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요미 녀석
하부지 사랑에
어린이 대공원
야외 눈썰매장(?)
으로부터
외할배로서의
소임을 다하며,
소싯적 한겨울
큰 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새하얀
눈꽃 천국인 날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비료 포대에
적당히 볏짚을 넣어
쿠션을 만든 후,
마을 밖 인근
비탈진 매뚱 벌안이나
학교몰랑 언덕배기로
득달같이 몰려들어
하루 해가 저물고
꼬리뼈가
문질러지도록
눈썰매를 타곤 했던
그 천둥벌거숭이
시절을 추억하곤,
기껍고
달달한 미소를
가슴과 얼굴에
한가득 머금고,
일상에 습관 된
진로를 따라
서둘러 바삐
주일 산행의 궤도에
사뿐히 진입,
금일 여건을 감안
(아차산역/
어린이대공원 후문)
습성화 된 산행로의
역방향,
아차산역을 들머리로
느긋하게 영화사 앞
동의초등학교를 지나
여유롭게 아차산
토요광장에
이르기까지,
여느때 같았으면
어둠이 이미
도심을 점령한
완연한 저녁무렵
힘겨운 걸음으로
도심 불빛마저
흔들거리는
분주한 이 거리를
터벅터벅 지나가고
있었을 텐데,
벌건 대낮에
이 곳을 거슬러
역주행을 하자니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의외의
새로움과 함께
그동안의
기억과 인식에
상당한 오류가
있었던 듯,
버젓이 전혀
다른 모습들을
삐죽삐죽 내보이며,
생경스럽고
한가스럽기까지 한
중곡동 일대의 풍경을
처음 걷는 거리처럼
연신 두리번 거리며
보이는 곳곳 마다
시선이 가 머문다.
고구려정을
등 뒤에 남기고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엉덩이를 뒤로 빼
바짝 몸을 낮춘 채,
엉거주춤
옆걸음질로
살금살금 내려오던
고구려정 암반
내리막 길을,
허리를 앞으로
바짝 굽혀
발목이 접혀 꺾일 듯
힘주어 오르며
팔각정(고구려정)의
웅장한 자태를
정면으로 마주 하고
끙끙 바위 위를
올라감도 그러하고,
뒤돌아 강동 광진
강남의 아름다운
야경에 반하여
한동안 어둠이 더
짙어지기를 재촉하며
서울도심 야경에
깊이 매료되곤 했던
고구려정 인근의
멋스러운 조망과,
해 질 녘
석양과 노을이
마술처럼 기교를
부릴 때면
한강 수면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변하곤 하던
아차산 중곡 방향의
전망대 풍광 또한
그러하였거늘,
쨍한 햇빛 아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밝고 투명한
서울 도심의
북방 일부를 제외한
동 서 남방 모두를
거울 속
들여다 보듯 하며
느릿느릿 여유를
부려 봄도 뜻밖의
새로운 감흥이다.
그렇게
느릿느릿 걸음도
어느새
대성암 입구,
돌계단 아래에 서
합장 삼배를 올리고
곧장
헬스장으로 직행
25 분여 운동 후,
대성암 뒤의
암반 오르막을 올라
아차산 3보루를 거쳐
4보루에 이르기까지
산행 거리 구간 상
중간 쯤 되는 지점
이었던지,
한낮 늦은 오후의
눈에 익숙한
한강 상류의
멋드러진 광경,
팔당대교를
저 먼발치에 두고
구리암사대교와
강동대교
미사대교가
어깨를 나란히,
광진교 천호대교
88대교 잠실대교까지
한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한폭 그림같은
아차산 동부 조망을
아우러,
하얗게 눈 표백 된
유적 발굴지의
한겨울 눈부신 풍경에
안구까지 정화 한 채,
아차산 4보루를 넘어
용마산 방향으로
내림과 오름로를 거쳐
용마산 헬스장에 도착,
10 여분 마무리
운동까지 마친 후
용마산 정상을 넘어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중간
8부 능선 전망대,
새로운 또 한
석양 노을의 일면을
잔뜩 기대하며
서녁 하늘을
주시 해보지만,
이미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고
짙은 구름 뒷편으로
주저앉은 석양은
금방 어둠을 불러다
용마산과 도심 틈새를
빼곡히 채워 메꾼다.
