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천사에게 이끌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본다. 도성 성벽의 열두 초석 위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이끌려 온 나타나엘에게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며,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천국의 시작: 내가 벗으면 다른 이도 벗는다.
저도 솔직하게 다 드러내놓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함이 없이 자신을 감추는 사람들과 만날 때는 숨이 막힙니다. 관계이기는 하지만 관계가 아닌 느낌입니다. 위선적인 관계 안에서 머물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입니다. 가까울수록 더 솔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정말 지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리즈에 사는 닐 브로드벤트 씨는 하나의 동영상을 올려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스텔라에게 청혼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이것만 봐서는 특이할 필요가 없습니다. 촛불을 깔아놓고 하트 모양의 카드에 “당신에게 하는 중요한 질문 하나!”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 속엔 분명 “나와 결혼해 줄래?”라는 글이 쓰여 있어야 당연할 것입니다.
스텔라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카드를 열어봅니다. 그런데 그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도대체 토마스 루라는 놈은 누구야?”
토마스 루는 스텔라의 내연남이었습니다. 닐은 청혼하는 척하고 기분을 돋워놓은 다음에 여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신은 통쾌할 수는 있지만 역시나 같은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신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정말 지옥은 거짓말부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는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행복한 관계도 끝났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관계는 벌거벗고 만나야 합니다. 가리는 것이 없을 때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라도 숨기는 것이 많을 때는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처음에 필립보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솔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여기서 이스라엘은 한 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 곧 에덴동산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는 무화과 잎을 뜯어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묻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48)
바르톨로메오도 자신이 거짓이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우리 각자도 어쩌면 지금까지 무화과 잎을 달고 다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뜯어내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건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무화과 잎이 달린 이상 에덴동산에 머물기 어렵습니다.
이북에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몰래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산 사상에 짙게 염색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온 동네에서 아들이 친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온 마을 주민에게 교육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공개재판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벙거지를 씌우고 손을 뒤로하여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그 앞에서 아들이 고발장을 큰 소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 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 나와 공개재판을 구경하면서 숙연하여 졌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여 죽이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심정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습니다. 공산당들은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상을 주고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편, 이 아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이 아이가 공산 사상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공부시키고 길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결혼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이 웃는 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사형당하신 아버지 웃는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기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지를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것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지옥 같았습니다. 이런 번민 속에 김 요석 목사를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도 용서하시나요?”
김 목사는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그보다 더한 죄도 용서하십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위의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고 아들이 자기를 고발할까 봐 조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고백해야 다시 천국으로 돌아옵니다. 감추고 사는 건 지옥입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을 때, 선배 신부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배가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힘든 선배가 있다면 무조건 그 선배에게 고해성사를 봐, 그러면 잘 대해줄 수밖에 없어!”
과연 그 조언은 적중했습니다. 제가 먼저 벌거벗으니 선배 신부님도 벌거벗었습니다. 자신에게 고해성사하는 저를 고마워했습니다.
우리 관계를 천국으로 만드는 쉬운 방법은 먼저 나에게 붙어있는 무화과 잎을 떼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이 천국으로 변합니다.
https://youtu.be/5UCnSnHQPcg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떤 분이 “신부님, 이 영화 보셨어요? 정말로 재미있어요.”라며 영화 한 편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솔직히 밀폐된 공간에서 가만히 있으면 거의 100% 잠들기 때문에, 극장에 가지 않은 지 꽤 되었습니다. 불편하게 잠을 자러 극장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추천해주신 영화는 인터넷 유튜브에서 사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특히 재미있다면서 극찬하셨거든요. 재미있다는 말에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쏙 빼놓는 슬픈 로맨스 영화였습니다. 전혀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의미 있다’가 맞는 표현이 아닐 것 같은데, 우리는 이때에도 ‘재미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재미라는 용어가 참 다양하게 쓰입니다.
“너 재미없을 줄 알아.”(협박하는 말)
“사업하는 재미가 어때?”(먹고 살기 위한 일인데)
“신혼 재미가 어때?”(재미와 생활이 동의어가 됩니다)
이 밖에도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말이 있습니다.
“나 머리 자르러 간다.”(단두대가 아닌 이발하러 간다는 것)
“화장이 잘 먹었네.”(화장품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해하기 힘든 말과 글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필립보는 주님을 만나 메시아이심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인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나타나엘은 성경 지식에 박식한 사람이었기에,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지명인 나자렛 출신의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는 것은 당시의 라삐들이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나타나엘이 성경에 전념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예수님께 그는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요? 나타나엘이 주님을 향해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만나기 전에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역경 속에서도 계속 의욕을 가져라. 최선의 결과는 곤경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마틴 브라운).
렘브란트, 성 바르톨로메오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