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다.
두메산골 농촌에서 서울 유명대학에 진학 한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이 방학을 맞아 친구 몇 명을 데리고 시골로 왔다.
시골집에 도착한 아들과 친구들이 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아들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들일을 하고 오는 중이라 옷차림이 매우 남루했다.
친구들이 아들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아들은 머뭇거리다 ‘우리 집 머슴’이라고 했단다.
이와 비슷한 실화(實話)가 있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부가 아들 뒷바라지를 잘하여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을 보냈다.
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흔한 말로 출세를 하여
부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로 기뻐했다.
출세한 아들은 명문대학을 나온 여자와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다.
아들이 서울에서 새 살림을 차리고 집들이 하는 날이었다.
아들부모는 음식을 장만하여 바리바리 싸 들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택시를 타고 아들집에 들어갔더니 이미 아들 친구들이 와 있었다.
시골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기대에 벅차
아들집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그때 아들친구 한 명이 ‘저 분들은 누구시죠?’하고 며느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조그마한 소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노부부는 순간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고 그 즉시 시골로 내려왔다고 한다.
부부는 부부만의 인연이 아니라 두 가정이 하나가 되는 정말 귀한 인연이다.
부부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부모, 부부,
자식 간의 관계가 정답고 따뜻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부모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 자식이 있다.
내 조상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사람이 었다면 「나」란 존재 란 없다.
부모를 무시하고 자식을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격이다.
우학(대관음사) 스님이 움막 생활을 하던 시절에 저녁이면
꼭 스님을 초대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는 애태우는 법이 없으며 생활에 헐떡거림이라고 찾아 볼 수가 없다.
"스님, 다 이렇게 사는 거지요.
사는 게 별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부부는 아직 평생을 살면서 얼굴 붉히면서 입씨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생은 형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다니질 못했다.
그런데 그 형의 부부는 가정이 늘 전쟁터였고
동생 부부는 담 너머 큰소리 한번 나지를 않았다.
이 시대에는 똑똑한 사람이 참 많다.
차라리 너무 많이 배웠다고 해야 옳다.
비록 그 배움이 많다 하더라도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참된 자아(自我)에 흡수되지 않으면 함부로 내두르는
지식의 칼날에 스스로도 다치고 남도 다친다.
나는 오늘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배운 사람의 넉넉하고 여유로움과 배우지 아니한
사람의 넉넉하고 여유로움이 어떻게 다를까?"
실천 없는 지식만 쌓아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삶은 껍데기 인생이 된다.
특히, 부부가 양가 부모를 무시하고 무얼 얻겠는가?
시부모와 장인 장모를 무시하면 그것은 곧 내 자식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원사가 식물을 관리할 때 가장 신경 쓰는부분이 뿌리라고 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가 튼실하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것이 세상으이 이치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회원님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먼저 사람의 도리 즉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명심하자꾸요