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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음원지 방문자센터는 전시실, 영상실, 교육실, 편의시설 등을 갖추었다.
《동문선(東文選)》 권64에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에는 혜음원의 창건배경과 그 과정, 창건과 운영의 주체, 왕실과의 관계 등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다. 이에 의하면 혜음원은 남경(현재 서울)과 개성 간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예종 17년(서기 1122년)에 건립된 국립숙박시설이며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별원(別院)으로 축조되었다고 전한다.
▲발굴 후 사적 제464호 <파주 혜음원지(惠蔭院址)> 전경
고려 및 조선시대에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혜음령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그 위치가 추정되어 오다가 1999년 주민의 제보에 의해 행해진 조사에서 「惠蔭院」이라고 새겨진 암막새가 수습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2004년까지 계속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 혜음원 이름이 쓰인 암막새(위), 파주 혜음원지에서 출토된 용두(아래 왼쪽)와 금동불.
전체 경역은 원지, 행궁지, 사지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동서 약 104m, 남북 약 106m에 걸쳐 9개의 단(段)으로 이루어진 경사지에 27개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연못지, 배수로 등의 유구와 금동여래상, 기와류, 자기류, 토기류 등의 많은 유물이 확인되었다.
▲엣 한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의 과거길(파란색)와 현재길(연두색)
혜음원지는 문헌과 유구, 유물을 통해 원(院)의 구조와 형태, 운영실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왕실, 귀족, 평민 등 각 계층의 생활양식을 전해주는 유적으로서 고려 전기 건축 및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잘 정비된 혜음원지 탐방로
이곳 파주에 이사 와서 볼것도 많고 배울것도 많으니 이제는 瞻坡하다가 學坡하여 知坡하고 愛坡하는 (파주를 바라보다가 파주에 대해 배우고 파주를 알아서 파주를 좋아하는) 파주 풍류인이 되어야겠다.ㅡ 동현생각
○위 자료는 위키백과에서 이미지는 네이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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