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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8HVszbRf28?si=WHFuMkwzx8LOOcQl
푸른 애벌레의 꿈 / 시인과 촌장(하덕규)
나는 빼앗긴 것이 많아서 모두 되찾기까진 수없는 날 눈물로 기도해야겠지만
나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진 수없는 아쉬움 내 마음 아프겠지만 아프겠지만
나는 괴롭던 날이 많아서 이 어둠 속에서 내가 영원히 누릴 저 평화의 나라 꿈꾸며
홀로 걸어가야 할 이 길에 비바람 불어도 언젠가 하늘 저 위에서 만날 당신 위로가 있기에
끝없이 펼쳐지는 저 높은 하늘 저 하늘 위에 내 마음을 두고
슬피 쓰러져 잠들던 이 어두운 숲 속에 불 밝히며 땀 흘리며
그렇게 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푸른 날개가 돋으면 날개가
이 어둠에 껍질을 벗고 이기고 나가 그렇게 목말라 애타게 그리워했던
새로운 하늘 오 새로운 태양 새로운 빛깔에 세계를 날아가리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
2026년 2월 21일 풍호연가길... 학산 오독 떼기 전수 회관 앞에서...(09:50)
2026년 바우길 시도제가 있는 날... 더없이 좋은 날씨... 많은 바우님들이 함께 해 주었다
강릉 학산 오독 떼기(江陵 鶴散 오독 떼기)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전승되는 향토 민요.
강릉학산오독떼기는 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논김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남쪽으로는 동해시의 망상·옥계부터 북쪽으로는 양양군 남부 지역까지 분포되어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논농사 소리가 불리지만,
어느 지역이든 논매는 소리가 가장 다채롭고, 음악적으로도 세련되어 있다.
강릉학산오독떼기는 1988년 5월 18일 강릉 학산마을에 전승되는 논농사 소리를
강원도의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면서, 논매는 소리인 오독떼기를 그 명칭으로 삼게 된 것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강릉학산오독떼기에는 논매는 소리인 오독떼기 이외에도
논매는 소리로 꺾음 오독떼기와 잡가·사리랑·담성가 등이 포함되며,
모찌기 소리, 모내기 소리, 벼베기 소리, 타작 소리 등 일체의 논농사와 관련된 농요가 포함되어 있다.
오독떼기의 유래와 관련하여 “옛날 신라 때는 화랑(花郞) 무리들이
강릉 근방을 순력(巡歷)하면서 풍류도(風流道)를 닦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국선(國仙)들이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내려왔다.”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삼국사기(三國史記),악지(樂志)에 하서군(河西郡) 음악으로 소개된 덕사내(德思內)를
오독떼기와 관련지어 해석하려는 김선풍(金善豊)의 견해가 학계에 소개된 바 있으나,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강릉 지방 농요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 세조 12년의 실록에 보인다.
학산 마을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옛날 어느 원님이 이 고을에 왔을 때,
왕(王)고개를 넘다가 오독떼기를 듣고 어찌나 좋던지 향청(鄕廳)으로 불러서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왕고개가 구정면 소재지에서 학산리로 넘어가는 길목이므로, 당시 원님이 들었다는
오독떼기는 냇골(內谷), 즉 학산(鶴山)과 여찬리(余贊里) 부근의 농민들이 부른 노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릉 지방에서는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오독떼기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냇골[內谷] 오독떼기(내곡동, 학산리 지역), 수남[水南] 오독떼기(남대천 남쪽인 박월동, 어단리, 금광리 지역),
하평[下坪] 오독떼기(사천의 하평 지역)등이 그것이다.
학산은 냇골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현 내곡동 보다 학산이 ‘물이 더 세고, 소리가 세다’고 한다.
이 학산 오독떼기를 냇골 오독떼기또는 자진 오독떼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하평 오독떼기에 비하여 노래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명칭]
‘오독떼기’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째로 옛 신라 때 화랑의 무리들이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전하는 것이란 설이 있으며,
둘째로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독(五瀆)을 ‘떼기[開拓]’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셋째로는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이고, ‘들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이 있으며,
넷째로 다섯 번을 꺾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 했다는 설과 다섯 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곡떼기’라 하던 것이 오독떼기로 정착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사님 Opening... (10:00)
7구간 새로운 구간지기 지고지산님 인사말... (첫 리딩 멋지게 하셨습니다)
지고지산님의 첫 리딩....힘차게 출발한다... (10:07)
학산리 鶴山里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산 1리, 학산 2리, 학산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뒤에 있는 학바위 때문에 학산(鶴山)이라 했고, 또 굴산사가 있어 굴산(掘山)이라 불린다.
