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3장 7, 배다구우(靈的인 것)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존자여, 베다구우는 있습니까.』
존자는 반문했다.
『대왕이여, 베다구우란 대체 무엇입니까.』
왕은 말했다.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個我)는 눈으로 형상(色)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身)으로 촉감을 느끼고, 마음(意)으로 사상(事象·法)을 식별합니다. 마치 이 궁전에 앉아 있는 우리가 동·서·남·북 어느 창문으로든 내다보고 싶은 창문으로 내다볼 수 있는 것처럼,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는 내다보고 싶은 어느 문으로든지 내다볼 수 있습니다.』
존자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다섯가지 문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가 대왕이 말씀한 것처럼, 창문을 마음대로 고르듯이 눈으로 형상을 볼 수 있다면 눈 뿐 아니라 다섯의 감관으로도 형상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을 보는 것, 촉감을 느끼는 것, 대상(法)을 식별하는 것에 있어서도 다섯의 감관(感官)중 어느 것에 의해서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즉 한 경우만 아니라 모든 경우를 지적해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한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딘나[사람이름]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고 합시다. 대왕은 딘나가 밖에 나가 문간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알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어떤 맛을 지닌 것이 혀 위에 놓여졌을 때 식별하는 생명의 원리(個我)는 그것이 시다든가 짜다든가 쓰다든가 맵다든가 달다는 맛을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맛을 지닌 것이 위(胃)속으로 들어갔을 때도 생명의 원리는 맛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은 앞뒤가 잘 들어 맞지 않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백 개의 꿀 접시를 꿀통에 쏟은 다음, 입이 틀어 막힌 사람이 꿀통속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통 속에서 그 사람은 단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존자여, 그는 꿀맛을 모릅니다.』
『어째서 모릅니까.』
『꿀이 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은 앞뒤가 들어 맞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대와 같은 존자에게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 도리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아비달마론으로부터 끌어내어진 이론으로 미린다 왕을 설득시켰다.
『대왕이여, 눈과 형상(色)에 의하여 눈의 식별작용이 생기고, 그 밖에 접촉(觸)과 감수(感受)와 표상(表象)과 의사(思)와 통일 작용(作意), 즉 추상과 생명감과 주의력 등이 함께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유사한 인과(因果)의 연속은 감각기관이 작용하게 될 때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상(思象·法)은 연(緣)을 따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베다구우는 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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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구우 - vedagu(靈魂)란 말은 파알리어 장경에서 “지혜를 왕성한 사람”, 또는 “부처(佛)”를 뜻한다. “영혼”의 뜻으로 쓰인 것은 “미란다왕문경”뿐이다.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에 의하면, 베다구우(vedagu)는 산스크리트어 vedaka의 속어형(俗語形)이며, 느끼는 자(feeler)또는 경험하는 자(experiencer)로서 남성(the man)을 뜻한다고 한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漢譯)에서는 “사람(人)” 또는 “상주(常主”로 번역했다. 이러한 용법이 생긴 것은 베다안타 논자(論者)가 베다 속에서 많이 말하고 있는 “푸루샤”라는 관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원시 불교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영혼 문제는 인간의 사유능력(思惟能力)을 초월한 것이라는 이유로 판단 내리기를 거부했다.(avyakata의 입장). 그러나 나아가세나 시대에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밀린다팡하>
- (‘서재영의 불교 기초 교리 강좌’에서)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복을 받는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평생토록 너는, 예루살렘이 받은 은총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아들딸 손자손녀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시편> 128편)
오늘 <밀린다팡하>에서 “나아가세나 시대에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렸다."를 보자.
오래전 사람들은 다 영혼이 있다고 말한 문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의 묘목과도 같다.”를 보자.
성경과 나무를 공부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제대로 하려면 역사와 문화도 알아야 하는데. 머리 나쁜 것 감안해 하는 데까지만 해보자.
<꽃의 제국>에 나오는 글이다.
