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문화를 아십니까 7. –김준호 재피방
<상추>
쌈채의 시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상추였다. 상추는 동서고금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사랑받던 채소였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을 거쳐 萵苣[워지], 生菜[성차이]로 불리다가, 부여 고구려, 한반도로 전해져 꾸준하게 개량을 거쳐 도리어 이 땅의 특산 채소가 되었다.
당시 중원의 수나라 사람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생채로 쌈을 싸 먹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그러자 고구려 상추의 맛이 좋아 서로 앞다투어 그 씨앗을 구하였는데,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당시 수나라 사람들은 상추를 ‘천금채(千金菜)’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옛 부여, 고구려 지역과 영동과 전라, 제주는 ‘풀’을 뜻하는 ‘푸루, 부루, 브르’로 부르고, 경상도, 충청도는 불, 부리, 불기라고 불렀다. 그후 18세기에 들어와 ’생채(生菜)‘라는 한자어가 유행하며 서울, 경기, 영서 등에서 ’생추, 상채‘라고 불리다가 ‘상추, 상치, 상초, 생추, 생초, 부상추, 푸상추, 불상추 등으로 퍼져 나갔다.
아침이슬 상추밭에 불동 꺾는 저큰아가
불동 이사 꺾네마는 고은손목 다적신다
뿔똥꺾는 저 처녀야 묶어내자 묶어내자
뿔똥은 옆에 놓고 이 모판을 묶어내자
상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 때문이었다. 초봄에 심으면 거의 초겨울까지 길게 수확을 할 수 있고, 자체적인 방충 내성이 있어 벌레나 병충해에도 강하고 심지어는 뱀도 상추를 싫어해서 예부터 장독대 옆에 많이 심었다.
상추는 심한 가뭄이나 추위만 없으면 잘 자라, 이파리를 따면 다시 며칠 만에 자라나는 강인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상들은 아침에 이슬을 털고 따낸 상추를 보약으로 생각하고 섭취했던 작물이었다.
상추는 이슬을 먹고 자라 시원하게 속을 뚫어주는 맛이 있고, 쓴맛이 있어 짭졸한 멸치젓을 얹어 쌈을 싸 먹으면 밥맛을 잃기 쉬운 여름철에 입맛을 살려준다. 특히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인의 중요한 쌈채 재료였다.
상추쌈은 한국인에게 고향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정착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고려 여인들이 이 맛을 잊지 못해 고국을 그리워하며 상추를 재배해서 쌈으로 싸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육식을 즐기던 몽골 사람들에게 상추쌈이 유행하며 ‘고려쌈, 고려양’이라 하여 널리 퍼져 나가 원나라 전체에 고급 음식으로 유행을 하였다.
양윤부는 원나라 혜종 때 사람으로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을 담당하는 벼슬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가 쓴 <난경잡영(灤京雜詠)>에 나오는 고려쌈에 관한 구절을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更說高麗生菜美 摠輸山後藦菰香(다시 고려의 맛 좋은 상추 이야기를 하노라. 향기로운 새박 나물과 줄 나물을 모두 수입해 들여온다) 하고 스스로 주석하기를, ‘고려 사람은 밥을 생채 쌈에 싸서 먹는다.’라고 하였다.
우리 풍속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렇게 채소 중에 이파리가 큰 것은 모조리 쌈을 싸서 먹는다. 그중에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마다 심으니, 이는 쌈을 싸 먹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며 생채로 쌈을 싸 먹는 고려의 풍속이 몽골에 전해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런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 교민들의 집을 방문하면 텃밭에 꼭 키우는 것이 상추, 깻잎, 쑥갓 같은 쌈 채소였다. 그리고 이 쌈 문화의 전파력도 원나라의 ‘고려쌈’ 못지않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식당이 존재하고 있고, 한식 메뉴 삼겹살, 불고기는 코리안 바비큐라 불리며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낯선 이방인들이 상추에 삼겹살, 불고기를 올리고 고추와 마늘을 얹어 딜리셔스 소스라 불리는 쌈장까지 발라 쌈을 싸 먹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 되었다.
그들도 육식과 채식의 절묘한 융합과 짠맛, 매운맛, 단맛이 조화를 부려 고소하고 담백한 새로운 씹는 맛을 창조해내는 ‘코리아 쌈’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같이 상추는 단순한 먹을거리를 떠나 타향살이에 지친 코리언들의 향수병 치료제로도 쓰였다.
예부터 상추는 약용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상추가 신에 좋다’고 하였고, 상추 이파리를 딸 때 나오는 하얀 점액이 정액과 비슷하여 상추를 정력을 일으키는 채소로 생각하였다.
부산 동래지역의 오래된 계 모임인 동래망순계는 매년 4월 모임에 봄에 총회를 개최하면서 회원들 자제들이 원로들을 모시고 자체적인 기로 행사로 ‘불상추놀음’을 주최하였다. 이 잔치는 상추를 노인을 존경한다는 상치(尙齒)로 해석한 동래만의 독특한 기로 풍습이었다.
겨울에 쇠진한 노인들의 원기를 돋우기 위해 봄에 가장 먼저 갓 올라온 초벌 상추를 따서 봄 바다에 올라오는 납새미를 쪄서 살을 발라 그 위에 얹어 어른들께 쌈을 싸서 드리는 효도행사로 ‘불상추놀음’이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봉건 사회에서 상추는 원기를 돋우는 정력 채소로 ‘은근초’라고도 불렀다. 상추를 드러내놓고 키우지 못하고 남들이 모르게 키워야 하는 속사정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남새밭 담 옆에 심거나 장독대 옆에 몰래 심었다. 어쩔 수 없이 밭에다 심어야 할 때는 키가 큰 고추밭 사이에 숨겨서 심었다. 그래서 옛날 욕 중에서 ‘고추밭에 상추 심는 년', `상추 서 마지기 하는 년'이라고 하면 여성들의 음욕이 강하다는 치욕적인 욕이었다.
들일을 하던 농부네들은 밭에서 상추를 따다가 냇물에 대충 씻어 밥을 얹고 된장을 발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려 한 쌈을 밀어 넣고, 볼이 터지도록 씹는 모습을 보고 “복이 들어간다”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밥을 크게 싸서 먹는 것은 곧 복을 싸서 먹는 것과 같이 복스럽게 여기고 좋게 보았다. 반면에 염치없이 처가살이하는 사위가 입을 크게 벌리며 쌈을 싸 먹으면 “눈칫밥 먹는 주제에 쌈밥까지 먹는다”라며 밉상을 받아 타박을 주었다.
쌈은 이렇게 어려운 사람과는 먹기 힘든 음식으로 목젖을 보여줘도 상관없는 서로 허물없는 사람들끼리 열심히 일하다가 나누는 두레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