1896년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로 지정된 후,
1955년 9월 1일 강릉시 승격으로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로 조정되었다가 1971년 학산 1리, 학산 2리로 분구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가 되었다.
학산리는 도시 근교에 위치한 전원 농촌 마을이며 백두 대간의 산줄기인 칠성산(七星山,953.6m)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릉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현황]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사적 제448호 굴산사지, 보물 제83호 굴산사지 당간 지주, 보물 제85호 굴산사지 승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3호 강릉 정의윤 가옥,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8호 굴산사지 석불 좌상,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87호 강릉 조철현 가옥, 강원도 무형 문화재 제5호인 강릉 학산 오독떼기 등이 있다.
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요인 오독떼기 전승육성을 위해 오독떼기전수회관을 건립하고,
매년 학산리 조순 전 총리 생가 뒷골에서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등의 전승공개행사를 현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마을에 굴산사지가 있어 매년 범일국사다례제가 개최된다.
학산리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 들이 많이 남아있어 강릉전통문화 역사마을로 조성되었다.
강릉굴산사지당간지주 江凌掘山寺址幢竿支柱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대를 고정하기 위하여 사찰의 입구나 뜰에 세우는 두 개의 돌기둥이다.
깃대에는 사찰의 행사 및 의식이 있을 때나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기릴 때 깃발을 매단다.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거대한 석재로 만들어졌다.
두 지주는 높이 5.4m이며, 서로 40㎝ 사이를 두고 마주 서 있다.
거대한 석재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몸체에는 돌을 다듬으면서 생긴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생동감과 우뚝 선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지주의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는 안팎 양쪽에서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은 뾰족한 형태이다.
지주의 위와 아래에는 각각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 깃대는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 있으며, 남쪽 지주의 뾰족한 정상 부분이 파손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테라로사 커피 공장
이탈리아 어인 테라(terra)는 토지 · 흙을 뜻하고, 로사(rossa)는 빨간색을 뜻하므로
‘테라로사’는 붉은색 토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카르스트 지형을 덮고 있는 석회암 풍화토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현천길 25(어단리 973-1번지)에 있는
커피 제조공장, 커피숍, 레스토랑을 겸한 커피체험 종합문화 공간.
‘커피가 잘 자라는 비옥한 보랏빛 땅’이라는 뜻이 취지에 맞아 상호를 붙였다
2002년에 건립되어 커피 제조 판매로 시작하였으며 식당은 2005년 7월에 개업하였다.
한국 커피 전문가 1세대인 김용덕 씨가 운영하는 카페 겸 커피공장으로
바리스타가 추천하는 3가지 커피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커피 테이스팅 코스’가 유명하다.
실제 이곳은 정통 이탈리안 음식점이지만 각종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으며,
이른 시간에 오면 로스터에서 커피를 볶아 내는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어단천을 따라 걸어간다.
어단리 於丹里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최문한, 김충한, 이장밀, 김경 등이
이곳에 와 고려 우왕의 위패를 모신 어단을 쌓아 놓고 고려 사직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불사이군의 선비 정신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고기를 잡는 큰 못의 모습’처럼 되어 있는 형상이라서 ‘어담’이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6년에 마을에 있는 영남촌(뒷말), 새말, 점말, 동막과 금광리 일부를 합하여 어단리라 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명주군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에는 강릉 자수함 침투 사건 때 무장 공비들의 도주 경로로 유명해진 칠성산이 있으며 아래 자락에 법왕사가 있다.
마을 뒤에 칠성산을 비롯 갈마봉·향로봉이 있으며, 산 밑에 자리하여 물이 풍부하다.
또 점말에는 1887년에 세운 어단리 천주교 공소가 있고, 동막골과 선래골에는 저수지가 있다.
