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피노리에서 서울로 압송된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1895년 2월 9일, 첫 번째 심문을 받았다. 심문관이 전봉준에게 학정의 직접 피해자가 아닌데 왜 봉기했는가를 묻자 전봉준은 “많은 사람들이 원통하고 한탄하는 까닭으로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하고자 한 것”이라고 답했다. 심문관이 “고부 기포 당시 동학이 많은가 원망하는 백성이 많은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원민 과 동학이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고 답하였다. 2월 11일 두 번째 심문이 있었을 때 그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최경선 등 다른 동학 접주들을 언급했다. 모두 전봉준 공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이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지난 5월 18일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되었다. 이번에 등재된 185점의 기록물은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회고록과 일기, 유생 등이 생산한 각종 문집, 그리고 조선관리와 진압군이 생산한 각종 보고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목소리 그리고 침묵의 세계
여기에는 이런 편지도 있다. “나라가 환난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네. …… 우리가 왜군과 더불어 오랫동안 싸운 것은 나라에 입은 은혜를 갚고자 함이라네.”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한 유광화가 집에 있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또 다른 목소리도 있다. “오늘 나주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푼 없어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돈 300냥이 오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니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 주시오.” 농민군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한달문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광화의 의연함이나 한달문의 다급한 마음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 하다.
2015년 6월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구성된 후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다시피 한 역사적 대사건에 관한 기록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적게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20세기 한국사는 동학농민군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보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금구에서, 장흥 석태뜰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수많은 생명을 잃고 패주했을 때, 이들은 ‘동비’라고 불리는 폭도로 간주되었으므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은신했고, 변성명을 했고, 또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침묵은 장기지속의 구조로 변했다. 동학이 천도교로 변하고 3.1운동을 주도하는 힘으로 작용했지만, 동학농민군들의 경험을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945년 해방이 되어 50년만에 자신들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이런 기회를 박탈했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 1960년대에도 체계적인 구술 채록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으면서 본격화된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은 110주년이 된 2004년에야 비로소 특별법으로 결실을 맺었지만, 1894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는 없었다. 이런 연유로 한국 근대사가 기억과 기록의 세계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침묵과 망각의 세계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세계기록유산의 의의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중요하고 보존해야 할 기록유산을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2년마다 지정한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자유, 평등, 인권의 가치를 지향했던 동학농민군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보존하고 확산하는 것이 세계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물질문화 뿐 아니라 정신문화 또한 우리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자산임을 깨우쳐준다. 이번에 동학농민혁명 기록물과 함께 4.19혁명 기록물 1,019점, 그리고 북한에서 신청한 <혼천전도>도 등재 결정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18종, 북한은 2종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이루어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민족문화적 공통 유산의 경우 남북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기록유산을 발굴하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확대해 나가면서 남북간 문화적 협력도 함께 진전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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