기대와 설렘도 잠시,
용마산 인공폭포
급경사지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려,
용마산
지하철 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며
문득,
어쩌면
산다는 것은,
회귀본능에 의한
어딘지 모를 곳으로
주어진 시간
주어진 구간을
끊임 없이 거슬러
되돌아가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삶의
소진 행위와 같은
역주행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인생이란
그 길 위에서
수 없이 스치고
마주치는 인연을
필연과 우연으로
조각맞춤 하며,
이세상 끝까지
붙들고 이어가는
불변의 강과,
한순간 스쳐가고
버리고 잊는
망각의 바다에서,
세월의 파고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종이배와 같은
위태위태하고도,
잠깐 한순간
무지개 같은 것일지도
또한 모른다는
허탈한 생각에
불현듯,
나의 오늘을
성찰함에 있어,
고정 된 관념과
고정 된 인식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잠깐의 선입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일시적 느낌으로
인생을 가늠하는
편협함과
용렬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며
이로부터 영영
헤어나지 못 한다면,
더 크고 넓은 세상
더 빛나고 아름다운
더 값지고 폼나는
많은 것 들로부터
어쩌면
영영 격리 된 채,
이 세상의 일 면 만을
겨우 겪고 반 누림 하다
소중한 자신의 일생을
소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다급함에,
내 자신을 향해
각성을 촉구컨대,
이제
예순하고도 여섯이면
인생사 어지간히
이해할 만한,
세상사 웬만큼
깨우치고
철들 만한 나이,
가끔은
나의 규범으로 부터
홀연히 벗어나,
짬짬이
나의 틀 안으로 부터
온전히 밖으로 나와,
세상과 주변과
자신을 새로이
바라보고 살피는
시간과 여유와
안목이 필요한 때,
세월에 마지못해
하루 또 하루를
죽이며 늙어가는
소진행위가 아닌,
더불어 함께 나누고
가꾸고 누리며
인생 역주행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대 인식 전환이
요구 되는 시기.
어쩌면 인간은
지난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시시때때로
되돌아 가고픈
역주행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채,
추억과 그리움 없이는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세상에 존재하기
불가능한
특이한 유전자를 갖고
살아 가는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내내
행복이든 슬픔이든
지난 후에 생각하면
모두가 다 추억이라
하지 않던가?
모든 이의 삶과 일생에
두고두고 기쁨과 설렘
슬픔과 아픔, 미련과
그리움으로 자리 해
때로는
이세상을 버티고
지탱케 하는 소중한
힘과 끈기가
되어 주곤 하는
제각각 한정 된
삶의 연장선상,
나이들수록
못내 돌아가고픈
나의 역주행
그 끝에서 만나는
이 귀요미 녀석과의
인연이,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가슴을 차지하고
달이 갈수록 더더욱
마음을 잡아 끄는 것도,
혈연으로 인한
핏줄 땡김은
차치하고라도
못견디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은 물론,
나에게
외할배라는
고귀한 인연을
선물해 준
꿈둥이라는
사실에 더해,
시대적 빈곤과
사회적 가난 속에
늘 허덕였다던
나의 어린시절과 달리
여유롭고 풍족한
이 좋은 세상
수많은 혜택과 사랑
온갖 것을 다 가진
이 녀석의
우월적 존재감은
서로 다른 시대적
불공평으로
이해 하고라도,
못내 부러우면서도
적잖이 가슴이
시리운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
열악한 환경과
가난으로부터
늘 시름시름 앓아
허약 했었다는
나의 어린 시절과
꿈 속처럼 아련히 겹쳐
그 시절 내 자화상을
마주한 것처럼
못내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픔을 포함,
전생에 무슨
특혜를 받아서
이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런 인연으로
이 세상에
하부지와 손주로
만났음이 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인연이며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운이랴?
세월 지난 먼 훗날
하부지와의
이러한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리워했으면
나 죽어서라도
흐뭇할 테지만,
그저 혼자만의
바람일 뿐,
저릿한 기억은
지난 후 생각하면
모두가 다 추억이고
그리움이며,
그리움은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진솔한 애착이며,
추억은 모두가 다
아름답다 라는 것에
공감, 동감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이 고귀한 인연을
내게 선물한
이 소중하고
애중한 녀석으로부터
그 예쁘고 작은 입으로
하부지만 많이많이
사랑한다는
곰살스런 녀석인데,
바보할배가 된다 한들
못할 게 뭐 있겠고
칠순에 가까이
기울어 가는
이 시시껄렁한 즈음,
이 화끈한 고백을
어찌 피할 수 있겠으며
불같은 이 유혹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내 기꺼이 이 녀석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내 인생 역주행 길의
스릴을 만끽 해보리라.
2024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