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
김 춘 리
달력을 북 찢듯 사과 하나 떨어졌다 단단한 꼭지에서 말문이 터졌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빨갛게 익은 말투는 코카서스 미트라*에서 온 것 신의 무지개를 통과한 것들이다 물고기 눈알처럼 사과가 붙어 있는 8월 쪽지는 가장 먼 곳이 기어이 오고야 만다는 예감이다 길게 누워 있는 고요의 형석으로 죽을 듯이 꼭지를 붙잡고 매달리면 떫고 쓴 상처를 혀끝으로 핥듯 깊고 낮은음으로 꼭지는 통과해 간다 꼭지는 리모컨 기억을 불러내는 소켓 맨처럼 작은 사과씨에 살이 부풀어 올랐을 때 열매는 실패를 마지막 과업으로 삼는 법을 배운다 사과에 붉은색이 물들기까지 은박지를 태양계로 부르기도 한다 은박지는 태양의 각도이며 빨갛게 익은 사과는 칠억 삼천육백사십 번째 태양의 부속품 중 하나일 것이다 사과의 꼭지는 안드로메다 어디쯤에서 날아온 방식 같다 달력의 요일을 맞추는 일이나 사과나무에 사과를 채우는 것은 빈칸을 채우는 일 사과 속에는 답하지 못한 감정과 시간이 고여 있어 껍질만 붉다 * 미트라(Mithra)는 고대 인도-이란어파의 계약과 맹세의 신이자 광명의 신이다.
- 시집〈지구의 간섭을 기록하네요〉교유서가
평면과 큐브 - 예스24
평면과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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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리 시집 〈평면과 큐브〉 한국문연 | 2023
지구의 간섭을 기록하네요 - 예스24
아마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빈자리를 헤아리는 목소리시간에 마모되는 순간을 받아쓰는시인 열한 명의 선연한 다성악★ 2024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 시시인 열한 명의 시를 묶은 앤솔
오늘의 시인 11인 앤솔러지 시집 〈지구의 간섭을 기록하네요〉 교유서가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