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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詩人 김연지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스크랩 다산정약용박물관,,,
최종탁 추천 0 조회 321 16.08.07 18: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약용의 생애


정약용은 1762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셨다.
정약용의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이셨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두서의 손녀였다고 한다. 4남 2녀중 막내셨고, 1836년 2월 22일
향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정약용은 자녀를 6남 3녀를 두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일생은 3기로 나눌수 있다.
1기는 벼슬살이 할때 편하게 산 것, 2기는 귀양살이 하던 환난시절이고
3기는 향리로 돌아와 유유자적 하던 시절이다.

 

정약용의 업적


정약용은 전통적으로 중농학파였다. 즉 농사를 중시하는 학자였는데, 이러한 그는 북학파라고 불리는 중상학파 또한 포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실학을 모두 아우름으로서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리고 서학 연구 및 한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과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학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중기의 발명과 수원성의 건립을 든다. 이러한 것은 당시 실용적인 학문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밖에도 목민심서 같은 훌륭한 책을 펴 내어서 목민관, 즉 지방수령 등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지에 대해서도 잘 기술해 놓았다.

 

정약용 평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남인계열의 중농주의 실학자로 뛰어난 학문과 인품으로 정조의 각별한 총애와 신임을 받았고 수원화성을 쌓을 때, 인원과 비용을 절감한 거중기를 고안하였고 정조가 모후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수원화성으로 행차를 할 때! 쓰인 배다리를 설계하기도 하였고 지방에서는 훌륭한 목민관으로 활동하였고 암행어사의 신분으로는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부패한 탐관오리를 적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노론계열에서 진보적이고 상공업 진흥을 중요시하고 청과의 교역을 통해서 청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북학파라고 불리는 박제가 등의 중상주의 실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고 정조가 승하 한 후에는 노론세력들이 세력을 잡고 안동김씨 등의 외척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세도정치를 행할 때는 유배지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의 책을 저술하였고 아버지로써 자녀 교육에도 신경을 ?습니다.

 조선후기에 중농주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예론을 통해서 기술을 발전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해서 청의 기술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고 유배지에서의 저술활동을 통해서 실학을 집대성 하였고 토지제도로는 여전제를 주장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평가는 나라의 관리로써 훌륭했고 학자로써 뛰어난 학문을 가져고 자녀의 훌륭한 아버지 였다고 평가되고있습니다.

 출처...강진군외본인

 

 

 

 

 

 

 

 

 

 

 

 

 

 

 

 

 

 

 

 

 

 

다산의 생가의 모습 : 

여유당(與猶堂)이라 불렀다는 본래 생가는 홍수에 떠내려가 1975년에 복원한 것이라 했다.  

ㅁ자 20칸의 집이고 오른쪽에 사당, 왼쪽에는 생전의 유품을 수집 정리한 유물전시관이 있었다

 

 

 

 

 

 

 

 

 

 

 

 

 

 

 

 

 

 

 

 

 

 

 

 

 

 

 

 

 

 

 

 

 

 

 

 

 

 

 

 

 

 

 

 

 

 

 

 

 

 

 

 

 

 

 

 

 

 

 

 

 

 

 

 

 

 

 

 

 

 

 

 

 

 

 

 

 

 

 

 

 

 

 

 

 

 

 

 

 

 

 

 

 

 

 

 

 

 

 

 

 

 

 

 

 

 

 

 

 

 

 

 

 

 

 

다산의 묘가 있는 뒷동산에 어린 학생들이 참배를 하고 내려오는데

나는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서 쳐다보고만 왔다.

 

 

 

 

다산의 사당

 

 

 

 

 

 

 

 

 

 

 

 

 

 

 

 

 

 

 

 

 

 

 

 

 

 

 

 

 

 

 

 

 

 

 

 

 

 

 

 

 

 

 

 

 

 

 

 

 

 

 

 

 

 

 

 

 

 

 

 

 

 

 

 

 

 

 

 

 

 

 

 

 

 

 

 

 

 

 

 

 

 

 

 

 

 

 

 

 

 

 

 

 

 

 

 

 

 

 

 

 

 

 

 

 

 

 

 

 

 

 

잘 정돈된 다산 유적지 입구 모습...

 

 

 

 

 

 

 

 

 

조안에서 유명한... 순두부집에 들러 허기를 채웠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라 했다..

이런 맛난 음식을 먹게되는 것도

다산같은 선열들의 공로가 아닐까 생각들었다.

 

 

 

 

 

 

다산은..어떻게하면 백성이 배부르고 편하게

살수 있을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실천했고

목민심서를 통해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지켜야할 도리를 제시하여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제거하고

경세유표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한 원칙을 제시했고

흠흠신서를 통해 죄인을 다스리는 형벌에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지방관의 의식과 행동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여 백성들이 보다 편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던...

요즘 우리가 배워야할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박물관과 생가를 돌아보면서

왠지 모를 마음에 감흥이 가득 차올랐다.

 

저서로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한 해석서 종류,

그리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대표적이지만

이 밖에도 모두 500여 권의 저술서가 있는데,

 이는 「여유당전서」에 함께 묶여 기록되어 있단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여길 다녀오길 참 잘했다 생각하고

다시 사진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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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daum.net/flyyc/1467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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