어단리 천주 교회는 영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 교회로서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신도들이 탄압을 피해 이곳에 와 세웠다.
상부락마을서낭당 邱井面於丹里-堂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는 설래, 상부락, 어단1리 5반, 어단2리 4반에 각 한 곳씩 4개의 서낭당이 있다.
서낭제는 행정 구역과는 상관없이 과거 자연 마을 단위로 서낭제를 올린다.
[위치]
설래마을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1반 976번지,
상부락마을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2반 814번지,
어단1리 5반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1리 5반 246번지,
어단2리 4반 서낭당 강릉시 구정면 어단2리 4반 191번지에 각각 위치해 있다.
설래마을 서낭당의 당집은 없으며 수령이 오랜 소나무 아래에서 제를 올린다.
상부락마을 서낭당은 원래 서낭목 3그루만 있었는데 근자에 벽돌 블록으로 쌓아 함석지붕을 얹었다.
어단1리 5반 서낭당의 당집은 목조건물에 함석지붕을 얹었다.
어단2리 4반 서낭당의 당집은 서낭목 숲 사이에 돌담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였다.
농수로 공사로 길이 조금은 혼잡스러웠다.
(이 길은 감나무가 많아 늦 가을에 감 따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공사를 하면서 감 나무를 모두 없앤 것 같다)
동막 저수지 근처에서 잠시 휴식...(11:14)
동막저수지 東幕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 2리에 있는 저수지.
동막저수지는 어단 2리 동막골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동막저수지에 모인 물은 어단리와 금광리의 넓은 들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막저수지는 관개 개선 및 지목의 변환을 목적으로 쌓았다.
1952년 11월 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1월 30일에 준공하였다.
동막저수지는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제방을 든든하게 쌓았다.
둑 쌓는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길이는 420m, 제방 높이는 24.2m, 저수지의 체적은 625.856㎥이다.
개척대마을 開拓隊-
강릉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개척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마을.
개척대 마을은 평야 지대나 구릉 지대를 개척하여 생긴 마을이다.
개척대 마을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먼저 일제강점기 초기의 개척대 촌락,
해방 이후의 개척촌락,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개척대 촌락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와 학산리에 있는데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과 관련하여 일제 세력에 편승한 동양 척식 회사를 비롯한
일본 식민 회사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관유지를 불하받은 일본 이민자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다음은 해방 이후의 개척대 마을이 있는데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동막저수지와 칠성저수지가 완공되기 전까지 임야 개척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1948년 정부의 후원 아래 발족된 한국 개척대가 국유림에 투입되었는데
한국 개척대는 해방 후 월남한 북한 출신으로 구성되었고,
그 후 피난민, 경상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등지에서 소작농 임금 노동자,
영세 자작농민들이 유입되어 생활하면서 마을이 개척되고,
가옥 형태도 원주민의 가옥, 개척대 가옥, 유입민의 가옥 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1960년 이후의 개척대 마을인데 이때는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가 완공됨으로써
지역의 토지 이용 및 촌락 발달의 양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칠성저수지와 동막 저수지의 완공으로 마을이 몽리구역으로 책정되어 도수로에 의한 관개용수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새로 개척된 마을은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어단리·금광리 지역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 4리 안반데기에 있다.
마을길을 벗어나 걷기에 좋은 아름다운 숲길로 접어든다.
풍호연가길의 엄청난 난 코스....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코스인지 로프도 설치되어 있다. (설악산 용아장성과 난이도가 비슷하다...^^)
금광리 들판...(시야가 트이는 아름다운 풍경인데.... 미세 먼지가 도와주질 않는다)... (11:48)
금광리 金光里
금광리는 동쪽으로는 덕현리, 서쪽으로는 학산리, 남쪽으로는 어단리와 언별리, 북쪽으로는 운산동과 접해 있다.