[나무는 여러 해 살면서 여러 번 번식한다. 나무는 몸이 크고 비교적 안정적인 서식지를 차지하기 때문에 빨리 번식하는 것보다는 다른 식물과 경쟁에서 이겨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나무는 일단 땅 속으로, 땅 위로 몸의 크기를 늘리는 데 자원을 투자하여 일정 크기 이상에 도달해야 꽃을 피우게 된다. 꽃을 피우더라도 풀과를 달리 일정한 자원만을 소비하기 때문에 한 번 꽃피웠다고 죽어버리지 않는다. 나무는 오래 살기 때문에 조급하게 꽃피울 필요도 없고 매년 꽃 피울 필요도 없다. 참나무, 소나무, 사과나무, 배나무의 해거리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무려 2천~3천 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미국 서부의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수백 년 만에 한 번 개화를 해도 종족을 유지할 수 있다. 풀과 나무는 모두 꽃피우기에 열심이지만, 예상 수명이 다른 풀과 나무의 꽃피우기까지의 결정은 이렇게 다르다.]
공부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켈트족>에 나오는 글이다.
[유럽 서부의 더욱 큰 켈트 공동체(느슨한 결속의 동맹 상태) 안에서 드루이드는 다른 단체들을 연합할 수 있는 예견, 예언, 희생, 시적 구전, 제식달력, 법 등의 모든 요소들을 관리했다. 그들은 의식용 전설을 모두 구전으로 보존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포시도니아 그룹의 고전 원전은 드루이드가 세 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우선 그들은 구전과 부족의 지식을 보존했는데, 그 내용은 신들, 우주와 다른 세계, 관습법에 대한 자료, 달력 기술 같은 실질적인 기술이다. 지식의 주요부분은 구전으로(아마도 주로 기억하기 쉬운 시의 형태로) 보존했고, 새로 성직자가 된 젊은 세대에게 확실하게 전수해 이어나갔다. 갈리아에서 드루이드의 두 번째 기능은 법에 대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고, 재판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 권력을 족장이나 베르고브레토스의 권력과 나란히 휘둘렀는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드루이는 일반적으로 그들과 다른 직책들(예를 들면 바테스나 만데이스)이 참여하는 제물과 종교의식을 감독했다. 그들이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예견력을 아주 적당하게 성직자로서의 일반적인 의무의 범위에 속했다.]
위 글에서 “아마도 주로 기억하기 쉬운 시의 형태로”를 보자. 그런데 왜 오늘의 시는 어려울까?
<성경 속 나무 스토리텔링>에 나오는 글을 보자.
[국어사전에는 가시나무를 ‘가시가 있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가시나무는 어느 특정한 나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가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아울러 일컫는 이름이다.
성지와 같은 건조지대에서는 식물이 한번 상해를 입으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물에 가시가 많이 나있다. 팔레스타인에 자생하는 식물 중에는 가시가 있는 것이 약 70종이 넘는다. 이 중에는 낙타나 염소 같은 가축의 사료나 가정용 땔감으로 이용되는 것도 있다. 이외에도 외부인이나 짐승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한 생울타리로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는 가시나무가 많이 나는데, 작물을 심기 전에 불을 질러 태워서, 그 재를 비료 역할을 하게 하였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가시가 있는 관목이 18~20개가 나오며,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를 5종류의 가시나무로 번역하였다.
(가시대추, 가시떨기나무, 산티움 스피노숨, 켄타우레아 칼키트라파, 라므누스 파라에스티나)]
발음도 어렵다. 난감하다.
<길고 긴 나무의 삶>에 나오는 글이다.
[태평양 저 너머에서는 중국 중부 지방의 ‘가지가 늘어진 사이프러스(weeping cypress)'와 일본의 편백나무와 화백나무를 둘러싸고 비슷한 논란이 있다. 아프리카 사막과 호주의 오지에, 멕시코의 바위와 칠레의 강둑에-식물학자의 발걸음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사이프러스의 새로운 품종이 있는 듯하다.]
우리 집에도 있다.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생각하기>에 나오는 글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도 있지만 우리 안에 품고 있는 나무도 있다. 폐, 정맥, 림프샘, 신경회로 등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양분(養分)의 통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탄생과 진화 과정에서 정신을 형성하고, 존재 방식과 세계관에 집중하도록 만든 나무의 방식,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목해 보자.
헤세의 <싯다르타>를 보자.
[그날 하루종일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고빈다를 생각하면서, 고타마를 생각하면서 망고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망고나무는 또 뭘까?
오늘도 게송으로 마무리하자.
구아바 구아바 망고를 유혹하네
이 나무들은 또 뭘까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