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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1-12절. 방문 목적: 신령한 은사를 주려고. 요약설교
1. 이전 시간에는,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과, 로마 교회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이처럼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목적이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믿음을 견고케 하려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성도를 견고케 하려는 목적>입니다.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 11-12절은 9-10절에서 말한 바, 로마에 가기를 그토록 원했던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는 것>입니다.
(1) 바울은 무엇을 받고자 해서가 아니라, 신령한 은사를 주려고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자 하는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 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2)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므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즉, 그리스도인들은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앉은뱅이를 낫게 해주었습니다.
사도행전 3:6.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3)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9절 말씀대로,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13:8.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성령님을 충만히 모시고, 신령한 은사들을 나누어주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바울이 나누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신령한 은사>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신령한 은사’는 성령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약속한 대로,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대로, ‘신령한 은사’를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은혜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7장 38-39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 교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신령한 은사는 첫째로 성령의 은혜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둘째로 ‘신령한 은사’를 주는 것은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해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에게 가서 기도하고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15-17.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19장에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 12명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3)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안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 교회에 가서 신령한 은사를 주겠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다시 충만하게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4) 한편 여기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즉 본문의 문맥상 11절의 <신령한 은사>란 15절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 교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신령한 은사’는 성령님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의 은혜를 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로마 교회에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은혜를 충만히 받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이처럼 바울은 로마 교회에 성령의 은혜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5)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은혜를 주실 때,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처럼 바울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 9가지를 말씀했는데, 지혜의 말씀으로부터 병 고치는 은사와 방언 통역함까지 여러 가지 신령한 은사들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도 성령님의 은혜로 바울이 안수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이런 성령의 은사들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로마 교인들에게 신령한 은사들을 주셔서, ① 목회자들이 예언도 하고 잘 가르치고, ② 장로들이 잘 섬기고 잘 다스리고, ③ 집사와 권사들이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들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서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3. 그러면, <신령한 은사>와 <복음의 말씀>을 나누어 주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본문 11절에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었습니다.
(1) 여기서 <신령하다>는 것은 <육적인 것>과 대조되는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영혼을 살리는 성령의 은사와 말씀의 은혜를 나누어주어 성도의 신앙을 견고케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견고케 하려 함이라’는 단어(στηριχ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made firmly)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견고케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하나님)이 견고케 하셔서 로마 교인들이 견고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 때 베드로에게 그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면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στήρισον:strengthen)”고 하셨습니다( 눅 22:32)
이 말씀을 근거로 어떤 학자(Bengel)는 아직 베드로가 로마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Peter had not, any more than Paul, visited Rome, before this epistle was written, as we learn from this passage,)
(2) 따라서, 성도(교회)를 견고케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은사>와 <복음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는 뜨거워졌다가 금방 차가워지고, 변덕이 심하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은사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교회를 견고케 합니다.
(3) 사도행전 20:29-32.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처럼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도 <신령한 은사>와 <복음의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4) 사도행전 28장 끝부분에서, 바울은 온 이태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6:14.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 루디아가 마음을 열어 청종하였고, 표적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끝 부분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사와 은혜의 말씀에 부요한 성도님들이 되시어, 신령한 축복을 충만히 나누어 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 앞 절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 보기를 심히 원하는 이유를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로마 교회를 견고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 절에서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만나보기 원하는 이유로서, <성도간의 믿음을 통해서 서로 안위(격려)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의 모습은 높은 영적인 권위자의 모습이었으나, 12절에서 바울의 모습은 성도들 사이에 빙 둘러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모습은 말씀에는 신적 권위가 있었지만, 성도의 교제에는 막힌 담이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이 꼭 그랬습니다.
(1) 예수님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7:28-29.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 함이러라.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주위에는 가난하고, 천대받고,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민들처럼 가난하셨고, 시장하셨고, 곤하여 잠이 들기도 하셨습니다.
때로는 울기도 하셨고, 서민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도 하셨습니다.
(2) 오늘날 우리 교회도 신령한 말씀과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구역예배를 드리며,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함께 찬송과 기도도 하고, 함께 간증을 나누는 믿음의 교제도 중요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성경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자연히 자신의 생활 –자녀 문제, 부부 문제, 시댁 문제,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을 다 함께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의 비밀한 문제들을 알고 나서,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해줍니다.
그러면서, 아주 깊은 신앙적인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저는 광주 동*교회 청년회에서 이런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체험해보았고, 지금도 모두 장로 권사가 된 그분들과 좋은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3) 이처럼 깊은 신앙적인 교제가 없이, 그냥 예배만 드리고 간다거나, 그냥 육신적 향락을 위해서 놀러만 다니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다 각각 받은바 은사들이 다르므로, 교회의 직분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고 받게 됩니다.
(4) 사실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은 사회적 신분의 차별이 심했지만, 자유인 신분의 교인과, 노예 신분의 교인이 함께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신분과 처지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위로와 은혜를 서로 간증하고 서로 기도해주는 것은 서로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5) 주의 종들이 설교할 때, 성도들이 말씀 속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감사와 감격으로 흐느낄 때는, 설교자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전서 3장 7절에서, 자신들이 고린도 전도 시에 궁핍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굳센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디모데에게 듣고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큰 위로를 받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를 원하고, 또한 로마 교회 성도들과 바울은 서로 위로와 용기와 격려를 주는 관계가 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 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서로 기도해주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