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6]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⑤
지난 2017년 2월 유진 벨 선교사의 외증손자 인요한 세브란스병원-국제진료센터 소장은 집안에서 보관해 온 외증조부의 선교편지를 공개했는데, 이 편지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이듬해 1920년 10월에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부에 보내졌던 선교 보고서였습니다. ‘한국의 독립운동-원인과 결과’(The Independence Movement in Korea―Its Causes and Results)라는 제목의 선교편지에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국민의 참상에 대한 보고가 실려 있고, 3·1운동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와 조선 선교의 결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벨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의해 지속적으로 모욕과 압제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3·1운동에 대해서는 “1919년 봄에 있었던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한 집회”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탄압을 당하는 한국인들을 불쌍하게 여겼고, 특히 기독교인들이 견뎌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922년에는 그의 딸 샬럿 벨(Charlotte W. Bell)이 윌리엄 린튼(인돈: William A. Linton) 선교사와 결혼했고, 린튼은 전주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1940년에 강제 추방되어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다시 돌아와서 교육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아들 휴 린튼(인휴: Hugh M. Linton, 1926-1984)이 3대째 선교를 이어갔고, 그 다음으로 4대째로 휴의 아들 스티브 린튼(인세반)은 '유진 벨 재단'의 회장을 맡고 있고, 작은 아들 존 린턴(인요한)은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이며, 세브란스병원-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유진 벨은 1925년 9월 28일 57세로 별세하여 광주 양림동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