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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샘물.
( 누가복음 10장 < 2 > )
비록 보잘것없고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의 내면에 선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고 감동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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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에게는 어머니 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젖을
먹는 데 있어 어떤 지혜나 슬기가 동원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 저것을 따지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복음을 아는 데 있어서도 인간의 지혜나 슬기는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젖먹이에게 어머니만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만 계시면 됩니다. 주님 안에서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지름길입니다.
1. 예수님의 기뻐하심.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누가복음 10 :21-22)
무지하고 믿음 없는 세상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모습은 대개 안타깝고 때로는 슬픈
모습이었으나오늘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미 잃어버린 여러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복음의
지혜는 이러한 어린아이적인 특성을 갖지 않고는 깨닫지 못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마치 젖먹이가 어머니만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젖먹이에게는 어머니 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젖을
먹는 데 있어서 어떤 지혜나 슬기가 동원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 저것을 따지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복음을 아는 데 있어서도 인간의 지혜나 슬기는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젖먹이에게 어머니만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만 계시면 됩니다.
이는 마음이 부드럽고 자신을 높이거나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성도의 특권.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0 :23-2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역사상 많은 영광을
누린 사람들보다도 그들이 더 복된 인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선지자들과 왕들일지라도 메시야는
그들에게 희망의 대상이었을 뿐이지만 제자들은 메시야를 직접
목격하고 가르침을 받으며 함께 거하는 특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전의 선지자들과 임금들이 환상과
희망을 통해 뵙기를 원했으며 현재 땅 위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뵙는 분을 직접 보고 그 숨결과 체온을 느끼며 동고 동락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늘 대화
했으며,그 사역을 목격했고,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주님께서 직접 친절히 재교육시켜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인류 최초의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목격하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복음의 핵심으로
삼고, 세계 앞에 증거함으로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았던 위인
들이 일약 인류가 사모하는 성자의 반열에 드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누가복음 10 :25-27)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됩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르는 곳에 모든 생물이 자라납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살아나게 합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이 죽은 후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영생을 얻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율법에는 영생을 얻는 길이 어떻게 기록되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3. 선한 이웃.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누가복음 10 :28-29)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의 대답이
정확한 답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사의 대답대로 행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대하여
율법사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누가복음 10 :28-32)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세리와 창녀 그리고 멸시와
천대 받는 자들을 즐겨 찾으시고 그들의 이웃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육체를 갖지
못함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나병 환자,소경,앉은뱅이,귀머거리 등의 이웃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 은혜를 베푸셨던
사람들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에게 시간과 물질을 손해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를 돌보다 자신도 강도를 만날 위험에 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혹시 죽었으면 시체를 만졌으므로 제사도 지낼 수 없습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그냥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방을 받을
염려도 없었으므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급한 걸음으로 지나갔습니다.
다음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제사장처럼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돈을 받으며 불쌍한 양들을 도우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누가복음 10 :33-35)
사마리아인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도와 주어야 할
사람의 국적이나 사회적인 지위 재산 따위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해 줌으로써 얼마나
나에게 이익이 돌아오느냐 하는 것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단 하나 그 사람의 생명이 귀중했을 뿐입니다. .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만이
참된 이웃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행동하는 사랑.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36-37)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참된 이웃
사랑은 실천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강도 만난 자의 참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강도 만난 자를
위하여 아낌없이 썼습니다. 그는 사람을 도와 주되
형식적으로 도와 준 것이 아니라 그의 성의를 다하여 도와 주었습니다.
그는 그를 주막에 갖다 맡기고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행한 일에 대하여 보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누가복음 10 :38-4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주시기
전부터 예수님과는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라도 자기 집에 오시기를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셨을 때 가장 요긴한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현명한
여자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를 경청하는 일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주님을 만나뵐 때마다 그 말씀 속에서
자기의 영혼을 불붙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음을 체험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마음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대접하는 가장 좋은 길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이며,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일이며,그보다 도 더 중요한 일은 깨달은 일을 행하는 일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 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41-42)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중심은 이해하셨으나 마리아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성찬이든 소찬이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르다의 그 정성스러운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은 몇 가지라도
좋고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의
이러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염려와 근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실수는 자기가
예수님에게 드릴려고 하는 것과 예수님으로부터 자기가
받아야 할 은혜와 어떤 것이 더 귀중한지를 분별하지 못한 점입니다.
마리아는
이것을 잘 분별했기 때문에 '좋은 편'을 택했다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강도를 만나 죽음 직전에 처해있는 사람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그냥 피해간 것 처럼
사마리아인도 당연히 지나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외면한 그 사람을 치료해주고 돌보아 준
선행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탄으로부터 강도를 당해 죽음 직전에 있던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예수님의
크고 깊으신 사랑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하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샬롬-
2024. 4. 19.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