금광리의 명칭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금덩이를 건져 올린 용금정이 있어서 용금정의 ‘금’ 자를 따서
‘금빛이 나는 고을’이란 뜻에서 ‘금광(金光)’, ‘금굉이’, ‘금겡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둘째, 마을 남쪽에 강릉의 화채봉인 칠성산이 있는데 칠성산에 있는 바위가 ‘일곱 개의 별이 나란히 어울려 있는 형상’,
즉 ‘칠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별이 일곱 개면 능히 쇳덩이도 녹인다 하고,
산 아래 넓게 펼쳐진 들판이 ‘불이 금을 녹이는 형상’이어서 사람들은 마을을 ‘금이 빛을 동반하다’고 하여 ‘금광리’,
그 버덩(나무가 없이 풀만 우거진 거친 들)을 ‘금광평’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또 강릉의 여러 선비들이 금자 광록의 벼슬을 모방하여 금광이라 하였다는 설,
마을의 형상이 옥녀 금반형으로 생겨 금광이라고 하였다는 설 등 많은 유래들이 있다.
1911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구정면에 속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가운데로는 칠성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있으며, 박월천과 만나 섬석천으로 흐른다.
내 안쪽으로 펼쳐진 금광천과 금광평의 넓은 들은 구정 팔경 가운데 하나인
금광 목적(金光牧笛)과 모산 팔경의 하나인 금평 서연(金坪西煙)에 해당된다.
금광리 지역은 평야 지대가 발달해 있어 많은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논농사를 많이 한다.
주요 지명으로는 절터말, 마차골, 비석 거리, 금광평 등이 있다.
이팔청춘( 二八靑春)... 지영 씨의 반팔 모습...
사정없이 잘려 나간 나무들... 풍경이 조금 스산스러웠다.
송담서원 근처에서 바우길 시도제를 지낸다...(바쁜 와중에 시간을 만들어 참석해 바우님을 기다리고 있던 테라씨...)
송담서원 松潭書院
율곡 이이를 배향하기 위해 강릉 사족들이 세운 서원.
송담서원은 1624년(인조 2)에 구정면 학산리 왕현 왼편 아래쪽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630년에 완공되었다.
1652년(효종 3)에 김익희(金益熙)가 본도 감사로 와서 부사 이만영(李晩榮)과
이 건을 협의하여 새로 지은 곳이 지금의 송담서원 자리이다.
송담서원 건립 논의가 시작되는 시기는 1592년(선조 24)이다.
이때 김경시(金景時)와 몇몇 동지들에 의해 서원건립이 논의되었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일이 성사되지 못하였다.
1624년(인조 2) 전공조참의(前工曹參議) 김몽호(金夢虎)와 이상필(李尙馝) 등 30여 명의 향론(鄕論)에 의해
다시 추진되어 6년 간의 공정 끝에 1630년에 완공되었으며,
2월 17일 강릉부사 이명준(李明俊)에 의해 봉안제(奉安祭)가 거행되었다.
이때는 석천서원(石川書院)이라 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영의정 정호가 짓고 영의정 민진원이 쓴 묘정비가 있다.
송담서원은 강릉 지방에 세워진 사액서원으로서 임진왜란 이후
강릉 지방 재지사족의 향촌운영과 율곡 이이 문묘 종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임란 이후 강릉 지방 재지사족들의 결속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사무국에서 시도제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12:20)
2026년 병오년 (丙午年)! 바우길 안녕(安寧)과 발전, 무탈한 걷기와 화합, 건강을 기원하는 시도제(始道祭)
레이니어님이 바우길 시도제 사회를 보신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이기호 상임 이사님
구간 지기님들...
완주 봉사회 대표로...
올 한 해도 바우길의 안녕과 건강하고 행복한 길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시도제가 끝나고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13:05)
추어탕과 시루떡... 정말 맛있었다.(내가 불쌍했는지 국땅님이 떡 한 봉지 챙겨 주었다... 국땅님은 정말 천사 같았다...^^)
세 그릇째 먹고 있는 선유심님 ... (아예 김치통을 옆에 갔다 놓고 넉넉하게 드신다...^^)
시도제와 식사가 끝나고 다시 출발한다...(13:29)
걷기에 좋은 정감이 마을 등산로...
정감이 마을 등산로의 유래
"마을 김부잣집에 머슴으로 살고 있는 유총각이 있었는데 유총각은 부지런하고
영리하고 성실하여 주인과 이웃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마침 김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성실하고 잘생긴 유총각을 사모하게 되었다.
