실상 기가 막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뭔가를 해보려 해도 소용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때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나요?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몇 가지 일을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웅덩이에 빠졌을 하나님은 내게 무슨 일을 하시나요?
1. 귀를 기울이사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1절을 보세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음소리도 들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압제를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출2:23~25절을 보세요.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그때 광야에 있는 모세를 불러내어 그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고 그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합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기가 막힌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을 겪게 되면 기도조차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주여~” 하고 신음소리만 내게 됩니다.
저는 2년 전에 김00 집사가 쓸어 졌을 때 병원 수술실 앞에서 내내 신음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기도가 막히더라고요. 그냥 주여 소리밖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저녁 10시 반에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새벽 5시까지 잠도 안 오고 그냥 의자에 앉아 살려만 달라고 신음소리만 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비록 몸은 장애인이 되었으나 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작년에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집 가까이 있는 교회를 가겠다고 합니다. 정말 그때는 더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냥 기도를 못했습니다. 그냥 “주여” 소리만 나옵디다. 기도를 하면 나도 인간인지라 분이 나오고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아 그냥 입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소리도 들으신다 했으니 제 마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웅덩이 체험을 해보셨나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웅덩이, 아무도 건져낼 수 없는 수렁 속에 던져져 보셨나요?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유심히 보고 계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요? 원망 불평하는 기도인가요? 아니면 감사 찬양의 기도인가요?
이왕이면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아시기에 그 믿음이 있다면 그럴 때 일수록 감사기도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곤경에서 나를 건져 반석위에 세워 주십니다.
우리가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까요? 그때 하나님은 침묵하며 구경만 하질 않습니다. 우리를 그 웅덩이에서 건져 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견고한 반석위에 세워 주십니다. 할렐루야!
2절을 보세요.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빠진 웅덩이와 수렁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웅덩이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웅덩이와 수렁에 자주 빠질까요?
1) 죄의 웅덩이에 빠집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 죽게 했습니다. 간음죄, 거짓말 죄, 살인죄, 도적질 죄……. 하나의 죄는 많은 죄를 만들어내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결국 죄에 빠져 스스로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예외 없이 깊은 죄에 종종 빠집니다.
이 죄의 수렁과 웅덩이에서 누가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2) 실패의 웅덩이에 빠집니다.
사업의 실패, 학교생활의 실패, 가정의 부부생활의 갈등, 인간관계에서 실패 등등……. 좌절과 아픔의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웅덩이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때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3) 나쁜 습관의 웅덩이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 등……. 잘못된 습관의 웅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가정과 삶을 파괴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자제가 안 됩니다. 그러기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듭니다.
이밖에도 자제할 수 없는 성격, 게으름, 과음 과식, 거짓말, 더러움, 악한생각, 노름, 호색, 남을 비난·저주하는 것 등등…….
우리는 이런 위험 요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성령의 거룩한 능력으로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나 결단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속히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 주의 일하다가 시험의 웅덩이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깊은 웅덩이에 빠지는 것은 세상 일때문만은 아닙니다. 간혹 주님이 맡긴 사명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매도 맞고, 돌로 침을 받고, 파선을 당했습니다. 강의 위험, 도적, 동족, 이방인, 바다의 위험도 받았습니다. 배고픔, 헐벗음, 잠 못 자는 고통도 받았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역경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왜 하나님이 돕지 않냐며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때 하나님께 구하고 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즉시 바꾸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도우시고 구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고후4:8-9를 보세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그러기에 그는 어려운 환경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승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다윗은 자기 문제를 하나님 앞에 먼저 갖고 나왔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 해보았지만 사울의 미움, 질투, 죽이려는 감정은 계속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하나님이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자기 문제를 하나님께 아뢴 후 기다렸습니다.
1절에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렇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기다리면 때가 되면 다윗처럼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끌어 올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 웅덩이에서 건져 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세워 견고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내게 허락하신 곳은 반석위입니다. 그러기에 걱정할 것이 없는 곳입니다.
다윗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깊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건져서 든든한 왕권을 보장하셨습니다.
나중에 아들에게도 배신을 당합니다. 충성스런 신하들이 아들 편에 붙어서 자기를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이 자기의 대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시3편을 보세요.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그는 압살롬의 대적 때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적이 너무 많다는 호소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웅덩이에 빠지면 고개가 숙여지니다. 낙심하여 힘이 빠지므로 머리를 숙입니다. 때로 부끄럽고 창피하여 숙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머리를 들어서 체면도 세워 주시고 권위도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 18:2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깊은 웅덩이와 수렁만 보지 말고 하나님이 구하셔서 반석위에 세우실 것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3. 내 입술로 주를 찬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를 건져 내시고 내 입술로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3절을 보세요.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왜 새 노래라 했을까요? 늘 부르던 노래가 아닌 “새 노래”는 새로운 은혜를 체험한 사람의 노래입니다.
새로운 노래로 새롭게 깨달은 은혜를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 감사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 새 노래는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입니다.
그것을 내 입에 두셨다고 합니다. 즉 내 입술에 늘 찬송이 붙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늘 감사하고 기쁘면 나도 모르게 찬송이 저절로 울려 납니다. 그래서 기뻐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일까요? 그중에 구원의 감격을 노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시 44:8에 감사 찬송을 보세요.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 이다.”
시 100:4에도 감사 찬송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또 그중에는 용서의 노래도 있을 것입니다. 다윗을 괴롭힌 자들을 용서하는 마음속에서의 노래입니다. 시 99:8에는 용서를 찬양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했습니다.
또 신앙의 노래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의 노래입니다. 더 나아가 헌신을 결단하는 노래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노래입니다.
시 56:4에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 찬양을 해야 할까요?
형통할 때, 감사할 때, 기쁠 때만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안되었을 때, 고통의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도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 찬양 기억하시죠?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 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위해 기뻐하리라 /아멘?
어떤 조건이 있어서 찬양하는 것도 좋으나 그냥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그것이 우리 성도의 자세입니다.
제가 부교역자 3년까지 27년을 목회를 하면서 심방을 다니면서 볼 때 놀라운 것은 부자들 집에 가면 식구들이 별로 웃지 않는데, 가난한 집에 가보면 그 식구들이 잘 웃는 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근엄한 얼굴은 있으나 대신에 별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을 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기쁜 얼굴로 맞이합니다.
"하하하... 목사님 오세요..하하하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좋아서 웃는지 모르지만, 잘 웃습니다.
예배시간에도 보면 좀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형편의 가정은 예배 분위기도 경직되어 있고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렵고 정말 힘든 가정의 성도들은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려워도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고 믿고 맡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가진 것이 있는 분은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여 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유가 없는 것이고 감사가 부족한 것입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범사에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기기 막힐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향해 계속하여 일하십니다.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1)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시고
2)여러분을 그 웅덩이에서 건져 반석위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3)그리고 여러분의 입술로 주를 찬송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기도합시다. (합심통성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