어느 봄날 김낭자는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가고 유총각은 나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산에서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고 소나무 가지밑에서 비를 피하던 중
둘은 같이 도망가기로 결심하고 칠성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등산로로 가는 도중 명주관아를 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 후 젊은이들이 이 장소에서 사랑을 언약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라고 한다.
너무 뻔하게 지어 낸 스토리텔링에 실소하게 되지만, 지나고 보니 등산로는 일품이었다.
정감이 마을에서 잠시 휴식...(14:13)
정감이 마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정감이 마을은 강릉시 강동면의 생활권이 같고, 발전 잠재력이 있는 언벌 1리, 언별 2리,
모전 1리, 상시동 2리 등 4개 마을이 모여서 아름다운 농촌 마을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공동체이다.
2006년 농촌 마을 종합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정이 많고 감이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4개 마을의 공동 명칭이다.
정감이 마을은 2006년 농촌 마을 종합 개발 사업에 선정되면서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4개 마을이 모여 각 마을 특성을 바탕으로 마을 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마을 개발 사업은 농촌 관광 시설, 친환경 농업 단지, 경관 보전 지역 등으로 나누어 추진하였다.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에 천혜의 자연환경인 단경골 계곡이 있다.
만덕봉(萬德峰) 자락에 위치한 단경골은 계곡이 깊고 상류로 올라갈수록 시원한 폭포와 소(沼)가 이어져 있다.
정감이 마을 둔지내골을 지나간다.
모전리 마을회관 앞에서.... (14:27)
모전리 茅田里
모전리(茅田里)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뙡지 마을 또는 모전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 지역을 갈라서 모전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언별리, 안인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속하게 되었다.
이 일대는 일찍이 늪지대였던 관계로 띠가 많이 자라서 떼밭이라 하였다.
또한 이곳에 선 왕골의 일종인 풀이 많이 났는데 이 풀로 맨 자리를 제사 때 쓰면 후손들이 많이 난다고도 하였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모전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뙡지, 돌펭이, 둔지말, 산두골, 가마떼기 등이 있다.
뙡지는 모전리 전체 마을 이름이며, 마을에 사람들이 살기 전에는 띠가 무성한 띠밭이었다고 한다.
돌펭이는 언별리(彦別里)와 경계 지역으로 이곳 일대가 돌밭이었다고 한다.
둔지말은 뙡지 안쪽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동네이다.
산두골은 임곡천(林谷川) 하류 쪽에 있는 산부레기로 괘방산에서 모전 쪽으로 뻗어 있는 낙맥과
망덕봉에서 뻗어 내린 낙맥 사이에 있는 넓은 골로, 괘방산에서 내려온 산줄기 뒤에 있는 골이란 뜻이다.
마을 앞에 있는 산줄기 마지막 낙맥에 태봉이란 산이 있고,마을 앞으로 군선강이 흐르는데
망덕봉에서 발원한 물이 십 년에 한 번씩은 큰 물이 흘러 [十年有一大水] 범람한다고도 전해진다.
교육 기관으로는 강동 초등학교가 있으며 유적지로는 장안성터가 남아있다.
강동초등학교 江東初等學校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기본 생활이 바로 된 예절 바른 어린이, 기초와 기본이 탄탄한 창의적인 어린이,
소질과 재능을 키우는 실력 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건강한 어린이’이다.
교훈은 ‘슬기롭고, 바르고, 튼튼한 강동 어린이’이다.
강동초등학교는 1932년 2월 10일에 강동 시장 가교사에서 4년제 2 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37년 4월 1일에 6년제 6 학급으로 편성되었다.
1996년 3월 1일에 강동 국민학교에서 강동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6년 2월 5일 제82회 졸업식을 거행하였고, 총 7,80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강동초교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14:48)
봄인 듯 걷기에 좋았던 풍호연가길... 많은 분들이 함께 걷고 시도제에 참석해 주어
병오년(丙午年) 바우길은 변함없이 발전하고 건강과 행복, 웃음꽃 넘치는 길이 되지 싶습니다.
시도제 준비로 수고하신 사무국과 봉사해 주신 님들 그리고, 함께 한 바우님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 아래 사진은 테라님이 폰으로 보내준 사진 몇 장...

첫댓글 서울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맘 사진으로 달래봅니다~
항상 봉사해 주시는 쟈스민님이 안 보여서 궁금했었습니다.
올 한 해도 건강하시고 자주 볼 수 있기를....
올 한해도 바우님들의 안녕을 기원 합니다 🙏
화사하고, 맛나고,
포근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운 가득한 걸음이었습니다 !
감사합니다~걷자님 👍😍
'우리'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행복하게 웃으면서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수고하셨습니다....허브님...
지고지산님의 첫 리딩이 있는 날이자 시도제가 있는 날~
무조건 달려가야 할 이 날에
ㅠ설날 수업 보강~
주어진 시간은 점심즈음 2시간
그래도 시도제에는 참여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걷자님의 수고로움으로 7구간의 기록 볼 수 있어서 감사 드리고
머리 올리신 지고지산님 수고 많으셨어요~^^
시도제 장소에 기다리고 있던 테라씨 모습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시간을 내어 함께 해 준 그대에게 고마움을 전 합니다...^^
걷자님의 후기로 7구간이 지나는 곳의 지명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당장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겠지만 여러번 접하다 보면
몇군데의 지명 유래는 건질 수 있겠지요.
앞서고 뒤서거니 쉴틈 없이 기록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고지산님의 성공적인 첫 리딩 축하드리며,
올 한해 바우길을 걷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그동안 바우길을 그냥 걷다 가...
문득, 걷고 있는 바우길이 지나 가는 동네에 관 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여, 하나 둘..찾아 보고...알게 되는 즐거움이 ...
함께 한 발 걸음 즐거웠습니다.
빠른 후기 덕분에 사진도 건지고 이야기도 잘 읽고 갑니다~^^ 시도제가 잘 끝나서 올해 걷는 바우님들 모두 무탈하시고 웃음만땅이시길~^^
이야기는 빨간 펜으로 밑 줄 그으면서 외우시길 바랍니다...(나중에 물어 볼 겁니다..ㅎ)
시무국에서 시도제 준비를 잘 해 주셨고 바우님들이 많이 참석 해 주셔 잘 끝난 것 같습니다.
수고 하셨고 모두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주말아침 빵모자쓰시고 딱~ 나타나시면 그냥 반갑죠.^^. 시도제 함께해주시고 넉넉한 마음까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잘 봅니다.고맙습니다~^^
아침부터 여러가지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을 국땅님...
대단히 수고하셨고 고마움을 전 합니다.
(그리고, 국땅님은 내게 관심이 도통 없구나....나 이번에 빵 모자 안 썼는데...ㅋ)
@걷자(서울/강릉) 지난주 빵모자 출장갔네~
@사무국장 아...시루떡 한 봉지 준 천사에게 내가 졌다....
최근 몇 년간 시도제때 춥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너무도 따듯한 날씨에
강릉바우길 스탭분들의 행사 준비와,
많은 바우님들께서 함께 참석하시어
성황리에 행사를 잘 마친 것 같습니다.
부디 올해도 바우님들 모두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풍호연가길의 엄청난 로프코스가 설악산 용아장성과 난이도가 비슷한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언제가는 용아장성에 가서 몸소 꼭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풍호연가길의 풍부한 설명과 시도제 풍경을 잘 담아주신 걷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침에 령관네를 만나며 왠지 기분이 좋다는...
령관 아빠....나도 용아 들어 가 본지가 5년도 넘은 것 같은데...
언제 날 잡아 벌금 준비하고 비탐 구간인 용아장성 함 갈까요?
위험은 하지만 정말 멋진 곳인데...^^
참으로 감사합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첫 리딩을 하게 되었는데
옆에서 함께 걸으며 어떤 조언보다
따뜻한 격려로 내내 힘을
실어주셔서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산님의 첫 리딩날...
게다 가 시도제까지 있던 날...
하늘도 축하 해 주려는 듯 날씨까지 좋았습니다.
좀 더 같이 걷고 싶었으나...사진 몇 장 찍다 보면 멀어지는 선두...
후미를 배려하는 적절한 걸음과 적당한 휴식...모든 게 완벽한 첫 리딩이였습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